‘의약품 자판기’ 확대 검토에 약사들 강력 반발

정부, 전국 확대 검토하자, 오남용·개인정보 유출 우려
공공 심야약국 확충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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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수원특례시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의약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은진기자

‘자판기’에서 약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편의성을 높이는 일일까, 오남용이 우려되는 일일까.

정부가 심야시간이나 공휴일 등 약국이 문을 닫는 날에도 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화상투약기 시범사업’을 승인하고 전국적 확대를 검토하자 약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제22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총 11건의 규제특례 과제를 승인했다. 이 안에는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가 포함돼 있다.

이 화상판매기는 약국이 문을 닫은 시간대에 약국 앞에 설치된 자판기를 통해 약사와 소비자가 원격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기기를 말한다.

현재 서울지역 10곳에 설치돼 3개월간 시범 운영을 한 뒤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1년여 뒤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들의 의약품 구매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지만 약사계는 불편한 기색이다.

경기도 내 한 약사(35)는 “약 자판기에서 구입한 약을 환자가 잘못된 방식으로 먹었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의문”이라며 “여러 약국을 돌며 약을 수차례 처방 받을 수도 있고,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약도 한정적이어서 환자의 선택권도 줄어들어 실질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원특례시 권선동의 다른 약사(56) 역시 “약을 약사가 판매 해야 하는 이유는 비용 문제, 불편 문제도 아닌 오로지 안전의 문제”라며 “효용성만 따지면서 경제논리로 보건의료분야를 대하는 건 대기업이 국민을 앞세워 의약품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약사계는 오후 10시부터 익일 1시까지 문을 여는 ‘공공 심야약국’ 확충을 제안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용인·부천·남양주 등에서 총 18개의 심야약국이 운영 중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이번에 재논의된 ‘약 자판기’ 사업은 2012년부터 꾸준히 이야기 됐지만 명분이 없어 여태껏 실현이 안 됐던 것”이라며 “규제특례로 혁신적 운영을 해보자는 취지겠지만 국민 건강을 담보로 하는 약 자판기를 ‘혁신적 규제특례’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공공 심야약국 확충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이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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