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미디어 시대 이전 텔레비전을 장시간 보면 눈이 나빠진다거나 바보가 된다며 말하던 어른들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활발하기 전 텔레비전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투시경이자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백과사전이었다. 이러한 텔레비전을 작품에 활용한 이가 있었다. 1963년 독일에서 열린 자신의 첫 개인전에 13대의 텔레비전을 등장시킨 백남준이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미디어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텔레비전을 작품에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미디어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인식했으며 나아가 미래 예술의 방향을 예견했다는 점이다.
포천문화재단은 백남준이 예견한 미래 예술의 방향을 살펴보고 그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고자 오는 30일까지 포천반월아트홀 전시장에 <멀리 보다 : 백남준의 TV>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는 텔레비전을 매체와 모티브로 사용한 백남준의 작품 17점을 내걸었다. 1990년대에 제작된 전시 작품들은 텔레비전을 활용해 예술과 기술, 예술과 일상의 융합을 실천했던 백남준의 예술관을 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장 천장에 달린 ‘비디오 샹들리에 No.4’와 ‘비디오 샹들리에 X’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1989년 처음 선보여진 ‘비디오 샹들리에’ 시리즈는 샹들리에를 이루는 여러 TV 모니터가 현란한 이미지를 방출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정보를 뿜어내며 정보화 시대의 변화하는 세상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샹들리에 주변 꽃과 잎은 이질적인 기술문명의 시대를 드러낸다.
전시장 중반부엔 ‘금붕어를 위한 소나티네’, ‘집 없는 부처’, ‘프랑스 시계 TV’ 등 크고 작은 모니터가 사용된 백남준의 설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은 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인간의 문명과 백남준의 예술관, 자아상 등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멀리 보다 : 백남준의 TV>의 메인 작품은 94개의 TV 모니터로 이뤄진 대형 비디오 설치작품 ‘M 200’이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등 잘 알려진 예술가의 모습을 영상으로 송출한다. 백남준은 거대한 영상 벽화에 직접 작곡한 사운드를 더해 새로운 예술 탄생을 예언했었다.
특히, 이번 전시가 다른 백남준 관련 전시와 다른 점은 드로잉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전시에서 벗어나 그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드로잉을 포함해 관객들이 더욱 쉽고 친근하게 백남준 작품에 다가가게 했다. 실제 아이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이지영씨(38)는 “기존 전시에서 접한 백남준 작품은 난해하다고 생각할 만큼 어려웠는데 이번 전시는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구성돼 아이들도 재미있게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고 평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지언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지금의 미디어 시대를 누리기 이전 백남준은 미디어 기술이 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사람”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시대를 앞선 백남준의 작품으로 그의 예술관을 더 잘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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