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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을 걷다]① 희망 담아 ‘자유’ 새겼지만…절망 닿아 ‘고통’ 남았네
문화 경기옛길을 걷다

[경기옛길을 걷다]① 희망 담아 ‘자유’ 새겼지만…절망 닿아 ‘고통’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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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포로 건너기 위해 임시로 만든 임진각 ‘자유의 다리’, 실향민의 아픔을 간직한 채, 낡고 오래된 다리는 자유와 멀어져갔다

길은 가장 확실한 인간의 흔적이다. 자주 다녀 흔적이 된 길이 있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 있다. 셀 수 없는 이들이 오간 그 길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직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한 가득인 그 길은 우리 가까이 존재한다. 특히 조선시대 한양과 지방을 이어주는 관문 역할을 했던 경기도에 많다. 지금은 ‘경기옛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길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 경기옛길을 걸으며 길 위에 새겨진 이야기들을 연재해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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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하게 남은 수인선 철도의 흔적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던 지난 7월의 어느 날,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중고차 매매단지로 핸들을 돌렸다.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발걸음을 옮겨 정갈하게 포장된 산책로 위에 발을 디디자 곧게 뻗은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간단하게 촬영을 마치고 1분가량 걸어 들어가자 서호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가 눈에 띄었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의 정체가 ‘옛 수인선 철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철로를 나무로 덮어 다리로 만들었지만, 철길 자체를 드러내 이곳이 수인선 철로였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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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옛 수인선 철로.

옛 수인선 철로는 경기옛길 삼남길의 다섯 번째 구간인 중복들길 위에 있다. 과거 수원과 인천을 이어주던 이 철도는 1937년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 소유의 사립 철도로 세워졌다. 일제 치하에 있던 당시 산미 증산 계획에 따라 조선의 곡식이 일본으로 대량 반출될 때 이 수인선이 사용됐다. 즉, 수인선은 일제에 의한 가혹한 수탈과 궁핍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수인선은 1977년 수원-인천 간 산업도로가 개통하면서 그 쓰임새가 줄었고,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했다. 철로는 폐쇄됐고, 철길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 위를 지나고 있었다. 다리 입구에는 이 길 이름이 삼남길이라는 것과 모수길, 수원둘레길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수인선에 대한 설명이 적힌 녹슨 스토리보드가 이 길의 과거를 설명하고 있었다.

■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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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 본 두물머리 풍경. 곽민규PD

북한강변을 따라 두물머리나루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두물머리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배다리 입구에 자리한 경기옛길 스탬프함에서 도장을 찍고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방문객들이 많았다. 가장 눈에 띈 건 곳곳에 걸린 핫도그 판매 간판이었다.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 두물머리 핫도그가 맛있다는 내용이 방송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두물머리의 멋진 광경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보다 핫도그가 더 유명하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모인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양수리이다. 공원 중앙에는 두물머리 나루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를 통해 이곳이 과거 나루터였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광주를 오가던 나룻배가 있었고, 나루 근처에는 객줏집·술집 등이 즐비했다. 또한 이곳에는 수령이 500년이 넘는 ‘도당 할아버지’라는 느티나무가 1982년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원래 그 옆에는 ‘도당 할머니’ 느티나무도 있었지만, 1968년 5월 팔당댐이 착공되면서 1970년대 해당 구역이 수몰돼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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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 본 두물머리 풍경. 곽민규PD

나루터의 역사적 배경이나 도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설화를 알지 못해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두물머리를 찾고 있다.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커플들, 그리고 조용히 사색에 잠겨 여유를 즐기는 이들까지 각자만의 방식대로 두물머리를 즐기고 있었다.

■ 임진강의 남과 북을 잇던 자유의 다리

임진강역에서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을 따라 걸으니 임진각관광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민통선을 왔다갔다 하는 곤돌라도 보였다. 다소 까다로워 보이는 탑승절차에 곤돌라 탑승은 다음을 기약하고 임진각 광장에 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망배단이라고 쓰인 커다란 비석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허름한 다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유의 다리였다. 어린 시절 기억과 달리 매우 낡고 허름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임진각을 찾은 관광객들은 자유의 다리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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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다리는 겉으로는 목재를 이용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은 철재를 사용했다. 1953년 한국전쟁 포로 1만 2천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해 현재까지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원래 경의선 철교가 폭격으로 파괴돼 기둥만 남아 있었지만 전쟁 포로들을 통과시키고자 철교 일부를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임시다리인 ‘자유의 다리’를 설치했다.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반대로 실향민을 위한 망배단과 함께 자리하고 있어 고향으로 갈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 역시 안고 있었다. 자유의 다리를 건너 임진강 철교를 지나면 경의선 남쪽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이 나타난다. 그다음 역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다. 비록 철길은 끊어지고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지만 언젠간 임진각 이북으로 길을 이어가길 희망해 본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 의주길을 통해 전 세계로 다시 한 번 뻗어갈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글·사진=장영준기자 / 영상촬영=곽민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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