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각자의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수원시립공연단의 정기 공연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가 오는 16일부터 20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연극은 일제 강점기 말인 1944년, 외딴 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사는 한 가족과 섬에 주둔하던 일본인 헌병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조명한다. 어두운 시대의 그늘 속에서 힙겹게 휩쓸려 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을 통해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정의신 작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무대 위에선 수원시립공연단의 이경, 전지석, 유현서 등 단원들과 베테랑 배우 손병호가 합을 맞춘다.
구태환 감독은 정의신 작가와의 협업에 관해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했다. 구 감독은 “정의신 작가는 개인적으로 너무 존경하는 분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몸 담으셨던 극단 ‘신주쿠양산박’이 한강 고수부지에서 공연했던 ‘인어전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 이후 사적인 계기로 선생님과 연이 닿아 교류가 이어졌고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뿐 아니라 이번 작품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구 감독은 관객들이 연극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특히 신경썼다. 무대와 객석의 크기, 위치, 구조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블랙박스 극장 시스템을 온전히 구현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무대 위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수원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서 객석 약 200석이 무대를 둘러쌀 수 있도록 기획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관객과 소통하는 것 만큼이나 배우들이 서로 교감하는 일도 중요하다. 공연에 참여한 손병호 배우는 수원시립공연단 단원들과 서로 합을 맞춰가다 보니 점점 편안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기존 단원들끼리 빚어놓은 색깔과 호흡을 흐트러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지금은 서로 쳐다만 봐도 교감이 이뤄진다”고 웃어 보였다.
이에 구 감독은 “단원들에게도 너무 좋은 기회다. 우리끼리만 공연하고 연습하면 몰랐던 것들이, 외부 인력과 함께할 때는 보이기 시작한다”면서 “경계를 허물고 교류하는 과정이 공연단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최근 간담회 자리를 통해 극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았다. 홍길 역의 손병호 배우는 신체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첫째 딸 진희와 일본 군인의 사랑이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 관계를 생각해보면 양국 사이의 복잡한 갈등과 교차하는 감정들을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순 역을 맡은 이경 배우도 “벚꽃이 무대 위로 흩날리는 환상적인 장면에서 관객들이 작품에 스며든 메시지를 떠올리고 많은 생각을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극 중 인물들은 봄에 관한 대사를 읊는다. 봄이 오면 다 잘되겠거니 낙관하기도 한다. 결국 연극에서 봄이 어떤 의미로 관객 각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걸까. 봄의 의미는 단순한 조국 광복부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사소한 꿈까지 다양한 형태로 각자의 마음 속에 가닿을 수 있다. 무대 위 인물들은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던 ‘봄’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구태환 예술감독은 “역사의 외면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 속에서 몸부림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다시 얘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과거의 일들은 지금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그 점이 와닿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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