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대여 공간 수원시청년지원센터 ‘청년바람지대’ 애용 ‘국민내일배움카드’ 활용 자격증 공부 등 직업 능력 개발 앱테크로 교통비 아끼며 ‘무지출 챌린지’... “올해엔 결실 기대”
20대 취준생의 하루
‘욜로(You Only Live Once)’와 ‘플렉스(Flex)’를 외치던 청년들 사이에서 이젠 무(無)지출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지출액을 ‘0’에 가깝게 줄여 나가며 고물가 시대에서 살아남는 게 목적인데, 특히 취업 길에 막 뛰어든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무지출 챌린지’에 나선 청년들은 습관처럼 들렀던 커피숍 대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커피믹스를 타 마신다. 또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둔 새 옷 대신 중고 거래를 하고, 절약을 위한 ‘짠테크’ 방법과 노하우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 서로를 응원하기도 한다. 나의 작은 한 걸음이 커다란 절약으로 이어지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오늘날. 새해에도 청년들의 힘찬 걸음이 시작된다. 편집자주
■ 스물아홉, 꿈을 향해 달리는 김주은씨의 ‘호주머니 이야기’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김주은씨(29·수원특례시)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며 더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직 준비에도 교재, 강의 비용, 자격증 시험 비용은 물론 고정 생활비가 매달 나가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통장 잔액에 하루 동안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영어 라디오를 들으며 오늘 이슈는 어떤 내용인지, 들리지 않는 단어는 무엇인지 집중해서 생각하다 보니 금세 수원시청년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청년바람지대 공간’은 수원시에 거주하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대여 신청을 하고 무료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1층의 자유존은 별도의 대관신청 없이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해 매일 카페나 독서실에 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애용하는 곳이다.
어느덧 점심시간.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에 매일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 부담스럽다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낸다.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 냉장고에 남아있던 야채들로 만든 볶음밥을 쓱쓱 비벼 끼니를 해결했다. 이후엔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해 들을 수 있는 강의 스케줄을 살펴본다.
국민내일배움카드는 정부에서 직업훈련이 필요한 이들에게 스스로 직업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비를 일부 지원하는 제도다. 교육비로 취업이나 이직에 필요한 직무능력을 배울 수 있 어 인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교통비도 아끼고 운동도 할 겸 구불구불 골목길을 걸어간다. ‘캐시 워크 앱(100보당 1캐시를 주는 앱)’을 사용하면 주는 포인트를 모아 카페, 편의점 등 기프티콘을 구매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그가 오늘 쓴 지출은 편도 버스비 1천300원. 스물아홉, 아름다운 청춘 주은씨는 오늘도 걷는다.
■ 스터디 늘리고 자취방서 셀프 촬영까지...“불안감 이기는 건 노력뿐”
매일 오전 8시, ‘아준생’(아나운서 준비생) 최승호씨(27·하남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롭게 올라온 채용공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마감일을 휴대폰에 적어둔 후 이내 신문을 펼쳐 든다. 2년째 아나운서를 준비 중인 그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자 나태해지지 않으려 시사상식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미 실기, 토익, 한국어까지 다양한 스터디에 가입돼 있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이 조급해져 최근 스터디를 하나 더 늘린 것이다. 신문을 읽다 보니 어느덧 부쩍 흐른 시간에 그는 연습할 원고를 챙겨 아나운서 학원 스터디룸으로 향했다.
학원 스터디룸은 미리 예약만 해두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연습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볼 수 있도록 장비까지 갖춰져 있어 가난한 아준생에게는 학원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뉴스 원고 리딩, 1분 스피치, 면접 연습까지 3시간을 알차게 사용했지만 ‘조금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아쉬움은 늘 남는다.
이후엔 집으로 돌아와 영상 포트폴리오 촬영을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아나운서 지원 시 자기소개, 뉴스 원고 리딩 영상을 함께 제출하는데, 헤어, 메이크업, 의상 및 스튜디오 대여비까지 한 번 촬영하는 데만 10만원이 넘다 보니 영상 하나를 찍을 때마다 주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화장은 셀프로, 의상은 가장 잘 어울리는 옷 한 벌을 구매해 활용하고 있다.
스튜디오 대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이제는 스튜디오 대신 자취방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프롬프터 앱을 사용하는 ‘셀프촬영의 달인’이 됐다.
그러나 이렇게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불안한 현실에 잠식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는 “ 저만의 속도로 묵묵히 제 길을 걷다 보면 2023년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 청춘들 새해 희망...“올해엔 새로운 결실 맺길”
매일같이 어두운 경제 위기가 전망되며 취업 문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청년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희망찬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온전한 자립까지 시간이 더 소요되고, 비용이 더 투입될지언정 ‘대한민국 청년’의 새해 기대감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 취업자 수는 감소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전국 취업자 수는 2천842만1천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62만6천명 증가했지만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5천여명 줄어 2년여 만에 전년 동월 대비 줄어드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때 자격증 등 시험 준비를 이유로 휴학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졸업자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연령이 높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 각종 소비 비용도 만만치 않은 탓에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온전히 취업 준비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물가 따라 고공행진하는 학원비, 시험 응시료에 더 이상 졸라 맬 허리띠도 없다.
2021년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구직자의 월 평균 취업 준비 비용이 31만2천원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취업의 ‘뫼비우스의 띠’가 아닐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보니 ‘취준준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말이 하나의 밈(meme)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청년들의 ‘무지출 챌린지’가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수진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무지출 챌린지는 소비를 줄인다는 경제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만 핵심은 ‘도전’임을 내포한다”며 “청년들은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미세 행복을 추구하고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강조했다. 이은진기자·오민주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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