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12-②

‘과나후아토’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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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건물을 호텔로 개조해 발코니가 예쁜 호텔의 모습

 

잠시 대기실에서 비를 피한 후 역사 지구에 예약한 숙소로 가려고 했으나 비가 그치지 않는다. 체크인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탄다. 한 청년에게 예약한 숙소를 이야기했더니 친절하게도 내릴 곳을 알려줘 쉽게 정류장에서 내린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역사 지구에 들어서자 그쳤다. 중세 콜로니얼 건물을 개조한 호텔에 여장을 푼다. 한 달여간 쿠바와 멕시코 여행길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자 과나후아토에 5박6일간 머물 계획이다. 호텔에 부탁해 별도로 책상을 침실에 들여놓고, 여행지에서 얻은 자료 정리와 글을 쓰면서 쉬엄쉬엄 주변 명소를 돌아보기로 한다.

 

과나후아토는 주도(州都)로, 멕시코시티와 과달라하라 중간 지점 산악지대에 있고, 약 5만명이 살고 있다. 과나후아토의 명칭은 타라스코족 언어에서 연유한 것으로 ‘개구리 언덕(Quanax-juato)’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에스파냐 식민 지배를 당하기 이전에는 오토미, 치치메카, 타라스코족이 거주했다. 이곳은 예전부터 원주민 광부들이 소규모 채광을 이어가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손재주가 뛰어난 아즈텍족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채굴된 금과 은 등 귀금속으로 지배층의 장신구를 만들며 살았다.

 

1548년 누에바 에스파냐 시대 초기 이곳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자 누에바 에스파냐 지역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본국에서도 수천명의 채굴꾼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18세기에는 세계 최대 은 생산지로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렸고, 역사 지구에는 그 당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식민 지배를 당하던 초기 전반적으로 도시는 커지고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하층민은 가난에 허덕이며 삶은 날로 팍팍해져 갔다. 18세기 말에는 과도한 세금 부과에 저항한 시민들이 생산된 은 중 에스파냐 왕에게 바칠 은 저장고인 카하 레알을 습격하는 일도 발생했다.

 

과나후아토는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민중 지향적 가톨릭 사제인 미겔 이달고가 1810년 9월에 정부군을 상대로 첫 전투를 치렀던 혁명 투쟁의 발원지고, 콜로니얼시대 아픈 역사를 간직한 식민도시로 도시 전체가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멕시코 근대사의 중요한 명소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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