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거룩한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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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교목

인생의 의미를 ‘항해’에 빗대곤 한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인생은 항해’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지대넓얕’의 작가 채사장은 TV 강연에서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라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며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지, 아니면 그저 생존했는지 구분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산 것인지, 다만 생존한 것인지 그 누구도 평가할 자격과 기준은 없다. 사실 세네카도 자살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는가. 세네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새해를 시작하며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계획하고 준비한다.

 

그러나 인생의 항해에서 자주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항해는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인생의 항해를 떠남에 있어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종교, 세계 등 수많은 배를 타야 하고 배에 함께 탄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새해를 맞아 내가 속한 공동체와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항해가 출발부터 험난하다. 물가와 금리가 치솟아 서민경제는 태풍을 맞은 듯하고 정치적인 분위기는 풍랑이 이는 바다처럼 어수선하다. 이런 항해를 지속하다가는 우리가 함께 타고 있는 배가 난파하거나 침몰할 위기에 봉착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2023년 항해를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단언하면 거룩한 항해다.

 

창세기 18장에는 낯선 자를 대접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섭씨 5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걸어오는 낯선 사람 세 명을 발견한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낯선 이들은 위험한 존재였으나 아브라함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쳐나가 낯선 자들을 맞이한다. 아브라함은 주위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처지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환대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들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는 공리주의적 사람관을 경계하는 대목이고 거룩을 이루는 삶이다.

 

‘거룩’이란 용어는 히브리어 ‘카도쉬(kadosh)’인데 ‘구별’, ‘다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흔히 세속과 구별돼 신의 말씀에 입각해 나 자신의 생활을 바로잡는 것을 거룩이라고 한다.

 

나아가 거룩이란 나와 다른 낯선 이와 편안하지 않은 것을 배척하지 않고 그것을 깊은 사유와 배려를 통해 섬김과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즉 구별과 다름,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나를 챙기면서 이웃을 챙기는 것.” 그것이 거룩한 삶의 핵심이다.

 

2023년 우리 삶의 항해가 이러한 거룩으로 점철된다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에 뿌듯한 성취와 보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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