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중첩으로 공간 확장’… 최혜란 작가 초대전 팔달구청 갤러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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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구청 갤러리 최혜란 작가 초대전 ‘When You Pause’ 전시 전경. 송상호기자

 

최혜란 작가의 초대전 ‘When You Pause’가 팔달구청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최 작가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 주체가 인식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그는 10여년간 작업을 이어오면서 인간이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에 관한 고민들을 공간의 확장으로 풀어낸다. 그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캔버스에만 머무르지 않고 조명, 영상 등의 설치 작품으로도 작품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화성, 의정부, 서울 등지에서 15회의 개인전을 포함한 다수 전시에 참여했던 그는 팔달문화센터, 수원화성박물관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면서 수원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최근 관심사인 ‘존재’와 ‘시선’과 ‘공간’에 관한 생각이 담겼다. 특히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잠식한 특정 경향에 관해 접근했다. 반영하면서 동시에 반영되는 투명한 쇼윈도의 유리벽이 지나가는 우리를 늘 붙들고, 유리창에 비친 각자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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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란 작가. 작가 제공

 

그는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 땅에 발딛고 선 우리 각자가 다양한 차원과 공간에 매몰되면서 주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림 속 유리창에 갇혀 있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전시장을 찾은 각자의 자화상이 맞을까? 어떤 것이 진짜 사람의 모습이고 현대인의 초상일까.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채 눈에 비치는 세계가 그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비판적인 의식도 엿보인다.

 

그의 캔버스에는 초현실주의 요소가 뒤섞여 있다. 사람의 투명도가 조절돼 있어 앞뒤의 배경 요소가 모두 보이고, 마네킹이 자리잡은 유리창 속에 사람들, 자연물, 도심 속 구조물의 형상이 일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어디가 가깝고 먼지 분간할 수 없는 공간감이 느껴진다. 그는 다양한 이미지 요소를 중첩하고 교차하고 뒤섞는 등 ‘이동(relocation)’시키면서 사진과 회화, 대상과 주체, 존재의 진위 여부 등에 관한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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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란作 ‘Relocation_34’. 작가 제공

 

최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각 캔버스 위 이미지 요소들의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를테면 ‘Relocation_33’의 우측 하단에는 선글라스를 낀 채 고개를 숙이는 한 여인의 상체가 보인다. 그가 가상의 인물을 그렸는지, 기존의 사진을 본떠 그린 건지, 다양한 사람을 뒤섞어 만든 형상인지 전시를 보는 관람객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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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란作 ‘Relocation_33’. 작가 제공

 

최 작가는 다양한 장소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토대로 작품을 구현했지만,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이 많이 보인다. 최 작가는 “SNS 속에서 과도하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구화된 양식이나 모습, 마네킹과 쇼윈도를 매개로 하는 서양권의 영향력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고 설명했다.

 

무작위로 배치된 듯한 캔버스 속 이미지 요소들은 사실 모두 최 작가의 정밀한 설계와 계획에 따라 배치됐다. 평상시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그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해외로, 국내로 발을 옮기며 쉴 새 없이 도심 속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셔터를 누를수록, 그의 공간은 계속해서 구체화되고 확장된다. 

 

최 작가는 “이번 전시는 회화로 중첩해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공간, 그 공간의 의미와 형태가 확장되면서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과정”이라며 “지금 관심을 두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재료나 시도를 다양하게 선보이면서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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