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시설물은 모두 몇 개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애민정신·실용주의 쌓아 올린... ‘60개 시설물’ 정조의 꿈 담다

화성은 성과 시설물로 구성된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화성에는 다양한 시설물이 있다. 화성을 소개하는 여러 매체, 관리하는 기관의 자료, 연구자들이 언급하는 숫자는 각각 다르다. 그래서 ‘40여개의 시설물을 갖춘’처럼 적당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화성이 세계 문화유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40개부터 90여개까지 그 차이를 보면 놀랍다. 이래서 한국인은 통이 크다고 하나 보다. 기준이 정립되지 않으면 오류가 퍼지게 되고, 연구의 첫걸음도 떼지 못할 것이다. 왜 이처럼 차이가 클까?

 

차이는 관점이 다른 데서 온다. 관점의 차이는 용어 정의로부터 생긴다. 주제가 되는 ‘화성’과 ‘시설물’에 대한 인식만 같이한다면 차이는 해소될 것이다. 먼저 ‘화성’의 정의다. 화성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화성시’의 화성, ‘화성부’의 화성, 그리고 어제성화주략의 ‘성화’란 화성 등 3개다. 화성시는 현재의 행정구역 이름이다. 화성부는 성역 당시의 수원의 이름이다. 어제성화주략에서 성화란 ‘화(華)라는 성(城)’을 의미한다. ‘캐슬화’ 또는 ‘포트리스화’와 같은 체계다. 어제성화주략은 정조가 발표한 화성 건설 기본계획서다. 

 

‘화성’은 이 셋 중 어느 것을 말할까? 행정구역을 말할까? 아니면 성 이름을 의미할까? 화성의 시설물 중 ‘화성’은 당연히 성 이름 ‘화성’으로 봐야 한다. 즉, 당시 화성부 내의 화성(城華)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명이나 행정구역으로 본다면 행궁의 전각, 사직단, 만석보, 문선왕묘, 영화정 등 그 범위가 상당히 넓게 된다.

 

화성행궁은 화성 시설물이 아니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다음은 ‘시설물’의 정의다. 시설물의 개념은 성을 사용하거나 운영하는 데 관련된 토목 또는 건축시설물을 말한다. 시설에 포함되는 전기, 기계, 통신, 소방시설은 당시에는 없었던 시설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화성의 시설물에 성과 여장은 포함하지 않았다. 성과 여장은 화성 자체, 즉 주체이지 시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무형의 것은 ‘물(物)’이 아니므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화성과 시설물의 정의를 내려봤다. 이제는 시설물을 정하는 근거다. 화성은 화성성역의궤란 기록이 있어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규모, 방위, 토질 등과 마찬가지로 시설물도 화성성역의궤 기록이 근거가 되는 것이 합당하다.

 

성역의궤 권수에는 시일, 좌목, 도설이 기록돼 있다. 시일은 공사 일정이고, 좌목은 공사 조직이고, 도설은 도면과 시방서다. 장안문을 시작으로 성의 시설물 모두를 그림과 글로 설명하고 있어 도설이라 한다. 성역의궤는 건설기록이고, 도설은 성역의궤의 백미다. 시설물은 바로 이 도설에 그림과 글로 기록된 시설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도설은 유형별, 시설물별로 설명하고 있다.

 

원문의 단락을 기준으로 시설물을 분류해 보면 문 4곳, 옹성 4곳, 적대 4곳, 암문 5곳, 수문 2곳, 은구 2곳, 지(연못) 3곳, 장대 2곳, 노대 2곳, 공심돈 3곳, 봉돈 1곳, 각루 4곳, 포루(대포) 5곳, 포루(군졸) 5곳, 치 8곳, 포사 3곳, 성신사, 용연, 용도이다. 모두 19개 유형의 60개 시설물이다. 순서는 기록된 순서 그대로다. 지면 관계로 시설물 이름 60개는 생략했다.

 

용연은 성의 시설물일까?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원문과 다르게 취급한 것이 있다. 준천은 개울치기 작업으로 무형이므로 제외했고 서봉산 샛봉화는 화성부 밖이어서 제외했다. 반면 지는 5곳인데 3곳으로 간주했다. 남지가 상남지·하남지로, 동지는 상동지·하동지로 이뤄져 상하를 하나로 봤다. 성 밖에 있는 용연을 화성의 시설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예상된다. 하지만 권수 도설에 기록된 점, 권5 실입에도 기록해 성역에 포함시킨 점, 또 “용연 머리에 있는 까닭으로 방화수류정에서 출입하는 길이었다”란 기록을 보면 용연도 엄연한 성역의 하나였다고 본다. 결론은 화성의 시설물은 19개 유형에 총 60개 시설물이다. 기본 중의 기본인 ‘화성 시설물의 범위’에 대해 정의해 봤다. 규모와 시설물에 대해 자세히 기록된 성역의궤 기록 덕분이다.

 

그렇다면 수원팔경에 화성 시설물이 몇 개나 포함됐을까? 수원문화원이 지정한 수원팔경은 광교적설(광교산에 눈 쌓인 모습), 팔달청람(안개에 감싸여 신비로운 팔달산), 남제장류(남쪽 긴 제방에 늘어선 버드나무), 화산두견(화산의 봄 진달래꽃), 북지상연(북지에서의 연꽃 감상), 서호낙조(서호에서의 해넘이 모습), 화홍관창(화홍문을 빠져나온 비단결 폭포수), 용지대월(용연에서 월출을 기다림)이다. 

 

제5경인 북지상련의 북지는 송죽동 만석거를 말한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이 중 제2경인 팔달은 팔달문이 아닌 팔달산을 의미하고, 제5경인 북지는 화성 시설물인 연못 북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장안구 송죽동에 있는 저수지 만석거를 의미한다. 이 둘은 화성 시설물이 아니다. 따라서 화성의 시설물은 제7경인 화홍관창의 화홍문과 용지대월의 용연 두 곳이다. 용지대월은 ‘용연 위로 뜨는 달’이냐 ‘용연에서 기다리는 달’이냐로 논란이 있다. 후자가 맞을 듯하다.

 

성역이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북문, 남문, 북수문, 남수문을 같은 날, 같은 시에 착수했다. 시설물 중 가장 먼저 착수한 목적은 소통이었다. 남성과 북성을 착수하면 모든 길이 막히기 때문에 백성과 물자와 물길이 소통되는 문과 수문을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다. 또 성 쌓기에 필요한 막대한 돌을 운반하고 백성도 오가는 다리를 겸한 수문이다. 백성을 우선하는 정조의 애민사상과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