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인구감소 지역인 이곳에서 일할 직원들을 구할 수 있어 좋고, 외국인 직원들은 한국에 오래 살 수 있어서 좋고 일석이조가 따로 없죠.”
지난 21일 연천군에 위치한 화장품 업체 ‘새롬코스메틱’의 제조 공장. 길다란 초록색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포장될 준비를 마친 염색약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실려 오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양옆에 서 있던 직원들은 신속하게 파손 등 불량은 없는지 확인한 뒤 수량에 맞게 포장을 했다.
잘 짜여진 시스템 아래 착착 운영되고 있는 공장이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표 김은호씨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연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공장에서 일할 사람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연천군은 인구도 4만명 밖에 안되는 데다 군인마저 빼면 정말 인구 자체가 없고, 공장에서 일할 사람 찾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런 김 대표에게 지난해 연천군에서 공지한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는 기회였다. 그는 “내국인 인력 없는 것은 당연하고, 외국인조차도 부족해 지역특화형 비자가 없었다면 인력난 해소는 쉽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제도는 인구감소 지역에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들이 거주 및 취업할 수 있게 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로, 경기도에선 연천과 가평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렇게 김 대표의 공장에는 지난해부터 해당 비자를 받은 베트남 출신 외국인 근로자 5명이 근무하고 있다.
비자 발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김 대표만이 아니었다. 5명의 직원들에게도 이 비자는 ‘가뭄에 단 비’ 같은 존재였다.
이들 중 한국어가 가장 능숙한 반 안(26)은 지난 2018년 베트남 하이퐁에서 한국으로 처음 건너왔다. 강원 춘천에서 대학을 나온 뒤 연천으로 이주한 그는 공장 업무 곳곳에 녹아 들며 ‘슬기로운 연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 역시 6개월 전 한국으로 이주하며 ‘장거리 부부’ 생활을 끝낸 반 안 부부는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한국에서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눈이 오는 한국의 겨울이 특히 좋다는 그는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꿈은 영주비자를 받아 남편과 계속 한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도내 인구감소 지역인 가평군에서 반찬 제조업체 ‘녹선’을 운영 중인 송금희 대표 역시 지역특화형 비자의 긍정적인 효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녹선은 깻잎, 무말랭이 등 다양한 종류의 전통음식 반찬을 생산하고 연 매출 160억원 이상을 올리는 등 반찬 제조업계에선 독보적 위상을 구가하는 회사지만, 송 대표의 머릿속을 항상 떠나지 않는 고민은 인력 문제였다.
그는 “저희 지역은 관광객들은 몰리는 곳이지만, 수도권하고도 너무 멀어 이곳에서 꾸준히 일을 하려는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고 털어놨다.
송 대표는 회사에 직원들이 숙식할 수 있는 기숙사까지 두며 인력난 해소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지역특화형 비자는 한 줄기 빛이었다. 현재 회사에는 네팔 출신 직원이 해당 비자로 근무 중이며, 근로자 2명은 올해 지역특화형 비자를 신청할 예정이다.
송 대표는 “지역특화형 비자라도 없었다면 저희처럼 인구감소 지역에 위치한 기업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나마 지역특화형 비자를 통해 인력난에 대한 고민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역특화형 비자 외에도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다양한 외국인 정책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인구소멸’ 연천·가평, 지역특화 비자로 활로…道, 제도 확대 건의
인구감소 지역에 해당되는 경기도내 지자체들이 ‘지역특화형 비자’를 통해 인구 문제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기업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 만큼 해당 제도가 외국인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21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는 거주·취업·소득 등의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 우수 인력에게 인구감소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비자(F-2-R)를 발급하는 제도다.
지난해 해당 비자를 시범 도입한 법무부는 올해부터 규모를 키워 정식으로 제도를 운용 중이다. 특히, 인구감소 지자체 입장에선 지역 내 인구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기업들은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되는 데다 외국인 근로자들 역시 가족들과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일석삼조’였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5년 이상 인구감소 지자체에서 거주하며 취업 활동을 유지해야 하며,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를 동반가족 자격으로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에선 이에 해당되는 2개 지자체인 연천군과 가평군에서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해 7월 사업 적용 대상을 인구감소 지역에서 ‘인구감소 관심 지역’과 ‘제조업, 농·축산 기반 비중이 높은 지자체’까지 확대해 줄 것을 법무부에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애초 정책의 취지가 인구감소 지역의 인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 같은 도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법무부는 올해 지역특화형 비자 발급 대상 쿼터를 지난해 보다 2배 늘려 총 3천200여명을 전국 지자체에 배정했다.
지난해 연천과 가평에선 지역특화형 비자를 받은 외국인 각각 49명, 20명이 지역 내 사업장에 취업했는데, 올해는 규모가 늘어 연천과 가평에서 각각 70명, 50명의 외국인이 선발될 예정이다. 이들 지자체에선 올해 역시 외국인을 통한 인력난 해소 및 인구 소멸 대응책의 일환으로 해당 제도를 적극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연천군은 지역특화형 비자와 함께 올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지역 정착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기도 지역참여형 노동협업 사업에도 선정돼 이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가평군 역시 해당 제도를 통해 인력 부족으로 고민하는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내국인 인력이 부족해 해당 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은 사업장에선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전해오기도 했다”며 “연천군은 인구 소멸 지역인 만큼 앞으로도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인구 부족으로 인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외국인대표자 협의회 운영…포천시, 외국인으로 지역소멸 문제 푼다
연천과 가평처럼 지역특화형 비자로 지역인구 소멸 문제의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지자체들 외에도 자체적으로 외국인 정책을 펼치는 지자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포천시가 이에 해당되는데, 포천시는 외국인주민대표자협의회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외국인 정착에 힘쓰고 있다.
포천시는 민선 8기 출범 후 조직 개편에 나서 다문화 가족과 외국인 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한 외국인근로자지원팀을 신설해 운영 중이다. 포천시에는 약 2만명의 외국인이 거주해 시 전체 인구의 12%가 넘는 만큼 보다 효과적으로 외국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도였다.
특히 포천시는 외국인 주민 지원 협업 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지난해 2월 외국인주민대표자협의회를 발족했다. 총 13개국 1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협의회는 국가별 공동체 대표 역할은 물론 통번역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협의회는 또 외국인 관련 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책제안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재 협의회의 회장은 올해부터 인도 출신 싱 아제이씨가 역임하고 있다. 포천시에는 소흘읍, 가산면을 중심으로 인도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다수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포천시에는 공장들이 많은데, 주로 가구공장 위주로 인도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IT 분야에서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인도 출신 외국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6년부터 한국에 들어와 1998년부터 포천에 살기 시작한 그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 현재는 포천에서 고무줄 원단과 인도·중국 식자재를 수출입하는 기업체를 운영 중인 ‘포천 토박이’다.
그런 그는 협의회를 통해 외국인 주민들을 하나라도 더 도우려 회장직을 맡아 수행 중이다. 지난달 한차례 모여 포천시내 외국인들을 어떻게 도울지 논의한 협의회는 다음 달부터 본격 활동을 계획 중이다.
싱 아제이는 “현재 포천시에 사는 외국인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통역 문제”라며 “새로 포천시에 유입되는 외국인들을 위해 공공 통역 서비스 등을 시에 건의해 추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 “우리 지역에 꼭”…'5천억 효과' 이민청 유치 나선 도내 시군들
이같이 인구 감소 지역에선 인력난 해소 방안으로 외국인을 적극 활용하는 가운데 정부 역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민청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외국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복안인데, 외국인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도내 시군들은 자신들만의 강점을 내세워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 등 10명은 지난달 ‘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무부가 추진하고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것으로,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에 따른 대응책으로 ‘컨트롤 타워’인 이민청을 설치해 외국인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함이다.
앞서 경기연구원은 이민청이 도내에 설립될 경우 생산 유발 5천150여억원, 부가가치 유발 3천530여억원 외에 취업유발 4천198명의 효과가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물론 21대 국회가 약 2개월 밖에 남아있지 않아 해당 개정안은 자동 폐기될 상황에 놓였지만, 22대 국회에서도 ‘출입국·이민관리청' 설치는 지속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회 안팎의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주민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도내 각 시·군들은 유치전에서 앞서 있는 모양새다. 경기도에선 안산, 고양, 김포가 이민청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먼저 안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사는 외국인 행정의 수부도시인 만큼 다양한 이민정책을 추진해 볼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베드’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미 시 차원에서 외국인 전담기구 운영, 다문화마을 특구 지정 등 외국인 정책을 운영해왔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 시흥, 수원 등 인근 도시들에서도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몰려 사는 경기 서남부 지역에 위치한 만큼 국내 이민정책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강조하고 있다.
김포는 ‘외국인들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주요 강점으로 알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 은 물론 경인항, 인천항이 30분 내외에 위치해 있고, GTX와 인천 2호선 등 연장 계획도 있어 실질적인 장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포시는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장을 지낸 김병수 시장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유치 제안서를 가장 먼저 법무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고양은 경기북부의 중심지로서 해당 권역에만 약 11만명의 외국인들이 거주한다는 점을 내세워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또 반경 40㎞ 이내에 공항·항만 등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철도·광역 도로망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기도에선 화성, 광명, 동두천 등의 유치전 합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경기도 외에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인천과 충남, 전남, 경북, 부산 등이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총선이 끝나면 도 차원의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공론화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며 “도가 어느 한 시·군을 특정해 지원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에 이민청이 들어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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