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행정복지센터’가 된 여행사 [지역을 변화시키는 외국인, 못다 한 이야기②]

여권·비자 연장 지원 등 사실상 출입국 관련 서비스 제공 

못다 한 이야기 ② ‘민간 행정복지센터’가 된 여행사

 

평택에 위치한 한 국제여행사. 오종민기자
평택에 위치한 한 국제여행사. 오종민기자

 

K-ECO팀이 방문한 경기도내 곳곳의 외국인 집중 거주 지역에는 공통적으로 ‘여행사’가 적게는 두세 곳부터 많게는 열 곳 이상 영업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여행사는 단순히 여행을 위한 업무만을 보는 곳이 아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여권·비자 연장 관련 업무 지원뿐만 아니라 사실상 출입국 관련 업무 지원 등의 서비스도 제공받고 있다.

 

이러한 여행사들의 업무는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조금씩 변해갔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여행사들은 항공권 등 이동 수단의 발권과 함께 해외로 소포를 보내는 등 이주민과 고향의 가족 간 소통 창구로서의 업무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사소한 민원 업무보단 공증이나 비자 발급 업무 지원, 출입국 절차 등에 필요한 서류와 과정을 안내·지원하면서 언어 장벽에 부딪힌 이주민에게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

 

이주민이 여행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와 소통의 문제’인 탓에 외국인 집중 거주 지역에 있는 여행사들은 대부분 인근에 거주하는 자국민 또는 동향 출신의 외국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국내에서 여행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여행과 해외여행을 모두 알선할 수 있는 종합여행업 등록이 필요하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종합여행업 운영을 원하는 자는 임대차 계약서, 신청서, 사업계획서, 영업용자산명세서, 신분증(외국인등록증), 잔액증명서 등이 요구되며, 본국에서 신분과 범죄 경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

 

우승호 평택외국인복지센터 국장은 “보통 여행사에서 여행 업무 외 공증, 비자 관련 업무까지 지원할 땐 행정사를 동반하는데, 이주민으로서는 타지에서 법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보다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기댈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한 국제여행사. 오종민기자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한 국제여행사. 오종민기자

 

■ 외국인 비자 연장·출입국 업무 지원…여행사, ‘민간 행정복지센터’ 역할 톡톡

 

“여행사는 이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될, 우리 같은 외국인에겐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쳤던 지난 1월, 안산 원곡동 A여행사의 문이 열리며 인근에 사는 중국인 김씨가 여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글을 쓸 줄 몰라 직장 등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작성을 위해 종종 여행사를 찾았던 김씨를 본 여행사 직원은 한눈에 김씨에게 다급한 일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매서운 날씨에도 김씨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 맺혀 있었다. 김씨는 H2 비자(노무비자)를 연장해야 했지만, 연장해야 하는 시기를 잊고 지내던 중 만기 일자를 넘겨버린 것이다. 어찌할 줄을 모른 채 여행사 직원에게 도움을 청한 김씨.

 

여행사 직원은 김씨를 안심시킨 뒤 함께 출입국 사무소를 방문해 서류 작성법 등 비자 연장 과정을 도와주었고, ‘비자 만료 사태’는 일단락됐다.

 

비슷한 시기, 여권을 잃어버린 한 중국인도 여행사를 찾아왔다. 여권을 잃어버려 하루를 꼬박 동네 구석까지 다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는 사연을 듣고 여행사 사장 김동성씨(48·가명)는 함께 길을 나섰다. 파출소와 경찰서 등을 방문해 분실신고를 했고,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 여권을 재발급받을 수 있게 도왔다. 당시 사장 김씨의 도움으로 여권을 재발급받게 된 중국인은 여전히 여행사를 종종 찾아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처럼 여행사는 대한민국에 사는 이주민의 타향살이도 도우며 이들이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여권 및 비자 연장 지원, 출입국 업무 지원과 같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행사는 이주민에게 필수적인 존재가 됐다.

 

외국인 집주 지역에서 여행사는 이주민의 방문으로 문턱이 닳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한 곳에서 오래 영업한 여행사는 동네 이주민 사이에서 사소한 민원은 물론 서류 작성과 같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소문나며 이들 사이에서는 ‘민간 행정복지센터’로 불리기도 한다고.

 

여행사 사장인 김씨는 “이 동네에서 오래 영업하기도 했고, 한두 번 도와줬던 것이 소문이 나 새롭게 정착하는 사람도 어떻게 알고 온다”며 “여행사는 이주민이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이곳만의 민간 행정복지센터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원곡동 여행사에서 만난 중국인 송희령씨(42·가명)는 “외국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나라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나 기한을 연장해야 하는 증명서들이 많은데, 주변에 한국어를 능숙하게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수소문하던 중 이웃 주민이 여행사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며 “여행사에 방문하는 이유가 항공권보다는 한글 문서 번역과 서류 작성을 부탁하는 일 때문에 더 많이 찾게 된 거 같다. 여행사는 우리가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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