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룡문 양옆에 보기 드문 ‘자성치’... 동옹성 감싸며 위에 버티는 형상 입구 접근 두려운 ‘악마의 목구멍’... 화서문 평지성 쪽 서북공심돈 세워 적대 역할 취약한 방어 기능 강화... 반대편은 산상성이 감싸며 철옹성
성에서 문은 방어상 가장 취약한 곳이다. 그래서 문에는 문루, 적대, 옹성을 덧붙여 시스템 방어를 구축했다. 문루는 위에서, 적대는 좌우 높은 곳에서, 옹성은 전방의 넓은 범위를 방어한다. 옹성은 문 앞의 적을 3배 이상 더 먼 곳에 머무르게 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옹성 밖은 물론이고 이미 들어온 옹성 안 적도 공격할 수 있다. 문루, 적대, 옹성은 문에 종속된 시설물이다. 옹성은 문의 외성으로, 모양이 반으로 쪼갠 항아리와 같아 ‘항아리 옹(甕)’을 붙여 옹성이라 이름 지었다. 한양에는 동대문만 옹성을 뒀는데 화성에는 네 곳 문 모두 옹성을 뒀다.
이는 시대가 지나도 문이 성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라는 것과 옹성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수원화성의 우수함을 알 수 있다. 옹성은 폐쇄형과 개방형으로 구분한다. 옹성 문이 있으면 폐쇄형이라 하고 없으면 개방형이다. 또 옹성이 문의 양쪽 모두 붙어 있으면 폐쇄형이고 한쪽이 떨어져 오픈된 상태이면 개방형이다. 수원화성에선 북옹성과 남옹성이 폐쇄형이고 동옹성과 서옹성은 개방형이다. 동옹성과 서옹성은 왜 방어력이 떨어지는 개방형 옹성을 했을까.
옹성 형식은 문의 위계, 위치, 성격에 따라 정해진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옹성 형식은 문의 위계(位階·하이어라키)에 의해 결정된다. 조선 시대에는 건축물 설계에 엄격한 위계를 지켰다. 궁전건축, 사찰건축, 유교건축 모두 지켰다. 위계의 기준이 권력, 교리, 전략, 안전 등 각각 다르지만 위계는 분명하다.
수원화성에서 위계는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순이다. 성역의궤 도설에도 이 순서로 기록돼 있다. 문루 규모는 장안문과 팔달문이 중층이고 창룡문과 화서문은 단층이다. 홍예, 육축, 옹성 크기도 위계에 따라 차이를 둔다.
옹성도 마찬가지다. 옹성 높이, 지름, 두께, 옹성 홍예문 크기, 옹성 현안 수량 등 모든 면이 위계대로 설계에 차등을 뒀다. 옹성 형식도 마찬가지다. 위계가 높은 장안문과 팔달문은 폐쇄형으로, 위계가 낮은 창룡문과 화서문은 개방형을 선택했다. 건축물의 위계가 개방형으로 한 첫 번째 이유다.
둘째, 옹성 형식은 문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모두 평지성에 위치한다. 반면 창룡문은 산상성에 있고 화서문은 평지성으로 분류되지만 한쪽이 산상성이다. 평지성, 산상성이 옹성 형식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옹성을 좌우 측면에서 방어하는 적대 기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옹성 형식을 정한다. 옹성을 방어하는 돌출된 높은 적대가 좌우에 없다면 개방형 옹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창룡문과 화서문에는 적대를 대신할 대체 시설이 있다. 다름 아닌 돌출된 높은 자연 지형이다. 반면 장안문과 팔달문은 완전한 평지라 자연 지형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양쪽에 높은 적대를 세워 옹성을 방어한다. 창룡문과 화서문에는 옹성을 방어하는 어떤 지형을 말하는지 살펴보자.
창룡문의 좌우를 살펴보자. 보기 드문 자성치(自成雉)가 좌우에 형성돼 있다. 자성치란 자연 지형으로 인해 ‘스스로(自) 만들어진(成) 치(雉)’를 말한다. 창룡문의 좌우 모두 높고 돌출된 지형인 자성치가 개방된 동옹성을 감싸며 위에 버티고 있다. 적이 개방된 옹성 입구로 감히 접근하기조차 두려운 ‘악마의 목구멍’과 같은 형상이다.
화서문의 좌우를 살펴보자. 화서문은 한쪽은 평지성, 다른 한쪽은 산상성이다. 평지 쪽에는 높은 서북공심돈을 세웠다. 치성을 돌출시키고 그 위에 높은 공심돈을 세운 것이다. 적대 역할을 맡겼다. 산 쪽은 자연 지형이 서옹성을 감싸면서 개방된 옹성 입구를 아군이 위에서 지키는 형국이다. 이곳 역시 적이 접근하기조차 두려운 악마의 목구멍이다.
이처럼 창룡문과 화서문 좌우에는 옹성 방어에 필요한 자연 지형이 있다. 돌출되고 높은 지형이다. 지형 자체가 폐쇄형 옹성과 적대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어 개방형 옹성으로 설계해도 방어에 충분한 것이다.
셋째, 옹성 형식은 문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수원화성 사대문은 각각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까. 문의 성격은 문의 배치 의도에서 알 수 있다. 수원화성은 계획된 신도시이나 문의 배치는 철저하게 기존의 도로를 반영했다. 그래서 동서남북 균일하게 배치되지 않았고 3개의 문이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이유다.
장안문은 한양서 수원으로 내려오는 기존의 간선도로에 배치했고 팔달문은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으로부터 올라오는 기존의 간선도로 위에 배치했다. 창룡문은 광주 및 수원과의 기존 지방도로 위에, 화서문은 안산 및 남양으로부터 수원으로 오는 기존 지방도로 위에 배치했다. 이런 배치 의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장안문과 팔달문은 한양과 삼남을 연결하는 국도, 즉 대도시 간(Inter city) 간선도로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창룡문은 광주·용인에서 수원까지, 화서문은 안산·남양에서 수원까지만 연결하는 지방도(Local)인 것이다. 창룡문과 화서문은 수원과 인근 소도시를 빈번히 드나들던 하층 백성의 문이라는 의미다.
동옹성과 서옹성을 드나드는 하층 백성들이 편하게 출입하도록 개방형으로 설계한 것이다. 엄격한 출입이 필요한 북옹성, 남옹성과 차별성을 둔 것이다. 정조는 하층 백성, 이웃 백성을 위한 낮은 옹성, 개방된 옹성을 계획했다. 오늘은 옹성 형식에서 공학, 전략, 인문면에서 살펴봤다. 수원화성 개방형 옹성에서 정조의 백성 사랑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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