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시설물에 포사가 있다. 모두 세 곳이다. 작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설물이다. 화성행궁 뒷산에 내포사와 그곳에 매달린 목어의 비밀을 풀어본다.
수원화성에 군사시설 같지 않은 시설물로 포사가 있다. 의궤에 “치 위에 지은 집을 포루(舖樓)라 하고, 성안에 지은 집을 포사(舖舍)”라고 기록했다. 화성에는 서남포사, 중포사, 내포사 세 곳이 있다. 서남포사는 서남암문 위에 있어 ‘치 위’도 아니고 ‘성안’도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성안의 집’에는 중포사와 내포사만 해당한다.
서남포사는 서남암문 위에 있고 중포사는 미복원인데 팔달구청에서 보이는 언덕 위 삼일고교 끝 건물 위치다. 내포사는 화성행궁 뒷산에 있다. 세 곳 포사에 대한 의궤 설명에서 공통된 점을 보면 위치가 높은 곳인 점, 온돌이 있는 점, 단청에 3토를 사용한 점, 대들보 위에 회를 바른 점이 특징이다.
건축 특징에서 포사의 업무와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첫째, 높은 곳이어야 업무를 수행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 둘째, 추운 겨울이나 밤에도 쉬지 않고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 셋째, 담당 책임자는 계급이 높은 군인이라는 점이다. 포사의 기능이나 역할은 무엇일까.
서남포사에 대해 의궤는 “높은 곳에 있어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군졸을 둬 경보를 알리기 알맞다”라고 했다. 또 중포사는 “성 밖에서 길가에 잠복한 자가 경보를 하면, 성의 각 해당 방면에서 포를 쏘아 보고하고, 포사에 있는 군사가 깃발이나 화포로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포사 세 곳은 맡은 임무에 차이가 있다. 서남포사는 직접 감지하고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이고 중포사는 성 밖 잠복자가 감지해 가까운 성 위의 해당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해당 담당자는 중포사에, 중포사는 내포사에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두 곳의 포사는 행궁 뒷산의 내포사로 보고한다. 내포사는 화성부나 장용외영의 책임자에게 최종 보고한다. 이래서 내포사를 행궁 안에 설치한 것이다. 목적은 같지만 보고 체계는 다르다. 보고 도구로는 ‘도설’에 “깃발이나 화포로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임무 수행규칙인 ‘파수절목’에는 불과 횃불이 추가돼 있다. 낮에는 화포와 깃발을, 밤에는 화포, 불, 횃불을 사용한다.
화성행궁 뒷산에는 미로한정이라는 정자와 내포사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행궁의 지붕들이 아름답다. 내포사는 포사로 온돌방 한 칸과 한쪽에 벽이 없이 오픈된 반 칸 방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 칸 방에 절에서만 볼 수 있는 목어가 달려 있는 것이다. 왜 내포사에 목어를 달아 놓았을까.
목어는 법고, 운판, 범종과 함께 절의 사물이다. 법고는 땅에 사는 축생을,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범종은 28천(天) 모든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의미가 있다. 목어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잠도 자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의미다.
내포사와 목어는 무슨 관계일까. 소리(音)와 관계가 있다. 앞서 말한 화포, 깃발, 불, 횃불 외에 소리도 경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화성을 지키는 규칙 파수절목 중 ‘기계’편에 보면 총, 깃발, 등롱, 기화, 대방, 소방, 깃대를 마련하라 한다. 이 중 방(梆)이 목어다.
의궤 ‘포사에서의 호령’편에는 대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만약 경보를 잘못 울리거나 잘못 전한 경우에는 사점해 처치한다”라 하고 그 방법으로 “밤에는 신포 1발을 놓고, 횃불 한 뭉텅이를 들며, 대방을 쳐서 구분한다”고 기록돼 있다. 신호에 오류가 발생하면 대방을 곁들여 사용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대방(大梆)을 목어로 간주하고 지금의 관리자가 목어를 걸어 놓은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대방은 목어를 말할까. 의심이 든다.
필자는 대방은 큰 목탁으로, 소방(小梆)은 나무 딱따기로 본다. 그 근거로 첫째, 전쟁 시설물에 꼭 종교용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 둘째, 한자 방은 ‘목어 방’이 맞지만 ‘소리를 내는 나무 기구’란 의미도 있다. 방은 목어, 목탁, 나무 딱따기 모두를 의미한다. 셋째, 화성의 세 개 포사 중 내포사를 제외한 중포사와 서남포사에는 목어를 걸어 놓을 수 있는 장치나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결정적 근거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자정이 넘으면 야경꾼들이 나무 딱따기를 치며 골목길을 누볐다. 대부분 2층 이내 건물만 있었던 수원 사대문 안은 나무 딱따기 소리도 충분히 전달됐다. 대방은 목탁 종류, 소방은 나무 딱따기 종류로 봐도 무방하다.
포사는 규모가 작고 위계가 낮은 시설물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도 있다. 하나는 행행(行幸), 즉 임금이 행차할 경우 두 곳 포사에 장수 2명과 군사 4명으로 파수하게 하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행행이 있으면 파수할 곳으로 27곳 시설물을 지정하는데 그 안에 포사 세 곳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포사 한 곳에 1명의 장수가 책임지게 하고 60곳 중 27곳 안에 포함된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시설물임을 말해 주고 있다.
내포사와 목어에 대해 살펴봤다. 정교하게 제정한 화성 유지 보수 규칙인 수성(修城)절목과 화성 방어 지침인 파수(把守)절목에서 정조의 지속가능한 철학을 엿봤다. 이런 기록들이 수원화성을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시설물로 만들고 있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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