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휘모 사회부장
지난해 추석 전부터 시작된 고려아연 경영권 갈등이 해가 바뀌어 설이 지났음에도 해결 국면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MBK연합 측과 고려아연 현 경영진 간 공방은 중국 자본 논란, 비밀조항 위반, 불투명한 투자 등 서로 간의 비방으로 갈등 상황이 극에 달했다.
지난달 31일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을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로 경영권을 방어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업계에서는 2014년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제를 도입한 후 거의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이슈가 등장하는 등 다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 사이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라는 MBK파트너스와 글로벌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 고려아연은 기업 위상뿐 아니라 서로 간에 직간접적인 유무형의 타격을 입고 있다. 고려아연은 단순한 글로벌 1위 회사가 아니라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경제 및 안보에 중요한 기업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오래 지속돼 경쟁력이 약화된다면 이는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 은, 구리 등 산업계 대표 비철금속 외에도 희소금속 생산과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일부 희소금속은 특정 몇 개 국가만 생산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측면에서 그 역할이 중요하다.
고려아연은 전 세계 광산에서 들여온 아연과 납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희소금속인 인듐과 텔루륨, 코발트, 카드뮴 등을 생산한다. 특히 비스무트와 안티모니 같은 희귀 금속은 첨단산업,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자원으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비스무트와 안티모니를 생산하는 고려아연은 국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부터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안티모니와 관련 금속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티모니는 원자력에 사용되는 희소금속으로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48%를 차지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부터 갈륨, 게르마늄 등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통제에 나섰다. 미국이 반도체 핵심 장비의 대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반도체 핵심 장비를 만드는 원료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맞불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문제는 중국의 이러한 원료 통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2.0 시대가 도래하며 안티모니, 비스무트 등 원자력 등에 쓰이는 다른 광물에도 확대할 것은 명확하다. 관련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은 국내에서 비스무트와 안티모니를 대다수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의 안티모니 수출 통제에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하며 국내 산업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아연이라는 회사는 사실 소비자 등과는 거리가 먼 대표적인 B2B 기업이다. 하지만 이번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이제 고려아연의 경영권 이슈는 비단 기업 간, 자본과 기업 간의 이슈가 아닌 국가의 문제로 봐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고려아연이 임시주총 직후 내놓은 화해의 메시지에 산업계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MBK 측에 “적이 아닌 새로운 협력자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와 이사 수 상한 설정, 사외이사 의장 제도 등을 제안했다.
양측이 향후 공동 경영에 대한 협의를 이뤄낼 수 있는 여지 및 해결의 출구 전략이 열린 셈이다. 양측이 벌여온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지역사회, 정치권에서도 기업간 공동 협력을 끌어내 다시 세계 1위 기업의 명예를 되찾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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