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와 장르를 유연하게 확장하는 두 작가가 만났다. 미술의 형식을 바꾸는 조각을 선보이는 김홍석 작가, 물질적 상상력으로 사물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박길종 작가의 특별한 작품이 펼쳐진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지난 25일부터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2025 아워세트: 김홍석X박길종’을 선보이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202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아워세트’는 서로 다른 장르의 창작자가 만나 독특한 협업을 펼쳐보이는 전시다. 다만 올해는 협업에 방점을 두기보다 김홍석, 박길종 작가의 매체 실험에 주목해 이 같은 특징이 드러나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등 2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두 작가의 매체 실험에서 ‘뼈 있는 농담’의 무대를 통해 ▲러닝타임 ▲오픈 스테이지 ▲인터미션 ▲백 스테이지 등 네 개의 관점으로 구성됐다.
박 작가는 전시장을 이동하며 사용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전시를 마치 실시간 진행되는 공연처럼 만들었다. 이 같은 의미를 담은 ‘러닝타임’에선 박 작가의 작품 5점을 만날 수 있다.
박 작가는 가구, 디스플레이, 전시 등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구분 없이 활동한다. 휘어진 책 선반, 생활용품 등에서 사물의 독특한 질서를 포착하고 도구, 집기, 가구, 장치, 기구 등 쓰임의 경계가 혼합된 오브제를 만든다. 여기엔 이질적인 것을 메우는 박 작가만의 물질적 상상력이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전시 보행기’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는 유모차를 개조해 폐지를 담는 할머니의 지혜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소지품을 놓고 전시장을 이동하며 사용할 수 있는데 사용자와 관람객, 퍼포머를 하나로 겹쳐 놓는 움직임을 만든다.
‘오픈 스테이지’에서는 회화, 조각, 드로잉, 사운드, 퍼포먼스 등 김 작가의 다양한 작업을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로 바라봤다. 타원형 조각에서 구의 기원에 대한 신화가 흘러나오는 ‘Oval Talk’ 등 비가시적인 장치가 만들어내는 서사에 주목해 김 작가의 작품 7점을 선보인다.
특히 김 작가의 매체엔 대상을 도구화하지 않기 위한 윤리적인 선택이 담겨 있다. 퍼포먼스에 사람이 개입되는 것을 염두해 실제 퍼포먼스 대신 극사실 인체조각과 텍스트로 정황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작품 ‘침묵의 고독’은 청소부, 트럭 운전사 등 평범한 이웃을 상징하는 마네킹이 곰, 너구리 등의 동물탈을 쓰고 있는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노동의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을 표현했다.
‘인터미션’은 미술의 형식과 매체를 실험하는 작가 각각의 태도를 보여준다. 1980년대 한국 미술대학에서 서구 미술을 배운 자신의 모습을 은유한 김 작가의 ‘사군자-231234’,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던 2000년대 후반 도시 풍경의 일부를 담은 박 작가의 ‘개미굴 체스’ 등을 병치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활동한 두 작가의 모습을 대조한 것이 특징이다.
또 ‘백 스테이지’는 서로 다른 종의 식물을 접목하듯 만든 오브제를 무대 이면의 백스테이지처럼 소한다. 십자가 형상의 오브제에 휴지를 거치한 ‘휴거(휴지거치대)’, 빵 모양의 오브제에 양초를 올려놓은 ‘장 발장’ 등 상상력과 농담을 통해 무용함과 유용함을 뒤섞은 박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수연 학예사는 “작가의 작품과 글을 따라가며 관람객이 저마다의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0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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