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과 기름으로 공격했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多양한 공격수단 적어... 정약용, 정조에 마케팅

화서문 전면 서옹성과 우측 서북공심돈에는 현안이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서문 전면 서옹성과 우측 서북공심돈에는 현안이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현안은 뜨거운 물과 기름, 돌덩이 등으로 공격하는 시설이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있다. 오늘은 현안의 공격 수단과 기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현안은 왜 생겼을까. 현안을 설계하게 된 발단은 여장의 총안이다. 총안은 성 밖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지만 한계가 있다. 성 가까이 접근한 적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 현안도설에 “유직무우(有直無迂), 즉 사람의 눈은 직선으로만 볼 수 있지 휘어 꺾어 볼 수 없다”라는 말이다. 총안으로는 적병이 성벽 밑에 바짝 붙어 성벽을 헐거나 성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설치해도 사람의 눈으로는 시선을 90도로 꺾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다. 아군이 완전히 은폐하면서 성벽 가까이 도착한 적병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그 수단이 현안이다.

 

원래 목적이 성벽 바로 아래 적을 보기 위함이라지만 공격과 관련된 기록도 있다. 정약용은 현안도설에서 “현안으로 화살이나 돌, 총 등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석총통(矢石銃桶) 즉 화살, 돌, 총이라는 구체적 공격 수단을 제시했다. 정약용은 감시라는 주기능과 함께 공격시설임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의궤는 아니지만 성역의궤 번역본과 함께 발간된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도 보자. 여기에 현안을 “성벽 가까이 다가선 적에게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부어 공격하도록 고안된 시설”로 설명하고 있다. 이 용어 해설집에도 공격 수단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책은 화성성역의궤를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한 좋은 자료다.

 

정약용은 현안도설이라는 제안서를 만들어 정조에게 보고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정약용은 현안도설이라는 제안서를 만들어 정조에게 보고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성역 당시에는 ‘화살, 돌, 총’을,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뜨거운 물, 기름’이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현안은 과연 공격 시설일까. 거론된 공격 수단을 하나씩 평가해 보자. 사용성과 전투 효용성으로 나눠 살펴본다. 화성은 전쟁 시설물로 전투 효용성을 필히 살펴봐야 한다. 먼저 사용성을 살펴보자. 화살, 돌, 총, 뜨거운 물, 기름은 모두 현안을 이용해 사용할 수 있는 물체다. 별 이의가 없다.

 

전투 효율성을 살펴보자. 첫째, 화살과 총이다. 이 둘은 짧은 거리에선 직사 무기다. 반면에 현안은 곡선이다. 특히 아랫면이 곡선이다. 현안의 생김새를 고려하면 실패 가능성이 크고 살상범위가 매우 좁다. 더구나 엎드린 상태로 작은 구멍을 통해 아래로 쏘는 자세로는 공격 효과가 거의 없다.

 

둘째, 돌인 경우다. 현안을 이용하려면 돌 지름이 25㎝ 이내로 매끈한 공 모양이어야 한다. 현안 위 구멍이 지름 30㎝이기 때문이다.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각이 있으면 현안에 돌이 걸리기 쉽다. 현안이 막히면 공격도 못하고 감시도 못한다. 내탁 위에 비치한 돌은 타구나 여장 위로 던지는 것이다. 현안 구멍은 아니다. 현안은 내탁 위가 아니고 치성 전면에 있다.

 

셋째, 뜨거운 물과 기름이다. 액체이므로 사용에 문제가 없다. 다만 물 보관, 끓이는 데 필요한 공간, 땔감 보관 장소가 내탁 위 혹은 치성 안에 있어야 한다. 운반, 보관, 흘려보내는 도구 등이 필요하다. 치성 위는 건물이 지어져 있어 이를 위한 여유 공간이 없다. 옹성은 더욱 없다. 치를 제외하고 대부분 현안 구멍이 마루 밑에 있어 쏟아붓는 행동도 거의 불가능하다.

 

정리하면 이론적으로 사용은 모두 가능하나 전투 효율성은 매우 낮게 평가할 수 있다. 적에게 성을 빼앗기느냐 지키느냐의 매우 급한 상황 외에는 실제 사용하지 할 수 없는 수단이다. 그러면 왜 공격 수단으로 문헌에 기록했을까. 그 내심을 살펴보자.

 

장안문을 지키는 북동적대 현안도 외면 폭에 비해 많은 3개나 설치돼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장안문을 지키는 북동적대 현안도 외면 폭에 비해 많은 3개나 설치돼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먼저, 뜨거운 물과 기름이 언급된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은 성역의궤 기록이 아니다. 화성성역의궤를 번역해 발간할 때 함께 만든 용어집으로 성역의궤나 당시 문헌을 기초로 쓴 내용이 아니고 조선 후기 여러 영건(營建) 의궤들과 대조해 만든 해설집이다. 최근에 만든 자료다. 성역의궤 원문이나 주(註)가 아니라는 의미다.

 

다음, 물과 기름을 기록에 포함한 것은 천정(天井) 제도에서 따온 듯하다. 천정이란 협축의 원성 위에 설치한 구멍이다. 설치 대상과 위치, 형태가 다를 뿐 역할은 현안과 유사하다. 천정에 대한 설명에 “곧바로 성벽의 아래쪽을 볼 수 있고, 천정을 통해 창으로 아래로 찌르고 똥을 뿌릴 수도 있다”고 했다. 똥(糞·분)도 뿌리는데 물이나 기름도 뿌릴 수 있겠지란 생각에서 해설집에 ‘뜨거운 물과 기름’을 넣은 것 같다.

 

이와 달리 화살, 돌, 총은 당시 기록이다. 정약용이 “화살, 돌, 총 등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다”고 현안도설에 기록했다. 현안도설은 화성성역의 기본계획인 도설의 일부다. 정약용의 성설과 도설을 일반적으로 화성 설계라 보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설계로 보지 않는다. 정약용의 성설과 도설은 설계가 아니고 설계와 시공을 맡을 사람에게 제공하는 제안서다.

 

정조의 지시로 만든 ‘발주자 요구사항(O.R)’이 정확한 개념이다. 이런 바탕에서 정약용의 제안을 해석해 본다. 정약용은 본인의 제안서 현안도설에 ‘활용 가능의 나열’에 중점을 둬 강조했다고 본다. ‘활용 가능’이 아니다.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실전 투입에는 뜻이 없었다는 의미다. 그러면 정약용의 제안서는 거짓인가.

 

과연 현안은 감시시설일까, 공격시설일까.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과연 현안은 감시시설일까, 공격시설일까.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거짓이라기보다 의도적이었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정약용은 여러 활용 가능한 공격 수단을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무슨 의도였을까. 자신이 제안하는 현안이 채택되길 바라는 의도였다. 건축주 정조와 설계와 시공을 담당할 감동당상 조심태다. 정약용은 ‘여러 공격 수단’을 먼저 정조를 향해 ‘현안 마케팅(현안 팔이)’ 수단으로 활용했고 다음으로 조심태를 향해 ‘임금님 마케팅(임금 팔이)’을 한 것이다.

 

여러 공격 수단을 나열한 후 ‘참으로 좋은 방법입니다’란 미사여구로 제안서를 마무리한다. 결국이 제안은 임금도, 감동당상도 받아들인다. 실제로 옹성과 모든 치성에 다산의 제안과 똑같이 현안을 설치했다. 정약용의 마케팅은 성공했다. 다산의 화성 성역 제안서인 현안도설 중 공격 수단에 대해 살펴봤다.

 

오늘은 자기 제안의 ‘채택과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젊은 시절 정약용의 마케팅 마인드를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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