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승화시킨 ‘자연·인간’ 생명의 가치‘... 생명의 소리-ON & OFF’展

이윤숙 조각가, 드로잉·설치 등
겨울나무의 생명력 표현 눈길
“생명과 죽음 순환 통해 성찰”

이윤숙 작가 생명의 소리-ON & OFF’展

차디찬 보통리저수지의 겨울밤을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며 만난 겨울나무들은 앙상하고 메말랐다. 멈춰 있으나 멈춰 있지 않았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품고 모진 추위를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생명을 품기 위해 거대한 에너지를 끌어모으며 견디고 또 버텼다. 이윤숙 작가는 지난겨울, 이 겨울나무들을 만나며 생명의 소리와 생명의 위대함, 숭고함을 느꼈다. 그 자신도 건강상의 이유로 걷고 또 걸었기에 삶에 대한 절실함과 생명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솟구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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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숙 작가가 전시의 메인인 ‘온새미로 - 정서적 관계망’ 작품 앞에 있다. 둥근 원은 하나의 지구를 나타내며 나무와 인간, 생명체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김현락 사진작가 제공

 

그동안 조각으로 ‘자연과 인간의 하나 되기’를 구현했다면 이번엔 드로잉과 설치작업으로 이를 옮겼다. “작가 경력 40년의 생활이 새롭다고 느껴질 만큼 특별한 경험이자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임을 다시 한 번 실천했던 시기”의 작품들이다.

 

수원특례시 팔달구 정조로 예술공간 아름과 실험공간 UZ에서 지난 5일 개막한 이윤숙 조각가의 초대전 ‘생명의 소리-ON & OFF’에선 겨울을 버티며 지내온 나무, 사람, 작가, 나아가 우리를 만나게 된다.

 

그동안 이 작가는 ‘대지와 밀착된 생을 위하여’, ‘자유에 대한 희구’, ‘인간의 모태-우주, 공간, 침묵에 대하여’ 등 1985년 첫 개인전 이후 40년간 ‘자연, 인간 하나 되기’, ‘예술가에게 있어 삶은 곧 예술’이라는 신념을 실천해왔다. 지난겨울은 특히 남달랐다.

 

“저 역시 지난겨울 삶 속에서 훈련하듯 작업을 하고 삶을 이어왔어요. 추운 겨울, 차가운 공기 속 생명을 품은 채 흔들리는 나무가 생생하게 보였죠. 나무가 주제이지만 결국 우리 사람이 그렇다는 걸 말하고 싶었고, 생명의 강인함,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말하고 싶었어요.”

 

나무에서 사람을 엿봤고 연결된 저수지를 둘러싼 나무에서 하나의 지구를 봤다. 나무와 인간, 생명체의 연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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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리- ON & OFF’ 전시에선 쓰다 버린 상자 등을 활용해 드로잉한 작품들도 모았다. 정자연기자

 

전시는 살아있는 생명을 표현한 ‘생명나무’(2층)와 죽음을 이야기하는 ‘서성이는 영혼’(지하)으로 나뉜다. 보통리저수지를 매일 산책하며 마주한 겨울나무들의 생명력을 표현한 ‘생명나무’ 드로잉에선 삶의 강인함과 생명체의 연결성을, 죽음을 이야기하는 ‘서성이는 영혼’에선 지난 폭설에 찢긴 단풍나무와 소나무 옹이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생명과 죽음의 주제를 탐구한다.

 

모진 추위를 견디며 꿋꿋하게 서 있는 생명나무들은 힘든 시기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가로등불에 비친 나무와 대지는 푸른 배경 속 금빛과 은빛으로 비쳐 단조로우면서도 강인하다. 쓰고 버려진 상자와 종이를 활용해 드로잉한 작가의 작업은 자연과 하나 되기를 실천하는 예술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생명의 죽음을 말하는 ‘서성이는 영혼’은 난개발, 재난, 전쟁, 사건, 사고로 생명을 다한 자연과 인간, 상처받은 모든 영혼들을 위한 퍼포먼스 의식으로 이어진다. 생명을 다한 나무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처럼 기묘한 기운을 품고 전시공간을 서성이듯 배치됐다.

 

설치작업에 사용된 단풍나무, 소나무 옹이들은 이 작가가 직접 묘목을 심고 오랜 기간 정성을 쏟으며 키워 왔던 나무들로 김영은 작가의 영상작업이 더해져 특별한 성찰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관람객들이 작품 사이사이를 돌며 옹이에 채색해 ‘서성이는 영혼’ 주변에 걸거나 놓아줌으로써 전시의 막이 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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