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직업교육정책연구소장
지금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2023년 고등학교 11학년 세계사 교과서를 개정하며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정된 교과서에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재건’ 사례 등을 새로 포함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교육과정에는 중국, 일본, 인도 등 동아시아 주요국은 포함돼 있었지만 한국은 빠져 있었다. 전후 초토화된 한국이 불과 수십년 만에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사례를 자신들이 설계할 미래 희망의 모델로 삼고 있다. 반가운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려 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은 전쟁으로 국토의 80%가 파괴됐지만 수십년 후 아시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나라가 됐다.” 전시의 포화 속에서도 한국의 사례를 가르치며 미래를 준비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작 우리 현실의 모습은 어떤가. 2025년은 6·25전쟁 발발 75주년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6·25는 점점 ‘시험에 나오는 연도나 지명’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국가보훈부의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국민의 81.4%가 ‘6·25를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20대 이하에서는 그 비율이 22.7%에 불과했다. 전쟁의 상처와 교훈은 세대의 변화와 함께 빠르게 잊히고 있다.
6·25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었다. 광복 후 미소 냉전이 격화되며 한반도는 이념의 대리전장이 됐고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민족이 총을 겨눈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 기간 우리 군인과 경찰 15만명이 전사했고 250만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유엔군 참전 16개국 가운데 약 4만명의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미국 병사만 해도 3만7천여명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평균 나이는 19세였다고 한다. 이는 한반도의 전쟁이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냉전의 최전선이자 국제사회가 함께 치른 전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평화를 누리는 우리는, 정작 그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되지 않는 전쟁은 반복될 수 있다. 기념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살아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라나는 세대가 반드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의 기억을 단지 고통으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의 위기 속에서 전 세계가 함께 지킨 자유의 기록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1위 자리를 내어주며 국가경쟁력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국민 모두의 힘을 결집해 ‘한강의 기적’을 다시 한번 이뤄내는 것이다. 국가의 존립과 다른 나라도 도울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줘야 한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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