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찬란함의 대명사, 도자기 기술 중에 가장 어렵다는 터키 도자기가 그 화려함을 뽑내기 위해 수원을 찾았다. 13∼19일 수원미술전시관 제2, 3 전시실에서 열리는 ‘2008 이스탄불에서 불어온 바람展’은 터키에서도 도자기로 유명한 큐타햐의 타일, 도자기, 마블링 등 130여점이 선보인다. 터키의 도자기는 특별한 방식을 거쳐 빨간색, 에메랄드 그린색, 터키석색, 코발트 블루색 등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색채감과 리드미컬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어우러진 다채로움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회는 ‘도자기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도시 곳곳에 산재한 500여개의 작업장에서 숙련된 장인들이 빚어낸 공예품들과 큐타야가 배출한 거장 메흐멧 규르소이, 와즈칸 엘라외즈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메흐멧 규르소이는 터키의 대표적인 도예가로 16세기 터키의 전통 디자인을 바탕으로 현대화된 도자기를 만들어 터키 도자기 역사를 새롭게 확립한 주역이다. 외즈칸 엘라외즈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터키 전통 미술인 마블링과 타일을 접목시켜 전통과 현대 건축의 조화를 이뤄냈다. 또 이번 전시회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무늬의 마블링과 터키 전통의 세밀화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윤철원기자 ycw@kgib.co.kr
“순이야. 그토록 사랑하는 딸자식 하나 온전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이 애비를 용서해라. 보고 싶구나. 먼 훗날 수치스런 역사가 너의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 잊어버리고 순이가 아닌 다른 여자로 살아가거라.” 해방이 되어 고향을 찾은 딸자식을 보고도 얼굴을 돌려야만 했던 우리 아버지의 진한 슬픔이, 성황당 뒤에 숨어 그리워 하던 아버지 앞에 차마 나서지 못하는 우리의 딸 순이,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한(恨)이 온전히 가슴 속으로 전달돼 오는 것 같았다. 경기도립극단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 올린 악극 ‘꿈에 본 내고향’은 힘없는 민족의 설움과 애환을 ‘한’이란 정서에 담아 사실적으로 그려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립극단은 일제하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우리의 누이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아픔을 악극형식으로 풀어냈다. 극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광복 등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주인공 ‘순이’를 통해 종군위안부 여성의 아픈 역사와 ‘한’을 잔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그려나갔고, 극 중간중간 막간극 형식을 첨가해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사실 도립극단이 악극을 무대에 올린다고 했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 정통 악극을 해보지 않았고 무대도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바꾼데다 연습시간까지 짧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공연을 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주인공 한범희, 우정원, 이승철, 김미옥, 이찬우, 김종칠, 강상규, 강성해 등 도립극단 중견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에 힘을 실어주었고, 섹시춤(?)과 트롯 노래로 관객들을 울고 웃게 했다. 특히 종군위안부 생활을 그린 장면에서는 리얼한 연기가 극에 사실감을 불어넣어 관객들을 숨죽이게 했고,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게 했다. 여기에 악극단의 막간극 ‘홍도야 울지마라’에서 홍도오빠 역의 심완준과 홍도 역의 추연주는 공연장을 찾은 60~70대 어르신들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코믹연기는 젊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또한 배우들의 트로트 노래실력도 유감없이 발휘돼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따라부르는 유쾌한 자리를 만들었다. 유쾌한 자리는 정겨운 트로트 가요로 엔딩인사 하는 즐거운 이벤트로 흥겨움 속에 마무리돼 됐다. 다만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관객들이 ‘한’이란 정서에 몰입하려 하면 장면이 바뀌면서 정서가 온전히 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또한 필리핀 종군위안부 생활을 그린 장면에서는 리얼한 연기는 돋보였으나 극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도 순이의 애환은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여기에 철민과 순이의 애틋한 사랑은 찾기 힘들어 관객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가장 큰 아쉬움은 대극장 무대가 객석과 멀리 떨어져 있어 배우들의 연기를 피부 가까이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가지 아쉬움 속에서도 오랜만에 도립극단이 새롭게 시도하는 악극과 즐겁게 만날 수 있어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고(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가 경기도립국악단의 웅장한 국악 관현악으로 승화돼 무대에 올려진다. 도립국악단(예술감독 김영동)은 고(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함축한 노랫말을 음악극으로 재창조, 경기일보사 후원으로 오는 23일 오후 7시30분 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 올려진다. 특히 이번 무대는 지난 5일 타계한 故 박경리 선생을 애도하는 뜻을 담아 추모음악제로 꾸며지며, 고인에 대한 향수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숭고한 정신, 전무후무한 우리 문학의 대서사시를 고스란히 담아낼 예정이다. 공연은 김영동 감독의 지휘로 다른 연주 프로그램 없이 이승하 시인의 노랫말로 압축한 대본에 우리의 국악을 입힌 순수 ‘토지’ 음악만을 국악 관현악과 솔리스트의 연주로 60여분간 진행된다. 음악극 ‘토지’는 김 감독이 지난 1995년 토지 완간 1주년 및 광복 50주년을 맞아 서양 오페라에 견줄 수 있는 국내 서사음악극을 계획, 이승하 시인의 노랫말에 음악을 입혀 그해 9월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직접 지휘한 작품이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서울시립합창단, 서울시립가무단, 서울필하모닉 오페라코러스 등 단체들이 모두 참여한 당시 공연은 서양음악에 익숙한 우리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것은 물론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내딛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소설 ‘토지’ 가운데 제1부와 2부를 축약해 경남 하동 평사리 마을에서 5대째 대지주로 살아가는 최참판댁 며느리가 머슴과 함께 달아나는 것으로 시작해 모두 4막으로 구성했다. 다만 소설이 서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됐다면 이번 ‘토지’는 서희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할 뿐 소설 속 인물 모두가 주인공으로 표현돼 극중 개개인의 특성이 음악으로 표출되는 다양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 제1경은 어머니 별당아씨와 머슴이 달아나자 어린 서희가 눈물과 앙탈로 주변사람들을 들볶기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김평산이 농투성이(농부를 낮잡아 부르는 말)들의 설움을 부추겨 당주 최치수를 교살한다. 이어 수려한 용모의 용이와 무당의 딸 월선의 애달픈 사연과 용이의 처 강청댁의 투기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제2경에서는 머슴들이 최참판댁 고방을 부수고 식량을 가져간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동학의 잔당이 되는 것을, 제3경은 최치수에 이어 윤씨부인마저 목숨을 잃자 서희가 조준구(서희의 외가쪽 먼 친척)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4경에서는 할머니 윤씨부인이 남겨준 보석을 팔아 사업을 시작, 간도에서 부호가 된 서희가 길상을 평생 반려자로 삼고, 조준구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으면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권선징악’의 극적 묘미를 표현한다. 만 7세 이상 관람 가능. R석 2만원, S석 1만원, A석(청소년석) 5천원. 문의 도립국악당(031)289-6400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대하소설 ‘토지’는…> 집필 기간만 26년 걸린 역작 대하소설 ‘토지’는 고(故) 박경리씨가 1969년부터 집필한 대하소설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을미의병(1895년) 등을 거쳐 1897년 한가위로부터 극이 전개된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독립투쟁, 2차 세계대전(일명 태평양 전쟁), 그리고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15일까지의 처절하고 긴박했던 한국 근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공간적 배경으로는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을 시작으로 지리산과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쳐 광활한 국내외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작품 속 인물은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7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해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과정,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민족애, 가정사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토지’는 26년간의 집필기간, 원고지 3만매가 넘는 분량의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를 담고 있으며 한국인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 의지가 민족적인 삶으로 확대된 한국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인터뷰/ 김 영 동 예술감독 “서양 뮤지컬의 범람속에서 문화정체성 뿌리 찾을것” “서구 대형 오페라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국내 공연계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습니다.” 1995년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축약한 노랫말을 음악극으로 작곡해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된 도립국악단 김영동 예술감독은 우리 것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그는 “서양 뮤지컬이 만연한 무대공연 작품의 범람 속에서 ‘토지’를 통해 박 선생의 역작을 기리고 우리 문학의 중심이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서사시가 우리의 음악으로 재탄생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토지’의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많은 작품 중에 ‘토지’를 선택한 배경은. ▲故 박경리 선생이 25년간 집필하신 대하소설 ‘토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서민들의 끈질긴 삶과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강한 집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선생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과 절친한 관계여서 평소 왕래가 잦았던 것이 계기가 됐고, 선생께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간청했는데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가능했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함축해 음악극으로 연출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5부 16권의 분량을 1995년에는 1시간, 2004년에는 1시간 40분으로 축약했지만 당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소설은 서희를 중심으로 극을 전개했지만 이번 공연은 서희가 아닌 역사와 소설 속 등장인물 700명 모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합창을 많이 삽입하는 등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다만 투자만 이뤄지고 우리의 문화적 현실이 받아 들여지면 세계적 오페라 처럼 3~4일로 나눠 연속성 있게 작품을 만들고 싶은 포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장기공연은 물론 오페라, 뮤지컬, 가극 등 모든 장르로 표현이 가능하도록 기획해 항상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박경리 선생 타계의 심정과 마지막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첫 공연과 두 번째 공연 모두 박 선생께서 직접 관람하셔서 “서희가 중심이 되지 않아 좋았다”는 평가를 내려주셨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 공연에서도 함께 계셨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음악극 ‘토지’는 우리 것을 소재로, 우리의 악기로 표현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경기도 만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나아가 국가적 브랜드로 격상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담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음악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데 왜 우리는 국악이라 하면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부분이다.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크로스오버 음악의 살아 있는 전설, 클로드 볼링의 내한공연이 고양아람누리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오는 23일 오후 8시 아람음악당에서 열린다. 클로드 볼링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그랑프리 디스크를 여섯 차례 수상했고, 미국 그래미상에도 수 차례 노미네이트 된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 편곡자, 피아니스트다. 14세 때 이미 재즈 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릴만큼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으며, ‘불사리노’, ‘어웨이크닝’, ‘빌리와 필’, ‘은곰들’ 등 100편이 넘는 TV와 영화음악을 담당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고양 공연에서는 CF와 라디오 등을 통해 알려진 친숙한 멜로디를 특정하는 클로드 볼링의 다양한 레퍼토리 가운데 대표작들만 엄선,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특히 빌보드 차트에 53주간 오르며 클로드 볼링의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대표작 ‘Suite for flute’와 스타 첼리스트 요요마와의 연주로 화제를 모았던 ‘Suite for cello’가 한국 플루티스트 정유미, 첼리스트 김창헌과 함께 협연, 고령의 노하우와 젊은 패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보기 드문 공연을 펼치게 된다. 또 클로드 볼링 앙상블의 보컬리스트인 마크 토마스와 함께 거쉬인의 ‘Somebody loves me’, 카 마이클의 ‘Georgia on my mind’ 등 스윙을 비롯한 초기 재즈음악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다양한 스탠더드 재즈 넘버들로 꾸며진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클로드 볼링은 여러 차례 내한공연을 갖는 등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해 있지만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 때마다 열정적이고 화려한 무대 매너를 선보여 팬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VIP 7만원, R석 5만원, S석 3만원, 합창석 1만원. 문의:고양문화재단(1566-7766)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우선 ‘피노키오’라는 원작이 국악뮤지컬로 탄생한다는데 호기심을 가졌다. 당연히 유럽의 시공간을 한국의 과거로 옮길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관절 목각인형이라는 소재의 이국성을 어떻게 소화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가졌다. 더구나 극단 예성의 홍보물에는 국악음악의 신명과 흥, 한국무용의 신체동작 활용, 숙련된 배우들의 앙상블과 다이나믹한 영상효과 등 많은 자랑들을 펼쳐놓았기에 그 진면모를 만끽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의무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극단 예성의 ‘피노키오’는 많은 효과들에도 불구 정작 작품의 본질을 벗어난 내러티브 요소들과 일관되지 않은 양식의 혼돈으로 그야말로 파편의 혼탕이었다. ‘피노키오’라는 동화의 원작은 거짓된 마음과 진실된 마음-형태적으로는 거짓말과 참말, 혹은 이기심과 이타심으로 드러나는 대립구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 결과인 진실된 마음의 수용이 나무인형을 사람으로 변모시킨다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극단 예성이 풀어간 ‘피노키오’는 다이나믹한 효과를 취하기 위해 원작의 단순구조에 다양한 내러티브 요소들을 추가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만다. 우선, 철마왕이라는 존재. 온 마을을 평화가 아닌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가며 철생산에 전력투구하여 마을사람들에게 목공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설정이다. 그래서 극단 예성은 원작에서 할아버지가 잃어버린 피노키오를 찾아 바다까지 닿게 된 이야기를 철마왕이 나무인형을 만든 죄로 할아버지를 바다로 끌고 간 것으로 설정했다. 기초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이런 설정이 일관성을 지니질 못한다. 극 초반부터 전쟁에 대한 위협적인 분위기를 설정했지만 이어지는 장면들에선 그에 따른 어떠한 위협요소도 없으며, 바다로 끌려간 할아버지지만 정작 바다장면에서는 철마왕이라는 존재설정은 사라진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거짓된 마음과 진실된 마음이라는 대립축이 극단 예성의 ‘피노키오’에서는 혼돈에 빠져버린 것이다. 즉, 거짓된 마음과 진실된 마음 또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주체는 분명 피노키오다. 스스로 거짓을 하고 스스로 남을 배려하지 않다가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깨우치는 과정에서 일종의 ‘성장기’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 예성의 ‘피노키오’는 그 주체에 피노키오가 있지 않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피노키오의 설정 또한 혼돈의 연속이다. 원작은 홀로 사는 할아버지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극단 예성의 피노키오는 소목장과 그의 아내가 있다. 그런데 장면이 전개하면서 느닷없이 아내는 사라지고, 피노키오는 ‘엄마’라는 존재를 그리워한다. 그리고는 소목장을 구출하고 돌아온 피노키오에게 그의 아내가 피노키오의 ‘엄마’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결국 극단 예성의 ‘피노키오’에서 설정된 수많은 내러티브 요소들은 전체 구조 속에서 일관된 설정과 대립 갈등관계 속에 녹여진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마다 장면적 효과를 위해 끝없이 임의차용하고 생략해버림으로써 이야기틀까지 흔들어놓아 버린다. 혼돈은 내러티브적 요소에 머무르진 않는다.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이 시각적 양식. 극단이 자랑스레 내세운 영상효과는, 하늘을 나는 피노키오나 고래뱃속을 탈출하는 등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지만, 정작 수채만화풍의 영상은 기본무대질감과 의상 등의 시각적 양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더불어, 무대공간과 영상공간이 자연스레 넘나드는 연쇄효과 또한 불연속적이다. 또한 소품의 스타일과 의상의 스타일은 끝없이 시대질감을 넘나드는 혼탕으로 이어진다. 물론 극단 예성의 모든 시도들이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피노키오라는 동화가 한국고전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은 부분을 한국화했다. 피노키오의 목각스타일을 보다 전통에서 찾고, 인형극장의 설정을 꼭두각시 놀음 등으로 더욱 더 시도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국악스타일에 어울리는 시공간의 설정은 비교문화적인 의미에서도 긍정적인 시도다. 더구나 국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를 넓혀나간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아동교육적 측면에서 국악기와 우리 놀이를 친숙하게 하는 긍정성 또한 있다. 혼돈이 더욱 아쉽게 여겨지는 까닭이 바로 이런 긍정성들 때문이다./안경모 연극평론가
화창한 봄, 파란 눈 천사들의 청아한 목소리를 느껴보자. 세계 3대 소년합창단의 하나인 독일 ‘텔처소년합창단(Toelzer Boys Choir)’이 오는 10일 오후 7시30분 군포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1956년 지휘자인 게르하르트 슈미트 가덴 교수에 의해 창단된 텔처소년합창단은 독일 뮌헨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가르치는 뮌헨과 바이에른 출신의 6~14세 소년 200여명 가운데 선발한 소년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중세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있으며 바로크와 고전 종교음악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성가곡과 함께 포크송도 합창단의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매년 240여회의 콘서트와 오페라 공연을 소화하고 있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를 돌며 광범위한 투어를 해오고 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들장미’, ‘보리수’ 등 독일 가곡은 물론, 헨델의 ‘울게 하소서’, 카치나의 ‘아베마리아’, 프랭크의 ‘생명의 양식’ 등 성가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들려준다. R석 2만원, S석 1만6천원, A석 1만2천원. 문의(031)390-3525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은 오는 14일 오후 2시 ‘이야기가 있는 커피 콘서트’로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가 정트리오의 맏이 첼리스트 정명화를 초대한다. 첼리스트 정명화는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가 걸어온 음악인생을 들려주고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소리라는 첼로의 그윽한 선율도 선사한다. 레퍼토리는 께 데르벨루아의 ‘안단티노’,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바장조 1악장,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소나타 사단조 3~4악장, 포레의 ‘꿈꾼 후에’, 슈베르트의 미뉴에트 등이다. 관객들에겐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커피가 제공된다. 전석 1만원. 문의(032)420-2020 /임명수기자 mslim@kgib.co.kr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5월 가족의 달을 맞아 오는 23일 오후 7시30분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클래식 나들이를 마련했다. 레퍼토리는 장중한 협주곡과 교향곡 위주의 정통 클래식 음악회 형식에서 벗어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오케스트라 소품들과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곡 위주로 구성됐다. 명쾌한 지휘와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부천필과 좋은 무대를 만들었던 지휘자 김강훈이 지휘봉을 잡고, 뛰어난 집중력으로 감미롭고 정제된 감성을 표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채유미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제3악장을 연주한다. 정재령의 재치있는 해설과 함께 정겹고 아름다운 명곡들과 화려하고 열광적인 연주가 조화를 이뤄 축제분위기의 대미를 장식한다. 문의(032)320-3481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농협고양유통센터(사장 이상욱)는 지역사회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2~3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고양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추억의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공연한다. 고양시와 고양시의회가 공동 후원하는 이번 악극은 농협고양유통센터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고양지역 65세 이상 어르신 8천여명을 무료로 초청하는 공연으로 올해 농협고양유통센터가 목표로 삼고 있는 ‘지역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사업장 만들기’ 실천 방안의 하나로 마련됐다. 강태기·유승봉·이한수 등 한국연극배우협회 중견배우들이 출연하는 ‘불효자는 웁니다’는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지는 감동의 드라마로 전통적인 악극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편성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어르신께는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소비촉진을 위해 5천원 상당의 고급 사과 1봉지씩 무료로 나눠준다. 농협고양유통센터 관계자는 “이번 중견배우들과 젊은 연기자들이 조화를 이뤄 가족간의 소중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협고양유통센터는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홀로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효자효부 선발 시상 등 다양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양=오정희기자 heeya@kgib.co.kr
입가에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은,/삶과 죽음 가에 살짝 걸린/실오라기 외나무 다리//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간다/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그런 양 나래 저으며…//풀잎 슬몃 건드리는 바람이기보다/그 뿌리에 와 닿아 주는 바람/이 가슴팍에서 빛나는 햇발//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풀밭 길에서/입가 언덕에 맑은 웃음 몇번인가는…(천상병의 ‘미소’ 중에서) 새벽빛과 아침이슬, 붉은 노을이 가득한 세상을 그리워했고, 짧지만 즐거운 ‘소풍’처럼 한 세상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살이를 즐겼던 사람 천상시인 천상병(1930~1993년). 지난 26일 오후 5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선 ‘푸른 것만이 아니다(천상병 시인의 시)’란 주제로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가 열렸다. 공연장 밖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무대에서도 내리고 있었고 화면 가득히 천 시인의 ‘미소’ 원고가 배경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천 시인의 어린아이 같은 웃음소리와 추억의 사진들이 오버랩 영상으로 비춰지며 시작한 이날 행사는 천 시인을 기리는 축제만이 아니라 그가 품었던 맑은 마음과 시선을 함께 호흡하는 자리였다. 2시간 30분 가까이 시와 음악이 함께 한 자리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를 아끼고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읊고 낭송하며 그의 시를 음미했고, 초대가수들의 음악에 푹 빠져 박수치고 웃고 즐기며 하늘나라 소풍을 즐기는 천 시인과 함께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나림(전 MBC 아나운서)은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로 2시간이 훌쩍 넘는 음악회를 이끌었다. 첫 무대는 한·중·일 여성5인조 퓨전국악그룹 ‘율려’의 퓨전국악곡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김도향이 무대에 올라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My way’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를 열창하자 40~50대 관객들은 너나 할것 없이 객석에서 일어나 춤추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20대 못지않은 열정을 발산했다. 뜨거운 열기는 지난해 뮤지컬로 선보인 ‘귀천’에 출연한 남녀 주인공이 뮤지컬 넘버 ‘노래하는 새’, ‘귀천’을 불러 천 시인의 삶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시간으로 잠시 잦아들기도 했다.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는 천 시인의 ‘다음’을 아카펠라곡으로 불러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았고, 새로 의뢰받아 작곡한 ‘푸른 것만이 아니다’는 천상음악회와 맞는 맑고 상쾌한 분위기로 박수치며 따라부르기에 좋았다. 음악회 중간중간 참여한 시낭송도 일품이었다. 천 시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소개해 온 안토니오 수사(서강대 교수)가 피아노 반주 속에 천 시인의 ‘강물’을 한국어와 영어로 낭송했고, 정옥희 한국예절원 원장의 시 낭송은 잔잔한 감동으로 자리를 빛냈다. 마지막 무대는 신형원과 제자들이 꾸미는 자리였다. 신형원이 ‘개똥벌레’를 부르자 아주머니 관객들은 목청껏 따라불렀고, 자신의 신곡 ‘더 좋은 날’에 이어 제자들과 함께 부른 ‘아름다운 강산’에선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날 공연은 밖에 내리는 촉촉한 봄비와 함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마음에도 감동으로 촉촉히 내려앉았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