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중대명백설로’ 무효·취소 기준 삼아 중대한 법규에 명백히 위반될 때 무효 가능
국가나 지방자체단체 등 행정청이 개인이나 단체에게 권리를 얻게 하거나 의무를 부담시키는 행위를 행정처분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운전면허, 영업허가, 각종 자격의 부여 등은 권리를 주는 행정처분이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 특정 영업을 금지하는 것 등은 의무를 지우는 행정처분이다.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라고 부를 정도로, 행정처분이 단체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행정청의 행정력(행정처분)도 법에 위반되거나 법의 범위를 벗어나 남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렇게 잘못된 행정처분은 그 잘못이 무거우면 무효가 되고, 잘못이 가벼운 편이면 이를 취소해 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효와 취소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법원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른바 ‘중대명백설’이다. 즉 어떤 처분이 단순히 법을 어긴 정도라면 이는 취소할 수 있는 처분에 해당하지만, 그 처분이 중대한 법규의 위반으로서 외관상 명백하다면 그 처분은 아예 무효로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준도 그 자체로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사안에서 답을 끌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궁극적으로는 소송을 해봐야 답을 내릴 수 있다), 적어도 이런 구분이 법률 실무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만 알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무효와 취소를 구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면 어떤 시민이 세무서로부터 세금 1억원을 내라는 처분을 받고 일단 그 돈을 세무서에 납부하였는데, 위 과세처분은 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하자. 이 경우 그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위 (과세)처분의 잘못이 가벼운 것으로서 단순히 취소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는 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여야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즉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할 때까지는 비록 위법한 과세처분이라도 여전히 효력이 살아 있으므로, 세무서가 보유하는 1억 원은 부당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우 취소소송은 심판 등의 전심절차를 거쳐 일정한 기간(90일) 안에 제기해야 하는 제약이 있으며, 그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과세처분에 대한 취소청구에서 이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위 처분의 위법성이 중대·명백하여 무효라면 상황이 다르다. 즉 무효인 처분은 처음부터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언제 어디에서든 그 처분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곧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1억원을 돌려줄 것을 청구할 수 있다(이 소송에서 위 과세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면 된다). 물론 그는 잘못된 과세처분 자체를 없애기 위해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고, 그 소송은, 취소소송과는 달리, 전심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으며, 일정 기간 안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제한도 없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어떤 행정청의 행위가 법에 어긋난 것인지,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효의 행정처분인지 아니면 취소할 수 있는 행정처분인지를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이 경우 가능하면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
김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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