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에 의한 화해, 번복 가능할까

손해가 중대할 때, 분쟁 이외의 사항 등 일정한 요건 하에서만 인정… 합의 신중

화해란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여 그들 사이의 다툼을 끝낼 것을 합의하는 것으로써, 일종의 계약이다. 화해를 하게 되면, 화해 전의 법률관계는 없어지고, 서로가 화해한 내용대로 지켜야 할 새로운 관계가 창설된다. 그런데 이렇게 일단 화해한 것을 이후에 무효로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서는 보통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문제되고 있다.

 

첫째, 교통사고와 같은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소액의 배상금을 받고 일체의 손해배상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합의서를 작성하였으나, 합의 당시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후유증으로 손해가 크게 증가된 경우, 피해자는 위 합의에 의한 화해를 번복하고 추가 손해배상을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그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때에는, 그 후 합의금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여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당초 합의가 사고가 발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추가 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당사자가 추가 손해를 예상하였더라면 사회통념상 그 합의금액으로는 화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할 만큼 그 손해가 중대한 것일 때에는, 당사자의 의사가 이러한 손해에 대해서까지 그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피해자는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 법원은, 사고의 피해자인 3세 아이의 어머니가 가해자와 300만 원 상당으로 합의하고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는 하는 합의서를 작성했으나, 그 후 위 아이의 노동능력이 38% 상실될 것으로 판명되어 손해가 4천400만 원 정도로 산정된 경우, 어머니가 한 합의는 추가된 손해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본 사례가 있다.

 

둘째,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를 통해 합의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후 일방 당사자가 이 위 합의는 착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합의서의 내용을 번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화해를 통해 합의서를 작성할 작성 당시 착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취소해 무효화시킬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당사자 간에 다툼도 의심도 없는 사실로 양해된 사항에 대하여 착오가 있다면, 이는 ‘화해의 목적인 분쟁 이외의 사항’에 대한 착오로서, 이를 이유로 화해에 기인한 합의를 번복할 수 있다(민법 제733조). 예컨대, 의사의 치료행위 직후 환자가 사망하여 의사가 환자의 유가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화해하고 합의서를 작성하였으나, 그 후 환자의 사망이 의사의 치료행위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위 화해 당시 의사와 유가족 사이에서 의사의 치료행위로 환자가 사망했다는 부분은 분쟁의 대상이 아니고 서로 양해된 사항(분쟁 이외의 사항)이었으므로, 이 경우 의사는 이미 작성된 화해에 기인한 합의서의 내용을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여 번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당사자 간의 화해가 일단 이루어지면, 당사자 중 일방이 이러한 합의내용을 번복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일정한 요건 하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므로, 화해를 할 때는 이처럼 번복이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송윤정 변호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