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100만원을 주고 을로부터 TV 한 대를 구입하였는데 그 TV에 하자가 있는 경우, 갑은 을에 대하여 어떤 권리를 행사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민법은 다음의 두 경우로 나누어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먼저 TV의 하자가 너무도 심각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때 갑은 매매계약을 없는 것으로 하고(해제하고) 을에게 자신이 이미 지급한 100만원을 돌려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반면 TV의 흠이 경미한 경우라면, 갑은 단지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을 뿐,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 여기서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 물건의 기능, 가격, 당사자의 계약 의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 사안의 TV와 동일한 제품이 시중에 다수가 있다면(민법은 이런 물건을 ‘종류물’이라고 부른다) 어떤가. 민법은 하자 있는 종류물을 매수한 사람은, 위에서 본 매매계약 해제나 손해배상 청구 대신, 하자가 없는 다른 물건으로 인도할 것을 청구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규정하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 일치한다.
한편, 이상의 권리는 갑이 TV의 하자를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행사하여야 한다. 따라서 갑이 그 기간이 지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갑과 을이 모두 상인인 경우(예컨대 식당을 운영하는 갑이 식당에 설치하기 위하여 전자제품 판매업자인 을로부터 TV를 구입한 경우)에는 위 설명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즉 상법은, 갑이 TV를 수령하자마자 지체 없이 이를 검사하고 하자가 발견되면 즉시 을에게 통지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만일 갑이 이러한 조치를 게을리하면, 설사 TV에 하자가 있더라도 갑은 계약을 해제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
다만, TV에 즉시 발견할 수 없는 하자가 있는 경우라면, 갑은 TV를 수령한 후 6개월 이내에 하자를 발견하여 즉시 을에게 통지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처럼 매수인은 6개월 이내에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즉 상법은, 상인 사이의 매매에서, 물건의 하자가 깊이 숨어 있어 매수인이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경우, 매수인이 아니라 매도인의 편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인이 어떤 물건을 다른 상인에게 매수할 때, 6개월이 넘어야 그 물건의 하자가 발견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면, 6개월이 넘어도 권리 행사가 가능하도록 미리 특약을 맺어 둘 필요가 있다.
만일 갑이 기계제작업자인 을에게 특별한 기계를 주문하여 이를 공급받았는데, 그 기계에 하자가 있다고 하자. 통상 사람들은 이런 계약도 ‘갑이 돈 얼마를 주고 을로부터 기계 한 대를 샀다(매수하였다)’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부대체물의 제작·공급계약을 도급계약으로 파악할 뿐, 매매계약으로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런 계약에서는 매매계약에만 적용되는 위 설명 내용이 적용되지 않고, 민법의 도급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예컨대, 민법 도급 편에 의하면 이 사안에서 갑은 그 기계를 받은 날로부터 1년 내에 계약해제나 손해배상 등의 청구를 할 수 있다. 이는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권리를 행사할 것을 요구하는 매매 규정과 차이가 있다.
김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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