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플러스]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세간에는 그 제목을 줄여서 ‘너목들’이라 부르기도 하던데, 정말 잘 만든 한국판 법정 드라마이다.

우리 법정드라마를 보면, 필자가 직접 현장에서 뛰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오글거릴 정도의 어색하고 식상한 장면들이 불편하기만 하였는데, ‘너목들’은 지금까지 본 우리 법정드라마 중에 가장 신선하고 재미있다. ‘너목들’에서 주인공인 장변은 자신의 어머니를 무참하게 살해한 범인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절차상 기본원리에 따라 자신의 눈앞에서 무죄로 풀려나는 것을 보며 분노하면서 “그 따위 원칙은 개나 줘버려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후 운명의 얄궂은 장난처럼, 자신이 변호하는, 꼭 살려내야 할 무고한 한 사람의 운명 또한 그 원칙에 기대어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때서야 장변은 왜 그 원칙이 필요한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고 고백한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도 억울하게 처벌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법언이 담고 있는 정신도 이 원칙과 같은 것이고, 이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화하여 온 인류 역사의 한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풀어서 말하자면 대충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주어진 증거를 가지고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함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그 결론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즉, 피고인을 유죄가 아닌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증명의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원칙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바로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오래된 미국 영화이다. 무더운 여름날. 카메라는 법원 계단을 따라 복도를 거쳐 법정을 무심히 보여준다. 그곳에는 재판장이 평의에 들어갈 배심원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배심원들의 평결에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 합리적 의심이 있을 때는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 만약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소년에게는 사형이 선고될 것이다’ 등을, 그러나 배심원실로 이동한 12명의 배심원들 중 11명은 이미 마음속에 ‘유죄’라는 결론이 내려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단 한 명의 배심원 데이비드는 외롭게, 그러나 단호하고도 침착하게 11명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결론(소년의 유죄)에 대해 그들이 놓치고 있던 의문점들을 지적하며 ‘합리적인 의심’을 끈질기게 제기하고 나선다. 그렇게 격렬한 토론과 갈등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당초 유죄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어떤 이는 자신의 상처받은 삶속에서 형성된 근거없는 편견의 아픈 틀을 깨나가며 사건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결국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소년에 대한 무죄를 평결하게 된다. 영화는 보는 내내 우리를 편하게 두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국민참여재판이 적지 않게 열리고 있다. 필자는 변호사이어서 배심원으로 참여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느 날 법원으로부터 배심원으로 참여해달라는 통지를 받게 될지 모른다. 그때 그대 기억하시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김영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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