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수납만 고집, 환자들 ‘분통’
“혹시 모르잖아요, 금융사기에 걸릴지…”
통학을 위해 안양시 만안구에 거주하고 있는 A양(17)은 이달 초 무용 연습 도중 발목 인대를 접지르며 인근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급하게 병원을 찾은 A양은 엑스레이 검사 등 진료를 마친 후 뒤늦게서야 수중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병원에 진료비를 입금할 계좌번호를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보이스 피싱 위험이 있어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부모님이 수원에 거주해 병원 방문이 어렵다는 사정을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 A양의 부모가 다시 한번 병원에 사정을 설명했지만 직접 방문 납입해야 한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A양의 어머니는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신분을 밝혔지만 방문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들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건이 만연하면서 관내 일부 병원들이 환자들에게 진료비 납입을 위한 계좌번호 제공을 거부한 채 방문 납부만을 고집하고 있어 환자들의 불편이 잇따르고 있다.
2일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관내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지난 2013년 833건에서 지난해 1천479건으로 80%가량 급증했으며, 올해도 벌써 841건(5월 기준)으로 집계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병원들이 위급 상황 및 개인 사정으로 인해 수중에 돈 없이 급하게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에게 비용 납입을 위한 계좌번호 제공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만안구 A정형외과의 경우 지난해부터 환자들에게 진료비 납입을 위해 제공했던 계좌번호 제공을 중단하고 방문 수납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동안구 B안과에서도 그동안 수납을 위해 제공했던 계좌번호를 더 이상은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다.
A정형외과 관계자는 “대형 병원의 경우 가상계좌를 개설해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어 보이스피싱 위협을 피할 수 있지만, 소규모 병원은 원장 개인 계좌번호 등을 제공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안해 방문 납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안구 보건소 관계자는 “계속되는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일부 병원에서 진료비 수납을 위한 계좌번호 제공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제지할 현행법 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안양=한상근ㆍ양휘모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