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주식회사는 갑 회계법인과 외부감사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외부감사계약서에 ‘갑 회계법인의 계약사항 위반, 감사 및 검토 수행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을 회사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 갑 회계법인은 이 외부감사계약에 따라 수령하는 당해 연도 감사보수금액을 한도로 책임을 진다’라고 약정하였다.
약정대로라면 을 회사는 갑 회계법인의 잘못으로 아무리 많은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당해 연도에 지급하기로 한 보수금액만을 배상받게 된다. 불공정한 약정이다. 이러한 약정도 유효한 것인가.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민주국가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은 계약이나 물건거래시에 각자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자유를 가진다. 이를 ‘사적 자치의 원칙’이라고 한다. 갑 회계법인이나 을 주식회사도 외부감사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계약내용을 자유롭게 결정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를 무제한 허용한다면 강자가 약자에게 여러 가지 불이익한 조건을 강요하게 되어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법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이라 함)이다.
약관규제법은 ‘사업가가 그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하여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작성하여 거래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규제함으로써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통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생활을 균형 있게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약관규제법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고객이 계약의 거래형태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을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갑 회계법인의 위와 같은 불공정한 규정은 여러 고객들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것으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약관에 해당한다.
법원은 위 사안에 대하여 ‘외부감사인 제도의 목적과 취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서 인정하고 있는 외부감사인의 민·형사상 책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위 규정은 회계감사 업무 수행 시 위법성이 매우 큰 감사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하여 을 회사에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상당한 이유 없이 갑 회계법인이 받은 감사보수 금액의 한도로 제한하는 조항에 해당하여 약관규제법 제7조 제2호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법원은 아래의 사안에 대해서도 약관규제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즉, “갑 회사가 을 등 수분양자와 주상복합건물에 관한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최종 건축허가 시 계약면적이 변경될 수 있으며, 분양가에 포함되지 않은 지하주차장 면적의 증감에 대하여는 갑 회사와 을 수분양자 상호 간에 정산하지 않기로 한다’는 약관조항, ‘계약해제 시 반환할 금전에 대한 이자의 지급을 배제하고 있는 공장용지분양계약상’의 약관조항, ‘은행이 상계를 하는 경우, 이자나 지연손해금 등의 계산의 종기를 임의로 정할 수 있도록 한 은행여신거래기본계약상’의 약관조항’ 등이다.
이재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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