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아버지(B)와 어머니(C)는 A가 어린 아이였을 때 이혼했다. 이후 B가 홀로 A를 양육했고, 반면 C는 이혼 이후 A와 완전히 절연해 양육비를 지급하기는커녕 단 한 번 찾아온 적도 없었다. 성인이 된 A는 크게 성공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행하게도 30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런데 과거 20년간 아무런 연락도 없던 C가 갑자기 나타나 A가 남긴 재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C의 요구는 법률적으로 정당한가?
만일 A에게 자녀가 있다면 C의 요구는 전혀 이유가 없다. 자녀가 A의 제1순위 상속인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없으면 제2순위로 부모가 상속인이 되는데,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다면 그 상속지분은 각 1/2이다. 자녀를 제대로(또는 전혀) 양육하지 않은 부모도 상속권이 있는가? 그렇다. 우리 법은 양육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부모의 상속권을 인정한다. 따라서 C는 A가 남긴 재산의 절반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결론이 동시대인의 평범한 상식에 어긋나는 부조리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상속에 관해 우리 법이 혈연과 형식(혼인신고)을 극도로 중시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다.
예컨대 큰아들(D)은 오랜 기간 병든 아버지를 돌보면서 아버지의 재산이 흩어지지 않도록 노력한 반면 작은아들(E)은 수십 년 전에 가출한 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지만, E 또한 아버지의 재산에 대해 1/2의 상속권을 가진다(D에게 기여분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음).
이런 예는 어떠한가. 아내(F)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이유로 가출하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남편(G)은 (어떤 사정이 있어 F와 공식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여자와 가정을 꾸리고(사실혼) 수십 년을 살다가 거액의 재산을 남기고 사망했다. 이 경우 (G에게 자식이 없다고 가정하면) G의 전 재산은 F가 상속한다.
다만 핏줄과 형식(혼인신고)에도 불구하고 상속인 자격을 박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민법 제1004조가 정한 상속결격사유이다. 그러나 그 사유는 매우 엄격해서 예컨대 피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유언서를 위조하는 등의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위 사례의 C와 E 및 F는 이러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상속인의 자격을 인정받는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구하라 법안은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부모의 상속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만일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혈연과 형식만을 극도로 중시하던 우리 상속법에 작지만 의미 있는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이 법안은 결론에 있어 상식에 부합하지만, ‘현저히 게을리 하다’와 같은 지극히 추상적인 요건은 또 다른 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깊은 연구와 진지한 토론을 거쳐 충실한 입법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김종훈 변호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