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부동산을 이중으로 저당잡으면 배임죄가 되는가

갑은 을로부터 18억원을 빌리면서 자기 소유의 아파트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갑은 을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지 않고, 아파트를 채권최고액 12억원에 병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이 경우 갑은 배임죄로 처벌되는가.

지금까지 법원은 배임죄를 인정했다. 이 사건에서도 1, 2심에서는 배임죄를 인정해서 1심은 징역 1년6개월을, 2심은 징역 2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 6월18일 선고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하던 종전의 판례를 폐기하고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새로운 판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무죄판결의 이유는 갑이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부동산에 관한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한 채무자는 ‘채권자의 사무(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므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종전의 견해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행하는 경우처럼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 신임관계에 기초해 재산을 보호ㆍ관리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그런데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부담하는 저당권설정의무는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해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채무자의 저당권설정의무는 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자신의 의무이자 자신의 사무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위와 같은 견해에서 “채무자가 저당권설정의무를 위반해 담보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더라도 배임죄가 성립될 수 없다.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고 채권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근래 판례는 민사적 거래에 대해 가능하면 형사적 처벌을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재철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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