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에 의해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권리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예컨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5억원의 아파트와 함께 6억원의 차용금 채무를 남기셨다면 아들은 아파트와 차용금 채무를 모두 승계한다. 따라서 아버지의 채권자가 아들에게 위 채무 6억원을 이행하라고 청구하는 경우 아들은 자신의 고유재산까지 동원해 6억 원의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다.
이러한 결과를 피하려면 상속을 한정승인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한정승인은 고인이 남긴 적극 재산의 한도에서 고인의 채무를 갚겠다는 것, 포기는 고인의 권리ㆍ의무 일체를 승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법 제1019조 제1항은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한정승인이나 포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만일 고인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안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도록 한정승인이나 포기를 하지 않으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의제된다는 점에 주의를 요한다.
만일 고인이 돌아가셨을 때 채무초과 상태였다는 것을 상속인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면 어떠한가? 예컨대 아버지가 평소 누구에게 빚을지는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속인이 한정승인도 포기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후 한참 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고인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준 채권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법은 특별한정승인이라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즉 상속인이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한 채 단순승인(단순승인 의제 포함)을 한 경우, 상속인은 그 사실(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다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상속인이 뜻밖에 거액의 채무자가 되어 버리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아버지(갑)가 아내(을)와 미성년의 아들(병)을 유족으로 남겨둔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을과 병은 갑이 사망한 후 3개월이 지나도록 한정승인이나 포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병이 성년자가 된 이후 갑의 채권자가 나타나 병에게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안에서 병은 다음과 같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미성년자로 아버지의 채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성년이 돼 채권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버지의 채무를 알게 됐다. 따라서 나는 이때부터 3개월 안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법원(2020년 11월19일 선고 2019다232918 전원합의체 판결)은 최근 병의 이러한 주장을 배척하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그 비밀은 갑이 사망했을 때 아내 을이 있었고 을은 갑의 채무초과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즉 대법원은 상속인이 미성년인 경우 민법 제1019조 제3항에서 정한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 등을 판단할 때 법정대리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법정대리인을 기준으로 이미 3개월의 시한이 경과했다면 이후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이후 본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다시 한정승인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종훈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