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용량 줄였더니 ‘과대포장’…75ℓ 종량제 실효성 의문

25일 용인지역 곳곳에서 지난해 폐지된 100ℓ 종량제 봉투와 과대포장 된 75ℓ 종량제 봉투가 배출돼 있다. 장희준기자
26일 수원역 로데오거리 곳곳에 75ℓ 종량제 봉투가 과대포장 상태로 배출돼 있다. 장희준기자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위해 지자체마다 75ℓ 종량제 봉투를 도입하고 있지만, 과대포장 탓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오전 5시30분께 수원역 로데오거리. 7년째 폐기물 수거 업무를 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안재호씨(47ㆍ가명)는 마구잡이로 쌓인 종량제 봉투 더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75ℓ라고 적힌 종량제 봉투마다 박스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원래 크기보다 1.5배 이상 부푼 모습으로 과대포장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종량제 봉투의 무게는 ℓ당 최대 2.5㎏으로 제한된다. 100ℓ 봉투는 25㎏, 75ℓ는 19㎏을 넘겨선 안 된다. 그러나 안씨가 한 번에 들어올리지 못한 거대한 75ℓ 봉투의 무게를 재보니 26.1㎏으로 측정됐다. 또 폐기물 수거차량의 경로를 따라 이동한 1㎞ 구간에서만 수원시가 지난해 10월 폐지한 100ℓ 봉투 9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100ℓ 봉투를 과대포장 할 경우 30~40㎏은 족히 넘는다.

환경미화원 작업환경 개선에 나선 환경부의 방침에 따라 경기도는 지난해 5월 31개 시ㆍ군을 대상으로 협의에 착수, 종량제 봉투의 용량을 100ℓ에서 75ℓ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대부분 시ㆍ군에서 동참하기 시작했고, 이달 기준으로 여주ㆍ이천ㆍ연천을 제외한 모든 시ㆍ군에서 100ℓ 대신 75ℓ 봉투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용량 조정 이후로도 작업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지난 25일 오후 11시께 용인시 수지구의 수지농협 본점 앞에선 박스 테이프로 꽁꽁 싸매인 75ℓ 봉투가 터질 듯한 모습으로 줄지어 있었고, 수지구청 내 쓰레기 배출장에선 지난해 4월 생산을 멈췄다는 100ℓ 봉투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25일 용인지역 곳곳에서 지난해 폐지된 100ℓ 종량제 봉투와 과대포장 된 75ℓ 종량제 봉투가 배출돼 있다. 장희준기자
25일 용인지역 곳곳에서 지난해 폐지된 100ℓ 종량제 봉투와 과대포장 된 75ℓ 종량제 봉투가 배출돼 있다. 장희준기자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5~2017년 3년간 작업 중 다친 환경미화원은 1천465명으로, 이 가운데 219명(15%)은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리다가 관절을 다치거나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지난 2018년 환경부는 해당 조사를 바탕으로 오는 2022년까지 환경미화원 안전사고를 9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종량제 봉투 용량 조정도 개선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환경부는 당시 조사 이후 현재까지 환경미화원 안전사고 실태에 대해 조사를 벌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각 지자체에 용량을 줄이라고 권고만 했을뿐 별다른 사후관리를 하지 않은 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 (2018년 이후) 실태조사를 집계하지 못했고, 종량제 봉투의 용량을 줄이는 등의 대책이 잘 지켜지지 않는 문제는 최근에야 파악했다”며 “올 연말까지 지침을 만들어 각 지자체와 협의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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