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 다람쥐
최동호
밤송이가 가을바람에 우두둑 떨어지니
산등성이가 따갑다고 낙엽을 날린다
고슴도치처럼 산등성이가 움츠리니
밤송이가 미안하다 입을 벌리는데
알밤 구르는 산등성이 다람쥐 날쌔다
다람쥐보다 잽싼 시인의 눈썰미
사계절 중 가을 산만큼 많은 이야기를 지닌 산도 없지 싶다. 위 동시가 그 좋은 본보기다. 밤송이가 가을바람에 우두둑 떨어지다 보니 이에 찔린 산등성이가 따갑다고 몸을 움츠리고, 이를 본 밤송이가 미안하다고 입을 벌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다람쥐가 잽싸게도 알밤을 물고 달아난다. 가을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눈여겨볼 것은 시인의 노련한 솜씨다. 시인은 숙련공답게 다람쥐의 이 범죄행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서만 그치지 않고 다람쥐의 이 행위를 오히려 아름다운 시(詩)로 만들었다.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한순간의 영상을 잡아챌 줄 아는 눈썰미와 이를 풍부한 감성으로 감싸 안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요구된다. 이 얼마나 귀여운가? 남의 물건을 훔친 다람쥐가 밉기는커녕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모르면 몰라도 알밤을 물고 자기네 집으로 달려간 다람쥐는 식구들에게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산밤은 다람쥐들의 겨울 양식이다. 이를 위해 다람쥐들은 가을이 가기 전에 온 산을 헤집고 다닌다. 며칠 전 모처럼의 산행에서 밤을 주워왔다며 선심 쓰듯 주고 간 친구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 다람쥐들한테 허락은 받고 가져온 밤이겠지?”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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