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골목길-다시 바라본 산루리

image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사각지대가 있다. 늘 오가는 일상적 길을 우리는 반복해서 걷기 때문이다. 출퇴근하는 길, 간혹 들르는 은행과 세탁소와 이발소, 그 외에 마트나 빵집 등 소모품을 사는 시장길만 익숙한 것이다.

 

나의 생활권인 산루리의 중동, 구천동만 해도 가끔 가는 철물점이 전부였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뒷골목을 세세하게 돌아보게 됐다. 평범한 도시소시민들의 안락한 거주지가 정겹다. 집 앞의 화단과 울타리를 감싼 넝쿨들과 등대처럼 우직한 전봇대와 엉켜 있는 전선줄들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회로 같다. 수년 전 보쌈집을 하던 가영이네는 멀리 부천으로 이사 갔다. 그 자리에 벌써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지금은 그 위치마저 찾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산다는 게 이웃을 잃고 또 만나고 자라는, 그러다 마침내 잊히는 야생초 같다. 요즘 들어 문화계 원로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박서보 화백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변화해도 추락한다’는 말을 남기고 단풍 붉은 시월에 떠나셨다. 긍정의 시인 김남조 님도 아름다운 시만 남기고 앞서가셨다. 문득 선생님의 ‘편지’라는 시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