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불안, 강박 등 현대사회 속 일상을 선으로 재해석한다. 무질서한 선이 중첩되고, 또 밖으로 뻗어나가 모든 작품이 하나의 영상처럼 전환된다.
특유의 선형 기법으로 현대사회의 관계를 표현한 김봉각 작가의 개인전 ‘이탈다수’가 지난달 31일부터 아르띠앙서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선 김 작가의 자화상을 비롯해 불특정 다수의 현대인을 형상화한 작품 18점을 만날 수 있다.
‘이탈다수’는 김봉각 작가가 새롭게 만든 단어로, 현대사회의 관계를 투영해 현대인들이 서로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
김 작가는 어릴 적 우연히 고압전선 감전 사고를 목격한 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빨간색을 보면 식은땀을 흘렸고, 대상을 오래 관찰하는 습관도 생겼다. 특히 주변을 전깃줄과 같은 ‘선’으로 기억하는 표현방식이 만들어졌다.
이에 김 작가의 작품은 ‘선’이 배경을 이룬다. 선과 선 사이를 일종의 ‘틈’으로 인식하고, 실제 틈 사이로 지나쳤던 현대인들의 잔상을 표현하는 식이다.
김 작가는 “출퇴근 시간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현대인들의 표정을 관찰한다”며 “또 목적지를 가다 보면 수많은 출입문을 지나는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틈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을 중첩된 이미지로 편집한다”고 작품 과정을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선 김 작가의 대표작 ‘이탈다수 16’을 볼 수 있다. 작품은 한 인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형상화해 장면의 전환을 연속적으로 담았다.
평면에 담겨 있지만 중첩된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이 작품은 작가가 애정을 들여 키웠던 식물 등을 그려 넣어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포착했다.
이와 함께 여러 차례 선을 중첩해 내면을 관찰하고 투영한 김 작가의 자화상인 ‘이탈다수 1’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선을 그려 넣지 않았던 그의 초기작 ‘감정시선 21-1’과 최근 작품인 ‘이탈다수 12’ 등을 비교해 작품 과정의 변화를 느껴보는 재미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김 작가의 19번째 작품을 함께 만드는 참여형 공간도 마련돼 있다. 관람객들이 ‘기억에 나는 얼굴’을 주제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김 작가가 그 위에 선 등을 입혀 작품을 완성하는 형태다.
김봉각 작가는 “작품에는 가로선이 걸쳐져 있거나,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들이 있다. 이 라인들이 서로 연결되면 분할된 이미지가 영상처럼 작용한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작업한다”며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일상의 고요한 순간들, 혹은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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