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향토인들과 함께 부천을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도시가 아닌 오랫동안 정주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부천서 나고 자라 부천 발전의 초석이 되겠다는 이흥기 한의학 박사가 부천향토회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피력한 바람이다. 부천향토회는 부천을 사랑하고 발전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던 향토 리더들이 모인 단체로 지난 9월9일 부천시 원미동 111-5에 사무실을 내고 공식 출범했다. 처음 부천 관내 오랜 역사를 가진 9개 초등학교(부천 동·서·남·북·소사·약대·오정·대장·시온) 총동문회 회장단이 주축으로 수십 차례 부천향토회 출범을 놓고 간담회를 했으며 오랜 진통 끝에 2년9개월 만에 현판 제막식을 하게 됐다. 부천향토회는 부천지역 정서를 공유하는 회원들의 친목과 향토인들의 향토정신을 함양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향토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결성됐다. 이 회장을 비롯해 향토인들은 함께함으로써 서로의 삶의 질을 높이고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을 여럿이 모여 품앗이하자는 취지로 모였다. 또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 세대와 교류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부천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도 가졌다. 한의학 박사이며 대웅한의원 원장인 이 회장은 역곡 안동네에서 태어나 부천동초등학교, 부천중학교에 다녔으며 우리 동네 한방주치의로 동네 어르신들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부천에 몸담고 죽는 날까지 부천에서 살면서 부천이 다른 도시보다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하는 데 밀알이 되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이 회장은 “부천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들이 먼저 앞장서 부천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부천향토회가 출범하게 됐다”며 “부천이 부천시민들의 자랑스러운 고향이 되고 부천의 교육, 주거환경, 치안, 문화예술, 역사 등 삶에 대한 의견을 모아 시민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시민들이 부천 정조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부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부천에 대한 애향심을 가지고 지역 현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부천시 관내에는 개교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천 남초등학교(1922년), 부천 북초등학교(1924년)를 비롯해 초등학교(64개), 중학교(33개), 고등학교(28개), 대학교(4개)가 있다. 관내 학교를 졸업한 동문이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향후 졸업생·재학생들을 주축으로 장학사업 등 향토에 대한 애향심 고취와 정체성·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향토회에서 다각적인 사업 추진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향후 사업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관내 여러 단체와 유기적인 협조를 이뤄 장학사업, 환경보호, 공익사업 등 향토 부천의 역사와 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한 발굴·홍보 등을 함으로써 부천지역 발전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회장은 일상생활 관련 교육과 치안, 주거, 환경, 문화, 교통 등에 시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야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정치와 행정은 그 중심에 시민이 있어야 하며 부천시민의 편의와 복지를 최우선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회장은 “시민이 목소리를 높이면 정치인과 공무원은 시민의 목소리에 경청할 수밖에 없으며 시민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마련”이라며 “시민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단순히 정치인들의 근시안적인 성과를 위한 공약보다 시민들이 정말 필요한 것들을 위해 예산을 편성, 집행하도록 의견을 피력해야 부천의 질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특히 향토인들이 부천 역사와 문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향토문화 발굴과 복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이를 통해 부천시민이 정조 의식을 고취하는 데 있어 부천향토회가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한의사로서 생명을 다루는 소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돈이나 개인적 이득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왔다”며 “앞으로 먼 미래 우리 자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부천에서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며 살기 좋은 미래 부천을 위해 이제는 부천 출신으로 부천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향토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부천을 떠난 향토인들이 다시 부천을 찾고 부천에서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남은 인생을 고향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고향 부천을 만들기 위해 부천향토회와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조대왕은 충효·애민사상을 기본적으로 갖춘 성군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의 발전과 부흥을 이끈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 탄신 271주기를 기념하는 제향(祭享)이 지난 28일 오전 11시 수원특례시 팔달구 행궁동 화령전(華寧殿)에서 성황리에 거행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하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수원시분원 화령전봉향회가 주관하는 이번 탄신제향에는 각 기관·단체 관계자들을 비롯해 시민, 관광객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탄신제향은 전향례(傳香禮)와 제관취위(祭官就位)를 시작으로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 향을 세 번 집어서 불을 사르는 삼상향(三上香)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축문 낭독과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등으로 마무리됐다. 초헌관은 이기택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전 회장, 아헌관은 김유학 청풍김씨 대종회 회장, 종헌관은 엄익수 정조대왕 동상 이전 범시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는 1752년 9월22일(음력) 탄생했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28일이다. 조선의 역대 국왕 가운데 어진을 모신 전각에서 탄신제향을 지낸 국왕은 정조가 유일하다. 역사적으로 수원유수가 헌관이 돼 정조 탄신일과 납일(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12월 초) 화령전에서 제향을 올렸다.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모신 영전(靈殿·죽은 이의 혼령을 임시로 모신 사당)으로 1801년 화성행궁 인근에 건립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08년 9월20일 정조의 어진이 덕수궁 선원전으로 옮겨지면서 화령전은 존재 이유를 상실했고 기존에 진행되던 각종 제향도 중지됐다. 이경용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수원시분원 화령전봉향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 먼 길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덕분에 정조대왕 탄신 271주기 제향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익수 위원장은 “현재 수원화성은 건축적인 의미에서는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고 있지만 정신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대함을 접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특히 수원이 과거와 달리 ‘효원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많이 쇠퇴되고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조대왕 탄신제향은 정조의 역사적 의미를 우리가 한 번 재평가해보고, 나아가 수원의 미래 문화적인 가치 창출과 교육의 정체성 정립 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시간”이라며 “앞으로는 보다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갖게끔 홍보해 수원이 정말 효원의 도시로 재탄생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병노 서울청 생활안전부장(69)이 경기남부경찰청 수원남부경찰서장으로 부임한다. 조 신임 서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사법학과)와 연세대 법무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2004년 경정으로 특별 채용된 후 경찰청 미래발전담당관을 시작으로 서울청 국회경비대장, 경찰청 재정담당관, 전북청 자치경찰부장, 인천청 인천국제공항경찰단장 등을 역임했다. 조 신임 서장은 평소 활발하게 소통하는 등 후배 직원들의 신임이 두텁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익수 대구경찰청 수사부장(58)이 내달 1일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부장으로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다. 경남 진주 출신인 최 신임 부장은 부산 브니엘고등학교와 경찰대학교 법학과(4기)를 졸업했다. 최 신임 부장은 지난 1988년 공직에 입문한 뒤 울산청 홍보담당관, 서울청 5기동대장, 서울청 형사과장, 서울청 광진경찰서장, 부산청 수사부장, 대구청 수사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각 지역 경찰청 수사부장을 연속으로 지내면서 대표적인 수사통 경찰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생활안전부장으로 김주원 인천경찰청 인천국제공항경찰단장(58)이 내달 1일 취임한다. 김 신임 부장은 전북 만경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를 거쳤다. 간부후보생 40기로 지난 1992년 공직에 입문한 뒤 전북청 고창경찰서장·정읍경찰서장, 서울청 혜화경찰서장, 전북청 자치경찰부장 등을 역임했다. 김 신임 부장은 예리한 판단력과 탁월한 추진력으로 적극적인 업무를 추진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신임 이사장에 김학민 전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이 선임됐다. 김 신임 이사장은 지난 27일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임명장을 받고 정식 취임했다. 임기는 2025년 10월26일까지 2년이다. 출판 문화계에 몸담아 온 김 이사장은 한길사 편집장, 학민사 대표로 500여권의 서적을 기획, 편집, 출간했다. 이후 예원예술대 문화예술대학원장,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김 이사장은 “경기아트센터 소속 예술단이 합동하는 공연 레퍼토리 개발과 다양한 공연 방식의 창조, 예술 소외 지역을 위한 공연 추진, 예술단을 브랜드화할 수 있는 솔리스트 인재교육·양성과 공연활동 권장 등을 위해 방향성을 함께 논의하고 힘쓰겠다”고 말했다.
“맨발걷기의 생활화를 통해 모두가 질병 고통이 없는 삶을 살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맨발걷기를 통해 건강을 되찾은 자신의 경험으로 국민들에게,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71)의 이야기다. 박 회장은 지난 2001년 폴란드에서 은행장을 하던 중 악화된 건강에 의사로부터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간암 말기에 살 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환자가 청계산을 맨발로 걷고 치유됐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맨발걷기에 도전한 그는 신발 신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함을 느끼면서 숙면을 할 수 있었고 이후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 정도를 맨발로 걷는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맨발걷기의 즐거움과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06년 ‘맨발로 걷는 즐거움’이라는 최초의 맨발걷기 책을 썼다. 이후 지난 2018년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로 개편하면서 현재 전국에 40여개 지부, 지회가 활동하는 본부의 회장으로 전 국민의 맨발걷기운동을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9월 성남 위례공원 맨발황톳길 개장식에 참석해 직접 체험하며 성남의 맨발황톳길이 다른 곳과 비교해봐도 우수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인천의 청량산, 대전의 계족산, 김해 분성산, 순천 오천그린광장 등 전국의 다양한 맨발걷기 장소를 추천했다. 박 회장은 “신발을 신고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떨치고 촉촉한 땅을 맨발로 밟아 보길 바란다”며 “질병의 질곡으로부터, 그리고 노화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강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 당장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맨발로 걸으면 병원 치료의 효과를 도울 수 있는 보약과 같은 효과를 누리는 맨발걷기의 생활화를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전 국민이 맨발로 걸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 대한민국이 전 세계 최고의 건강 국가로 자리 잡도록 하고 싶다”며 “맨발걷기가 K-헬스의 발원지가 되고 세상에 알려져 전 인류가 질병의 고통이 없는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예인 경기도일자리재단 제3대 노동이사가 26일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지난 2017년 2월 경기도일자리재단(이하 재단)에 입사한 이 신임 노동이사는 기획조정팀 과장을 거쳐 2019년 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공익적일자리팀 과장을 역임했다. 이어 일자리지원팀 과장과 차장을 지낸 뒤 현재는 전산지원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앞서 재단은 지난달 제3대 노동이사 후보자 사내 공모를 거쳐 임직원 투표를 시행한 결과 그가 선출됐으며 경기도지사의 최종 임명을 받았다. 임기는 2025년 10월18일까지다. 재단 내 이사회 비상임이사인 노동이사는 예산편성, 조직개편, 정관 및 규정 개정 등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의견을 대변하며 노사 간 상생과 협력을 이끌겠다”며 “노동자의 목소리로 더 나은 재단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저를 딸이라 생각하며 저에게 의지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웃음꽃이 핍니다.” 강원도 용수골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신승자 안나의집 원장(61)은 어릴 적부터 자식들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아가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남양주 덕소로 이사오고 난 뒤 그의 어머니는 늘 집을 비웠다. 신 원장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는 매일 어디를 가시는 건가요?” 아빠는 답했다. “엄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지금도 도움을 주고 있어”라고. 어머니는 강냉이, 미역 등 보따리장사를 통해 당일 번 돈을 장애인, 산모, 홀몸노인들을 위해 사용했다. 매일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90세가 넘은 할머니와 손자손녀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그 집으로 들어가 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소문이 퍼져 홀몸노인들은 신 원장의 어머니를 찾아 함께 살아 달라고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손이 모자랐던 어머니는 항상 장녀인 신 원장을 찾아 함께 봉사하길 원했다. 그렇게 신 원장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가장 큰 ‘용돈’을 받았다. 신 원장은 성인이 된 첫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원, 식당, 양로원 등에서 일했다. 그러나 항상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함께 어르신들을 모셨다. 그는 결국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와 함께 어르신들을 보살폈다. 이때만 해도 신 원장은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아 머릿 속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도와 홀몸노인을 돌본 신 원장은 능수능란하게 어르신들을 보살폈다. 어르신들을 보살피면서 그는 서서히 어머니를 이해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손을 내미니 따뜻한 정이 돌아온 것을 말이다. 이를 계기로 신 원장은 40년 넘게 지역에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다. 신 원장은 남양주시 와부읍에 위치한 안나의집을 지난 1995년에 설립, 현재 4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24시간 함께 붙어 있다. 신 원장의 하루 일과는 간단하다. 청소를 시작으로 어르신들 샤워시키기, 아침밥 준비, 청소, 점심밥 준비, 설거지, 저녁밥 준비, 샤워, 잠 등 순으로 하루를 보낸다. 쉴 때도 맘 편히 쉬지도 못한다.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어르신들이 화장실에 들어간 뒤 10분 이상 나오지 않으면 즉시 달려가 어르신들을 확인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 원장에게 도움을 받은 어르신은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신 원장은 “어르신들이 저를 딸이라 생각하고 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며 “7년 전 신장 이식이라는 대수술을 했는데, 병실에 있을 때도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몸이 많이 호전돼 어르신들을 더욱 열심히 보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시민이 문화예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겠다.” 구리시 오페라뮤 단장을 맡고 있는 소프라노 조연경씨를 만나 오페라뮤 기획 공연 등을 들어봤다. 조 단장은 선화예술고와 중앙대 음대 성악과 졸업, 한세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 졸업 후 성악가로 활동을 해오면서 구리시립합창단원 등 현재 오페라뮤 단장을 맞고 있다. 오페라뮤는 9명의 단원들로 구성돼 있다. 조 단장은 “오는 11월1일 열리는 공연은 구리시민들이 오페라 명곡들과 클래식 등으로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밤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구리아트홀 유채꽃소극장에서 회화적이고 감각적인 뮤직비디오 형식의 클래식 음악 공연이 무대에 올려져 구리시민을 위한 오페라가 펼쳐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 소프라노 김민주 정장미 강다혜, 테너 정경식, 크로스오버싱어 송영한, 베이스 이형준, 바리톤 조현규 등과 함께 출연한다. 조 단장은 “출연자들이 클래식과 클래시컬한 음악에 회화적이고 입체적인 영상미를 더해 감동의 폭을 한층 높이고자 노력했다”며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오페라뮤 공연은 온라인 공연과 또 다른 친근하고 품격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공연에도 단원들과 함께 다양한 오페라 명곡과 클래식 곡들로 준비해 구리시민이 문화예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와 클래식 및 오페라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장의 삶의 애환이 가득 묻어 나는 모습에서 오페라를 넘어 성악가로서 큰 그릇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한편 조 단장은 구리시 오페라뮤 단원과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