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과정을 연구하며 고교학점제 관련 도서를 출판하는 교육 전문가 김연화씨가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 아이들 가까이에 책방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지구과학 교사, 책방 주인 되다 ‘지구책방’ 대표 김연화씨는 18년간 의정부에서 교직 생활을 한 지구과학 교사였다. 서점과 ‘공부재미연구소’ 출판사를 병행해 운영하며 학교 수업을 연구하고 출판하는 일을 주로 한다. “의정부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퇴직 후 당초 출판 사업만 할 계획이었는데 동네마다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책방은 많을수록 좋다는 믿음에 서점도 시작했어요. 저희 부부 둘 다 지구과학 교사이기 때문에 ‘지구책방 별별상점’으로 상호를 붙였는데 주로 ‘지구책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구책방은 2023년 한 해 동안 그림책 창작교실을 진행했다. 평소 그림책에 관심이 많던 김씨가 그림책 작가과정을 수강하던 중 알게 된 강사를 섭외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강의를 열었다. “초·중·고급 및 심화반까지 저도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책에 관한 안목이 생겼고, 그림책 큐레이션은 저희 지구책방의 자랑이 됐습니다.” 지구과학 교사 출신이자 교육학 박사이기도 한 김씨는 출판사와 서점 운영 외에도 교육과정 연구 및 컨설팅, 상담 등을 주로 하며 고교학점제 관련 도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평소 교육과정과 학생들의 배움에 관해 연구하다 보니 관련 도서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구책방에서도 학습과 성장에 관한 책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요.” 청소년의 성장을 응원하는 책방 지구책방은 의정부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지역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의정부예술의전당 야외광장에서 열린 소규모 창작자들을 위한 ‘아르츠 마켓’에 참여했고 김씨는 의정부 정책페스타에서 독립책방의 중요성을 알리는 연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의정부문화재단의 ‘100만원 실험실’에 선정돼 ‘청소년굿즈디자이너 등판실험’을 지난달부터 진행하고 있다. “굿즈 제작에 관심 있는 관내 청소년을 모집해 디자인 기회를 부여할 생각이에요. 학교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어려도 어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게 됐습니다. 독립적인 주체로 학생들을 대접할수록 더 많이 성장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에 책방에서 수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활용해 학생들을 응원할 계획입니다.” 한편 김씨는 공교육에 오래 몸담은 본인의 경험을 발판 삼아 실력 있는 교사들의 훌륭한 수업을 아카이빙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양질의 수업 내용이 선생님들의 퇴직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 참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수업 자료를 축적할 수 있다면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책방에서 공부재미연구소 집필진으로 참여할 선생님들과 연구모임을 갖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공부재미연구소와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성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분류법이 있다.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성을 쌓는 방식, 즉 축성 방식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은 성의 안쪽과 바깥쪽 모두 돌로 성을 쌓았다. 성에 올라 안팎을 보면 양쪽 모두 돌로 쌓은 성이 보인다. 만리장성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을 ‘협축(夾築)’이라 칭한다. 다른 방식은 수원화성의 경우로 밖에는 돌로 성벽을 쌓았고 안으로는 자연 그대로 산에 의지하거나 인공으로 산처럼 흙을 쌓아 버텨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내탁(內托)’이라 한다. 협축과 내탁은 성을 구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성의 분류 방법 중 축성 방식의 종류인 협축과 내탁은 꼭 알아둬야 한다. 의궤에 “우리나라의 많은 성터는 산등성이와 산기슭을 타고 쌓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자연지형을 이용해 쌓아 비용이 들지 않고서도 자연히 성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굳이 안팎으로 쌓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성 쌓는 제도가 다른 것은 지세에 따라서 이용하는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며 화성은 내탁임을 밝히고 있다. 정조도 ‘천작내탁 불용협축’이라고 했다. 수원화성은 하늘이 만들어준 내탁이고, 협축은 허용하지 않는다란 의미다. 이렇듯 수원화성은 모두 내탁 형식의 성이다. 과연 화성은 모두 내탁 형식의 성일까. 산상동성과 산상서성은 산상성으로 성의 안쪽이 모두 산이므로 쉽게 내탁 방식임을 알 수 있다. 평지성인 평지북성도 안쪽에 흙을 쌓아 붙여 놓았으므로 내탁 방식이다. 기록으로도, 현재 상태로도 화성은 모두 내탁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런데 협축 형식이라고 의심이 드는 곳도 있다. 하나는 용도(甬道)이고 다른 하나는 남암문이다. 의심하는 이유는 “용도를 보면 협축인 만리장성에 올랐을 때 보는 모습과 같다. 가운데에 길이 있고, 양쪽이 성이다. 따라서 안팎을 모두 돌로 쌓은 협축”이라는 의견이다. 그리고 남암문에 대해서는 “남암문에 대한 의궤 설명에 내외 협축이란 기록이 있다. 따라서 남암문은 협축”이라는 의견이다. 용도와 남암문은 협축일까, 내탁일까. 먼저 용도에 대해 살펴보자. 결론을 먼저 말하면 용도는 성이 아니므로 협축이냐 내탁이냐를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용도가 성이 아니라는 근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화성의 산상성은 높이가 16척이어야 하는데 용도는 여장만 있다. 의궤에도 “산 위의 3면에 돌로 성가퀴를 쌓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여장만 쌓았음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용도는 성이 아니라는 증거다. 용도 아래에 있는 두 줄 정도의 돌은 여장의 기초이지 성이 아니다. 둘째, 성 길이, 혹은 여장 길이에 대한 의궤 기록을 보면 성의 길이 얼마, 용도 길이 얼마 식으로 용도를 성과 분리해 기록한다. 용도를 성과 같이 취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셋째, 용도라는 명칭 자체가 길임을 말해준다. ‘솟을 용’, ‘길 도’다. ‘주변보다 약간 솟아오르게 만든 길’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명칭, 의궤 내용, 의궤 기록, 실제 구조 등이 용도는 성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용도를 협축이냐 내탁이냐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 다음으로 남암문에 대해 살펴보자. 화성에 암문은 다섯 곳이 있다. 동암문, 북암문, 서암문, 서남암문, 남암문이다. 모두 곡성에 해당한다. 이 중 내외 협축이란 기록이 있는 암문은 남암문이다. 그런데 남암문은 복원되지 않은 시설물이라 실물을 볼 수 없다. 의궤에 기록된 남암문 그림을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다. 암문은 평시에는 하층 백성의 통로이고 전시에는 숨겨진 비상통로다. 통로이므로 암문은 지면 바닥에서부터 문을 설치한다. 성 안팎을 사람, 가축, 손수레, 물품 등이 드나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로라서 성안 쪽에 내탁, 즉 흙더미를 쌓을 수 없었다. 흙더미를 쌓으면 그 길이만큼 터널을 만들어 줘야 한다. 통로이기 때문이다. 터널은 당시로선 공사도 힘들고, 만들어도 어두워 통로로 사용하기에 불편하다. 이런 이유로 암문의 성안 쪽에는 내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히 암문 안쪽은 돌로 성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의궤 남암문도를 봐도 암문의 성안 쪽에 내탁이 없음은 명확하다. 암문 안팎을 돌로 쌓았으니 남암문은 협축이라는 의견이 맞는 셈이다. 문이란 특성 때문에 흙을 쌓을 수 없었다. 애초부터 협축 형식의 성을 쌓으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도를 떠나 협축은 협축이다. 오늘 남암문을 따져보며 화성에도 협축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화성은 모두 내탁 형식으로 쌓았다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깨진 것이다. 문은 문이지 성이 아니지 않으냐는 이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암문은 어디까지나 곡성이다. 화성의 성은 원성과 곡성으로 구성되고 그 합계가 4천600보다. 암문은 성이다. 남암문 외에 나머지 암문도 협축일까. 당연히 나머지 암문 모두가 협축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 네 곳, 수문 두 곳도 협축이다. 협축에 해당하는 성의 합계는 문 네 곳이 82보 4척, 암문 다섯 곳이 7보5척, 수문 두 곳이 50보로 합계는 140보3척이다. 화성 전체 길이 4천600보의 3%에 해당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화성은 전체가 내탁 형식이 아니다’, ‘화성에서 문, 암문, 수문은 협축 형식이다’, ‘화성에서 협축 형식의 성 길이는 화성 전체의 3%다’. 화성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내탁으로 계획해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대폭 절약했다. ‘협축 찾기’와 내탁을 통해 정조의 축성 의도를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부천시민회관이 보수를 마친 후 지난 3월부터 운영을 재개했다. 재개관을 기념해 다양한 기획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데 지난달 10일부터 4회에 걸쳐 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을 호스트로 세운 뮤직바캉스 ‘한여름밤의 재즈’ 공연을 펼쳤다. 10일 첫 무대는 ‘타임 트래블 투 부에노스아이레스(Time Travel to Buenos Aires)’를 주제로 조윤성과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 작품을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가 협연했다. 아르헨티나의 정체성을 담은 예술, 탱고 “탱고는 하나의 사상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심오한 것, 즉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세기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생전 강연을 묶어 낸 책 ‘탱고’에서 아르헨티나 정신을 형성한 탱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악 장르이자 춤의 형태인 탱고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19세기 말 이주 노동자들과 하층민들이 거주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에서 이민자들의 춤으로 시작됐다가 상류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추측이 가장 흔하다. 이민자들이 품고 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낯선 곳에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열정과 슬픔, 사랑과 이별을 담아낸 춤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정체성이 됐고 이때까지만 해도 탱고 음악은 춤을 보조하는 요소에 불과했다. 이런 탱고 음악에 재즈, 클래식, 팝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해 감상하는 음악으로 발전시키고 누에보 탱고(Nueovo Tango)라는 음악관을 정립한 것이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다. 피아졸라가 내놓은 탱고 음악이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탱고 음악의 1세대 뮤지션 카를로스 가르델이 유지하고 있던, 심금을 울리는 가사 전달이 주가 된 가창 형태의 탱고에서 감상을 위한 연주 위주의 탱고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대중은 탱고의 근간과 아르헨티나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받아들였다. 무력이 오갈 정도로 치열하고 외로웠던 피아졸라는 더 개혁적인 악기 사용과 다양한 편성으로 탱고 음악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누에보 탱고 시대가 열린다. shout out to 피아졸라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남녀노소 즐기는 장르가 된 탱고에 대해 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은 “헤테로지니어스(Heterogeneous), 즉 다양성을 품은 이질적인 면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조윤성은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국내의 주목받은 뮤지션들과 협업하는 일에도 적극적인 편이다. 이번 뮤직바캉스 중 협연하는 음악가들의 면모도 그러했다. 반도네온 고상지, 바이올린 윤종수·대니 구, 피아노 다니엘 린덴만, 소프라노 박혜상 등 장르와 활동 영역, 연주 경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앙상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고상지는 ‘반도네온의 여왕’이라는 조윤성의 소개에 걸맞게 앙상블에 스며들면서도 음악을 주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피아노, 바이올린, 반도네온이라는 소규모 편성이 갖는 음향의 공허함이 있게 마련인데 선율로, 리듬으로, 공기로 완벽하게 채웠다. 토크와 연주가 번갈아 진행되던 중 조윤성이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에게 농담 섞인 질문을 했다.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소 난해한 질문에 우물쭈물 마이크를 넘기는데 바이올린에 연결된 마이크 선과 핸드마이크 줄이 엉켰다. 두 연주자가 머리를 맞대고 줄을 푸는 중 윤종수가 말한다. “재즈란 이렇게 서로 엉키는 것 아닐까요?"
지역 연극계가 코로나19 유행·OTT 확대 등으로 타격(본보 20·24·30일자 1면 등 보도)을 입으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경기일보에 제공한 ‘최근 5개년 연극제 개최 및 문화체육관광부 연극제 지원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전국 단위와 서울 단위 행사를 제외하고는 전 지역 연극제에 대한 국비 지원이 전무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국적으로 지원한 연극제 수는 2019년 33개에서 2020년 18개로 급감했다. 코로나19 등의 영향이 더해진 걸로 보인다. 이후 2021년 28개로 소폭 늘었다가 2022년 20개, 2023년 15개로 거듭 감소하며 올해(8월 기준) 12개까지 떨어졌다. 이마저도 상당수는 서울 지역에서 개최되는 연극제다. 서울권에 한해보면 2019년 14개, 2020년 12개, 2021년 16개, 2022년 15개, 2023년 10개, 올해 10개로 각각 집중됐다. 올해만 따로 보면 전체 연극제의 83%가 서울에만 편중된 셈이다. 경기도에선 ▲2019년 3개(전체의 9.0%) ▲2020년 1개(5.5%) ▲2021년 2개(7.1%) ▲2022년 1개(5%) ▲2023년 1개(6.6%) 연극제가 그동안 예산을 지원 받아왔다. 올해는 국비 지원이 아예 끊긴 상태다. 마찬가지로 조만간(9월3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제21회 공주 고마나루국제연극제’ 또한 예산이 전액 삭감된 상태다. 앞서 2019년만 해도 45억2천4백만원에 달했던 연극제 관련 지원 국비는 2020년 당시 27억3천5백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듬해(2021년)엔 29억7천3백만원으로 일부 증액됐지만 2022년 27억6천만원, 2023년 30억5천4백만원, 올해 29억8천억으로 오르내림을 반복했다. 코로나19 전후만 비교하면 절반가량의 하락세다. 이런 이유에서 박 의원은 지난 26일 열린 국회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지역 연극을 위한 예산 지원 확대 등을 주문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는 문화로 지방 시대를 열겠다고 하고, 유인촌 문체부 장관 또한 결산 제안 설명에서 ‘문화 균형 발전과 문화 향유 확대 기반으로 예산을 집행했다’고 말했는데, 해당 자료를 보면 자랑스럽게 말할 수준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은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역 내 문화향유 기반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 연극제와 같은 문화예술행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상황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군포시 그림책꿈마루가 개관 1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전 ‘그림책, 문학과 예술의 하모니-안데르센 인어공주전(展)’을 개최한다. 9월 3일부터 11월 24일까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대표작인 인어공주를 그림책, 조형, 미디어아트 예술로 표현한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의 조각 작가 세키구치 코타로의 ‘Big Mermaid’ 조형 작품과 인어공주를 소재로 한 국내외 다양한 도서를 감상하고, 인어공주 이야기를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Big Mermaid’ 작품의 제작 기법을 활용한 작가 워크숍 ‘페이퍼 판타지’를 9월 7일과 8일 이틀간 진행하며 그림책꿈마루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워크숍은 전시 기간 단체관람 프로그램과 금요 워크숍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워크숍 참여 시 특별전시는 무료 관람 가능하다. 이 밖에도 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인어공주에게 전하는 메시지 작성하기, 안데르센 동화 종이 오리기 등이 운영되며 9월 21일부터 11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책 작가 강연인 ‘그림책 하모니’를 개최한다. 문지나 그림책 작가를 비롯해 윤강미, 임정진, 김우영, 정승각, 박지선, 김이슬, 강인숙, 전승배 작가 등이 참여한다. 그림책꿈마루 안병훈 관장은 “개관 1주년을 맞아 누구나 함께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특별전시를 준비했다”며 “그림책꿈마루가 그림책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그림책 문화 체험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특별전시는 그림책꿈마루 로비에서 티켓 구매 후 관람할 수 있으며 전시 및 연계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그림책꿈나무 누리집에서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할 수 있다.
#6장: 기라성 같은 연극인들이 울었다. 한국 공연예술의 산실이라 여겨지던 ‘(옛)학전’이 재정난 등으로 운영 33년 만에 폐관(3월)한 데다가, 학전의 대표였던 가수 김민기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7월)이다. 연극인들은 과거의 일부분이 지워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론 극단 하나가 문 닫은 거지만, 실질적으론 그 극단을 통해 새롭게 생겨날 수 있었던 연극인과 연극문화가 실종된 셈이다. 그만큼 연극은 어제·오늘·내일의 수많은 문화 요소를 담고 있다. 지역 연극계는 진작 ‘학전 신세’였다. 하지만 큰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연극이 끝나고 홀로 객석에 앉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지키는 지역 연극인들을 비추는 이유는, 그들 안에 지역 정체성이 살아있어서다. ■ part1. 서울에서 대구·부산으로 전파…1980년대 부흥 29일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재 연극 문화는 1902년 첫 발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뒤이어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기악, 신라의 처용무 등이 '고대 연극' 기원이라 볼 수 있지만, 지금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연극 틀은 일제강점기에 신문화가 도입되면서 잡히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부분이 있다 보니 비교적 도심이던 ‘서울’ 중심으로 연극 문화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연극의 르네상스라 여겨진 1950년, 서울 국립극장 개관공연(4월29일) <원술랑>에만 6만여 명의 관객이 모였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립극장은 대구로 이전했고, 전속극단은 부산으로 흩어졌다. 어쩔 수 없던 일이었지만 ‘지역 극단’ 입장에선 초석을 쌓게 된 계기다. 이후 1960년 ‘실험극장’ 창설, 1973년 ‘연극인회관’ 신설 등 알음알음 우리나라만의 연극이 꽃을 피워나갔다. 그리고 1981년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소극장 개설 및 극단 조직이 활성화·자유화 됐다. 이때 메인이 된 지역이 서울의 동숭동과 신촌 일대, 지금의 ‘대학로’다. 여기에서 뻗어나온 가지는 1983년 전국지방연극제로 연결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방 연극 성장 시대’가 열렸다. 더불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연극의 국제 교류가 이뤄지면서부터는 괄목할 만한 연극계 성장이 이뤄졌다. ■ part2. "지역 연극 소멸은 곧 지역 문화의 말살" ㈔경기도생활문화예술총연합회 대표이사이자 극단 ‘성’의 대표인 김태섭(61)은 지역 연극계의 역사를 몸소 겪어왔다. 1983년 4월 수원에서 창단하고 올해로 만 41년째 운영 중인 ‘성’을 통해서다. 그는 “지역 소극장이 없어진다는 건 지역 문화 자체가 말살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화면이 아닌 현장에서 관객과의 호흡을 생생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대상이 지역민이라는 점에서 지역 연극이 가치 있다는 설명이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로는 1998년 팔달구 방화수류정 인근에서 진행한 공연을 꼽았다. 김 대표는 “방화수류정 수변 위에 무대와 객석을 설치했어요. 저희는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관객들은 연못에 발을 담근 채 옹기종기 공연을 봤죠. 지역 연극만이 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 아니겠어요?”라며 “저는 연극이 삶을 투영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극단의 경우 나혜석·정조대왕·홍사영 등 지역의 인물과 역사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데, 지역 연극 안에 지역 삶이 투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성'이 지역 안에서 100년을 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지역 극단 미래는 캄캄하다고도 본다. 나날이 관객들 눈높이는 높아지는데 지역 예술단체들은 '고가의 작품 시장'을 쫓아갈 여력이 안 돼서다. 김 대표는 “문학이나 미술처럼 개인적인 예술 작업은 ‘나의 노력’에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만 연극은 ‘공동 작업’이라 좀 달라요. 예전엔 연극인들이 본인의 욕심과 사명감으로 지하에서 라면만 끓여 먹고 생활하면서 소극장을 지켜왔는데 이젠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이 적죠. 협업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작품이 나오는데 이제 그런 환경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지역 연극인들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게 지금의 제가 갖고 있는 책임감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정부가 나서서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는 한 앞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 part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연극인들은 무너지는 지역 연극, 벼랑 끝에서 힘겹게 버티는 연극인. 지역 문화를 계승하고 지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지역 연극의 건재를 응원한다. 경기도 외 다른 지역 극단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풀어낸 지역 문화 작품을 소개한다. 최근 폐막한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의 본선 경연 진출작 중 하나인 <프로젝트 이어도-두 개의 섬>은 제주도만의 역사와 색깔이 짙게 담긴 이야기를 다뤘다. 그동안 제주도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온 예술공간 오이가 제주도의 과거와 미래를 소재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안에는 독립군 출신 도하와 미래를 보는 어도가 만나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히 제주의 구전민요 ‘이어도사나’를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연결짓는 점에서 지역 문화를 엿보였다. 또 경남 통영의 극단 벅수골이 연극제에 출품한 <하얀 파도>는 통영 바다 냄새를 물씬 풍겼다. 해안가에 있는 가상 공간인 ‘담류마을’이 배경이다. 오염으로 인해 조업이 금지된 담류마을에서 주민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바다에서 쓰레기를 건지던 사람들은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 당황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통영의 색으로 풀어냈다. 연출을 맡은 장창석 대표는 “우리는 <하얀 파도>를 통해 해양오염의 실태와 삶의 갈등 속에서 바다를 살리고자 하는 은근과 끈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서울 연극의 관점에서 지역 연극은 비주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수의 구석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 연극인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스스로 특정 시대의 중요한 기록을 남기면서 세대 비전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1일부터 8일까지 용인에서 열리는 ‘제3회 대한민국 시민연극제 용인’에서도 전국 시·도 시민연극단체의 목소리가 더해질 예정이다. 김태섭 극단 성 대표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이 기사는 연극에만 포커스를 맞춘 기획물 같지만 사실 무용에도, 음악에도 해당되는 전체 예술의 이야기입니다.” <무너지는 지역 연극> 인터랙티브 기사보기 / http://kyeonggimedia.netlify.app ※ 지금까지 보도된 ‘무너지는 지역 연극’ 기사들은 경기일보 홈페이지에서 영상 및 인터랙티브 기사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희미한 호롱불로 지내던 어느 날 전기가 들어왔다. 30촉 백열등! 도시의 상징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아직 내 작업실 한편에 남아 있다는 것! 불을 켜고 끄고 할 때의 아슬아슬함을 즐기며 아낀다. 불을 밝혀 주는 촉이 나갔는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중한 내 유물 수준의 그것 30촉 백열등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인터뷰 줌-in 연출가 겸 극단 예성 대표 박재운 “한평생 무대 짓고 연극… 꿈이자 현실” #5장: 깔끔하고 세련된 호텔에도, 바퀴벌레와 곰팡이가 덮인 초가삼간에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잘난 척 우쭐대며 뽐내는 이에게도, 손가락질 당하며 폄하 당하는 이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래서 그 삶과 인생이 도대체 뭔데”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몰라? 몰라도 돼, 그게 연극이야”란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호탕하게 웃던 극단 예성의 연출가 겸 대표인 박재운(61·한국연극협회 파주지부장)이 선배에게 건네들은 연극 지론이다. 1982년 서울 신촌에서 연극에 첫발을 디딘 그는 대학로를 거쳐 2006년 무렵 경기도에 왔다. 세트를 짓고, 각본을 쓰고, 배우를 가르치고, 극장을 운영하는 등의 모든 연극 행위를 경험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던 그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건 작가·연출가·배우의 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역 연극계에서 그게 쉬운가. 출세하러 한양길에 오르는 선비처럼, 경기도 연극인들도 서울을 향하는 마당에. “히딩크 감독 덕에 대한민국 축구가 달라진 것처럼 리더가 누구인지에 따라 업계는 달라집니다. 10년, 20년에 한 번씩 어디선가 그런 리더들이 툭툭 튀어나와요. 그런데 세상을 깜짝 놀래키는 리더가 탄생해도 우리나라 구조상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그래왔고요. 성공하러 간다는데 ‘가지 마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래, 가서 한판 잘 놀아봐라’ 하죠. 지역 연극계도 같은 사정인 겁니다. 좋은 리더가 나와도 서울로 가니까 다른 연극인들도 함께 서울을 바라보게 되는 거죠.” 멈칫, 펜을 쥐어 든 그는 종이에 서울과 경기도를 그렸다. “어쩌면 대학로의 치열한 경쟁을 피해 지역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맞수가 있어야 상생할 수 있는데 라이벌을 피하니까 자극도, 동기부여도 못 받고요. 지역 연극이 침체하는 원인에는 이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지키는 연극인들. 재운은 “전부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세트도 짓고, 옷도 꾸미고, 벌이에 비해 드는 돈이 많은 ‘값비싼 예술’인데 그저 연극을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세상을 읽은 마음을 글로 적고, 무대로 형상화해, 인물이 마음껏 소리치는 것이 곧 연극. 그리고 그 연극만의 생동감을 ‘생계’ 뒤로 미루긴 싫은 재운. 무대와 매체 사이에서 그가 지역 극(劇)을 선택한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다. “한평생 변하지 말리라 다짐하는 게 있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한평생 망치 들고 장갑 끼고 일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무대 짓고 조명 달면서 계속 연극을 할 거에요. 이 연극이 제겐 꿈이자 현실이거든요. 다만 ‘생활’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생활이면 비겁해지니까.” 살짝 웃던 재운은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재미 있는 상업극, 주제 의식은 부족하지만 화려한 인기극, 무료 공연 없는 전 회차 유료 공연, 그런 거 하면 돈 벌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깊이 있는 연극을 토대로 메시지도 있고, 고고함도 있는 것 하고 싶어요”라며 “그게 바로 지역 연극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역에 남은 연극인으로서 지역 연극이라는 예술에 예의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연극 활동이 지속되려면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이 창작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주고 주제 폭을 정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시민들도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죠. 또 무용이건 음악이건 연기건, 연극인을 트레이닝하고 인재 풀을 갖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동반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극인이 분명히 지역에 모이게 될 거에요. 별다른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라면 차차 연극 관객은 도망가서 없어질 겁니다. 저희는 여기 남아 ‘꿈의 무대’를 지켜야죠. 연극 예술에 예의를 갖추면서.”
경기아트센터는 오는 9월부터 12월까지 오페라, 클래식, 미술 등 다양한 주제로 강의하는 ‘예술 아카데미’를 운영한다고 29일 밝혔다. 예술 아카데미는 예술인문 강좌와 예술실기 강좌로 분류된다. 먼저 예술인문 강좌는 오페라, 클래식, 미술, 연극, 한국예술사 등의 예술장르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그림과 오페라로 만나는 낭만주의’에서는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회화와 오페라 분야에서 탄생한 개성적이고 매혹적인 작품들을 알아볼 예정이다. 또 ‘경기필 마스터 시리즈 클래식수업’에서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마스터 시리즈 프리뷰 강좌를 진행해 관객들의 감상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재즈의 기본적인 특성을 배울 수 있는 ‘I LOVE JAZZ’, 유명 아리아를 선별해 쉽고 재미있는 해설과 강의를 하는 ‘아리아 아모레, 내 사랑 아리아’, 이탈리아 미술관의 서양미술 걸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는 미술관이다’ 등이 진행된다. 예술실기 강좌 역시 다양한 장르로 구성해 도민의 접근성을 높였다. ‘드로잉 어반스케치’에선 연필과 펜 등 간단한 도구로 묘사할 수 있는 그림을 배워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특히 ‘핸드폰으로 전문가처럼 사진찍기’에선 내 손 안의 카메라인 휴대폰 사진 기능을 익혀 프로사진가처럼 촬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밖에 판소리의 발성법, 단전호흡법, 장단 등을 배우는 ‘판소리’, 한국 고유의 장단과 춤사위를 통해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한국무용 입문’, 시와 수필을 감상하고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는 ‘등단으로 가는 글쓰기’ 등의 강의가 있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상반기 많은 수강생들의 호평을 받은 ‘감성맞춤 인문학 아카데미’가 더욱 다채로운 구성으로 돌아왔다. 경기도민이 예술 아카데미를 통해 경기아트센터를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합리적인 수강료로 수강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전문성을 갖춘 강사진을 통해 더욱 뜻깊은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 아카데미’는 경기아트센터 누리집을 통해 수강신청이 가능하며, 다양한 수강료 할인 혜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힘은 ‘준비 과정’에 있었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매일의 일상을 묵묵히 해나간다면 결승골을 넣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설사 원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좌절 끝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됐습니다.” 845경기 344골. 만 열아홉 살 역대 한국 선수 최연소 월드컵 출전. 서른여덟 살 국가대표 선수. 전북 현대의 영구 결번.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로 불리우는 이동국(45) 전 축구선수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숱한 좌절과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K리그 부흥을 이끌었던 그는 축구의 도시 수원에서 자신의 두 번째 에세이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북 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축구 인생사를 이야기했다. 올해 초 출간된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는 총 5부로 구성된 책으로 어린 이동국이 축구선수로 결심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최연소 월드컵 출전이라는 기록과 2002년·2006년 월드컵에서의 고난과 역경, 그럼에도 좌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그의 마음가짐의 변화와 은퇴 후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지난 24일 수원문화원과 인북출판사 공동 주최로 빛누리아트홀에서 열린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북콘서트에서 그는 책을 바탕으로 한 보다 진솔하고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날 이동국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바로 프로로 데뷔한 건 당시로서 파격적인 선택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선택 덕분에 19살 역대 최연소 월드컵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에게 쏟아졌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곧 좌절이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당연히 경기를 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안’에서 함께 뛰는 것이 아닌,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던 좌절의 상황에서 그는 마음가짐을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 이 선수는 상무에 입대해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비인기 스포츠 종목 선수들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며 그는 “많이 반성하고, 다시 일어날 기회를 군대에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강력한 일상, 습관의 힘을 통해 훈련을 이어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그가 부상이라는 막다른 결과지를 받았을 때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2002년과 2006년의 나는 분명히 달랐다.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는 힘은 준비 과정에 있었다. 후회 없이 준비하니 어떤 결과가 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한 그의 말처럼 책에는 인생을 단련시켜 나가는 비법이 담겨있다. 전북 현대에서 K리그 부흥을 이끌었던 그는 38살의 나이, 2017년 8월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게 됐다. 당시를 회상하며 이 선수는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 수많은 관중이 환호해주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15~20살 가까이 차이나는 선수들과의 경쟁, 종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경기 시간이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이동국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의미는 달라지는 것”이라며 “결국 묵묵한 노력 끝에 나는 ‘다시 찾게 되는 사람’이 됐고, 나를 기다리고 환호해주는 관중 덕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즐겁게 임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만 41세 은퇴. 845경기 344골. 이 선수는 ‘845’를 “프로의 정글에서 살아남았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가장 애정하는 숫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은퇴를 할 때 내가 뛴 경기는 844경기였지만, 은퇴식 이후 감독님이 다시 한번 불렀다”며 “FA컵 결승전을 소화하고 우승컵을 들며 모든 것을 마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북현대에서 열 번째 트로피를 은퇴 후에 들게 된 것이다. 이날 그는 현장에 자리한 국가대표 꿈나무와 축구 팬들에게 ‘긍정적인 습관’의 힘을 강조했다. 비교적 남들과 늦은 나이에 시작한 축구, 어린 이동국은 강해지고 싶었다고 한다. 학교를 향하기 위해 매일 버스를 타고 두 시간씩 이동하던 그는 자신에게 특별한 미션을 줬다. 버스 안에서 뒷꿈치를 들고 버틸 수 있다면,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다면, 분명 나에게는 보상이 주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마음 먹으면 해낼 수 있다는 성취를 처음 맛본 것이 초등학생 때 였다”며 “반복된 일상 속 작은 성취가 멘탈(정신)을 강하게 만드는 게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한편 책을 통한 수익은 작가의 뜻에 따라 아이들의 꿈을 위해 아동 복지 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