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인파’가 다음 달 14일 학산소극장 4층에서 ‘제2회 낭독극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극단 ‘인파’는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졸업생과 졸업예정자를 주축으로 구성한 인천지역 극단이다. 극단 대표는 하병훈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페스티벌은 지역 청년 예술인들에게 창작극 개발을 위한 제작지원금과 극장 대관을 지원하고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정식 공연으로 발전시키는 인큐베이팅 작업 중 하나로 이뤄진다. 페스티벌은 오후 3시와 7시 두 차례 열리며 청소년극 ‘위아 원’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들의 현실을 조명한다. ‘위아 원’은 사회적 문제를 반영해 학교 부적응, 가사 문제 등의 사유로 학교를 떠나려고 하는 청소년 4명이 자퇴 동아리를 만들고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하지만, 극 중 자퇴 총량제 도입으로 생기는 난관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하병훈 인파 대표는 “문화예술 불모지라 불리는 인천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며 “이번 페스티벌로 인천 지역 연극계 발전에 결코 작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극단 인파의 낭독극 페스티벌은 인터파크 티켓으로 예매 가능하다.
모든 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한계치에 도달하면 폭발해 새로운 별들을 탄생시키는 ‘플랑크의 별’처럼 말이다.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가능성, 불완전함 속에서 움트는 창조의 순간을 담아낸 전시가 열렸다. 경기도미술관은 오는 10월20일까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목하는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스스로 시작과 끝을 열어가며 낯섦과 새로움을 동시에 모색하는 작가 6팀의 작품 32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태양의 ‘빛’과 ‘색’을 담은 최지목 작가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최 작가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타나는 잔상과 태양 빛을 캔버스에 담아 ‘나의 태양’ 연작, ‘태양 그림자’ 연작, ‘인상, 일몰’ 등의 신작을 펼쳐보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잔상을 집요하게 관찰해 한 가지 색상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모양으로 화면의 어른거림을 만들어냈다. 거울 매체를 활용한 강수빈 작가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인지하는 것과 실재의 차이를 돌아보게 한다. 개별 거울 조각이 여러 각도에서 공간감을 확장해 시선에 따라 변화하는 환영을 무한히 만들어내는 식이다. 특히 긁혀있는 거울 면으로 작품을 구성해 거울과 유리 사이로 서로 다른 풍경이 겹치며 환상과 풍경 사이를 탐구한다. ‘Untitled(두 걸음 사이)’, ‘Untitled (curve)’, ‘Media’ 등을 통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생각과 그런 생각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제안한다. 장서영 작가는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한계가 있는 존재에 주목해 다양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장 작가의 작품은 육체, 삶, 제도, 제한, 세계의 한계, 신체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에 이르기까지 유한함을 인지하고 느끼게 한다. 작품 ‘서클’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신체와 반복의 키워드를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다. 영상의 끝과 시작을 무한히 반복해 ‘나’의 끝이 ‘너’의 시작이고 ‘너’의 끝이 ‘나’의 시작인 우리 관계와 삶의 순환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외에도 이번 전시에선 소리의 특성과 여러 층위를 탐구한 그레이코드, 지인의 신작 ‘파이퍼’와 하나의 돌 덩어리가 낱낱이 부서져 작아지고 소멸하는 과정을 통해 영겁의 시간을 포착한 권현빈 작가의 ‘물루’를 볼 수 있다. 또 여러 공간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녹여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구성하고 원동력을 부여한 이혜인 작가의 ‘마음의 영원한 빛’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선영 학예연구사는 “불완전함은 결함이 있는 상태이면서 동시에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며 “관객들이 작가들의 고유함이 녹아든 작품을 보며 그 속의 새롭고 낯선 의미들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정 문화도시 3년 차를 맞은 수원시가 ‘인문지향적 문화도시’, ‘대도시 모델형 문화도시’로 올해 목표를 설정하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한다. 정조의 위민사상과 실학을 바탕으로 조성된 도시의 역사적 상징성을 살리면서 대규모의 도시로 성장한 현재를 반영해, ‘서로를 살피고 문제에 맞서는 문화도시 수원’의 브랜드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2일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은 수원컨벤션센터에서 2024년 문화도시 수원 토론회 ‘문수톡!톡!(문화도시 수원 톡톡)’를 열어 이러한 계획을 발표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시민들과 함께 논의했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지역의 문화 자산을 활용해 도시의 문화 환경을 기획, 도시브랜드를 창출하는 정부 지원 사업이다. 수원시는 지난 2021년 12월 ‘제3차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 2026년까지 5년간 150억 원(국비·시비 각 50%)을 투입해 시 전역에서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 수원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추진 방향은 ‘인문지향적 문화도시’, ‘대도시 모델형 문화도시’다. 이를 위해 ▲수원은 어디나 문화슬세권! 시민과 문화공간을 연결하는 문화누림 확대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를 살피고 문제에 맞서는 공동체 프로젝트 ▲자부심 느껴지는 문화도시 수원의 브랜드 확산을 위한 미래가치 창출 ▲우리가 만들고 세계가 소비하는 문화산업 성장 지원 ▲서울 문화 집중도 완화를 위한 문화 벨트 구축 등 5대 사업 전략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이날 박완열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은 먼저 중앙정부의 문화도시 정책 기조와 성과 평가 기준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센터장은 “현재 전국 24개의 법정 문화도시 중 수원이 인구가 제일 많다”라며 “올해부터 ‘인문지향적 문화도시’와 함께 ‘대도시 모델형 문화도시’를 목표로 설정하겠다”고 말했다. 핵심은 서울 문화 집중도 완화를 위해 수원이 중심이 돼 타 문화도시와 함께하는 협업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중 하나는 ‘문화 1호선 문화 벨트 구축’이다. 부천~부평~수원~의정부~영등포 등 1호선을 축으로 한 문화도시가 함께 머리를 맞대 동반 성장을 도모한다. 문화도시 관계자 및 참여자 등 150여 명의 시민이 함께한 이날 토론회에선 시민들이 주체가 돼 가꿔나갈 문화도시 세부 사업도 발표됐다. 동네를 기반으로 서로 연결되고 교류하는 ‘동행공간’, 생활권역별 거점공간 ‘같이공간’과 오는 10월19일부터 진행되는 ‘문화도시 수원 페스티벌’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시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문화랩’, 역사·문화·환경자원 보호에 관한 문화 인재 양성 ‘수원은 학교’ 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이날 정현경 수원문화도시 운영위원(경기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시민 토론회에선 시민들이 문화도시 사업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며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발표에 나선 한 주민자치 위원은 “주민들에게 문화사업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특히 어르신과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 중인 한 지역 작가는 “청년 예술가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공모사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2026년에 사업 종료 후에도 시스템이 지속되도록, 시민과 관(행정)의 중간조직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황인국 제2부시장은 “문화시민이 문화도시를 만든다”라며 “시민이 문화적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문화도시 사업의 방향은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균 재단 대표이사는 “오늘을 시작으로 시민이 의견을 나누는 이러한 토론회가 자주 마련되도록 하겠다”라며 “문화도시 수원에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정조는 화성 축성 2년여 전 홍문관 수찬으로 있던 정약용에게 화성 성제를 연구해 보고하라 지시한다. 이것이 화성 출발점이다. 1년의 연구 후 ‘성설’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흔히 말하는 정약용의 화성 설계다. 설계가 아니고 기본계획이다. 이때 정약용은 화성 규모를 3천600보로 제안한다. 그러나 실제 4천600보로 확장돼 준공된다. 지금의 화성이다. 언제 어떻게 변경됐을까. 무슨 이유로 확장됐을까. 사실을 알아보자. 먼저 ‘언제’와 ‘어떻게’를 살펴보자. 시기는 성역 착수 첫해 입표정기 때 변경된다. 입표정기란 행사를 통해 변경한다. 입표정기란 계획된 3천600보만큼 깃대를 꽂아 놓고 이를 보고 성터를 확정하는 이벤트를 말한다. ‘표시(표)를 세워(입) 터(기)를 정(정)한다’는 한자 말이다. 1794년 1월15일 입표정기 때 정조는 팔달산 정상부터 수원을 돌며 성터를 확정한다. ‘왜 변경됐을까’다. 정조는 입표정기 때 정약용의 최초 계획인 3천600보에 꽂힌 깃대를 보고 몇 가지를 지적한다. 지적대로 변경됐다. 이 지적에서 그 속에 담긴 정조의 뜻을 살펴보자. 정조의 말이 변경 이유다. 첫째, “깃대가 북쪽 마을을 지나가니 인가가 많이 훼철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깃대가 북리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많은 민가가 철거되면 철거, 이주, 신축 등 공사비와 공사 기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다. 지적에 따라 성터를 북쪽으로 옮겼다. 공사비, 공기 절감은 외적으로 나타난 이유이고 실제는 정조의 백성 사랑 때문이었다. 정조는 공동체로 살아가던 한 마을 백성을 갈라 놓고 싶지 않았다. 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헤어지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데 한 마을 백성이 성안 마을과 성 밖 마을로 나뉘는 백성의 마음이 더 아팠다. 성안에 사는 것과 성 밖에 사는 것은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정조의 깊은 마음이다. 둘째, “깃대 세운 것을 가늠해보니 성 밖으로 나갈 인가가 꽤 많을 듯하다”고 지적한다. 왜 성 밖으로 나갈 백성을 걱정했을까. 정조는 백성과 함께하는 수원화성을 원했다. ‘관청의 성’에서 ‘백성의 성’으로의 전환이다. 이전의 성은 임금과 관리가 사용하는 면적이 대부분이었으나 수원화성은 민가가 차지하는 면적이 대부분이다. 공사비가 늘고 공사 기간이 길어져도 가능한 한 많은 민가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라는 말이다. 셋째와 넷째는 “깃대가 행궁과 너무 가까워 마치 성이 행궁의 담장처럼 보인다”와 “성터의 남북 간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 지적이 행궁만을 생각했다고 보면 오해다. 실상은 지속가능한 미래 수원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 지적으로 화성 경계를 북쪽으로 넓혀 수원화성의 면적을 2배 확장했다. 정조는 수원을 지속가능한 군사, 행정, 상업, 공업, 농업 도시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미래 수원부’에 대한 원대한 꿈이 담겼다. 230년이 지난 지금 수원은 정조의 꿈대로 실현됐다. 육군 3사령부, 해병대 사령부, 해군 2함대 사령부 등 군사 거점이 됐다. 경기도청을 품은 특례시가 됐다. 삼성, SK그룹의 모태가 됐다. 삼성 반도체, SK 반도체 클러스터가 모여 있다. 수원농고, 서울대 농대, 농촌진흥청은 한국 농업을 세계 최고로 올려놓았다. 정조의 꿈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정조의 지적을 보고 정조와 정약용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정약용은 기본계획을 작성하기 전 현장조사를 했을까, 안 했을까. 정약용의 계획에 대한 정조의 지적을 보면 화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아예 사전 현장답사를 하지 않았다. 근거를 살펴보자. 정약용은 성설에 ‘일찍이 수원부에 있는 개천가를 본 적이 있는데’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본 적이 있는데’는 원문에는 ‘상견(嘗見)’으로 돼 있다. 즉, ‘일찍이 본 적이 있다’는 표현은 이번에 간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간 적이 있다는 의미다. 기본계획 작성 이전에 유배나 외직으로 갈 때 수원을 지나며 봤다는 말이다. 그러면 정조는 정약용에게 왜 사전 답사를 지시하지 않았을까. 한양과 수원은 매우 가까운 거리인데 이해가 안 간다. 그 이유는 기본계획의 정체성과 맞물려 있다. 정조의 질문은 현지 조사까지 할 필요가 없는 수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본계획인 성설의 정체성은 사업 초기 단계의 기본계획 규모 수치다. 한 예로 “연 1천만t을 생산할 수 있는 비료공장을 짓는 데 땅이 얼마나 필요합니까”라는 건축주의 물음과 같은 개념이다. 이는 사업 초기 단계에 대규모 사업의 대강을 파악하기 위한 규모다. “행궁과 민가 1만호를 품을 수 있는 성의 규모는 얼마면 되겠냐”라는 건축주 정조의 물음에 다산은 “성 둘레가 3천600보라야 계획한 바에 들어맞습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계획 3천600보 규모’는 실제와 차이가 커도 큰 문제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산의 기본계획은 정조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낸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차이가 생긴 것은 정조가 마음속에 품은 ‘웅대한 수원화성에 대한 꿈’까지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속 웅대한 화성은 바로 정조의 4천600보 화성이었다. 오늘은 성설이나 어제성화주략의 규모 계획에 대한 정체성을 살펴봤다. 정조가 실현한 백성 사랑, 미래 확장은 지속가능이고 공사비 절감과 공기 단축은 건설경영이었음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20대 관객까지 눈시울 붉힌 ‘하츄핑’과 ‘로미 공주’의 애틋한 사랑 말 그대로 ‘돌풍’이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사랑의 하츄핑’이 극장가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다. 다른 유아용 애니메이션과 달리 40대 이상 부모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과 20~30대 젊은 세대의 마음마저 사로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심’에 목마르지만, 이를 즐길 만한 콘텐츠가 부족했던 성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랑의 하츄핑’은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 에스에이엠지(SAMG) 엔터테인먼트의 인기 TV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첫 번째 극장판 영화이다. 영화는 개봉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5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3일 기준 누적 관객 70만 명을 돌파하며 100만 고지까지 순항이 예상된다.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 10위의 성적이다. 영화의 인기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일 오후 3시께 수원 시내 한 멀티플렉스에는 평일 낮임에도 ‘사랑의 하츄핑’을 관람하러 온 어린이 관객 사이로 20대 여성, 30대 연인 등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관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에 빠져든 것은 어린이 관객뿐만이 아니었다.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한 최시온씨(21·수원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세 번 가까이 눈물을 흘릴 만큼 영화에 깊이 몰입했다”며 “최근 인천 송도에서 열린 ‘하츄핑’ 팝업 스토어에도 다녀왔는데 SNS에 공유할 재미있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극장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처음에는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영화를 보러 왔는데,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너무 귀여워서 오랜만에 동심에 빠져들 수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주인공 로미와 하츄핑이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너무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아끼는 모습에 친구와 가족 등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고 소감을 말했다. ■ “하츄핑이 도대체 뭐길래?”…직접 보니 ‘귀여움’ 소리 절로 나와 영화는 외계 행성 이모션 왕국의 공주 ‘로미’가 운명의 인연임을 느끼며 자신의 짝꿍 티니핑으로 선택한 ‘하츄핑’을 찾으러 떠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티니핑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음의 요정으로 ‘하츄핑’은 티니핑이라는 캐릭터의 한 종류이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로미는 하츄핑을 만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어!’라는 노래가사처럼 로미는 하츄핑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하츄핑이 살고 있는 행성은 오래전 인간의 잘못으로 인간과 티니핑이 악연의 관계가 되어버린 곳이다. “인간은 배신의 존재이니 믿어선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자란 하츄핑에게 로미는 그저 두렵고 무서운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하츄핑에게 다가가기 위해 로미는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불길 속에서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그녀의 노력에 마침내 하츄핑은 마음을 연다. 친구가 된 로미와 하츄핑이 서로를 따뜻하게 껴안고 볼을 비비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극장에서 부모 품에 꼭 안겨있는 어린이 관객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온갖 어려움과 고난, 역경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은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유아와 어린이를 주 관객층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꽤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기승전결의 구조는 짜임새 있게 갖춰졌고, 주인공에게 닥치는 ‘갈등 발생-위기 극복’의 반복되는 서사는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악당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 놓이고 눈을 감고 있는 로미의 모습은 로미와 하츄핑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긴장감을 자아냈다. 또한 영화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노래는 극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손바닥만 한 앙증맞은 크기에 큰 눈, 아이 같은 목소리로 웃음 짓는 하츄핑은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할 만큼 귀여움을 자랑했다. ‘티니핑’ 캐릭터에 빠져든 어린이 시청자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의 티니핑 캐릭터들을 커다란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즐길 만한 충분한 요소가 됐다. ■ 10~30대 MZ부터 40대 부모까지 온오프라인서도 ‘하츄핑 앓이’ ‘사랑의 하츄핑’은 최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에서도 관련 게시물이 쏟아져 나오며 10, 20대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사랑의 하츄핑’ 오리지널 뮤직비디오 ‘처음 본 순간’의 유튜브 공식 채널에는 “딸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오르면서 가사가 다르게 보이네요. 영화관에서 눈물 흘린 아빠입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글은 ‘좋아요’ 1천5백여 개를 받으며 네티즌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멤버 윈터가 참여한 것으로 주목받은 해당 뮤직비디오는 공개 20여 일 만에 조회수 125만을 넘어섰다. 특히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성별, 연령대의 시민들이 남긴 솔직한 후기는 진풍경을 자아냈다. 이와 함께 유튜브 숏폼 ‘숏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등 10, 20대에게 인기인 SNS에서는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게시물이 게재·공유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 MZ세대에게 ‘하츄핑 관람=놀이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챌린지’에 익숙한 세대”라며 “SNS를 통해 누군가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공유하고 함께 즐기며 소비하는 것이 현 세대에게는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라고 설명했다. 성인이 동심을 즐길 만한 콘텐츠가 국내에서는 매우 부족한 가운데, 그들이 느끼고 싶어 하는 동심의 니즈(욕구)와 영화가 잘 맞물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자녀에게 영화를 보여주러 갔던 부모들이 더 주목하거나, 20~30대 직장인이 캐릭터에 빠져드는 것은 이들이 느끼고 싶어 했던 ‘동심’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김 평론가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어린아이들만이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며 “해외의 경우 어른 세대도 평범하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지만, 유달리 한국에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과 문화가 ‘유아’를 타깃(목표)으로 한정돼 있어 낯설어 보인다. 동시에 사실 성인들이 동심을 즐기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유아용’ 한정된 국내 캐릭터, 성인도 '동심' 필요”, “상술 비판, 극복해야 할 문제” 반면 ‘사랑의 하츄핑’의 기반인 ‘캐치! 티니핑’ 시리즈를 둘러싼 ‘상술’ 논란과 비판은 극복해야 할 문제다. ‘캐치! 티니핑’ 시리즈는 현재 시즌 4기까지 방영됐으며 공개된 캐릭터만 80여 종에 달한다. 다양한 캐릭터에 시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값비싼 굿즈(물품) 탓에 자녀를 둔 부모 세대에게는 일명 ‘파산핑’이라는 악명 아닌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철 교수는 “물론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모든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즉, 지속가능한 경영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라며 “캐릭터의 스토리나 서사를 구축해 가는 것보다 판매 목적에 더 치중한 캐릭터 양산은 소비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제작사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할 책임 의식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4장: 지역 연극 속에는 지역 문화가 촘촘히 감겨 있다. 고양지역에서 행주대첩을 소재로 한, 용인지역에서 처인성을 배경으로 한, 수원지역에서 정조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지역색’이 강하다는 게 지역 연극의 장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역 이야기’에 갇혀 있다 보니 독창성이나 대중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지적한다. 수많은 연극이 뜨고 지길 반복하는 상황에서 지역 연극이 관객 옆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part1. 경기도 공연 관람객 6.6%만 ‘연극’ 선택 23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지난 4월 '빅데이터 기반 공연 관람 행태 분석 보고서'를 통해 2022년도 공연 시장의 장르 특성 및 소비행태를 분석하고, 향후 공연 관람계를 내다봤다. 이 중 ‘연극’ 통계만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먼저 서울에서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13명은 연극(13.7%)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13.7%)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충남 공연 관람객의 11.3%가, 대전 공연 관람객의 10.5%가 ‘연극’을 봤다고 답했다. 반면 경기도에선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6명만이 연극(6.6%) 장르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음악(28.5%)과 무용(6.7%) 공연의 관람객보다도 연극의 인기가 적었다. 티켓 구입가격은 연극(5만6천507원)이 한국음악(4만131원)보다 1만원가량 비쌌다. 뮤지컬(12만2천784원)이나 서양음악(7만9371원), 무용(6만9841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부산(평균 13만329원) ▲서울(11만3천595원) ▲울산(10만690원) 지역의 공연 티켓 값이 상위권이었고, ▲경북(2만9181원) ▲광주(3만5천345원) ▲전남(5만774원) 지역이 하위권이었다. 경기도(6만7천305원)는 중간 정도였다. 대부분의 공연이 수도권에 집중된 가운데 특히 연극은 80% 이상이 서울에 몰려 있었다. 비수도권의 공연량은 매우 적은 편이지만 그나마 인천, 광주, 전남 등에선 서양음악, 한국음악, 무용 등이 약진하는 상태였다. 경기도 연극은 관람객 수도, 티켓 가격도, 공연량도 크게 돋보이는 부분 없이 ‘평균~평균 아래’ 수준에 머무르는 실정이었다. ■ part2. 대학로에 뺏기고, 지역 한계 갇히고 경기도 내에서 유독 연극의 인기가 낮은 이유는 뭘까. 첫 번째로는 ‘서울과의 원활한 접근성’이 꼽힌다. 타 시·도와 비교했을 때 경기도는 서울로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에 ‘대학로’에 지역 연극인과 관람객을 뺏기고 있다는 의미다. 연극인 입장에선 서울로 가야 더 많은 활동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관람객 입장에선 서울 작품이 더 퀄리티가 높다는 인식이 있다는 게 연극계의 시선이다. 두 번째로는 ‘작품 내용의 한계성’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정부 및 지자체, 문화기관 등의 연극 관련 ‘예산’ 문제와도 연결된다. 현재 상당수 지역 극단이 재정 문제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 특정 사업·공모 예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이 예산의 대상과 지원금이 무척 한정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업·공모에서 요구하는 작품 주제가 ‘지역’에 초점 맞춰져 한정적이라는 볼멘소리도 더해진다. 경기도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 한 연출가는 “소규모 극단은 돈이 없어서 1년에 작품 하나를 선보이기도 힘들다. 외부에서 예산이 수반된다면 연간 최대 4개 정도 할 수 있는데 그 예산을 받으려면 사실상 ‘순수 창작극’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사업을 알리는 작품, 지자체 행사에서 공연할 작품 등 주제가 정해져 있고 거기에 ‘지역색’이 더해져야 메리트가 된다. 즉 지역 이야기가 담겨야 예산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라며 “지역 문화를 우선시하는 건 좋지만, 문제는 그러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연하기엔 ‘유료 관객’이 모일 소재가 아니라 단편에 그치고 끝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 part3. “그럼에도 지역·극단 매력 살리며 고군분투” 관객들의 무관심 속 연극계는 ‘예산 지원’ 틀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연극계 내부에서는 지역 명소를 배경으로 하고,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 특정 인물을 조명하는 가운데 최대한 ‘내 극단만의 매력’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충남에는 충청도 사투리로만 쓰여진 연극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가 있고, 제주에는 4·3사건을 다룬 연극 <바람의 소리>가 있는 것처럼, 그게 지역 연극이 현재를 버텨내고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승민 극단 오픈런씨어터 대표(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행정감독·한국연극협회 경기도지회 사무처장)는 “아무래도 지역에는 각자의 지역을 대표 콘텐츠로 내세운 공연들이 많다”면서 “특히 경기도의 경우 지역별, 극단별 강한 특색이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지역 공연들이 수없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경기도에도 행주대첩(고양), 처인성(용인), 정조대왕(수원) 등을 메인으로 만든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설명이다. 주 대표는 “보통 극단들은 정기공연을 통해 본인 극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을 담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 외엔 지역에서 원하는 콘텐츠의 작품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한 목적극 성향의 작품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라며 “그렇다고 그게 잘못 됐다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역 예산으로는 지역민을 위한, 지역 콘텐츠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정기공연이 아니어도 연극인의 창작 활동을 보장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한층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part4. 연극을 기록하는 자들 이토록 힘겹게 탄생하는 지역 연극, 어쩌면 ‘한 번의 무대’로 사라지는 휘발성과 일회성을 가진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편집을 통해 남는 영상물은 OTT 등에 남을 길이 있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현장성의 공연은 기록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나하나 지키는 게, 연극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차세대 연극인을 키워나가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극을 남기는 자들’이 있다. 경기지역 안에선 공연판 넷플릭스로 불리우는 ‘경기아트온(ON)’이 사실상 유일무이하다. 경기아트센터가 제작한 예술인 지원 공연영상 콘텐츠 플랫폼으로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특히 ‘플레이슈터’도 대표적이다. 플레이슈터는 2020년 1월부터 연극 등 작품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해왔던 전국 최초의 공연예술 플랫폼이다. 다양한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 체계적으로 아카이빙을 관리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창작자들과 배분한다. 강경호 플레이슈터 대표는 “정부·지자체 예산 등의 지원금 말고도 공연예술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싶었다”며 “보존되지 않는 공연예술을 기록하기 위해 ‘감히 내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 활동을 했던 그는 “연극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선, 왜 사라지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생각하고 싶다. 만약 연극의 수요도, 공급도 없다면 그땐 없어지는 게 맞다. 이유 없는 쇠퇴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성의 이화뱅곳민들레연극마을을 언급하면서 “민들레연극마을이 품앗이 공연예술축제를 여는 것처럼 지역에선 마을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극을 키워나가고 있다. 예전에 ‘교양예술’로만 여겨지던 연극이 이젠 ‘지역 커뮤니티’ 개념으로 달라진 것”이라며 “무대에 있어야만 예술로 인정받는 게 아니지 않나. 저희는 그러한 공연예술계의 변화상을 남기고 싶었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베토벤 곡을 국립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한다고 해서 버스킹(Busking·거리 공연)하지 말란 법이 있나. 어떠한 경로건 베토벤 곡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며 “그 곡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작곡가도, 연주가도, 악기도 덩달아 파급효과로 관심을 받을 거다. 제가 공연예술계에서 바라는 것도 그런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3장: 2002년 평일의 어느 날. 연출가 겸 배우이자 극단 마당 대표인 김학재(57·남양주)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관객은 단 두 명이었지만 ‘한 명이라도 공연을 보러 오면 변동 없이 진행한다’는 신조를 버릴 순 없었다. ‘심봉사’였던 학재는 그날 무대 위에서 울었다. 중간에 모든 관객이 나간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해야 돼, 말아야 돼?” 하는 사이 결국 공연이 멈췄다. 보는 이가 없으니까. ‘재미없어서 가셨나보다, 우리 진짜 열심히 해야 된다’고 단원들과 서로를 토닥이며 반성하던 때, 두 관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엄마와 딸이란다. “저희 둘을 위해 공연을 해주시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데 다시 들어가서 보기엔 더 미안해서…”라며 꽃바구니와 빵을 건넸다. 그렇게 학재는 다시 한 번 울었다. 지역 연극에 보답하리라 다짐한 계기이기도 했다. “사실 지역 연극은 남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너 어디서 활동하냐?’ 했을 때 ‘남양주’라고 하면 ‘먹고 살겠냐?’ 하는 거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 성공하려면 상업화가 돼야 하는데 저는 지역 연극에서 절대 상업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식점으로 예를 들면 유명한 ‘맛집’이 있어야 근처에 비슷한 가게들이 생기고 다 같이 장사가 잘되는데 지역 연극은 그런 구조가 아니거든요. 서울엔 ‘대학로’가 있지만 경기도엔 그런 여건이 마땅치 않아요." 그의 말마따나 경기도에서 오픈런(open run·상시공연)으로 진행되는 작품을 떠올리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막을 여는 아동극이 있다 쳐도 대개 서울발(發) 작품이었다.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들의 창작 연극은 어떠한 ‘임무’에 맞춰져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 요청에 맞춰서 특정 축제에 선보일 수 있는 공연이라던지 하는 식이죠. 거기에 제가 상업극을 가지고 갈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순수예술로 남양주의 지역색을 살려서 정약용 공연을 한다면 누가 보러 올까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경기도에서 오픈런 공연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이유가 되죠.” 이와 같은 이야기는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여러 극단 관계자들도 공통적으로 했다. 지역 연극 공연은 정부 및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뤄지는 형태가 많은데, 이때 예산이 ‘지역색 있는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창작극’은 지원 대상에서 다소 배제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학재는 본인을 두고 ‘연극만 고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겉핥기식 연극인’이라 표현했다. 연극만을 바라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생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지역 연극은 살아 있어야 된다”던 그다. “내 일을, 내 지역에서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얘기 아닌가요? 제가 정약용, 단종, 정순왕후를 자꾸 창작 공연을 통해 끄집어내는 이유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싶기 때문이에요.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지역의 이야기로 일말의 끈을 놓지 않고 남양주의 힘이 되겠다는 것, 그 꿈을 가지고 저는 지역에서 연극합니다”라던 학재. ‘고집 있는 연극인’ 그 자체였다. 점점 줄어드는 연극 관객은 “우리가 자처한 것”이라던 그는 “그래도 지역 연극은 매력 있어요”라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정약용 체험연극: 정약용의 다섯 가지 직업>(2023년作)에 이어 내년에는 정약용 선생의 생가를 중심으로 연극제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기대도 품는다. “남양주만이 가질 수 있는 특색, 그리고 남양주만의 특별한 문화 요소를 하나씩 만들고 싶어요. 먹고 살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제가 연극을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극은 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해요. ‘연극이 나를 떠나는구나’ 싶을 때 제가 ‘내가 떠나보내줘야지’ 하는 생각을 품으며 활동하는 중입니다.”
“시각장애 아이들에게도 일반 아이들과 같은 교육 여건이 주어져야 합니다. 예술가들의 따뜻한 손길로 만든 ‘촉각 도서’가 그 첫걸음입니다.” 지난 19일 찾아간 의정부시 가능동의 ‘나누미촉각연구소’.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둘러앉아 각양각색의 소품을 두고 아이디어 회의가 한창이었다. 동화책의 줄거리와 각 장의 구성, 꼭 들어가야 하는 소품의 재질부터 각자 잘하는 작업에 따른 업무 분배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손엔 장애아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녹아 있었다. 나누미촉각연구소는 지난 2010년부터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해 손끝으로 읽는 그림책인 ‘촉각 도서’를 제작해 전국의 병원·학교 등에 보급하고 있다. 설치미술가인 문미희 대표를 주축으로 조각가, 시각장애인 등 5~6명의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점자와 소품이 부착돼 있는 그림동화를 만든다. 나누미촉각연구소가 이 같은 활동을 시작했을 때, 국내엔 패브릭(직물)으로 만들어진 촉각도서가 없었다. 이에 나누미촉각연구소는 시각장애 아이들이 ‘촉각으로 보는 법’을 제대로 익히게 하기 위해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소품의 크기를 확대했다. 또 다칠 위험이 없는 패브릭을 사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촉각도서 중 50여권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세광학교, 인천 장사래어린이도서관, 부평기적의도서관, 병원 등에 기증했다. 올해는 시각장애 영유아 교육기관인 서울효정학교에 5권의 촉각 도서를 기증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누미촉각연구소 소속 시각장애인 박규민씨는 “촉각 도서는 한 권을 만드는 데 6개월 이상이 소요될 만큼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며 “시각장애 아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사물들을 직접 만져보면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게 해 성장 시기에 필요한 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나누미촉각연구소는 촉각도서와 함께 시각장애인들의 지도인 ‘촉지도’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2년 1호선 의정부역 촉지도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20년엔 경기도청 북부청사, 2021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22년 연천 재인폭포공원에 촉지도를 설치해 큰 호응을 얻었다. 문미희 대표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장애인들이 촉각도서와 촉지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피에몬테주의 주도인 이 도시에서 올여름의 며칠을 보냈다. 토리노에서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야외 시장은 채소와 과일이 신선하고 저렴했다. 살구 1㎏, 납작복숭아 1㎏, 바질 한 단, 루콜라 한 묶음, 완숙 토마토 한 개, 모차렐라치즈 250g 한 통, 계란 다섯 알을 샀는데 총 1만4천500원. 서울이라면 최소 두 배는 줘야 하는 가격이었다. 마침 부엌이 딸린 아파트에 머물고 있어 매일 장을 봐 아침을 해먹는 즐거움을 누렸다. 바게트를 길게 잘라 모차렐라치즈와 잘 익은 토마토를 썰어 넣고 바질 잎 몇 장을 올리면 이탈리아 국기 색깔의 샌드위치였다. 아침을 먹고 나면 토리노의 엄청난 문화유산을 즐길 차례였다. 프랑스의 론알프스 지역(당시 사보이 지역으로 불렸다)에서 창설된 사보이 가문은 사보이아 백국에서 시작해 공국을 거쳐 사르데냐 왕국, 통일 이탈리아 왕국까지 건설했던 가문이다. 16세기 중반 이후 토리노는 사보이아 가문의 근거지였다. 토리노 혹은 튜린으로 불리는 이 도시는 피아트, 란치아, 알파로메오 같은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음식과 와인이 맛있기로 유명하고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도시라고 해서 토리노를 찾았다. 토리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첫날,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물이 늘어선 산 카를로 광장에 선 순간부터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이 도시가 왜 소문난 관광지가 아닌 걸까. 무솔리니를 기용하는 바람에 이탈리아를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한 데다 쫓겨나서 망명 50년 만에 귀국한 사보이아 가문의 후계자들이 하나같이 한심한 인물들이라 이 도시를 기피하는 건 아닐 테고…. 장엄한 문화유적을 지닌 이 도시는 관광객이 적은 탓인지 시민들이 친절하고 여유가 있었다. 카페 성애자인 필자가 토리노의 명성 자자한 카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카페 알 비체린. 커피에 초콜릿과 크림을 섞은 음료 비체린을 발명한 곳인데 무려 1763년부터 영업을 해왔다. 250년 역사가 깃든 카페는 작고 소박했다.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카페를 시작한 이는 남성이었지만 대대로 여성이 운영해 왔다는 사실. 여성이 가게를 꾸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덕분에 갈 곳 없던 여성들이(그 시절 카페는 남성 전용 구역이었다) 이곳에서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성소 콘솔라타 덕분에 더 안전하게 느꼈다나. 여성 경영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마지막 여주인의 가족과 오래 일한 여성 직원들이 카페를 꾸리고 있다. 비체린은 손잡이가 없는 유리잔을 뜻하는데 이 음료가 이런 잔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붙은 이름. 권위 있(다)는 잡지 감베로 로쏘는 2001년 이곳을 ‘이탈리아 최고의 바’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서 깊은 카페에 단골이 없을 수 없다. 이곳의 단골 손님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 프리드리히 니체, 푸치니(라보엠은 토리노의 극장에서 초연됐다), ‘나무 위의 남작’을 쓴 이탈로 칼비노 등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예 그의 소설 ‘프라하의 공동묘지’에서 이곳을 길게 묘사했는데, 이 카페의 냅킨에 소설의 그 부분이 적혀 있다. 필자는 에코의 글이 적힌 냅킨 한 장을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아무튼 토리노의 대표 음료인 비체린을 원조집에서 마셔봤는데(안동소주를 안동 종가댁에 가서 마신 셈이랄까) 초콜릿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한 잔은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맛이었다. 에스프레소 위에 핫초콜릿, 그 위에 다시 크림을 부은 칼로리 대폭발 음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이 카페는 특별한지 조용히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보였다. 계산서를 받아보니 비체린 한 잔의 가격은 7.9유로. 우리 돈 1만2천원에 육박했다. 계산할 때 살짝 손이 떨렸다. 토리노는 니체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말년까지 니체를 괴롭힌 정신질환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니체가 토리노에 머물던 시절,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선 그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얻어맞고 쓰러지는 말을 보게 된다. 그는 온 몸으로 마부를 가로막으며 말을 끌어안고 울다가 혼절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니체는 정신을 놓고, 10여년 간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죽음에 이른다. 니체의 이 행동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광장 근처 니체가 머물던 하숙집을 찾아갔다가 피를 나눈 남자에게 니체의 집 사진을 보냈다. 니체의 일화가 등장하는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는 자타공인 문학청년에 영화광이라 분명 봤을 거라 생각했다. 곧 답이 왔다. “토리노의 말 보다가 중도 포기. 타르코프스키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영화. 말과 인간을 함께 희생시키는 영화였다”는 말에 혼자 웃었다. 토리노에는 궁전이 많다. 이탈리아가 공화국이 된 후 사보이아 왕족은 망명을 떠났는데(97년 이후 귀국이 자유로워졌다) 그들이 남긴 궁 열 네 곳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됐고 나는 다섯 곳을 방문했다. 가장 좋았던 곳은 토리노 외곽에 자리한 베나리아 레알레 궁이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데 광대한 정원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인 장소 곳곳에 현대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더욱 생기 있는 공간이 됐다. 토리노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박물관은 몰레 안토넬리아나. 토리노시의 건축적 상징인 이 건물은 형이상학파 화가 키리코의 그림에도 몇 번이나 등장한다. 1863년 건축가 알레산드로 안토넬리가 설계한 건물의 높이는 167.5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석조 건물이었다. 토리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줄은 긴데 영화 박물관 줄은 짧았다. 전망대를 빼고 영화 박물관만 둘러봤다. 토리노는 189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도시. 영화 박물관은 생각보다 재미난 곳이었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를 세세히 구분해 전시하고 최초의 카메라 장비며 촬영도구도 있고 영화 촬영의 과학적 배경도 친절히 설명해준다. 제일 재밌는 건 실제로 영화에 사용된 소품 전시였다. 해리포터의 지팡이부터 스파이더맨의 옷, 매트릭스의 총알 같은 것들. 토리노는 3박4일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도시였다. 이탈리아는 몇 번을 와도 늘 새롭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도시 볼로냐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교차공간818은 오는 30일까지 현경희 작가 개인전 ‘무심함에 대한 대답’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1년부터 현 작가가 젤라틴이 지닌 물리적 성질에 집중해 온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 작가는 판젤라틴을 뜨거운 물에 넣고 색소를 녹여내는 과정을 통해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말랑한 젤라틴 덩어리가 변하는 모습을 포착해 표현했다. 젤라틴이 지닌 물리적 성질을 불완전성으로 보고 젤라틴의 형태가 무너지는 모습에 불안 등을 투사해 불안과 관계에 대한 조심성을 은유적으로 담았다. 현 작가는 “과거 컵에 붙은 젤 리가 녹는 것을 보고 불안정한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규칙 등 일반화한 환경에 사람이 변하는 과정이 젤리의 제조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젤라틴이 지닌 물성에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단해 보이지만 불완전한 이미지로 무심함과 그로 인한 불안, 관계에 대한 조심성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