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없는 건 딱 두가지다. 첫번째는 머리카락, 두번째는 조미료다.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善財55) 스님이다. 지난 30년간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스님은 간경화로 1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나서 본격적으로 사찰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시작한 스님의 사찰음식은 이제 건강식을 뛰어 넘어 세계시장을 넘보고 있다. 바로 그의 고향, 수원에서 말이다. 선재 스님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과 화성 용주사, 수원 행궁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몸과 마음을 살리는 사찰음식을 한상 거하게 차려내고 싶은 염원을 갖고 있다. 11년만에 새 책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불광출판사 刊)을 들고 대중들 앞에 나타난 선재 스님을 지난 달 25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만났다. -선재사찰음식문화원장으로 사찰음식 개발하랴, 강의하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들었다. 건강을 해칠까 걱정스러운데 요즘 건강은 좀 어떤가. 건강이 무너진 다음에서야 사찰음식을 찾은 사람이 접니다. 요즘도 6개월에 한 번씩 검사 받는데 여전히 간은 까맣다고 해요. 그나마 사찰음식으로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거죠. 지방으로, 해외로 바쁘게 다니는 저한테 담당 의사가 스님, 목숨 내놓고 강의하시는군요. 제발 좀 쉬세요 그럽니다.(하하) 나 같은 환자를 더이상 만들지 않으려면 쉴 수가 없지요. 일주일 내내 강행군입니다. -스님이 사찰 음식과 연을 맺게 된 게 병 때문이라고 봐도 되는가. 나는 간이 안 좋아요. 집안 내력인데 아버지, 오빠도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집안 병력은 신경쓰지 않았는데, 20여 년 전 큰 병을 얻었어요. 졸업논문 준비때문에 빵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죠. 게다가 은사 스님이 새로 지은 화성 신흥사 청소년 수련원 일까지 돕느라 건강을 해친거죠. 간경화로 1년도 살기 힘들다고 했는데 식단, 식습관을 바꿨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스님은 도대체 뭘 먹고 간경화를 이겼냈냐고 묻는데 전 단지 먹지 않아야 할 것을 안 먹었을 뿐입니다. -그 동안 책 출간 제의를 고사해온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11년 만에 두 번째 책을 냈는지 궁금하다. 책 낸지 열흘도 안됐는데 3판을 찍는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에 정신없어요. 책만 내면 끝인줄 알았는데. 제가 요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생명은 나와 하나다라는 것인데 사실 2000년에 낸 첫번째 책에서는 그 뜻을 마음껏 담지 못했죠. 하루에도 수십 통도 더 걸려오는 전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레시피 위주로 만들었죠. 이번 책은 단순히 기술적인 테크닉이 아니라 사찰음식에 깃든 정신, 경전말씀을 바탕으로 한 음식철학, 수행자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1994년 중앙승가대학에서 졸업논문으로 사찰음식문화연구를 쓴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솔직히 기분이 어떤가. 제철음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찰음식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도 대기자만 650명이 넘는데 그 분들 모두 제가 유명해서 오는 건 아닙니다. 사찰음식 먹고 우울증이 낫고 아토피가 치료되고 조리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몸이 아파서 오는 겁니다. 제 강의엔 농심 관계자도 오고, 수녀님도 오십니다. 신기하죠? 식습관 바꿔 시한부 선고 이겨내 몸에 좋은 사찰음식=건강식 주목 절 음식은 파마늘 등 빼는 것 미학 담백한 맛에 외국인들 원더풀 연발 내겐 사찰음식 강의가 곧 수행의 길 내고향 수원서 세계화대중화 이끌것 -비구니스님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생소하다. 스님이 수행에나 충실해야지하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것 같다. 20여 년 전만해도 비구니가 대중 앞에서 사찰음식을 강의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죠. 어른 스님들의 걱정스런 눈빛도 있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이 생애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여러 스님들께서 독려해주셨고 사회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죠. -출가 전에도 음식 만들기에 흥미가 있었나. 친할머니, 외할머니 두분 다 궁중 수라간 상궁이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식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어느 점쟁이가 저한테 그러는데 스님은 주지 살지 말고 주지 살 에너지로 책을 내고 사찰음식을 만들어 세계에 알리라고. 또 전생을 보는 사람이 전화를 하더니 제가 1천600년전 티벳에서 사람을 치료해주는 수행자였다고 하던데.(하하) 다 요리와 일맥상통하네요. -음식 만드는 것을 수행이라고 봐도 되는가. 저는 요리사가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 마음을 맑게하고 부처님 법을 전해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죠. 요리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편이고 그들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이끌어주는 수행 방편일 뿐입니다. 초창기 땐 모든 것이 수행인 줄 몰랐었죠. 하지만 사찰음식을 하면서 나 스스로도 불성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수행을 돕고 건강과 영혼을 맑히는데 도움을 주는 사찰음식 강의가 곧 수행임을 깨달게 됐어요. 저는 치료는 해 줄 수 없지만 사찰음식을 통해 몸속의 독소를 빼고 병고를 녹여내는 방법을 일러 줄 수는 있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사찰음식을 몸에는 좋지만 맛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생각을 바꾸면 그 음식이 맛있어져요. 음식을 바꾸려하지 말고 생각을 바꾸고 사찰음식을 만나면 맛있어집니다. 생각을 바꾸면 맛의 기준이 달라지는 거죠. 그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냄비에 끓였더니 까만 색소가 냄비에 딱 붙어 안 떨어져요. 제과업체나 아이스크림 회사분들은 저를 별로 안좋아라 하죠.(하하). 저는 샘표 사장한테도 서슴없이 말해요. 양심적으로 만들고 사회적 책임을 지라고. -채소를 씻을 때 마구 흔들어 씻으면 안 된다, 썰 때 도마 위에서 너무 큰소리를 내면 채소가 스트레스 받는다, 상을 차릴 때도 상 중앙에 간장과 김치를 놓아야 한다는 등 사찰음식을 가정에서 차려 먹기는 다소 번거로워 보인다. 밥 먹기 전에 간장을 먼저 먹으면 체하지 않아요. 온 정성을 다해 식재료의 불성을 온전히 살려 정갈하게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 수행의 완성입니다. 어머님 부처, 아버지 부처, 남편 부처, 아내 부처, 아들 부처, 이웃 부처께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먹는 사람도 부처님처럼 대한다면 그는 이미 성불한 존재죠. -사찰음식의 기본이자 우리 전통음식의 백미인 장과 김치 담그기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요즘 장 담글 줄 아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다. 도시에서 메주 띄우기도 힘들고 장독 관리도 어려워 인스턴트를 구입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데 가족 건강을 생각한다면 고달프더라도 직접 담가야 먹어야 합니다. 양평연구소에 가면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380개나 있는데 모든 요리의 기본이죠. -화성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에서 오랫동안 수련회 음식포교사로 활동했다. 아이들에게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 밥을 차려줘야 한다는 스님의 밥상머리 교육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호박을 안 먹던 아이들에게 소금간 하고 유기농 통밀가루로 부쳐줬더니 맛있게 먹는거 있죠. 엄마들이 깜짝 놀라더라구요. 저는 단지 식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알려줬을 뿐인데. 나쁜 음식을 먹은 아이들은 화를 잘 내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참지 못해 폭력을 일삼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음식 먹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합니다. 좋은 음식이 좋은 성품을 만든다는 걸 어른들이 알아야 하는데. -사찰음식의 세계화, 가능하다고 보는가. 외국인들이 오신채 즉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넣지 않고 재료의 불성을 온전히 살린 사찰음식의 담백한 맛이 최고라고 찬탄합니다. 특히 슬로우푸드라는 사실도 주목하고 있어요. 독일 대학생, 외국인 쉐프들이 사찰음식 배우고 싶다고 몰려옵니다. G20 정상회의 때 외국 정상들이 우리나라 김치를 안 먹었다고 해요. 파, 마늘향이 너무 강했던 거죠. 청와대 한 관계자분께서 선재스님표 김치를 올렸어야 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절 음식은 빼는 것이 미학이죠. 파, 마늘, 젓갈을 빼고 만들다 보니 외국인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죠. -현대인은 패스트푸드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건가. 화학조미료, 가공식품, 청량음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파괴합니다. 먹지 마세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제철음식이야 말로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좋은 약이죠. 그래서 저희 연구소는 1년 동안 제철음식을 계절별로 제대로 배워야 수료증을 발급해줘요. 그리고 비싸도 유기농으로 드세요. 내 몸과 영혼을 맑게 해주는데 더이상 뭐가 더 필요합니까. 조금 먹더라도 몸을 망치는 것은 먹지 말라는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수원 금곡동이 고향입니다. 개발 때문에 제 고향은 없어졌죠. 하지만 수원에 제 연구실도 갖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수원은 왕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거기에 마음이 갑니다. 수원 화성의 역사적 가치에 부흥하는 사찰음식을 세계에 알려주고 싶어요. 그 일을 수원 화성에서 하고 싶은 거구요. 평생 수원에 안착해서 사찰음식을 강의하고 사찰음식 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면 언제든지 가고 싶은데. 제주도, 경상도에서 땅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수원에만 있는 독특한 성(城)문화와 함께 사찰음식 강의를 통해 생각을 바꾸고 입맛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서 사양하고 있습니다. 대담=박정임 문화부장 bakh@ekgib.com 정리=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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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기자
2011-06-05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