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공한 의사가 아닙니다. 성공, 정말 아닙니다.
그것은 이 노인네를 배려한 격찬이고, 전 그냥 조금 부지런하고 근면한 의사일 뿐입니다. 수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형외과를 34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이춘택(69) 병원장의 말이다. 그는 후배들로부터 수술 권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선배로 칭송받는 원로 의사다. 전라도와 제주도 등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올 정도의 이름난 병원을 운영해 온 명의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수식어만큼은 끝내 사양했다.
때마침 그의 집무실에 소설ㆍ자기계발서ㆍ경제 등 다양한 장르의 손 때 묻은 책들과 수천 번 만지며 연구한 흔적이 배어 있는 무릎 인공 관절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일흔을 코 앞에 두고도 공부하고 일하는, 열정 그 자체다. 그저 근면하게 최선을 다 할 뿐이라는 이 병원장의 소신과 삶을 오롯이 방증한다. 비결과 원동력을 물었다.
Q 정형외과 전문의로 시작해 30년 이상 병원 운영까지, 정말 긴 시간 한 길을 걸어온 소회가 궁금하다. 의료 환경도 참 많이 변화했는데,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소회는 없다. 아직 소회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산업이 발달하다보니 너무 많은 것을 크게 다 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역량만 따라 준다면 나 역시 다 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 참 어렵다. 다행히 나는 처음부터 정형외과를 선택해 전문적으로 육성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꾸준히 하다보니 발전하는 과정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춘택 병원에 대해서도 아주 큰 성과는 아니더라도, 목마른 등산객에게 더 좋은 물 한 잔 정도는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Q 곧 칠순이다. 고령의사로 보기 드물게 여전히 직접 수술을 집도해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환자들도 원장님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그렇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이나 소신이 있나. A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나. 의사로 태어나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비결이 따로 있겠는가.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한다.
이제 후배들이 하는 것을 보며 가르치는 입장도 됐다. 내가 가진 것을 사장(死藏)할 순 없어서 직접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후배들에게 맡기려고 노력한다.
후배들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이춘택 병원을 거쳐간 의사가 20명이 넘는데다가 다들 의사로, 경영인으로 잘 한다. 우리 병원에서 트레이닝 받으면 다들 잘 한다.(웃음) Q 후배들이 독립하기도 했지만, 고령화시대를 맞으면서 척추 관절 전문병원이 급증하고 있다. 폐해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최근 네트워크 병원이 가진 문제도 가시화되곤 했다. A 과거에 비해 정형외과 전문의가 양산돼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법인체를 제외한 개인병원의 네트워크화는 불법임에도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은 문제다.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확장되는 것은 좋지만, 결국 과다 경쟁이 된다.
한정된 환자에 오히려 의사가 많아져 그로 인한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좀 과도하게, 과다하게 수술 대상의 폭을 넓게 잡아 수술을 권하는 경우가 그 중 하나다. 이 밖에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고 개업했는데, 지금은 버젓이 문 앞에 개원한다. 우리 세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것이 경쟁이 과열된 후배 세대에는 어처구니 없이 상도의를 어긴 일들이 벌어진다.
금붕어라도 잡으려면 여러 조건을 견고하게 갖춰 합당하게 시도해야 하는데, 손으로만 너무 쉽게 잡으려는 느낌이다. 후배들이, 젊은 의사들이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이 남에게 준 피해는 그대로 돌려받기 마련이다. Q 그래서인가. 병원들이 수익 창출에 급급해하는 가운데 수술 권하지 않는 의사, 수술 권하지 않는 병원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을 후배들에게 전한다면. A 간혹 자문을 구하는 후배도 있는데, 충고한다고 될 일은 아니고 개인의 열정과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정의가 아닌 것을 정의로 고집하는 한 대화를 해도 타협되지 않는다.
간혹 우리 병원은 공격적 마케팅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후배 의사가 대외적으로 마케팅하지 않는 대신 환자에게는 공격적으로 마케팅 하는 경우(과도한 수술 권장으로 수익 창출)를 접한다. 정도(正道)가 없으니 궤변을 늘어놓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
나는 의사가 최소한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학적인 것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현상을 의사들이 많이 배워야 한다. 사회는 의학 지식에 수많은 것이 더해져 이뤄진다. 의학공부 좀했다고 학식있는 것처럼, 그것이 전부인 것 마냥 행동하면 안 된다.
섭렵, 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가. 의사는 폭넓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 나이들어 이상한 소리한다고 할 수 있겠다.(웃음) 어느 조직이든 그 물을 흐리는 잘못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경찰도, 언론도 존재하며 교화, 교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겠나. 다만 의료계에 최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4~5%로 높으니, 2%대로 내려야 한다. Q 자발적인 조직 정화, 지역사회 의료 소외계층을 보듬는 무료 인공관절 시술 등 사회 공헌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이유는. A 우리 병원 정도는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내부적으로 기본 시스템이 잘 짜여져 있다. 나도 시간나면 무료 진료에 나서지만 일단 우리 직원들이 동참해줘서 든든하고 참 다행스럽다. 특히 파도회(파트너에게 서로 도움을 주는 위원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업무기획팀ㆍ문화복지팀ㆍ사회봉사팀으로 구성돼 있다. 병원방송반 운영, 병원 행사 주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돌봄 등 팀별 특화 활동을 자발적으로 벌인다. 이 모임이 우리 병원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착한 병원이기 이전에 실력이 정평 나 있다. 위기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A 초심으로 돌아가라! 어느 기업가나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욕심내면 안 된다. 자기것만 먹으면 된다. 이웃 동네까지 기웃거리고, 잡아먹으면 안 된다. 내 동네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병원은 선택진료비를 받지 않으려 한다. 선택진료비는 환자들이 전문성 높은 의사에게 진료 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비급여 항목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담이었다.
정부가 이를 축소하면서 병원 측에 그 손실분을 보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병원은 받지 않을 방침이다. 미리 앞당겨 매를 맞겠다는 것이다. 그 보상지원금을 받지 않고 살아남아야만 미래 경쟁에서도 이길수 있다. 또 한 가지, 우리 병원의 전 직원은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 없다. 말로는 쉽지만, 참 도약하기 어려운 과정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본이 됐다.
다들 욕심 내서먹다가 소화 못하고 설사 나 두손두발 다 들고 떠난다. 우리 병원이 돋보이는 점은 그것이라 생각한다. 전 직원이 초심으로, 욕심 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이다. 남에게 인색하지 마라. 과장들은 월급의 10%는 다른 사람을 위해 써라고 말해왔는데, 올해 우리 직원들의 몫이 그것이다. 힘들수록 인색하지 않고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Q 이춘택병원은 세계 최초로 로봇인공관절 수술 1만명을 기록한 병원이다. 최근 내과를 확대 개설하고 새로운 의료진 영입, 최신 의료기기 도입 등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 전략과 목표는 무엇인가. A 가치병원(가고 싶은 병원, 치료받고 싶은 병원)이 되자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 실력을 기르고, 친절을 다하고, 정략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실천 방법이다. 1981년 개원한 이래 최근 환자중심의 지상 8층으로 리노베이션, 184병상과 17명의 의료진으로 구성해 약 220명이 근무하고 있다. 모두 함께 한 마음으로 가치병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대담=이선호 문화부장 정리=류설아기자 사진=전형민기자
정치
이선호 부장
2015-03-01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