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 6급 공무원인 이희란씨(42·여·인천시 동구 만석동)에게선 이상스럽게도 그 흔한 소독약이나 알코올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마음이 봄볕처럼 여려서일까. 아니면 늘 엷은 미소를 입에 달고 살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그의 이름 옆엔 시조시인이란 호칭이 붙어 다닌다. “여고를 졸업하던 해 동인지인‘현장문학’에 자유시를 발표했어요” 어줍잖은 문학소녀의 치기를 고맙게도 기성문단이 받아 들였다는게 그의 표현이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소녀에게 문학이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을 제시해 준 은인은 현재도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는 계산 용진호선생이다. “그분에게서 시조작법을 배웠고 새솔문학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정형시를 읊게 됐어요” 틈을 쪼개 가슴으로 쓴 작품들은 모두 200여편. 지난 94년‘어깨 힘 좀 푸시게’란 제목으로 시집도 냈다. 그러나 그녀는 생계를 위해 문학 대신 전공을 임상병리과로 택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후 완도보건소를 시작으로 각종 실험기구와 플라스코, 약품들로 빼곡한 실험실에서 중년을 맞고 있지만 요즘도 문학은 그녀를 설레이게 한다.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올 봄에 그는 참으로 몇년만에 활짝 기지개를 펼 계획이다. 현재 살고 있는 만석동에서의 삶을 멋드러지게 작품속에 담고 싶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독서실에서 작업했던 씁쓸한 추억이 오히려 달콤하네요.” /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22일 부임한 장화전 한미은행 인천영업본부장(54)은 광주제일고와 고려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은행을 거쳐 지난 85년 한미은행에 입성했다. 한미은행 대전·장안평·여의도지점장 등을 역임하며 탁월한 영업능력을 발휘한 점을 인정받아 이번 주총에서 상임위원급인 인천영업본부장에 발탁됐다. 기업에 대한 분석력과 영업 및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으며 국내영업통으로 정평 나있다. 전남 신안 출신으로 부인 조영애씨와 1남1녀. 유도3단 등 각종 운동에 다재다능하며 취미는 바둑. /류제홍기자 jhyou@kgib.co.kr
시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89년 3월 첫방송을 시작한 안양뉴스가 방영 11주년을 맞았다. 안양뉴스는 현재 뉴스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정기열씨(38·전기8급)를 비롯, 정은희아나운서(28), 촬영기사 등 모두 8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20여명의 제작진들이 거쳐간 안양뉴스팀은 주말에 이뤄지는 행사 제작을 위해 매일 밤10시가 넘는 야근작업은 물론, 휴일도 잊은채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같은 열의로 총 800호를 맞도록 단 1회도 중단없이 뉴스를 방영해 오고 있으며, 일반적인 시책 홍보외에 생활정보, 문예행사, 구인안내 등 알찬 내용을 방영하고 있다. 안양뉴스팀은 특히 ‘지방자치를 짚어본다’ ‘담배꽁초 안버리는 도시조성운동’ ‘안양의 자랑거리 BEST 10’등 신선한 아이템이 돋보이는 기획뉴스를 제작, 방영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정기열 팀장은 “직원들의 열의로 안양뉴스가 내고장에 대한 여론형성과 시민화합에 기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이용성기자 leeys@kgib.co.kr
‘제18회 2000대한민국 난대전’에서 안산난협회 소속 회원들이 출품한 난들이 농림부장관상인 대상(중투복색화)을 비롯, 금상(사피, 주금화, 기화소심, 중투화) 4개부문, 동상(주금화, 소심, 복색화) 3개부문에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지난 17∼20일까지 충북 청주시 예술의 전당에서 CJB(청주방송)와 (사)대한민국 자생난협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에 그동안 정성들여 가꿔온 난들을 출품한 안산난협회 회원들은 상위권에 입상함으로써 그 명성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종보 회장은 “안산지역의 난 문화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됐으며 아름다운 난을 전시민들이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안산=최현식기자 hschoi@kgib.co.kr
“새마을 운동이 국민운동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마을 운동 광명시지회장 오현척씨(59·광명시 철산동 한신아파트). 지난 97년 새마을 운동 광명시지회장으로 취임한 오회장은 남녀 새마을지도자들의 의지를 모아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한 내고장 환경가꾸기, 건강한 사회가꾸기, 활기찬 고장가꾸기 운동을 전개하는등 푸른 새광명 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또 환경봉사대를 결성해 매년 안양천 일대에서 정화활동을 실시하는가 하면, 알뜰마당 및 농산물직판장 운영을 통해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함께 IMF로 어려움을 겪던 98년에는 나라사랑 금 모으기 운동을 벌여 2만686돈의 금을 모았으며, 고철모으기 경진대회와 재활용품 모으기 알뜰벼룩시장 운영으로 4천여만원의 기금을 적립,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이밖에도 학온동 농경지와 유휴지 개간으로 새마을 가족의 화합과 단결을 통한 제2새마을운동 기반구축에 노력하고 있다./광명=권순경기자자 skkwon@kgib.co.kr
▲교무부처장 겸 교수학습센터소장 김영민 ▲입학관리본부장 김의곤 ▲전산정보실장 유원희 ▲평가관리실장 권오양 ▲출판부장 차동우 ▲신문사 주간 겸 교육방송국 주간 김민배 ▲인하타임즈 주간 정문수 ▲외국어교육원장 이병춘 ▲중등교원연수원장 박원 ▲박물관장 서영대 ▲보건소장 이용호 ▲전산정보실 부장 김학일
소설 ‘우담바라’작가 남지심씨, 정철진 부부가 강화군 송해면사무소에 700만원 상당의 도서를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남씨 부부는 최근 강화군 송해면사무소를 방문, 농촌지역 주민의 문화의식을 고취하고 문화복지 농촌조성 및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육성하는데 사용해 달라며 700만원 상당의 도서를 기증했다. 이들 부부의 도서기증은 남씨가 강화를 무대로 한 소설 팔만대장경을 집필하기 위해 송해면에 거주하면서 사료조사차 면사무소를 방문했다가 예산부족으로 자치문고 설치를 위한 도서구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송해면 관계자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해 도서기증 의사를 전달하면서 비롯됐다. 정씨는 “이번 도서기증이 주민들의 화합분위기를 조성하고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육성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종만기자 kjm@kgib.co.kr
금촌축구참사랑연합회(회장 박 정)주최 제2회 금촌축구참사랑 연합회장기 축구대회가 19일 문산중·종합고교 운동장에서 12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돼 금촌조기회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파주=고기석기자 koks@kgib.co.kr
시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89년 3월 첫방송을 시작한 안양뉴스가 방영 11주년을 맞았다. 안양뉴스는 현재 뉴스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정기열씨(38·전기8급)를 비롯, 정은희아나운서(28), 촬영기사 등 모두 8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20여명의 제작진들이 거쳐간 안양뉴스팀은 주말에 이뤄지는 행사 제작을 위해 매일 밤10시가 넘는 야근작업은 물론, 휴일도 잊은채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같은 열의로 총 800호를 맞도록 단 1회도 중단없이 뉴스를 방영해 오고 있으며, 일반적인 시책 홍보외에 생활정보, 문예행사, 구인안내 등 알찬 내용을 방영하고 있다. 안양뉴스팀은 특히 ‘지방자치를 짚어본다’ ‘담배꽁초 안버리는 도시조성운동’ ‘안양의 자랑거리 BEST 10’등 신선한 아이템이 돋보이는 기획뉴스를 제작, 방영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같은 제작진들의 노력으로 안양뉴스는 현재 CATV 55번과 유선 5번으로 매일 5번씩 매월 20회에 걸쳐 방영되고 있으며, 인근 과천·군포·의왕시를 포함해 22만여가구의 시청자를 확보한 명실상부한 뉴스매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정기열 팀장은 “직원들의 열의로 안양뉴스가 내고장에 대한 여론형성과 시민화합에 기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이용성기자 leeys@kgib.co.kr
“검단의 김포환원은 김포의 역사를 바로세우고 잘못된 정책오류를 시민의 힘으로 바로잡는데 의미가 있는 겁니다” 검단지역 김포시환원 범시민추진위원회 이용신 위원장(55). 그는 검단의 김포환원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검단이 인천으로 편입될 당시의 기억으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살벌했던 군사통치시대가 끝나고 맞이한 문민정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새 시대를 기대했던 그에게 국토의 효율적 관리라는 명분아래 자행된 검단의 인천편입은 분명 배신이었다. 검단의 인천편입 당시 도의원이었던 그는 임기 1년여를 남겨 놓고 도의원 선거도 포기한 채 검단의 인천 편입을 막기위해 검단편입 반대 투쟁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는 주민들과 분노하고 하나가 돼 검단의 인천편입에 맞서 왔다. 그러나 그와 주민들의 외침은 거대한 정치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95년 3월1일 검단은 인천에 편입됐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빼앗겨던 검단을 다시 찾아오자는 작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정의가 정치력 앞에 무릎을 꿇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곤 한다. 그는 김포와 검단을 잇는 여우제 고개길을 걸을 때마다 울분이 터진다. 다시 5년전의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일을 무엇하러 다시 하느냐” “정책결정을 다시 바꿀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회의적인 생각에 그는 사람은 정당함과 당위성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돈과 명예를 쫓는 것은 순간이지만 정의는 이런 것들과 시간을 초월해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포=권용국기자 ykkwun@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