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0. 동두천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어린이들의 밝고 환한 얼굴은 쳐다만 봐도 즐겁다. 천국은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이 아닐까. 동두천시 소요산 자락에 자리 잡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관장 김종길)은 우리나라의 희망인 어린이들이 꿈을 찾고 재능을 키우는 놀이터이자 배움터다. 어린이박물관을 품은 소요산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와 그의 아내이자 설총의 어머니인 요석공주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산으로 사계절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2016년 5월에 개관한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은 동두천시가 운영하다가 2019년에 경기도에 이관, 새롭게 개편하여 재개관한 2020년부터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도립박물관이다.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은 의정부, 양주, 포천, 연천, 파주는 물론 서울 북부와 강원도에서도 찾을 정도로 인기 많다. ■ 어린이의 꿈과 상상을 키우는 자연 놀이 숲 상설전시관의 주제가 ‘숲에서 꿈꾸는 어린이’다. 자연 속에서 어린이들이 몸으로 체험하면서 꿈을 키우도록 설계한 상설전시관은 과거의 숲, 현재의 숲, 미래의 숲으로 이어진다. 1층에 공룡존·클라이머존·영유아존이 있다. 공룡존의 주제는 꼬마 브라키오와 함께하는 과거의 공룡 숲 탐험이다. 안전 헬멧을 쓰고 지도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긴 목과 꼬리를 가진 초식 공룡 브라키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숲의 입구에 도착한다. 언덕을 오르고 기다란 동굴을 통과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브라키오의 몸속으로 들어가 커다란 위에서 소화를 돕고, 공룡 똥 속 작은 씨앗이 자란 커다란 나무에 올라 브라키오와 이야기한다. 둥글게 깎은 편백 나뭇조각을 모래처럼 깔아놓은 바닥에 앉아 장난감 삽으로 바닥을 파자 공룡 화석이 나온다. 공룡의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놀다 보면 쉼 없이 되풀이되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절로 깨닫게 된다. ‘바다 놀이터’는 36개월 미만 영유아들의 공간이다. 보호자도 함께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해변, 얕은 바다, 깊은 바다로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서 미디어 바다 체험, 몽돌 쌓기, 범고래 모습, 암초 터널, 해초 붙이기, 물렁 바닷속 땅, 대왕문어 다리 당겨보기, 바다생물의 소리 듣기 등 오감으로 전시를 체험하며 바닷속 풍경과 다양한 바다생물을 만난다. 가상의 바닷가 해변의 생물들이 관람객을 피해 움직이는 ‘미디어 바다’가 신기하다. 놀이기구 곳곳에 적용된 첨단의 과학기술이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한다. ■ 북부의 별, 아이들의 가슴에 품은 우주 2층에는 숲생태·계곡물·오감숲·교육존이 연결돼 있다. 숲생태존의 주제는 ‘깊은 숲 지혜의 나무를 찾아서-커다란 개미굴과 함께 있는 현재의 숲 탐험’이다. 숲속 놀이터에서 타는 미끄럼틀은 신난다. 미끄럼틀 아래 있는 개미집 속으로 떠나는 탐험은 더욱 즐겁다. 거미줄 모양이 그려진 ‘스파이더맨 방방이’에서 뛰놀고 새와 다람쥐 같은 숲속 친구들을 만난다. 계곡물존은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서 놀면서 만나는 과학과 비밀의 연못 공간이다. 숲생태존에서 시작된 물길이 흘러서 계곡물이 되고, 계곡물은 커다란 비밀 연못을 만든다. 공을 굴려 솟아오르는 분수에 올리면 공이 날아가고, 손잡이를 힘차게 돌리면 물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연잎을 밟자 물고기들이 몰려나온다. 꿀벌집 미로를 통과하는 오감숲존은 박물관의 오감 캐릭터(킁킁이, 더듬이, 냠냠이, 쫑긋이, 궁금이)들과 함께 숲속의 감각을 일깨우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다섯 가지 감각 ‘오감이’는 숲을 풍요롭게 만든다. 오감이들이 숨어 버린 비밀의 숲의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숲의 속삭이는 이야기 소리에 귀 기울인다. 어두워진 숲에서 야행성 생물들의 특별한 능력을 알아보고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펴본다. 미디어실에서 새와 곤충들이 어울려 사는 생생하고 활기찬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숲속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물고기들과 놀면서 숲은 수많은 생명을 품은 우리의 소중한 친구임을 배운다. 숲과 계곡물, 오감숲을 지나 자연을 주제로 한 미디어 교육실인 ‘교육존’으로 이동하다 보면 어느덧 어린이들은 자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3층에 조성된 옥상정원을 탐방할 차례다. 옥상정원을 거닐며 박물관 마당과 이어진 소요산 자락을 굽어보면 자연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어린이가 주인공... 함께 만들어나가는 박물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구성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도민과 어린이들이 박물관의 ‘자연 놀이 숲’을 체험하고 꿈을 키울 수 있을까 궁리한다. “우리 박물관은 어린이들의 꿈, 그 아름다운 작은 꿈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며 그것을 상징하는 별의 모양으로 설계했어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린이박물관은 땅에 박힌 별입니다. 소요산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별들의 상상 놀이터인 어린이박물관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입니다” 박물관 관계자의 소개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건물의 바깥을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수를 펼친 듯한 율동성 있는 입면으로 계획한 것도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깥 공간과 1층과 2층의 상설전시 공간, 그리고 옥상정원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숲속을 흐르는 시냇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다. LED조명을 활용한 야간 경관이 무척 아름다운데,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우주로까지 키우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지적 호기심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박물관, 지역과 특화된 가족 친화 박물관, 지역 사회와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박물관의 운영 목표입니다” 어린이박물관은 어린 관람객들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북부어린이박물관은 2022년 봄부터 1기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김종길 관장이 부임하면서 꾸린 박물관 자문단은 무슨 일을 할까? “박물관에 관심과 열정을 가진 어린이와 가족을 선발하여 자문단을 꾸렸지요. 1기 자문단은 12명의 어린이와 12명의 가족 보호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박물관 전 과정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수행하지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꿈과 상상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설계한 어린이박물관의 구조만큼이나 자문단의 구성과 운영 방식이 신선하다. ■ 아이들을 위한 학교 밖 미래학교 박물관 누리집에서 전시를 살짝 체험해 볼 수 있다. ‘웃음-빛’은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을 맞이해 지난 3월에 실행한 ‘2022 웃는 내 얼굴 그리기’ 공모전 수상작을 전시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린이의 ‘코로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웃음을 통한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연 공모전이다. 12가지 동물 중에서 마음에 드는 동물 캐릭터를 선택하여 마우스를 클릭하면 캐릭터가 클릭한 곳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마우스를 움직여 공간 전체를 둘러보며 어린이 작품 45점을 감상할 수 있다. 본인 캐릭터와 닉네임을 설정해 다른 이용자들을 만나 채팅으로 소통하며 전시를 즐길 수도 있다. 11월부터 2023년 1월 말까지 자원 순환과 탄소 저감을 주제로 한 전시 ‘LETS GO! 깐따삐야 : 지구별 대모험’을 진행한다. 어린이들이 집과 학교, 동네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자원 활용법을 알려준다. 박물관은 어린이들에게 환경에 관한 관심과 바른 태도를 길러주기 위해 ‘오감이 환경 동화’ 시리즈를 발간했다. 어린이박물관 캐릭터 ‘오감이’가 안내자 역할을 하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환경문제를 쉽게 전달한다. 김종길 관장에게 박물관의 비전을 들어본다.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밖 미래학교입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적 예술적 자산은 그대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박물관은 미래학교로서의 ‘박물관교육학’을 새로 정립하고자 합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9.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광주시 퇴촌면 가새골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성노예’로도 불리는 ‘위안부’ 관련 세계 최초의 박물관이다. 1998년 8월에 개관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관장 선경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 부설이다. 역사관을 관람하기 전 마당에서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열다섯 분 할머니들의 흉상이다.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정복수 할머니를 비롯해 모두가 저고리를 입고 있다. 할머니들의 흉상 뒤로 소녀상이 서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녀상은 의자에 앉은 모습이지만, 최초의 소녀상은 이처럼 서 있는 상이지요. 이 소녀상은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을 바탕으로 윤영석 작가가 형상화한 것입니다” 오정임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며 소녀상과 흉상을 다시 살피며 기원한다. 이승에서 못다 핀 꽃들이지만 저승에서는 활짝 꽃 피우기를! ■ 광주에 세계 최초로 위안부 박물관을 세우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역사관 입구가 좁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하기 전까지 위안부의 존재는 역사의 저편에 밀려나 있었다. “여기 이곳, 잊을 수 없는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 이곳 결코 쉽게는 아물지 않을 역사가 있습니다” 대동주택 곽정환 회장의 희사로 할머니들의 안식처 나눔의 집과 역사관이 이곳에 마련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역사관으로 들어선다. 제1전시관은 ‘역사의 장’이다. ‘일본군 위안부란 무엇인가?’, ‘시대 상황과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성립’, ‘어떤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관련 활동연혁’으로 구분해 위안부의 실상을 알려준다. 기다란 원통의 이름은 ‘타임터널’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이름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인 것이다. 오래 전에 완료되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위안부의 역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제2전시관 ‘기록의 장’에는 태평양전쟁 당시의 사진자료와 기록을 비롯한 몇 가지 특별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낡은 약병과 시험관, 벌겋게 녹슨 총검과 휘어진 군도, 군인들이 위안부에게 돈 대신 줬던 군표 같은 유물들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1970년대 오키나와에서 밝혀진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라는 패널이 주목된다. 충남 예산 출신의 배봉기 할머니(1914~1991)는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가장 먼저 증언한 분이다. 광복이 돼도 귀국하지 못하고 오키나와에 머물고 있던 그는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를 일본에게 반환될 때 강제출국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성노예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1975년 지역신문에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었으나 당시 조총련 관계자가 할머니를 보살폈기 때문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해 진실을 밝히다 제3전시관 ‘체험의 장’은 전장에서 위안부의 생활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한 위안소 입구에 이용시간과 요금표가 붙어있다. 나무 침대와 세숫대야를 놓는 받침대가 놓여 있는 위안소 안은 몹시 좁고 삭막하다. 끌려간 소녀들은 이처럼 숨 막히는 공간에서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제4전시관 ‘고발의 장’에서 마주한 ‘끌려간 피해 여성들’과 ‘세계 각지의 피해 여성들’이란 패널은 중국, 필리핀, 타이완과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성노예로 동원했던 사실을 알려준다. 위안부 여성이 불룩한 배를 잡고 서 있는 흑백사진이 있다. 임신한 그 여성은 해방 후 북한에 살았던 박영심이다. “북한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일본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하고 있지요” 후원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동판에서 유명인의 이름을 여럿 발견한다. 역사관 관계자가 들려주는 사연이 훈훈하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후원했더군요. 학생들이 물건을 만들고 팔아 성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 그림과 유품으로 전하는 이야기들 할머니들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된 공간에 들어선다. 한쪽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가 줄지어 있다. “할머니들이 남기신 유품과 사진, 영상은 잊힌 역사가 아닌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올바른 역사와 인권과 평화를 구현하고자 했던 피해자들의 평생의 염원을 담은 기록물이지요. 할머니들이 생존했을 때 기록한 영상도 볼 수 있습니다”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이 생전에 활동한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한 맺힌 삶을 삶다’라는 글귀가 없어도 이 분들의 고단한 생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할머니들의 사진과 유품에는 숱한 사연들이 깃들어있다. 평생 절약하며 모은 돈을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이웃에게 기부한 김군자 할머니(1926~2017)의 유언이 묵직하다. “내 장례식비 500만원 빼고 다 필요한 사람에게 쓰소” 일본군에게 잡혀가는 처녀의 슬픔을 표현한 ‘끌려감’과 ‘못다 핀 꽃’ 같은 그림으로 성노예의 실상을 고발했던 김순덕 할머니(1921~2004)의 치마저고리와 하얀 버선은 수요집회를 알려주는 유품이다. 17세에 인천에 일하러 가다가 납치되어 중국 하이난 섬에서 6년 간 일본군 성노예로 피해를 입은 김옥주 할머니(1923~2000)는 자신과 같은 전쟁 희생자인 ‘라이 따이한’을 위해 써 달라며 2천만 원을 기부한다. 평생 힘들게 살았지만 모은 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캄보디아에 우물을 만들어 기증했던 김화선 할머니(1928~2012)의 소망은 무엇일까? “나도 결혼해서 여자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 친구들과 하동에 놀러갔다가 중국으로 끌려가 10년 간 성노예로 피해를 당했던 전남 광양 출신의 문명금 할머니(1917~2000)는 정부의 생계지원금 등 전 재산 4천3백만 원을 베트남 전쟁희생자를 위한 기금으로 기부해 ‘사죄와 평화 기념관 건립을 초석을 다졌다. 광주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부산, 서울, 대구에도 역사관이 설립되고 일본의 도쿄, 중국의 난징과 상하이, 대만의 타이페이 등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한국에서 시작한 ‘수요집회’는 세계 각지로 번져나갔다. 오사카, 고베, 교토 등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도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소녀상도 미국과 독일에도 세워졌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까닭이다. ■ 대지의 여인처럼 굳세고 당당하게 자신들이 당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소망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할머니들의 그림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2층 추모 공간에는 국내외 피해자 명단 250분과 150분의 사진과 피해자 할머니들의 핸드 프린팅과 풋 프린팅을 전시하고 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영화 ‘귀향, 소녀들의 이야기’의 소품도 볼 수 있다. 제2역사관 뒤편 마당에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추모비에는 할머님들의 한이 담긴 생전에 강조하셨던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임옥상 작가의 조각 ‘대지의 여인’은 한국 여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로 남겨 두어야한다”고 당부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당부를 실천해왔다. 그러나 최근 나눔의 집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로 역사관은 한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잘못을 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 역사관이 전쟁과 여성, 인권과 평화,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우뚝 서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8. 광주 ‘경기도자박물관’

평일인데도 곤지암도자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광주 곤지암도자공원은 ‘문화와 역사’, ‘놀이와 체험’, ‘자연과 예술’로 구성돼 한나절 즐겁게 보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곤지암도자공원은 ‘문턱 없는 길’ 즉 보행도움을 받지 않고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자랑이다. 공원 중앙에 윗부분만 보면 청자 차병의 뚜껑 같은데 전체를 보면 챙이 넓은 모자 같은 독특한 모양의 흰색 건물이 경기도자박물관이다. 경기도자박물관(관장 강명호)은 한국도자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 주변에 전통작가공방과 전시장, 왕실 도자 판매관, 도자 체험교실, 곤지암열린마당 같은 여러 시설이 가마 모양의 돔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자박물관을 개관할 때부터 일하고 있는 강명호 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 탐방에 나선다. “경기도자박물관은 도자기 축제를 위한 전시용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라 전시 공간이 아주 넉넉합니다” 경기도자박물관은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하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프레스코 1세대 작가 진영선이 협업한 작품이라고 한다. 현재 1층에는 ‘흑자: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라는 흥미로운 기획전 열리고 있다.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알지만 흑자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검은 도자기는 이미 백자가 유행할 때부터 만들어졌으나 아주 소수에 그쳤기에 일반인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흑자는 흑자만의 특별한 매력을 가진 도자기이다. 흑자를 알리는 이번 기획전은 분명 기대 이상의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 아름다운 도자기로 배우는 우리 역사 경기도자박물관이 광주에 위치한 까닭은 무엇일까? “경기도 광주는 면적의 약 80%가 산지여서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땔감이 풍부한데다가 한강을 따라 서울과 가까워 1467년 조선왕조의 왕실그릇제작소인 사옹원 분원이 설치됐습니다. 광주는 조선시대 500년간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했던 고장이지요” 강 관장이 지은 ‘청소년을 위한 경기도자 이야기’를 보면, 도자기를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불에 구워서 새로운 성질의 물건으로 만든 것”이라 소개하고 있다. 광주는 흙과 물과 나무, 도공까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고장이었다. 1층 도자문화실은 도자의 개념과 역사, 제작기법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전시물을 비롯해 영상과 모형으로 도자기를 쉽게 알려준다. 현미경도 설치하여 도자기의 표면과 속까지 살필 수 있도록 꼼꼼하게 배려한 점도 돋보인다. 그릇처럼 원형으로 이루어진 도자문화실을 차분히 둘러보면 도자기는 과학기술의 집적임을 확인하게 된다. 1250도에서 1300도의 고온에 구워야하는 백자는 16세기까지 명나라와 조선만이 간직한 첨단의 기술이었다. 도자기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가져야 전시 유물과 제대로, 새롭게 만날 수 있다. 계단으로 2층으로 이동하다가 천장을 올려다보니 벽화가 나타난다. 한국 프레스코 1세대 작가 진영선 교수의 작품이다.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손이 마치 천지를 창조하는 신의 손처럼 거룩하게 느껴진다. 상설전시실은 한국 도자기의 멋과 아름다움이 가득한 공간이다. “이것은 찻잔으로 짐작되는 ‘백자양각 연판문 잔’입니다. 고려청자의 탄생과 발전은 한국 차 문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지요.” 한국에서 차 문화가 가장 발전한 시대가 고려라는 오래된 사실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깨닫는다. 고려시대에도 백자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도자기와 차의 만남은 행복한 결과를 낳았다. 청아한 빛깔을 창조한 고려청자에서 선비들의 정신을 담은 조선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나타난 분청사기도 매우 아름답다. 시원시원한 문양과 따스한 질감을 가진 분청사기에서 한국인의 멋과 여유를 발견한다. ■ 경기도 광주, 조선백자의 고장이 되다 “1467년, 조선 조정이 광주에 국영백자가마인 사옹원 분원을 설치하면서 광주는 조선 백자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맑고 깨끗한 빛깔과 단아한 모양의 ‘백자 음각大명 접시’는 초보자의 눈에도 명품으로 보인다. 그 옆에 놓인 백자의 이름은 ‘백자음각 현(玄)명발’이다. “광주 관요에서 제작된 양질의 백자 굽 안에 ‘천자문’의 순서대로 ‘천, 지, 현, 황’을 음각으로 새긴 것입니다” 역시 ‘분원’에서 만들어낸 백자답게 모양과 빛깔이 빼어나다. 도자기기 표면에 그려진 그림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강 관장은 ‘백자철화 매죽문 편병’을 주목한다. 자세히 보니 깨진 것을 이어 붙인 자국이 선명하다. 그럼에도 이 유물을 특히 주목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이 편병은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지요. 같은 작품이 두 점 더 있습니다.” 온전한 작품 두 점이 있기 때문에 이 유물에 담긴 이야기와 가치가 살아난 것이란다. 유물을 소개하는 글을 보니 제작년도를 ‘1640~1648년’이라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광주의 관요는 대략 10년마다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10년이면 주변의 땔나무가 떨어져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분원 도자기에는 간지가 적혀 있어 년도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푸른 빛깔을 내는 철화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아주 비싼 재료였다. 수입품이었기에 고급 제품에만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도자기에 철화로 그려진 그림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도화서 화원을 분원에 파견하여 그림을 그리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달항아리도 조선인의 여유로운 마음을 닮았다. 완벽한 원형보다 약간 균형이 어그러진 것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상상의 짐승이다. 백자에 그려진 용의 발가락 개수가 다섯인지 넷인지를 살펴본다. 다섯은 황제, 넷은 왕이 사용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왕만이 사용했던 용 그림도 세월이 흘러 조선후기가 되면 민간에서도 사용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백자를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문화도 왕실에서 양반을 거쳐 평민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음식을 담는 작은 백자접시 뒷면에 단정한 한글 서체로 씌어 있다. 조선의 도공들도 한글을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도자기에 새겨진 길상문도 사연을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다. “목숨 수(壽)자와 십장생과 복숭아는 무병장수를, 포도와 석류와 물고기는 다산과 풍요를, 모란과 박쥐는 부귀와 다복을, 잉어와 매미와 두꺼비와 매난국죽 사군자는 학업과 출세를, 용과 호랑이와 수탉은 벽사의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전통가구와 함께 백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고려전기부터 조선후기까지 도편 1,110여점을 연대기적으로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경기도의 도자의 역사와 특질을 속살까지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도자와 조각이 어우러진 ‘예술의 숲’ 경기도자박물관은 개관 이후 현재까지 기획전과 특별전을 꾸준하게 열어 한국도자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세상에 알려왔다. ‘다향다색-차문화 속 청자 이야기’(2020), ‘코발트 블루 : 조선후기 문방풍경’(2021), ‘복, 간절한 염원의 장식’전(2013),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2014), 경기 정도 600년 기념 특별기획전 ‘백자, 달을 품다’展(2014), ‘빗살무늬-6,000년 경기도자의 첫걸음’展(2015), ‘광주백자: 발굴로 다시 쓰는 분원이야기’(2017), ‘옛 가마터 답사기행’(2016), ‘남북도자 하나되어’(2019), ‘백자에 담긴 삶과 죽음’(2019),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2020)도 주목되는 기획전이다. 경기도자박물관은 66만7천91㎡의 드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도 좋지만 야외전시실도 훌륭하다.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이 왔다. 들려오는 소식도 답답하고 우울한 것들뿐이다. 이러한 때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도자기를 앞에 두고 예술을 논하고,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는 ‘이야기마당’을 거쳐 130여 점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숲속오솔길’(스페인조각공원)을 걸으며 인생을 논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리라.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7. 이천시립박물관

전통의 멋 도자기 : 은은한 색 수려한 선 (재)이천문화재단 이천시립박물관을 품고 있는 설봉산은 이천시민들에게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하고 넉넉한 산이다. 2002년 개관한 이천시립박물관에는 구석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과 함께 청자·분청·백자 등 도자기 1천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 중 주류가 도자와 관련된 것은 물론 이천시가 도자 예술인과 관련 전문 인력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천시는 대한민국 최초로 공예 및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됐고(2010), 국내 창의도시 중 최초로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 의장도시로 선출됐다(2018). ■ 이천, 쌀과 도자기·충절의 고장 이천의 역사에서 쌀의 영광을 뺄 수 없다. 1997년에 박물관 건설을 계획할 때 명칭이 ‘농업박물관’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2년에 개관한 이천시립박물관은 2013년에 구조를 변경하고, 지난해에 건물을 신축하고 도자문화역사실을 새롭게 꾸며 재개관했다. 역사문화실은 ‘이천’의 지명 유래를 시작으로 고지도를 통해서 본 이천의 변천과 고대 이천인들의 생활과 토기사용, 설봉산성 출토유물을 통한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천지역의 위상을 보여 준다. 백제, 고구려, 신라 땅에 속했던 이천은 고려 초부터 ‘이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동국여지승람’에 왕건이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하여 복하천에 이르렀을 때 홍수가 나서 시내를 건널 수 없을 때 서목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너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글자를 따서 이천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같은 책에 왕건이 이천에 군대를 주둔하고 점을 쳤는데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괘를 얻어 이천’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천으로 불렸다. 1894년 갑오경장 때도 군이었던 이천이 시로 승격된 것은 1996년이다. 박물관 벽에 ‘수’(帥) 자 깃발이 걸려 있다. 어재연 장군의 지휘권을 나타내는 ‘수자기’는 신미양요 때 미군이 탈취해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던 것을 장기임대방식으로 강화역사박물관에 돌아온 것이다. 전시품은 실물 크기(4.15m x 4.4m)로 복제한 것이다. 현재 박물관 2층에 신미양요를 주제로 당시 전쟁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전시하는 ‘150주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871년 미국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으로 침략했을 때 순국한, 어재연(魚在淵)장군과 조선군의 충절을 기리고 신미양요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당시 미 군함에 승선해 전쟁 과정을 지켜보았던 이탈리아 종군사진가 ‘펠리체 베아토’의 사진이다. 이천시 율면에서 태어나 자란 어재연 장군은 프랑스 군대가 침략한 병인양요(1866)와 미군이 침략한 신미양요(1871)에 참전했다. 병인양요 때 어재연은 우선봉장으로 강화도를 수비하였고, 5년 후 신미양요 때는 강화도 진무중군으로 동생 어재순과 6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미 해병대 전사에 실린 기록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그토록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역사실에서 고려시대 최고의 외교가로 강동6주를 되찾은 ‘장위공 서희’ 장군과 경기도 최초의 의병부대인 ‘이천수창의소’를 지휘한 김하락 선생, 민족운동가 구연영 선생을 만난다. 1895년 을미의병 때 이천의병을 이끌었던 구연영은 기독교를 접한 후 애국계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돼 순국했다. 이천은 경기도에서 의병운동이 최초로 벌어진 곳이다. 김하락 선생이 이끈 의병진 ‘이천수수창의소’는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다. 3층 산수유 놀이마당이 재미있다. 교육실에서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신축 건물 2층에서 구관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있다. ‘ㅁ’자 형의 한옥 건물과 잔디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자문화역사실’은 이천 도자문화를 입체적으로 알려주는 전시공간이다. 이천 도자의 문화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유물로 음미하는 이천의 역사와 문화 이천시립박물관은 개관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다양한 기획전과 특별전을 열었다. 삼국시대 토제벼루에서 조선시대 석제벼루까지 다양하게 변화되어 온 벼루를 재조명하고, 전통벼루의 명맥을 잇고 있는 현대 벼루장들의 작품을 소개한 2022년 상반기 기획전 ‘벼루硯_묵향墨香, 마음을 움직이다’를 비롯하여 2022 하반기 기획전 청청전 ‘3분의 2000’이 12월22일부터 2023년 3월까지 열린 예정이다. 그동안 열렸던 전시를 대략 살펴보면 이천시립박물의 고민과 지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전 ‘도자기속의 그림, 그림속의 도자기’(2014)은 1천년 이천 도자문화의 역사를 담은 명품 도자기들이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이천도자기가 시간을 초월하여 현대예술로서 새롭게 재현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공과 함께하는 도제(徒弟) 연합작품전’(2016)은 이천시립박물관이 경기도 공사립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기관으로 선정되어 열린 기획전이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전(2017)은 청산을 현실 도피 안식처로 보지 않고 현실 속 인간사에 공존하는 희로애락의 삶을 청산에 빗대어 보기 위해 마련한 전시였다. 기획전 ‘연지곤지’展(2017)은 전통 혼례복과 혼례상, 꽃가마라 불리는 사인교 등을 한자리에 모아 옛 조상들의 혼례문화를 한눈에 살펴보는 자리였다. ‘도자를 그리다’전(2018)은 용, 봉황, 연꽃 문양부터 의미를 알기 어려운 기하학 문양 등 도자의 몸 곳곳에 새겨진 흔적들을 통해 현재의 건강, 행복,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조상들의 염원을 살펴보는 기회였다. ‘약기, 이천을 치유하다’(2019)는 옛 기구인 복령꼬챙이, 약재를 자르는 협도, 약탕관, 약숟가락, 약저울 등 우리 조상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약재를 만드는데 쓰였던 기구들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쇠뿔에 혼을 담아 맥을 잇다’전(2021)은 경기 제29호 무형문화재 화각장 故 한춘섭과 그의 이수자 한기호의 작품을 선보인 자리였다. 소뿔을 얇고 투명하게 만든 각지 안쪽 면에 문양을 그리고 채색하여 목기물 위에 덧붙여 완성하는 화각은 오직 우리나라만의 전통공예품이다. 기획전 ‘실로 맺은 연’은 실을 통해 이천문화재단과 한 가족이 되어 시민들과 새로운 연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빗장을 열다’(2021)는 시립박물관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관객 참여를 통해 박물관이 나아갈 미래를 전망해보는 자리였다. ■ 이천, 세계로 향하는 한국의 도자문화 산실 이천시립박물관은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천과 자매도시인 세토시에서 ‘한국의 고도자전-이천시립박물관 소장 명품도자전’(2014)을 열어 민속공예부문 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의 도자문화를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다. ‘세토 도자전’(2016)은 일본 세토시 자매결연 10주년과 제30회 이천도자기축제를 기념한 전시였다. 2019년에는 한·중 문화·예술 분야의 교류를 위해 이천시를 방문한 현대 중국의 공예작가 작가 23명의 작품을 이천시립박물관에 기증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화각공예 체험교육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나라만의 전통공예인 화각공예 프로그램이다. 시립박물관 잔디마당에서 정기적으로 흥겨운 공연이 펼쳐진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이천거북놀이’이다.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로 펼쳐진 이 공연을 통해 가족과 이천의 발전과 안녕을 기원한다. 이천시립박물관을 품고 있는 설봉산과 설봉호수 주변은 문화 시설로 가득하다. 1564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설봉서원을 비롯하여 설봉국제조각공원, 이천시립월전미술관, 도자기공원, 문학공원이 늘어서 있는 여유롭고 넉넉한 공간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남양주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북한강까지 열 걸음이나 될까? 아름다운 강변길 옆에 담쟁이넝쿨이 가득한 유럽풍의 붉은 벽돌건물이 우람하다. 네 개의 붉은 깃발은 아래로 드리워져 있고 한 개의 붉은 깃발은 우뚝 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관장 박정우)은 2006년에 개관한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 전문박물관이다. 건물 못지않게 이름에 담긴 사연도 궁금하다. 박물관은 2층과 3층에 있다. 커피향이 배인 아늑한 전시실은 볶은 커피처럼 따스한 갈색이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은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인 커피를 체험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커피 컬렉션 전시는 물론 커피 묘목에서 시음까지 일련의 커피 제조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문화체험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또한 생활 속 친근한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은 커피와 관련한 세계 각국의 독특한 역사와 정보를 소개하고 잘못 알려진 커피에 대한 상식과 정보를 바로 잡기 위해 해설이 함께 하는 박물관 투어를 기획하였으며 이를 통해 커피 문화의 다양성을 알리고자 합니다” ■ 유물로 만나는 한국 커피의 역사 2층 상설전시관은 커피의 역사, 커피의 일생, 커피문화, 미디어 자료실로 구성되어 있다. 벽면에 걸린 세계 지도는 커피의 전파경로를 알려주고 있다. 커피나무 사진과 붉게 익은 열매, 열매를 따는 농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바닥에도 커피를 볶는 철판, 열매를 빻았던 절구, 주전자 같은 낡은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중동사람들이 유럽인 못지않게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전시다. 볶은 커피열매를 분쇄하는 그라인더들의 형태가 참으로 다양하다. 유럽인들이 사용한 손때 묻은 절구가 눈길을 끈다. 동서양에서 한동안 원두를 절구에 넣어 빻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18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사용했던 목재 그라인더는 한약방에서 사용했던 약기와 흡사하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그라인더가 사용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라인더는 어느 나라 제품이든 바닥이 모두 넓고 네모져 있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 ‘푸조’라는 수십 년 커피밀을 생산해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생산해 낸 회사다. 그라인더 하나에 당대 과학기술과 예술적 욕구가 집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커피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무엇일까? 부친 박종만 설립자를 이어 올해부터 관장을 맡고 있는 박정우 씨가 들려준다. “1888년 왕실의 초청으로 조선에 머물렀던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이 지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란 책과 고종황제가 사용한 커피스푼입니다. 로웰의 책에 ‘우리는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마시기 위해 별장에 다시 올랐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책을 발견하면서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은 사라지게 되었지요. 스푼을 보면 손잡이 끝에 조선 이왕가를 상징하는 배꽃문양이 보이지요? 이 유물은 고종의 증손자인 이혜원 선생이 기증한 것입니다” ■ 한국인이 주역인 커피의 신역사 조선인 최초의 커피 관련 기록은 ‘한성순보’ 1884년 2월 17일에 실려 있다. 운수와 유통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기사이다. 11년이 지난 1895년에 펴낸 유길준의 ‘서유견문’에도 커피를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다. “서양 사람들의 음식물은 빵 버터 생선 고기류가 주식이고 차와 커피는 우리나라에서 숭늉 마시듯 마신다” 전시실에는 300년 전 아라비아 사막에서 사용하던 커피 추출기도 있다. 이 또한 설립자 박종만 전 관장이 발품 팔아 모은 유물이다. 호텔 흑백사진들도 귀중한 기록이다. 최초의 호텔은 1888년 인천 중앙동에 들어선 대불호텔이다. 서양식 식사가 제공되었으니 커피가 판매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에도 팔레호텔(1899), 스테이션호텔(1901) 손탁호텔(1902)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한국인이 운영한 최초의 다방은 영화감독 이경손(1905~1977)이 1927~8년에 인사동에 문을 연 ‘카카듀’라는 사실도 박 전 관장이 밝혀낸 것이다. 6.25 직후 전주 경원동에 문을 연 삼양다방, 1955년 진해 대천동에 문을 연 흑백다방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다방으로 지역 문화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현장이다. 왈츠와 닥터만 박물관은 이처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다방을 살리는 운동도 펼쳤다. 소설가 헤밍웨이와 이상 등 한국과 서양의 유명인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나폴레옹의 사진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하루 열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는 나폴레옹은 청년시절 프랑스의 카페 프로코프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고 커피 값이 없으면 자신의 군모를 맡기기도 하였다.” “발자크는 엄청난 양의 블랙커피를 마시며 하루 15시간 이상 집필하였고 ‘커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글을 썼다” 한국인은 이봉구, 김환기, 채만식, 박태원, 고종, 유길준, 오상순, 전혜린, 이상까지 아홉이다.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화를 이끈 천재작가 이상은 종로 1가에 ‘제비’ ‘69’등의 다방을 직접 경영하여 초기 우리나라 다방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비롯한 독일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했던 전혜린은 학림다방과 돌체, 모나리자 다방을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한 장의 흑백사진은 관람객을 1970년대로 안내한다. 거피와 관련된 희귀한 유물은 이곳에서 모두 보물이다. 한복을 차려 입은 세 여인이 마루에서 커피는 마시는 모습이다.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스며든 커피 문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진이다. 한국네슬레 여수대리점 선미상사의 다방 재료 요금표도 박물관의 소중한 전시물이다. 세계의 다양한 커피들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 앞에 서면 커피가 얼마나 세계적인 음료인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 그렇다. 커피는 원유 다음으로 많이 유통되는 물품이다. 전시실 맨 끝에서 한국 커피의 역사와 다시 만난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의 누렇게 바랜 신문 스크랩도 한국 커피의 문화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남대문정거장에는 1일부터 끽다점을 개설하였다더라” 1909년 11월 3일자 ‘황성신문’은 일본인이 다방을 연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겨울밤에 더욱 좋은 맛 좋은 차 끓이는 법-커피, 홍차, 코코아, 초콜레트차는 이렇게” 1933년 12월 22일자 조선중앙일보의 기사 제목이다. ■ 100년 후를 생각하는 커피박물관 커피박물관은 유물을 전시하고 체험하는 것 못지않게 정성을 쏟는 일이 있다. 바로 한국의 오랜 다방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커피를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3층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에서 커피나무와 마주한다. 커피를 교육하는 공간인데, 커피나무가 자라는 온실로 연결되어 있다. “커피나무를 강원도 야지에서 재배하여 한국산 커피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커피사업자는 2022년 5월 현재 8만9668명을 기록하고 있다. 커피점의 숫자가 2022년 현재 인구 575명 당 1개꼴이다. 박물관을 차분히 둘러보면 13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이 어떻게 해서 커피공화국으로 성장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시간도 재미있지만, 숙련된 바리스타의 지도를 받으며 손수 콩을 갈고 커피를 내려서 커피를 음미하는 체험시간만 할까. 뜨거운 물을 붓자 종이필터에 쌓인 커피 가루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피어오른다. 2006년 3월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정통클래식음악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100석 규모의 홀이지만 3명의 청중만 예약해 연주자 4명보다 적은 수로 음악회가 열린 적도 있었단다. 금요음악회는 곧 700회를 기록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뚝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설립자 박종만 씨는 1989년 출장차 간 일본에서 ‘왈츠’라는 커피회사를 방문하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왈츠와 닥터’란 커피박물관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닥터만’은 한국 최고의 커피 박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닥터에 설립자의 이름 ‘만’을 붙인 것이다. 그런 설립자의 열망과 바람이 대를 이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은 한국의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하는 역동의 공간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5.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영릉에도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하다.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의 영릉(寧陵) 사이로 난 ‘왕의 숲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한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 광분한 일제도 감히 조선 왕릉은 훼손하지 못했다. 조선 왕릉 42기 중 북한에 소재한 2기를 뺀 40기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왕릉 중에서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왕릉이다. 세종대왕의 동상을 비롯해 세종시대의 천문과학 기기들이 재현 설치되어 있는 영릉은 교육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경복궁과 광화문, 한글박물관 등 세종과 관련된 공간이 서울에도 많지만 세종대왕을 깊이 만나려면 여주 영릉을 찾아야한다. ■ 기록화로 만나는 세종대왕의 일대기 영릉 입구에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관람객들이 많다. 그러나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공간이다. 아니다. 세종을 제대로 만나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의 눈에 익숙한 세종시대의 기록화를 비롯한 소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는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상설 전시실은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실은 주제가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이고 제2실의 주제가 ‘북벌의 기상 효종대왕’이다. 1실과 2실 사이에 있는 전시실의 주제는 ‘세계유산 조선왕릉’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동판에 새긴 ‘훈민정음’ 서문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세종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본다. 우리가 세종을 존경하는 까닭은 여럿이지만, 무엇보다 그 바탕에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곧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 장의 그림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418년 9월19일, 경복궁에서 22세의 청년 세종 이도(1397~1450)가 조선 제4대 임금으로 즉위하는 광경을 묘사한 ‘즉위도’(김학수 작)이다. 흥미로운 역사적 장면이 또 펼쳐진다. 이번에는 중년의 세종이 왕세자(문종)와 함께 측위기를 관측하는 신하들과 서 있는 ‘측우기도’(권영우 작)이다. 한국 최고의 발명자로 꼽히는 장영실은 누구일까? “모두 8점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처럼 품격 높은 그림은 앞으로 제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의 양웅열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시된 기록화 8점은 영릉을 성역화 하던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이루어진 국가사업이었다. 여러 명의 학자들이 독서하고 토론하는 광경을 그린 ‘집현전 학사도’(장우성 작)와 독서에 열중하는 세종의 청소년기 모습을 담은 ‘왕자 시절의 독서도’는 학문을 좋아한 세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무인들이 등장하는 그림이 더 많다. ‘대마도 정벌도’(서세옥 작)와 ‘육진 개척도’(박노수 작), ‘이만주 정벌도’(정완섭 작) 같은 기록화를 통해 세종시대의 찬란한 문화는 활달한 기상과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 제목이 ‘지음도’(이유태 작)인 까닭은 무엇일까? “세종이 천재 음악가 박연의 편경 연주를 듣고 바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던 일화를 알려주는 그림입니다. 음악에도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세종은 우리의 전통 음악 아악을 정리하고 ‘정간보’라는 악보를 창안하여 ‘정대업’과 ‘보태평’ 같은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주자소도’(정완섭 작)는 출판문화를 꽃 피운 세종의 업적을 알려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폐로 만나는 세종의 얼굴은 정우성 화백이 그린 세종 표준 영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같은 서책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에 실린 ‘경상도지리지’는 엄청난 크기가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책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혼천의 등 천문 관측기구와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 같은 옛 과학기구의 작동원리를 영상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다. 휴대용 해시계와 세종대왕의 어보도 전시되어 있으니 찾아보자. 세종은 박연과 함께 우리 음악을 정립한 주역이다. 세종과 박연의 음악적 재능과 업적을 알려주는 악기 ‘편경’을 살펴본다. 천재 음악가 박연이 우리나라에서 난 돌로 편경을 새롭게 제작하여 시연할 때, 세종이 소리가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박연은 정말 돌을 덜 갈아 소리가 둔탁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이처럼 세종은 절대음감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영상은 학부모들도 감상하면 좋은 내용이다. ■ 북벌의 기상 효종대왕과 특별전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머네!’ 효종대왕은 형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649년에 조선의 제17대 왕으로 즉위하여 재위 10년 동안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복구하는데 온힘을 쏟았다. 효종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북벌을 국가의 목표로 삼았던 군주이다. 효종대왕의 영릉을 섬세하게 묘사한 펜화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대동법, 북벌, 나선정벌 등 주요업적에 대한 설명이 애니메이션과 패널로 구성돼 있다. “효종의 북벌의지는 송시열의 ‘기해독대’에 잘 나타나는데, 효종은 ‘정예로운 포병 10만명을 길러 기회가 있을 때 오랑캐들을 곧장 공격할 것이며, 이 일은 10년 안에 추진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관계자의 설명처럼 효종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대동법의 확대, 상평통보의 유통, 농서와 의서 편찬 등으로 나타난다. 제주도에 표류해온 네덜란드인 하멜을 시켜 서양식 무기를 제조한 사업도 빼 놓을 수 없다. 조선을 탈출한 하멜이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작성했다는 ‘하멜표류기’에 실린 한 장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 하멜 일행이 효종대왕을 알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간 유물 중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의궤 중 효종대왕의 비인 ‘인선왕후의 국장도감의궤’도 특별한 유물이다. 국장행렬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영상을 통해 당시 왕실의 장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로 기획전을 열고 있다. ‘성군이 태어나다-세종대왕의 탄생’(2017), ‘세종대왕이 사랑한 학자들’(2018), ‘조선 국왕의 즉위식’(2018),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2019), ‘영릉에서 제례는 이렇게 지내요’(2019), ‘조선 효종대왕의 문예적 소양’(2019), ‘조선시대 해시계와 앙부일구’(2020), ‘세종대왕의 왕자들’(2020), ‘효종과 하멜 이야기’(2021), 2022년 상반기 기획전시 ‘세종, 우리 옛 땅을 되찾다’가 두 달 동안 진행됐다. ■ 여주 영릉에서 나를 만나는 여행 현재는 열리고 있는 2022년 하반기 기획전의 주제는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머네!’이다. 입구에 ‘재통지심 일모도원’이란 붓글씨와 만난다. 이 글씨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을까? “효종은 재위 8년이 되던 해에 영의정을 지낸 백강 이경여(1535~1657)가 올린 상소에 답하면서 ‘진실로 가슴에 심한 한이 서려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라는 자신의 심경을 밝히지요.” 효종이 송시열과 만나 국가정책을 논의한 ‘독대설화’는 북벌정책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기에 오랫동안 은밀하게 전수된 비밀문서이다. 효종과 함께 심양에 인질로 끌려갔던 김상헌의 문집 ‘청음선생집’, 송시열의 문집인 ‘우암선생집’ 같은 서적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효종 추상존호 옥책’ 같은 희귀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제3실은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영릉을 참배하기 전에 들러야 하는 공간이다. 왕릉의 공간은 어떻게 구분되었는지, 석물의 명칭은 무엇인지 흥미롭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거쳐 영릉을 참배하면 분명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영상으로 왕릉을 조성하는 과정을 친절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자연 풍광이 수려한 여주에는 문화공간도 풍부하다. 목아박물관, 여주미술관 등 여주에 소재한 예술 공간을 순례하는 여행을 기획해보면 어떨까.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4. 여주미술관

“노년기에 접어들며 이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사회적 가치로 환원할 일을 생각했다. 기부나 경제적 후원은 오히려 쉬울지 모른다. 대신 나의 주변에는 미술이 있으니, 따로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자본과 재능을 함께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다. ...마침 여주 지역에 연고가 있어 미술관 자리를 잡았다. 여주는 깊은 역사적 전통 문화를 가진 지방이지만, 현대화 과정에서 예술은 좀 지체된 듯싶다. ...여기에 여주 미술을 위해 샘 하나를 판 것으로 믿는다” ■ 여주 미술을 위해 샘 하나를 파다 여주미술관(관장 박선영) 설립자 박해룡 명예관장의 작품집 <박해룡 청색시절-삶에 물들이기>에 실린 말이다. “2017년 미술관 건립을 기획하고, 2018년 설계하고, 곧 착공하여, 2019년 개관할 수 있었다. 참으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얻은 요행이었다” 짧은 글이지만 속도감이 느껴진다. 설립자는 88세의 고령에도 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역 작가다. 고려제약(주)의 설립하여 대표이사를 지낸 박 명예관장이 사재를 털어서 건립한 여주미술관은 여주시에 건립된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여주시 세종로 394-36에 자리 잡은 여주미술관에도 가을이 깊었다. 밤에 내린 비로 떨어진 붉은 단풍잎들이 늦가을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야트막한 산허리에 자리를 잡은 미술관은 사방이 툭 열려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이 둘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정문 왼편으로 낸 오솔길을 선택하게 된다. 철로 받침목을 징검다리처럼 놓아 만든 계단이 운치를 더해주는 작은 길이다. 정문과 가까운 언덕에 언월도를 비껴든 빼빼 마른 사나이가 우람한 황소를 타고 달리는 조각상이 서 있다. 중국 조각가 지앙 차우의 작품으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새롭게 해석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미술관의 독특한 지붕과 하얀 벽이 산뜻하다. 미술관을 설계한 이는 국민대 건축과 박길용 명예교수로 설립자의 아우다. 그는 “자연 속에 건축물이 들어갈 때 가급적 덩치를 작게 하는 것이 설계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는 자연친화적 건축가다. 그는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여주미술관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한다. “건물의 형태를 M자 모양의 지붕 2채가 맞붙어 4채가 엮인 것 같은 형태로 만들어 건축물을 잘게 나누어 몸집을 줄였다. 경사지붕을 통해 내부에서 큰 어미 새의 날개와 같은 모습의 천장을 연출시켜 관람객으로 하여금 안락함과 웅장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통으로 이어진 건물 아래에서 공연을 열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을 지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중정이 나타난다. ㄷ자형의 건물이 품은 중정에도 아담한 조각품과 나무들이 서 있다. 잎을 모두 떨군 탓에 수형이 완전히 드러난 화살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고 서 있는 풍경이 정겹다. 미술관 주변은 온통 나무들이다. 나무들 사이사이로 곳곳에 조각 작품들이 있다. 카페 ‘돈키호테’에서 차를 마시고 우산을 든 맨발의 소녀상을 지나 단풍잎으로 붉어진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미술관에 가득한 늦가을 정취에 빠져든다. 박소윤 관장의 안내를 받아 최선호 작가의 특별전 ‘저만치 혼자서’를 둘러본다. “11월 14일에 작가를 초대하여 ‘미술관과 문화’라는 전시 기념 특강을 열었습니다. 미술관의 역할이 지역사회에 문화자산이자 사회공헌의 원동력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본 강연이었어요” ‘저만치 혼자서’라는 제목이 은근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1전시실은 아주 널찍하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모두 공부했다는 최 작가의 작품은 검정과 파랑과 하양의 단색과 단순한 구도가 특징이다. 잠시 서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비결은 색일까, 구도일까? “가운데 파란 색은 비로 천연염료 ‘쪽’이에요” 박 관장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쪽의 빛깔이 은근하며 그윽한 조선 여인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캔버스에 살짝 번진 푸른 빛깔에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물론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이고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 눈엔 그렇다는 뜻이다. ■ 미술관, 즐거움과 행복을 만들다 개관 기념 특별전의 주제는 ‘프랑스 예술가들이 누리는 표현의 환희, 박해룡의 삶에 물들이기’였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에르베 로왈리에 등 프랑스를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12명의 프랑스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과 박해룡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건강한 리얼리즘과 그림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소통되어야 한다는 박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들이다. 이어진 하반기 기획전은 ‘HAPPY! 여주 FANTASY’展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전면에 내세웠다. ‘행복’을 전시 슬로건으로 삼고, ‘판타지’를 소통의 방법론으로 삼아 여주 시민과 관람객들에게 다가선 전시였다. 초청 작가 유정혜, 임정은, 김동현, 작가 수요일 4인이 참여했다. 박선영 관장은 개관 초부터 여주 지역의 학교와 공공기관을 쫓아다니며 여주미술관을 알렸다. 그러나 개관 직후인 2020년 초에 터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와중에 마련한 기획전이 ‘이른 봄나들이-예술가의 작업실’이다. 어려움에 처한 지역 작가들을 응원하고 연대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획이었다. 여주를 비롯하여 이천, 양평 광주에서 활동하는 45인의 작가와 박해룡 명예관장이 참여했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표 작가의 작업실 재현과 작업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관객에게 예술가의 삶이 어떠한 지를 선보이고 각 지역에 어떠한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개관 1주년이 되는 2020년 6월에는 국제전을 마련했다. 여주시에 자리 잡은 미술관의 위상과 정체성을 탐구한다는 취지에서 주제를 여주의 역사와 환경을 끌어들인 ‘여주(驪州)-검은 말의 땅’으로 잡았다. 말을 주제로 삼은 이 전시에 19세기 청나라의 말 장식 유물 및 조각상을 비롯해 국내외 15인의 현대 미술가들의 66점(입체 22점, 평면 44점)에 이르는 다양한 조형 작품들이 소개됐다. 당시 전시되었던 작품 몇몇은 지금도 감상할 수 있다. 중국 도자기와 유물을 한데 결합해서 만든 성동훈의 해학미 가득한 기마상과 돈키호테, 붉은 말이 그것이다. 2021년에는 서용선의 ‘만疊산중서용선繪畵’을 열었다. 1951년생의 서 작가는 작업의 양과 일관성, 시도와 대상의 다양성에 있어서 돋보이는 중견 작가다. ‘만첩산중’이라는 제목처럼 100여 점의 회화를 감상하다보면, 산중을 헤매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고 하니 흥미롭다. ■ 지역 미술관의 사명을 생각하다 1전시실의 지나 네모꼴의 2전시실은 설립자 박해룡 작가의 작품을 상설로 전시하는 곳이다. 바닥에 붉은 색깔의 도자기로 만든 말들이 질주하고 있다. “벨기에 조각가 아니타 플리레커의 작품인데 세라믹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개관 1주년 때 전시했던 작품이죠” 벽에 걸린 작품에도 대부분 말이 있다. 88세 노년의 박 작가가 왜 말을 사랑하는지 알 것도 같다. 뺨이 발그레한 중년의 여성이 미소 짓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설립자 박해룡 작가의 아내이다. 박 관장이 액자를 내려 글자가 쓰여 있는 액자 뒷면을 보여준다. “딱부리, 들창코, 그러나 천사. 그라고 나으 아내. 그라고...2021. 7. 박해룡 웃으며 울면서 그렸다” 지난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아내의 생전 모습을 그리며 눈물짓는 박 작가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던 박해룡 작가는 71세가 되는 2005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 그동안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 관장에게 여주미술관의 비전을 물었다. “미술관의 공공의 역할을 자주 생각합니다. 여주미술관을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이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 지역 내 다문화 가정이나 저소득층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도 개관 때부터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지요. 관람객들이 미술과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미술관이 즐거운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죠”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3. 의왕향토사료관

청계산·백운산·모락산과 백운호수와 왕송호수를 품고 있는 의왕시는 과천·안양·군포·화성·수원·성남과 이웃하고 있다. 내손동과 학의동, 부곡동에서 고인돌과 민무늬토기편이 발견됐으니 역사가 오랜 도시가 분명하다. 서해안과 가까운 한강유역에 위치해 삼국시대부터 각축을 벌였던 지리적 요충지였다.정조가 화성의 현륭원을 참배할 때 사용하던 사근행궁지에 의왕시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의왕’이란 이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광주군 의곡면과 왕륜면을 통합하면서 ‘의왕’이란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당시 수원군에 속했던 의왕면은 이후 화성군과 시흥군에 속하기도 합니다. 인구가 급증한 1980년에 읍으로 승격되고, 1989년 1월에 의왕시로 승격됐습니다. 한동안 의왕시(儀旺市)로 썼으나, 역사적 고증을 거쳐 2007년에 ‘의왕시(義王市)’로 한자를 바꾸었지요” 2007년 의왕 향토 사료관 을 개관할 때부터 함께 해 온 서영진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박물관 의왕향토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총 4천507점인데, 기증유물과 기탁유물이 구입유물이나 기타유물, 국가 귀속유물보다 더 많다. 이러한 유물을 바탕으로 매년 다른 주제로 기획전을 열고 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이씨 할아버지가 살았던 옛날에는’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을까? “‘이씨 할아버지’는 세종대왕의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후손으로 내손동 능안마을에 거주하시던 이택 선생님을 말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 선생님이 기증하신 유물이 1천733점이나 됩니다. 이택 선생님의 부친 이기호씨는 의왕면장을 지낸 분으로 의왕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정말 알뜰하게 모으셨어요” 설명을 듣고 살펴보니 흥미로운 전시물이 여러 점 눈에 띈다. 1955년에 발행한 이기호의 부친 이종협의 ‘경기도도민증’은 4면으로 되어 있다. 이기호씨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로 근무했음을 알려주는 신분증명서 발행일은 단기 4280년(1947) 1월 1일이다. 1936년에 작성된 이기호의 경성공립전수학교 성적표도 있다. 이기호씨의 신원진술서와 공무원인사기록카드, 공무원증, 직원주소록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개인의 사소한 물건이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 시대와 한 고장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유산이 된 것이다. 1991년에 발행한 ‘의왕신문’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찾아봤는데 딱 한 장 밖에 구하지 못했어요.” 불과 30년 전의 신문이지만, 시흥의 과거를 알려주는 더없이 소중한 유산이다. 2007년 개관부터 2022년 현재까지 진행된 소장품전과 기획전을 통해 의왕향토사료관의 소장 자료와 활동 내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처음으로 기획한 ‘청풍김씨 김준영 기증유물’(2008)과 ‘수성최씨 최봉준 기탁유물(2009)’은 의왕향토사료관이 기증유물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금석문 탁본전(2010)’,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010)’, ‘옛 문서를 통해 본 선조들의 삶과 문화(2011)’, ‘포일동 출토유물전(2012)’, ‘타임머신 타고 떠나는 보물찾기(2013)’, ‘땅 속 유물 이야기(2014)’, ‘기차타고 알아보는 철도이야기(2015)’, ‘의왕-구석기부터 근현대까지(2016)’, ‘옛날 의왕지역의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2017)’, ‘선사시대?! 역사시대?!(2018)’, ‘도룡마을 수성최씨 이야기(2019)’, ‘의왕의 청동기시대(2020)’를 거쳐 현재 ‘이씨 할아버지가 살았던 옛날에는(2021~)’이 진행되고 있다. 주제가 다양하지만 초점이 어린이들에게 맞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는 11월25일에 개관 예정된 ‘일석 이희승과 한글’은 어떻게 기획된 것일까? “한글학자 이희승(1897~1989) 선생님이 태어나 자란 곳이 의왕이라는 선생의 증언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 아이들과 학부모가 좋아하는 박물관 초등학생에 초점을 맞춘 교육 프로그램은 2011년의 특별기획전 ‘기증 고문서전’에서 시작된다. 이 기획전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토지매매문서, 장례 관련 문서, 과거시험 답안지와 합격증, 고신(임용장), 간찰(편지) 등 40여 점을 전시하고 전문가의 설명으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많은 초등학교들이 참여했지요. 학생이 직접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호응이 좋았습니다” 이제까지 진행된 전시 중에서 2015년의 특별기획전 ‘기차타고 알아보는 철도이야기’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 “철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 철도유물 42점을 시대적 해설과 함께 새롭게 구성해 선보였지요. 우리 의왕시는 철도박물관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교통대학, 한국철도공사 인재개발원 등 철도인프라를 두루 갖춰, 2013년 전국 유일의 철도특구로 지정된 철도특화도시랍니다. 기차의 등장과 발전에 따른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2016년의 특별기획전 ‘의왕-구석기시대부터 근현대까지’전도 주목된다.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의왕 지역의 역사를 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의왕시의 위상을 알아보는 기획이다. 이동 ICD 진입로 개설사업, 포일 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개발사업, 오전동 공동묘지 정비 사업을 하면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다양한 유물을 출토됐다. 역사교실에는 의왕시내 초등학생들이 사료관에 전시된 구석기 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물을 관람하면서 역사퀴즈를 풀고, 청동기시대 마을 만들기 등을 체험하면서 의왕시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이끌었다. 역사를 입체적으로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2019년에 진행한 주말 교육 프로그램 ‘우리가족 박물관교실’도 참석자들의 큰 호응 속에 진행됐다고 한다. “가족이 함께 향토사료관의 전시해설을 듣고 활동지 풀어보기, 우리가족 유물노트 만들기, 기념 사진촬영을 하며 즐기는 프로그램이었지요” 2022년 5월부터 9월까지 관내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학교로 찾아가는 박물관교실’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전문 강사가 신청학교를 찾아가 의왕시의 문화재와 유물에 대한 수업을 다양한 교재와 교구를 활용해 진행합니다. 다음엔 아이들이 향토사료관을 찾아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특별전시를 관람하고 유물 만들기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총 31회 9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어요” 지난 여름방학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주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기증유물전시 ‘이씨 할아버지가 살았던 옛날에는’의 해설을 듣고 전시유물인 1991년에 발행한 ‘의왕신문’을 활용한 ‘우리가족 신문 만들기’를 진행하여 함께 참여한 다른 가족들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하지 못했던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 의왕 역사와 정체성 가득 ‘미래세대 놀이터’ 의왕향토사료관은 조선 철종 때 청풍김씨 김직연이 청나라 북경을 다녀온 뒤에 기록한 저술한 ‘연사록’과 한글본 ‘연행록’ 그리고 ‘독고록(讀古綠)’과 ‘상영도집’을 번역 간행했다. 특히 상영도(觴詠圖) 놀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희귀 시문집인 ‘상영도집’은 2021년에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책으로 주목된다. 주요 명승지가 적힌 놀이판을 활용해 가상으로 여행하듯 작성한 시문(詩文)이 80편이 실려 있는 ‘상영도집’은 각 명승지의 역사와 관련 인물 등이 담겨 있는 희귀본이다. 의왕시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의왕향토사료관은 의왕시중앙도서관책마루 2층에 위치하고 있다. 관계자의 설명처럼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둘러볼 수 있는 장점가진 사료관이다. 하지만 전시 공간이 부족해 상설전시를 할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머잖은 날에 의왕시의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의왕시립박물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2. 여주 여성생활사박물관

여주 ‘강천(康川)’은 이름처럼 남한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이 편히 쉬어 가던 마을이었다. 남한강 복판에 길게 누운 강천섬은 벗이나 가족과 소풍 가기에 썩 좋은 섬이다. 강천섬으로 이어지는 강천로를 따라 가다보면 1971년 개교해 1999년에 문을 닫은 강천초등학교 강남분교터에 자리한 여성생활사박물관(관장 이민정)이 있다. ■ 대를 이어 전해져야할 겨레의 살림살이 여성생활사박물관은 천연염색가 이민정씨가 30년 동안 수집한 여성생활과 관련된 유물 3천여점을 바탕으로 2001년 6월에 개관한 전문박물관이다. 이민정 관장은 ‘외국인 친구들이 자기네 전통 유물을 소중하게 주고받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한국의 옛 여성들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다. 그가 수집한 유물 중에는 한국전쟁 때 일본인이 가져간 것을 도로 받아온 것도 있다.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세운 이 관장은 “30여 년간 모은 유물들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오롯이 전달해 주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가을빛이 가득한 박물관에서 돌사람(석인)과 만난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로 크고 작은 장독들이 옹기종기 놓인 풍경이 고향집처럼 아늑하다. 박물관 벽면에 걸린 황토빛깔의 커다란 천에 새겨진 혜원 신윤복의 뱃놀이 그림과 ‘예술혼의 이음’이란 글이 눈에 들어온다. 10월1일에 시작된 2022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 ‘예술혼의 이음’은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 예술가 두 가문을 만나는 ‘예술혼의 이음’ 전소빈 학예실장은 ‘예술혼의 이음’전을 “문화의 지속성과 영속성에 대한 관심과 탐구에서 출발한 것”이라 밝힌다.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와 함께 활약한 혜원 신윤복(1758~?)의 증조부 신세담 역시 도화서 화원으로 ‘십로계첩(十老契帖)’을 남긴 신말주(1429~1503, 신숙주의 아우)의 8대손이다. 신윤복과 부친 신한평, 조부 신일흥, 증조부 신세담까지 4대에 걸쳐 화맥이 이어졌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아들과 딸을 돌보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을 그린 ‘자모육아도’는 신한평의 풍속화 기법이 혜원과 단원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쌍검대무’를 비롯한 유명 작품으로 가득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찬찬히 살펴보며 과거로의 여행에 들어간다. 고령신씨 집안의 유물인 ‘설씨부인 권문세첩’(보몰 제728호)과 신말주의 ‘십로계첩’(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은 조선 초 양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신말주를 비롯한 열 명의 인물들의 초상과 인물을 소개한 7언으로 된 시가 무척 재미있다. 옛사람들의 풍류가 물씬 풍겨난다.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제작한 고지도 역시 예사롭지 않다. 18세기의 강화도를 그린 ‘강화 이북 해역도’와 압록강과 두만강, 백두산 일대를 세밀하게 그린 ‘북방강역도’는 당시 지도 제작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방안처럼 꾸며진 전시실에서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9~1892)의 작품을 만난다. 대흥사 주지 초의선사가 허련에게 고산 윤선도 일가와 연을 맺게 하여 ‘공재화첩’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고, 추사 김정희를 소개시켜준 사실이 흥미롭다. 소치 허련家의 이음은 아들 미산 허형, 손자 남농 허건, 종손 의재 허백련으로 면면히 계승되어 한국 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신윤복 가와 허련 가의 대를 잇는 예술혼과 한국의 미, 풍속화와 남종화에 대한 고찰, 전통 회화의 실체들을 두루 살펴보는 특별한 기회다. ■ 선조들의 생활과 살림의 지혜를 한눈에 여성생활사박물관은 옛 여성들의 생활 모습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지금과 달리 전통시대의 여성은 육아를 비롯해 실을 뽑고 베를 짜서 염색을 해 옷을 만들고, 텃밭에 채소를 길러 음식을 만드는 등 가족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존재였다. 살림에서 여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따라서 전시된 유물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손때가 묻고 한숨이 배어든 것들이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르면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유물들과 만날 수 있다. 옛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유물은 복도 좌우 벽면까지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실에서 만난 물레와 베틀은 옛 여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는 유물이기에 더욱 애틋하다. 옷을 넣었던 반닫이와 삼층장, 방안을 밝히던 등잔, 시집 갈 때 타고 가는 가마, 방안의 필수품이던 요강단지, 바느질할 때 손가락을 보호한 골무, 머리에 꽂는 비녀와 머리를 장식하는 화잠과 화관, 옷을 다리는 다리미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처녀와 총각들의 필수품이던 댕기, 도포를 여며주는 매듭, 되나 말로 곡식을 퍼 담던 용기, 1970년대까지 밥상에 올랐던 놋쇠그릇, 옛날 화장대, 옷을 펴기 위해 여인이 밤새 두드리던 방망이, 비옷인 도롱이, 사대부 여인들이 신었던 가죽신 운혜, 가오리가죽으로 만든 안경집까지 정말 너무나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 전통으로 부활해야 할 특별전 ‘왕후를 만나다’ 아름다운 남한강과 비옥한 들판을 품은 여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아홉 명의 왕후를 배출한 명문가의 고장이다. 이처럼 특별한 역사에 기반으로 두고 박물관에서 기획한 것이 ‘왕후를 만나다’이다. 여주시의 후원과 대한황실문화원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전시지원을 받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왕후를 만나다’ 특별전은 전시와 참여, 공연과 체험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많았다. 조선시대 세자빈 책봉식’을 주제로 기념식과 한복패션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열린 ‘제7회 왕후를 만나다’는 조선시대 위엄과 품격으로 국모의 자리를 지켰던 왕비들의 삶의 외연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통 희생 등을 재조명한 기획으로 주목을 받았다. 왕비들의 삶과 관련한 자료와 여러 가지 궁중의복과 비녀 노리개 등의 귀중품과 일반 여인들의 사용하던 평상복, 각종 치장품의 전시전과 왕후 선발, 가례 재현이 이루어졌다. 2019년 7회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던 ‘왕후를 만나다’ 특별전은 2020년에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이음’이 끊어진다. 이경철 부관장은 여러 차례 행정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번 지원이 끊어지니 시에서 다시 예산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아홉 분의 왕비를 배출한 여주시를 널리 알리는 이런 행사는 마땅히 부활되어야 합니다” ■ 남한강에서 만난, 우리 아낙네들의 역사 여성생활사박물관은 개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주제의 전시로 관람객과 만났다. 2014년 경기도박물관 미술관지원 사업으로 연 특별기획전 ‘여인의 향기, 불꽃처럼 바람처럼’, 2015년 특별기획전 ‘삼굿’과 2016년의 ‘청사초롱 불 밝히고’, 2017년의 ‘수미전’과 2018년의 ‘꽃버선 신고 때때옷 입고’와 2019년의 ‘초록바람전’ 역시 전통문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풍성한 자리였다. 2020년 특별기획전 ‘물 빛 바람의 노래’는 천연염색의 아름다움과 실용성 및 미술작품으로 발전 가능한 염색의 미래 가치를 두루 감상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기회였다. 2021년 ‘추모와 기억-조사(弔辭)’는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관계라는 틀 안으로 귀속되는데, 죽어서도 지속되는 영속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한글로 쓴 제문을 비롯한 유물들을 통해 살펴본 기획이다. 이제 22살 청년으로 성장한 여성생활사박물관은 한때 폐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사립박물관은 국공립 박물관과는 달리 시설 개선에 투자를 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현재는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여성생활사박물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 유구한 남한강의 물줄기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역사를 지탱해온 여성들의 숨결과 향기를 간직한 유물은 후손들이 지켜내야 할 자존심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1. 수원시립미술관

“화성의 숨결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예술공간!” 수원시립미술관을 소개하는 글이다. 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수원시립미술관은 재미있는 건축물이다. 밖에서 보면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밋밋하게 보이지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과거 ‘문화재’와 현재 ‘미술관’을 아우르는 열린 공간 미술관의 외벽이 독특하다. 진회색 계열의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한 방식은 한옥인 행궁과 잘 어울린다. 상층부를 한옥의 처마처럼 비스듬한 곡면의 스카이라인을 통해 행궁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도 주목된다. 미술관 전면의 투명유리창을 통해 광장과 화성행궁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는 자랑이다. 문화유산이라는 과거와 미술관 전시품이라는 현재를 아우른 소통의 장인 셈이다. 옛길을 살려 광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동선을 연출해 관람객들의 발길이 미술관에서 광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칭찬할 만하다. 미술관 안내를 맡아준 박현주 주무관이 건축 디자인의 핵심을 정리해 준다. “화성 행궁의 미학적인 면을 해치지 않으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지요. 그 바탕에는 정조의 철학을 계승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관장 김진엽)은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 22 일원 6천400㎡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연면적 9천652㎡의 규모를 자랑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에는 2개의 기획전시공간, 카페테리아, 뮤지엄샵 등의 시설을 갖추었고, 2층에는 2개의 기획전시공간과 교육실과 학예실 등이, 지하에는 수장고와 79대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 옥상의 개방형 정원은 관람시간 이후에도 이용할 수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옥상을 산책하며 화성행궁과 팔달산을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 늦게 출발했지만 알차고 풍성하게 수원시립미술관은 2015년에 개관했다. 7천여 가구가 넘는 ‘수원 아이파크 시티’를 조성하면서 얻은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던 현대산업개발이 인구 120만의 수원시에 공립미술관이 없음을 알고 건립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총 3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을 준공하고 소유권 일체를 수원시에 기증한다. 미술관 1층에 있는 ‘포니정홀’은 이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화성을 건설한 조선 22대 임금 정조와 ‘포니정’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정 명예회장은 1967년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으로 취임하며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이 미술관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주역인 고 정세영 회장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때부터 얼마 전까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란 긴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만석공원의 ‘수원시립만석전시관(구 수원미술전시관)’, 파장동의 ‘수원시립어린이미술체험관(구 어린이생태미술체험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까지 4개의 미술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는 광교신도시 내 수원컨벤션센터에 조성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장안구 송죽동 만석공원 내에 위치한 수원시립만석전시관은 기획전시를 비롯해 연중 다양하고 친근한 전시로 시민과 만나는 공간이다. 수원시립어린이미술체험관은 어린이들의 생태문화예술 교육터전으로 자연과 예술이 결합한 융합교육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초기에 대외적으로 그 존재감을 알리는데 성공한다. 2016년에 개최됐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가상현실’ 전시의 도록이 iF디자인 어워드 2017 커뮤니케이션 디자인부문에 수상한 것이다.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손꼽히는 iF디자인 어워드의 수상을 통해 신진 미술관인 수원시립미술관의 전시가 국제무대에 소개되고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 해 11월에 수원시립미술관은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한다. ■ 수원의 화가 나혜석과 백영수를 추억하다 2층 전시실에서 마주한 서양화가 정월 나혜석(1896~ 1948)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한동안 멈추게 한다. 1928년경에 그린 ‘자화상’에서 짙은 우수가 느껴진다. 나혜석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나혜석의 막내아들 김건이 수원시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나혜석은 수원 출신이다. 미술관에서 5분쯤 걸으면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다. 시대를 앞선 여성 나혜석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몇 점 남아 있지 않은데, 수원시립미술관은 5점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나혜석의 사진과 그에 관한 기사를 실은 신문, 글을 투고한 잡지도 소장하고 있다. 한편 2020년의 기획전 ‘백년을 거닐다: 백영수 1922~ 2018’은 수원 태생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한 백영수 화백의 작품세계를 살피는 특별한 기회였다. 백영수는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 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한 1세대 작가이다. 서정적이면서 조화로운 경향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백 작가는 2016년에 대한민국 문화예술 은관훈장을 수훈한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나혜석의 작품을 수집하고 ‘첼리스트 문태국이 만난 백영수’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수원 출신의 화가를 기억한다. 미술은 역시 현장이 중요하다. 발품을 팔아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주해야 온전한 만남, 영혼의 깊은 울림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022 소장품 교류기획전 ‘우리가 마주한 찰나’는 주목되는 기획이다. 무엇보다 볼거리가 풍성하다. 수원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경기도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오산시립미술관등에서 작품을 대여해온다. 전국에 흩어져 소장된 한 작가의 작품을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주제가 ‘우리가 마주한 찰나’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총 3부의 구성으로 24팀의 작가를 소개한다. 1부 ‘자연’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고 살아가는 자연을 살펴본다. 자연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소재이다. 2부 ‘인간’과 3부 ‘그 너머’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내면과 예술에 관한 사유를 담은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구름이 화폭에 담겨 있다. 구름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또 있을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푸른 나무가 가득한 숲과 만나고, 타다 남은 숯덩이를 펼친 작품도 만난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의 작품은 역시 인기가 많다. 작품 앞에서 스스로 나의 내면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찰나의 시간들을 소중히 인식하고 마주하는 순간, 일상은 예술 그 자체가 된다”는 해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볼거리는 미술 작품만이 아니다. 미술관 곳곳에서 만나는 휴식공간도 매력적이다. 건물 구석에 숨어 있는 쉼터나 야외가 훤히 보이는 실내 카페는 물론 미술, 디자인, 건축 등의 전문 도서와 다양한 정기간행물을 열람할 수 있는 ‘미술관 라이브러리’도 관람객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동적(動的)’이다. ‘미술관에서 요가를’, ‘비포 선셋’은 미술관의 역할이 어떻게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열린 공간이다. 입장이 마감된 이후에도 옥상을 올라갈 수 있다. 옥상에 올라 사계절 변신하는 팔달산과 그 산자락에 안긴 화성행궁과 때로는 오고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언제 찾아도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갖추고 있다. 전통과 현실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복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0. 수원 ‘해움미술관’

정조의 꿈이 깃든 세계유산 화성을 보유한 수원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욕구는 타 도시에 비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성장할 때까지 시립미술관이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2013년에 개관한 해움미술관(관장 황옥남)은 수원시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해움미술관은 미술현장에 몸담아온 설립자 이해균 작가의 경륜에 따라 ‘거창한 것보다 작은 것으로부터 문화적 공감대를 열어가며 지역민의 욕구에 부응해 가는 창조적 예술 보급처로’ 출발한다. 더불어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수원이라는 지역사회에 문화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지역미술의 저변을 탄탄히 구축하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의 줄기서 꽃을 피우다 해움미술관은 이 일이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의 줄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밝힌다. ‘관심의 줄기’를 통해 ‘관람객들과 작가 사이에 예술의 온기가 가득 채워지는’ 바람을 가지고 ‘예술로 인해 우리의 삶과 일상의 가치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을 추구한다. ‘줄기’의 역할은 뿌리와 가지,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통로다. 이 사실을 통해 해움미술관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해움’의 해(태양)는 식물의 움(싹)을 틔우는 바탕이자 근원이다. 이처럼 해움이란 이름에는 예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들이 재능을 발휘한 작품을 생산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해움미술관은 화방에서 움을 틔운 것이다. 화방을 경영하던 황옥남 관장은 연필과 종이, 물감을 구입하기 위해 화방에 드나드는 지역 작가들과 화가인 남편 이해균 작가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방안을 모색하다 미술관 설립을 구상한다. “비록 사적인 출발이지만 미술관을 운영하다 보니 어느새 공적인 공간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이런 자세로 임하다보니, 말은 하지 않지만 남편이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남편을 소외시켜야 했거든요” 해움미술관이 단기간에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황 관장의 이러한 신념이 관철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움미술관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미술관이 터를 잡고 있는 교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동(校洞)’은 향교가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에 이장한 1789년에 수원향교가 팔달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교동이란 마을이 탄생한다. 이처럼 수원의 중심인 ‘교동’에 자리 잡은 해움미술관의 주변에 ‘구 수원시청사’와 ‘수원 구 부국원’ 같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여럿 있다. 일제강점기에 농작물 종자·종묘·농기구 등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의 건물은 해방 후 수원법원과 검찰 임시청사, 수원시 교육지원청, 공화당 경기도당 청사, 수원예총, 박 내과의원으로도 사용되었던 근대유적이다. 해움미술관은 ‘수원 구 부국원’의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시민들과 보존에 앞장선다. 이런 노력으로 ‘수원 구 부국원’은 2017년에 국가등록문화재(제698호)로 지정된다. ■ 오래된 시작-교동, 수원예술을 품다 해움미술관 개관을 기념한 기획초대전 ‘오래된 始作교동,수원예술을 품다’는 ‘수원시 최초의 사설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수원을 비롯해 안성, 안산, 오산, 화성, 평택, 용인 등 도내에서 활동하는 작가 76명이 참여한 이 초대전에는 원로 서양화가 김학두 화백부터 한국 화단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홍형표, 조진식 등의 중견작가와 권성택, 황보경 작가까지 총 76명이 참여했다. 세대와 분야를 아우른 이 초대전을 통해 수원의 행정·문화·예술의 1번지인 교동의 부활을 알린다. 특별전을 기획한 황옥남 관장의 다짐은 현재진행형이다. “해움미술관은 옛 모습을 간직한 구 도심권에 위치하고 있지만 작은 문화예술의 보급소로서 교동 지역의 화려했던 옛 영광을 재현하고 복원해 가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려 한다. 아울러 수원과 경기도 지역의 예술인들에게 예술의 힘을 배양하는 의미 있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이다” 해움미술관은 전시 장소를 미술관 안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2015년 5월에 ‘교동창작촌(대표 이해균)’의 이름으로 개최한 ‘가족이 희망이다’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작품이 전시된 장소는 ‘구 수원시청사(등록문화재 598호)’인데, 1956년에 준공되어 수원시청사로 사용되다가 ‘수원시가족여성회관’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 미술관,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품다 2015년 6월에 연 제1회 ‘알터 에고(Ater Ego)’전은 실험적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또 다른 자아’를 뜻하는 알터 에고전은 새로운 자신을 탐색하는 성찰적 의미를 구현하는 자리로 회화, 조각, 설치미술까지 아우른 전시였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해균 작가는 예술가를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체하고 개조하며 선험적 또는 사변적인 사유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본능적 심상 표출의 수행자’로 규정한다. 이해균을 비롯해 김성배, 김수철, 김영섭, 오은주, 차진환, 최현식 7인이 참여했다. 한편 해움미술관은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알터에고 상’을 제정하여 2015년 첫 수상자로 김수철 작가, 2016년 수상자로 최세경 작가를 선정한다. 같은 해 8월에는 한국 판화계의 거장 ‘김억·류연복 작가 목판화 展 -땅과 삶이 만나는 목판화’전을 통해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 목판화의 흐름과 목판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김억은 명승지나 사찰 등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산수풍경을 지도처럼 제작하고 흑백으로 찍어낸 목판화를 통해 수묵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공간, 한국의 자연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류연복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형식을 빌려 사람이 사는 마을을 우주의 지세로 표현한 작품 ‘남한산성전도’, ‘외암골전도’ 등의 작품을 통해 땅과 하늘의 이치를 드러냈다. 2015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한국현대목판화-국토와 민중’전을 연다. 예술철학자 장석주는 ‘국토와 민중’전을 참여한 작가를 국토와 민중 두 계열로 나눈다. 땅의 생명력과 역사성을 찾아내려는 ‘국토 계열’로 김상구·이상국·김억·김준권·류연복·안정민·손기환·정비파·홍선웅을,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과 그들이 걸어온 흔적을 복원하려는 ‘민중 계열’로 서상환·윤여걸·정원철·이윤엽·강경구·김봉준·정찬민을 들었다. 1980년대에 뜨겁게 타올랐던 목판화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 새로운 길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서다 목탄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재삼 작가의 ‘MOONLIGHT IN FOREST(2016)’은 달과 숲을 주제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일깨워준 흥미로운 기획전이다. 기획전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2018)’ 역시 주제의식이 분명하다. 김희경, 성민우, 전경선 3인의 작가는 관람객을 향해 “기술 문명에 의해 버려진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관계를 예술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예술”을 모색한다.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3·1운동의 정신 전-아! 대한민국’과 수원민족미술인협회 30주년 기념전 ‘산은 봄을 품어 안고’를 연달아 기획한다. 두 기념전은 작품 전시를 미술관에 한정하지 않고 남문로데오 갤러리로 확장하여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계인의 풍경, 송창전(2020)’과 강행복, 김상구, 김재홍 3인의 ‘판화와 회화의 조응전(2021)’도 울림이 큰 전시였다. 내년이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움미술관은 ‘지역주민들과 문화 향유를 위해 찾아가는 미술관, 문화소수자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미술관, 다양한 기획과 실천을 통해 미래의 발전적 가능성을 지닌 미술관으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진지하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9. 광주 얼굴박물관

얼굴 좀 봅시다! 박물관 입간판이 재밌다. 웃고 있는 한사람 얼굴이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두 사람의 얼굴이다. 관람객을 마중하는 것일까. 박물관 벽면에 다소곳 두 손을 모으고 온화한 표정으로 망부석이 서 있다. 돌사람 아래에 다섯 나라의 언어로 얼굴을 나타내는 단어 Face(영어), Visage(불어), 顔(안, 중국어), Gesicht(독어), Cara(스페인어)가 씌어 있다. ‘아름다운 만남Ⅲ-20세기에 내가 만난 문화예술인’이란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얼굴박물관(관장 김정옥)은 2004년 5월에 개관했다. 이름에서 암시하듯 온갖 표정의 다양한 얼굴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 평화를 꿈꾸는 얼굴박물관 박물관에 들어서면 진시황 병마용갱 무사와 철갑옷으로 무장한 중세 서양기사와 천진한 표정의 어린아이가 서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사진액자들로 가득하다. 사진 속 얼굴이 어쩐지 익숙하다. 유명 탤런트와 연극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얼굴박물관을 설립한 주인공은 극단 자유의 연출가이며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인 김정옥 관장이다. 집무공간에도 얼굴을 주제로 한 소품들이 가득하다. 김 관장과 부인 조경자 여사의 모습을 조각한 테라코타는 안준철 학예실장이 선물한 작품이다. 91세의 원로예술인은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대안을 촉구한다. “어떤 보수정권이 보수정권답지 않은 어설픈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국공립 박물관의 입장료를 무료화해 참여정부의 진흥정책에 힘입어 창립된 많은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 오늘까지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박물관을 특수문화재단으로 인정해 주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1966년에 극단 자유를 창립해 60여년을 활약한 한국 연극계의 원로답게 생각은 여전히 진취적이다. “우리 극단처럼 해외공연을 많이 다닌 단체는 없을 것이다. 우리 연극인들이 80년대에 한류의 터전을 마련하는데 기여한 셈이다” 청춘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은 김 관장은 평화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우리에게 비무장 정신이 필요해요. 나는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전체로 확장되면 좋겠다는 그런 꿈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는 김 관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6·25전쟁, 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한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영화를 공부하러 간 프랑스에서 연극에 빠져든다. 귀국하여 극단 ‘자유’를 창립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지금까지 100여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 사이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두루 지낸 한국 문화예술계의 원로다. ■ 얼굴로 우리 시대를 이야기하다 김 관장의 연출가로서의 감각과 기량은 박물관 특별전을 기획할 때도 발휘된다. 2004년 개관 특별전 ‘한국적 형상과 석인(石人)’을 시작으로 ‘종이오리기와 석인’(2004~5), ‘무속화와 무속공연’(2005), ‘세계의 배우-20세기의 표정’(2006봄), ‘한국의 장승과 벅수’(2006가을), ‘선비와 머슴사이’(2007봄), ‘예술가의 얼굴과 창조적 인연’(2007가을), ‘일제 감점기의 꽃단지’(2008), ‘한국예술가 100인의 얼굴’(2009), ‘22인의 예술가 그들이 표정’(2010), ‘석인의 얼굴, 예술가의 드로잉’(2011), ‘아르 브뤼, 한국’(2012), ‘세계의 미술가 50인의 얼굴’(2013), ‘세계의 인형과 꼭두극’(2013), ‘꽃단지와 꽃병’(2014), ‘아홉 가지 아름다운 만남’(2014), ‘세계의 초상화 50선’(2015), ‘화려한 행차, 저승가는 길’(2016), ‘생과 사를 연기하다’(2017), ‘아름다운 만남’(2018), ‘햇빛 밝은 아침’(2018), ‘20세기 기억의 공간에 떠오른 100인의 얼굴’(2019), ‘20세기 스크린의 영원한 얼굴’(2020), ‘세계의 인형전’(2021)으로 이어졌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만남 얼굴Ⅲ’은 얼굴 박물관의 핵심 주제다. ■ 돌사람과 그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위로와 격려 김정옥 대표가 지난 40여년간 수집해온 소장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준철 학예실장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둘러보며 사람의 얼굴에 담긴 풍성한 사연에 새삼 놀란다. 맨 처음 만나는 유물은 불상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불상은 쇠로 만들었건 나무 혹은 흙으로 만들었건, 긴 세월에 귀가 떨어지고 코가 사라져 버렸어도 표정이 더없이 평화롭다.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령은 허연 수염이 허리까지 늘어졌지만 얼굴은 십대 소년처럼 홍안이다. 현대 유명 조각가의 작품도 있다. 커다란 단체사진 속에 익숙한 얼굴이 여럿 보인다. 김정옥 관장 옆에는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배우 김혜자 씨와 박인환 씨를 비롯해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 씨의 얼굴도 보인다. 이제부터 특별전이 열리는 공간이다. 극단 자유의 이병복 초대 대표, 단원으로 활동했던 배우 추송웅의 얼굴이 반갑다. 1세대 연출가인 유치진, 이해랑, 차범석의 얼굴도 보이고, 권옥연, 김환기, 천경자, 백영수 같은 유명 화가들도 등장한다. ‘광장’을 쓴 소설가 최인훈,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가수 백년설과 남인수도 있다. 유명 시인들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그 까닭을 학예실장이 들려준다. “젊은 날에 시를 쓰셨어요. 일찍 등단하셨지요” 김현승, 박성룡, 구상, 서정주, 신동문, 법정스님도 가깝게 지낸 인물들이다. 이제하와 함께 ‘문지’의 시집 표지화를 그린 김영태 시인과도 각별한 사이다. 특별전을 소개하는 도록의 표지화가 바로 김 시인이 그린 김 관장의 얼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카스트로가 ‘문화예술을 사랑한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사실도 흥미롭다. “카스트로가 연설을 할 때 관장님이 너무 피곤해 졸다가 잠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유일하게 잠이 든 사람이었다고 해요” 특별전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분들이다. “이 상여는 프랑스에서도 전시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신문에 실린 기사도 스크랩되어 있다. 상여에 부착했던 인형들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 마을 주민들과 펼치는 축제의 공간 아래로 내려다보니, 중앙에 무대가 있고 뒤편으로 좌석이 계단식으로 놓여 있다. “관람객들이 옛사람들을 만나는 박물관이자 동시대의 배우들이 펼치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이지요” 박물관은 이곳에 마을 주민들을 자주 초대한다. 이웃과 어울려 연극을 보고 영화를 감상하는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문을 열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누마루와 대청이 있는 멋진 한옥이 나타난 것이다. 한옥에 얽힌 내력이 흥미롭다. 시인 김영랑의 고향이자 고려청자로 유명한 전라도 강진에서 옮겨져 온 집으로, 서울 목수 김춘연, 허균을 동원해 백두산 소나무로 지었다는 사연이 기록된 상량문도 있다. “이 집은 본래 장춘실(長春室)이란 이름을 가졌었으나 이곳으로 옮기고 관장님이 ‘관석헌’(觀石軒)이란 이름을 지었지요. 이 한옥에서 차를 마시거나 가족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룻밤을 지내며 한옥체험을 할 수 있지요” 돌사람들이 가득한 마당을 보면 ‘관석헌’이란 이름을 지은 까닭을 금방 알 수 있다. 천년의 세월을 건너온 돌사람과 마주 선다. 돌사람의 표정이 압권이다. 부릅뜬 눈, 뭉툭한 코, 닳아서 희미해진 입을 가진 돌사람의 표정은 배우들에 못잖게 매력적이다. 왜 돌사람에 빠져드는지 알 것 같다. 계단을 올라가 상여를 만난다. 너무나 우아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주는 유물이다. 석공이라 불리던 이름 없는 조각가들이 만든 돌사람은 우리의 민화 못지않게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 돌사람과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박물관까지 설립한 김 관장은 이 세계 유일의 얼굴박물관이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다른 나라에는 얼굴박물관 같은 곳이 없어요. 그 소중한 의미를 앞으로 잘 이어가고 싶어요”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8.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

쌀은 세계인의 절반 이상, 아시아인들의 주식으로 먹는 곡물이다. UN은 2004년을 ‘세계 쌀의 해’로 제정했으며, 농촌진흥청은 8월18일을 ‘쌀의 날’로 정했다. 쌀(벼)은 한국인에게 너무나 정겨운 이름이다. 한 알의 쌀, 한 톨의 볍씨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관장 이도연)은 5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벼농사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체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은 고양시농업기술센터 내에 위치하고 있다. 잔디가 곱게 깔린 박물관 마당 한쪽에 짚으로 만든 두 채의 움집이 있다. 신석기시대의 ‘원추형 집’과 청동기시대의 ‘직사각형 집’은 관람객을 한반도의 고대사로 데려다 주는 상징물이다. 그 옆에는 한반도 모양의 자그마한 논에서 자란 10여종의 벼가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 볍씨 한 알에 깃든 인류의 역사와 자연사 박물관에서 커다란 볍씨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쌀알을 토해내려는 듯 껍질이 살짝 벌어진 이 볍씨의 이름은 ‘가와지볍씨’란 이름을 가졌다. 일산 신도시 개발에 앞서 지표조사와 문화유적의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91년 6월에 이융조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이끄는 발굴 팀이 대화동 가와지마을 논바닥에서 까만 토탄층 가래나무 층위에서 볍씨를 발견한다.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 이 교수는 이 볍씨를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국 베타연구소로 보내 연대 측정을 요청한다. 방사성탄소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5천20년 전의 볍씨로 밝혀졌다.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을 밝혀줄 뿐 아니라 한반도 벼농사가 청동기에서 출발했다는 기존 정설을 뒤집었다. 발굴팀은 벼 줄기와 낱알을 연결하는 ‘소지경(小枝莖)’ 흔적 등을 근거로 가와지볍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경작 벼라고 결론짓는다. 가와지볍씨의 역사적 의미는 5천년 전 한반도 농경문화의 기원이 바로 한강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고양 지역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 볍씨는 학계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앞서 여주 흔암리나 김포 가현리에서 발견된 볍씨의 연대보다 2천년이나 앞선 5천년 전의 볍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너비 7mm 남짓의 작은 볍씨 한 톨은 농경문화가 일본으로부터 전파됐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 벼가 발견되자 외국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1994년 9월17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가와지볍씨를 자세히 소개했다. ■ 세계서 가장 작은 유물로 세운 박물관 가와지볍씨 발굴 10년이 되는 2001년, 고양시농업기술센터는 가와지볍씨의 가치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발표회를 열고 연구원들은 가와지볍씨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조상대대로 쌀농사를 지어 온 고양에 볍씨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같은 해 11월에 발굴 당시에 출토된 토기와 볍씨를 전시하는 ‘농심테마파크’ 문을 연다. 2013년 열린 고양600년 학술세미나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과 고양가와지볍씨의 재조명’과 국제학술회의 ‘고양가와지볍씨와 아시아 쌀농사의 조명’은 박물관 건립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2014년 4월 마침내 전시관 이름을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으로 변경하고, 같은 해 11월에 ‘고조선과 고양가와지볍씨’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박물관으로서 출범에 걸맞게 ‘농업의 미래를 위한 박물관(2015)’과 ‘세계의 선사농경과 5천20년 역사의 씨앗, 고양가와지볍씨(2016)’라는 학술회의를 연달아 개최하며 위상을 높여나간다. 또한 2016년에는 특별전 ‘고인류문화연구소 소장품 한국선사시대 농경연모 특별전’을 열었다. 2019년 4월29일에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을 정식 등록하고, 9월에는 남양주 우석헌자연사박물관과 업무 협력을 체결한다. 이를 계기로 특별전 ‘혁명의 씨앗, 광물’와 ‘벼, 타임캡슐을 열다’를 연달아 열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낸다. 볍씨 한 알에 담긴 시간의 흔적과 화석에 기록된 다양한 생물종의 공존과 진화의 열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내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두 박물관의 협업이 신선하다. 협업과 융합의 노력으로 볍씨 한 알을 매개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공생과 상생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작은 공간에서 매우 큰 의미를 담은 전시이다. 두 박물관의 협업과 융합이 빛을 발한다. 박물관은 현재 2천813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소장품은 가와지에서 발굴한 5천20년 전 신석기시대의 볍씨 5톨과 청동기시대 3천년 전의 볍씨 90톨을 보관하고 있다. 박물관은 네 곳으로 공간을 나누어 주제를 담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실 ‘고양가와지 유적실’은 1991년 5천20년 전 가와지볍씨가 출토된 대화리 가와지마을 발굴현장을 50분의1로 축소하여 재현한 곳이다. 당시의 사진을 통해서 발굴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돋보기기 장착된 특수용기 안에 든 5천년, 3천년 전의 가와지볍씨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슴 설레게 한다. 평균 길이 7.03㎜, 너비 2.78㎜에 불과하다는 가와지볍씨를 돋보기를 통해 유심히 살펴본다. 저 볍씨 한 알에 고양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흘린 땀방울과 수확의 기쁨이 배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볍씨가 더욱 크게 보인다. 전자현미경으로 벼의 줄기 부분과 낱알을 연결하는 부분을 ‘소지경’이라 부르는데, 이 부분을 확대한 사진을 살펴본다. 가와지볍씨는 사람이 훑은 흔적이 보인다. 자생벼와 달리 재배벼의 소지경은 표면이 거칠다. 볍씨를 발굴한 지역에서 출토한 주먹도끼와 토기를 만나볼 수 있는 제2전시실은 주제가 ‘선사시대 농경생활’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에 담긴 뜻밖의 사연이 무척 흥미롭다. “빗살무늬토기는 벼를 비롯한 곡물을 담는 그릇으로 알고 있으시죠? 연구자들이 빗살무늬토기에 쌀을 넣어 밥을 지어봤는데 아주 맛있게 익었어요. 아마도 불기운이 토기의 바깥 면에 고르게 닿았기 때문일 것이에요” 정현진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미소를 짓는다. 박물관은 유물과 상상력이 만나야 즐거운 공간이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돌도끼를 든 원시인을 소재한 만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3전시실은 ‘조선·근대 농경문화’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한강은 농사와 유통을 비롯해 한국인의 생활문화의 현장이자 중심지였다. 벼농사가 발달했던 고양시의 과거로 안내하는 유물들과 마주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지게와 호미 같은 물건들이다. 벼의 줄기를 이용해 많은 물건을 만들어 사용했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서민들이 애용했던 짚신, 벼를 비롯해 곡식과 열매를 말리는 멍석, 곡식을 담는 가마니, 거름이나 흙, 재를 담았던 삼태기 등 지금 아이들의 눈에는 낮선, 어른들의 눈에는 익숙한 물건들이다. 감동스러운 것은 농기구를 비롯해 전시된 유물들이 모두 1991년 당시 신도시 개발에 반대하던 지역 농민들이 기증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 쌀 한 알에 담긴 과거와 미래 가와지볍씨는 한반도 최초의 벼 재배현장이 한강 유역인 고양시가 중심이었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유물이다. 문제는 가와지볍씨가 야생벼가 아니라 재배벼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이었다. 볍 알이 이렇게 많은 사연을 전달해 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볍씨에는 5천년 전 단군조선의 역사도 담겨 있을 것이다. 고양시의 쌀 사랑도 각별하다. 지역 농업인을 돕기 위해 고양시가 나서서 ‘고양 쌀’ 소비 촉진에 앞장서고 쌀 팔아주기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볍씨 한 알로 시작된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유물을 가지고 박물관을 세운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쌀은 미래의 자원이다. 고양시가 볍씨 연구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길 소망한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7. 고양 ‘국립여성사전시관’

국립여성사전시관(관장 정영훈)은 2002년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개관했다가 2014년에 현재의 정부지방고양합동청사로 이전한다. 같은 해 9월, 이전 개관 특별전으로 ‘북촌에서 온 편지-여권통문’을 연다. 1898년 9월1일 이소사와 김소사의 이름으로 발표한 ‘여권통문(女權通文)’은 한국 여성운동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선언이다. 여성의 평등한 교육과 직업, 참정권을 요구하는 이 선언은 1908년 3월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궐기로 시작된 ‘세계 여성의 날’ 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권통문을 토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 ‘찬양회’를 조직하고 1899년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힘으로 순성여학교를 세운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우리 여성의 역사가 이제까지 제대로 쓰이지 않고 보이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이 국립여성사전시관 설립의 출발점이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5천년 우리 역사에서 누락되고 유실된 여성의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오늘에 되살리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여성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전시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1층과 2층에 마련된 전시실을 둘러본다. “2층 상설전시실은 ‘과거를 담아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연대와 분야별로 역사발전에 기여한 사람들과 역사의 궤도를 바꾸었던 사건들, 국난의 시기에 있었던 아픈 기억들, 그리고 세계 인류의 존엄성과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시기획을 담당하는 이동은 학예사의 설명이다. 고대부터 6·25전쟁까지 상상과 상징을 통해 ‘여성의 역사’를 다룬 디지털 패널 앞에 선다. 영상 작품 ‘위대한 유산’은 한국 여성의 역사를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변화와 대응’에서 현대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한국 여성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타자기를 비롯한 낡은 전시물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기억과 기림’은 여성들의 수난사이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된 이후에도 생존을 위해 침묵을 강요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공간이다. 유리관 안에 다소곳 손을 모은 소녀 인형들이 서 있다. “이 안에 있는 인형은 현재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들과 같습니다” 2014년에 설치할 때보다 개수가 여럿 줄어들었다. 위안부들에게 지불했던 군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 소장 및 증언 속기록도 전시되어 있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사’로 불리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알록달록한 조각보는 무엇일까? “통일을 염원하며 DMZ 평화걷기에 참가한 여성들이 조각을 이어 만든 작품이지요” ‘협력의 기록’은 우리 삶 속에 놓인 온갖 폭력을 없애려는 여성들의 다양한 평화운동을 기록한 공간이다. 평화운동은 여성운동과 맞물려있음을 색동 조각보가 보여주고 있다. ■ 가족의 틀, 전환, 확장 1층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가족의 역사-틀, 전환, 확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가족’을 다루는 전시다. 1부는 ‘틀-가족의 역사, 제도를 통해 보다’이다.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틀’은 사실 시간과 공간,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족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인 2부 ‘전환, 틀을 바꾼 사람들’이다. 전통시대를 지나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우리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장년층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근대 유물도 있다. 지금 봐도 세련된 디자인의 모자와 양산, 구두와 장갑은 1920년대부터 세상의 통념을 전복시킨 신여성의 필수품이다. 구두 한 켤레에는 온갖 사회적 차별과 편견, 억압을 물리치며 권리를 쟁취해낸 여성들의 눈물과 기쁨이 들어 있다. 1980년대에 제작한 가족법개정 포스터 한 장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갓을 쓴 남자가 재산과 상속, 자녀와 친족까지 네 가지를 모두 안고 있고, 한복을 입은 여성은 빈손으로 서 있다. 포스터를 발행한 곳은 가족법 개정에 앞장 선 ‘사단법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이다. 이태영 변호사의 친필 원고, 김영정의 안경과 안경집, 이우정의 국회의원 배지, 박영숙의 친필 원고 같은 전시물들은 한국 여성운동사의 성과를 보여주는 빛나는 보배들이다. 한 장의 종이에 보수와 진보에 속한 유명정치인들의 이름 셋이 들어있다. 홍보를 담당하는 김예지 대리가 설명이 재미있다. “가족법 개정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를 냈던 증거물이죠” 1인 가구가 비약적으로 늘고 있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형성된 지 이미 오래다. 앞으로 가족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런 고민은 3부 ‘확장, 확장된 가족’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자료만 나열하지 않았다. 공간을 시간의 흐름을 느끼도록 배치한 것이나 기증 유물을 입체적으로 전시한 발상이 산뜻하다. ■ 여성의 눈으로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준비하다 2층 상설전시실에 마련된 위안부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1991년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동상. 윤원규기자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여성사전시관의 이념과 활동을 특별기획전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난 2021년의 특별기획전은 ‘세상을 짓다-조리서로 읽는 여성의 역사’였다. 17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리서와 식재료, 조리 도구, 부엌의 형태 등을 통해 음식문화사를 살피는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성 구별 없이 모두가 함께 요리하는 시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졌다. 2020년 특별기획전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은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시점에서 방역의 역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살피는 기획이었다. 방역의 개념이 생겨난 구한말, 근대적 보건위생이 정착되는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역의 역사를 80여점의 유물과 사진, 영상을 통해 조망하며 그 안에 보이지 않던 여성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특히 2020년 현재 코로나19 방역에 헌신하는 동시대 여성들의 활약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2019년 특별기획전 ‘여성 직업 변천사’도 흥미롭다. 지난 100년의 여성사를 여성의 일과 노동의 변화,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는 기획이다. 당시를 알려주는 사진과 영상기록물 등 100여점의 자료를 통해 여성들의 직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피도록 했다. ■ 국립여성사박물관 설립을 향해 쉼 없이 움직이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러 도시를 찾아가는 ‘순회전’도 그 하나다. 2021년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세계여성박물관 충북미래여성플라자(1차), 평등한 가족의 달 온라인 갤러리展 수원도시공사(2차), 충북미래여성플라자(3차), 창원시청 로비, 여성회관 창원관, 여성회관 마산관(4차), 충북미래여성플라자(5차)로 이어졌다. 2019년에는 ‘여권통문’과 ‘여성독립운동가’ 콘텐츠를 가지고 중랑구청 잔디광장, 전남여성문화박물관, 동작구청 별관 야외마당, 고양어린이박물관 야외잔디마당,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화정중앙공원, 도봉구청 1층 로비갤러리, 고양시 여성커뮤니티센터, 광명시민회관 전시실, 김포시아트홀 전시관, 수원시가족여성회관 갤러리, 전북 고창군 동리국악당, 북촌문화센터, 충북 청주시 그랜드플라자호텔 2층, 신한은행 백년관, 고양어린이박물관 1층 다목적실 등에서 시민들과 만났다. ‘유물과 함께하는 여성사아카데미’를 비롯한 다양한 강연회로도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국립여성사박물관이 곧 건립될 예정이다. 이미 터까지 확보한 상태로 2024년에 개관할 예정이다. 정영훈 관장이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 “여성의 의식주와 생활사 등에 관한 수집된 소장품은 현재까지 약 6,500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여성 관련 유물이나 자료를 소장하고 계신 개인이나 단체가 있으시면 저희 전시관에 기증해 주십시오. 기증자의 고귀한 뜻을 살려 잘 보존하고 깊이 연구하여 널리 활용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6. 파주 ‘한길책박물관’

책은 종합예술품이라는 주장이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펴낸 아름다운 책과 마주하면 이런 생각에 절로 동의하게 된다. 책의 매력이 고흐의 그림이나 로댕의 조각 작품에 못지않음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한길책박물관(관장 김언호·박관순)은 책에 대한 통념을 바꾸게 하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문·예술학 출판을 선도해온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책의 문화, 책의 미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한 한길책박물관은 ‘북하우스’ 안에 있다. 밖에서 보면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이 독특한 건물은 건축가 김준성씨가 설계한 것으로 2008년 ‘제19회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란다. 한길사의 책들을 진열해놓은 책방 ‘북하우스’와 카페가 있다. 계단 없이 박물관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완만한 경사길 벽면에 책들이 가득하다. ■ 책과 책방들의 아름다운 풍경 현재 지하 1층 전시관에는 김언호 대표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돌며 찍은 사진전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가 열리고 있다. 전시된 작품을 살펴보면서 책은 독립된 예술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800년 된 고딕성당에 들어선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넌서점, 폐쇄된 기차역을 서점으로 바꿔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안위크의 바트 북스, 24시간 불 밝히는 베이징의 싼롄타오펀서점은 규모나 역사나 운영 방식에서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1902년 개점 이후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는 도쿄의 기타자와서점, 부산의 자존심 같은 영광도서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름다운’ 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책을 만들면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됐죠. 고서는 그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아름답고 위대한 흔적입니다. 아름다운 책에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오래된 책이나 판본들을 수집했지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책, 인류 공동의 자산이자 문화유산인 책을 통해 책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을 이웃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김언호 관장은 양서를 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얻고자 유럽의 책방을 순례하면서 운명처럼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위대한 출판인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와 만난다. 모리스가 1891년에 설립한 켐스콧 공방에서 펴낸 아름다운 책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그의 예술혼에 빠져든다. 결국 거금을 들여 켐스콧 공방에서 펴낸 셰익스피어의 시집,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시인 제프리 초서의 ‘초서 작품집’ 등 53종 66권 전질을 구입한다. 출판인 김언호 관장에게 모리스는 영원한 스승이다. “아름다운 책을 출판하려고 모리스가 기울인 정성은 놀랍습니다. 여러 가지 활자체를 직접 디자인하고 종이와 잉크를 개발하기도 했지요” 모리스의 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꼽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시된 모리스의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뭇잎과 꽃봉오리들이 반복 배치된 문양을 바탕으로 모리스가 디자인한 머리글 서체와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삽화가 어우러진 멋과 품격은 우리 시대에서 맛보기 어려운 황홀한 체험이다. ■ 책의 품격 높이고 아름다움 살린 모리스와 도레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친숙한 그림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독특한 삽화는 바로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구스타브 도레(1832~1883)의 판화 작품이다. 도레의 덕분에 ‘돈키호테’는 더욱 유명해졌다. ‘돈키호테’를 비롯해 ‘신곡’과 ‘장화신은 고양이’, ‘라퐁텐우화집’ 등의 삽화도 감상할 수 있다. 삽화 228점을 넣어 프랑스와 영국에서 엄청나게 팔린 ‘도레의 성서’도 있다. 왜 그림 성경이 등장했을까? 중세 유럽에는 9할이 문맹자였다. 스테인드글라스도 문맹자를 위한 그림 성경이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는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유명하다. 1797년에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삽화가 들어 있는 성경책도 만날 수 있다. 영국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의 판화, 영국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의 ‘살로메’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서양의 고서들이 즐비한 박물관에서 근대 우리나라 유명 작가들의 육필원고를 만나는 것도 뜻밖의 즐거움이다. 1층과 지하 1층 기획전시에 이어 2층과 3층 상설전시실 순서로 둘러보면 된다. 2층에 마련된 영상물을 보면 박물관에 전시된 책과 관련된 정보를 종합적으로 얻을 수 있으니 빠트리지 말고 들러보길 권한다. 16~19세기 유럽의 아름다운 고서들, 18~19세기 출판인쇄술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판화와 시대정신 가득한 신문·잡지 등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출판물이다. 시대와 지역별로 전시해놓은 ‘아라비안나이트’ 판본의 섬세한 삽화를 살피다보면 미술관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잡지 ‘Yellow Book’과 ‘Saboy’, 26세로 요절한 삽화가 비어즐리의 책들, 20권으로 구성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살바도르 달리나 후안 미로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삽화를 그린 성경도 빼 놓을 수 없는 전시품이다. ■ 책의 향기 음미하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 1976년에 창립한 한길사는 2022년 현재까지 3천50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중에는 40만부가 팔린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해 ‘함석헌전집’,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같은 베스트셀러도 여럿 있다. 김 관장은 출판의 정신과 뿌리를 씨알 함석헌 선생에게서 찾는다. 북하우스 1층 한복판에는 함석헌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언호 관장은 파주출판문화단지와 3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을 설득해 문화마을 ‘헤이리’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파주출판도시 건설이 진행되던 1994년 봄, 김언호 관장은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참관하러 가는 길에 영국 웨일스 지방 폐허가 된 탄광촌에 들어선 고서마을 ‘헤이온와이’를 찾아간다. 이때의 인연은 헤이리 예술인마을로 연결된다. 김 관장은 헤이리의 환경을 고려해 서점, 갤러리, 카페, 박물관을 두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예술마을 헤이리에 한길책박물관이 탄생한 내력이다. 책박물관을 둘러보며 교육·과학·기술·예술 등 모든 것이 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김 관장의 주장처럼 “책이야 말로 미래를 창조하는 원천”이다. 영화·뮤지컬·애니메이션 등 어떤 콘텐츠든 책이 그 가운데에 있다는 주장을 감히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에 책의 소멸을 예측했으나 종이책은 여전히 살아 있다. 김 관장의 주장대로 지식과 정보의 양보다 질이 높아져야한다. “인터넷에 들어가든지 스마트폰을 보면 웬만한 정보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읽어야 합니다. 좋은 책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한길책박물관은 현재 ‘어린왕자, 나의 별을 찾아서’를 진행하고 있다. 11월30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생텍쥐페리가 1943년에 ‘어린왕자’를 펴낸 것을 기념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된 다양한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세계서점기행’을 펴낸 바 있는 김언호 대표의 사진전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는 10월2일까지 이어진다.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시민들의 품격, 장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도내의 여러 도시에서 이 전시가 이어져 다시 책을 가까이하는 문화, 아이들이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운동이 일어나길 빌어본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5. 파주 ‘세계인형박물관’

지구 마을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부산일보 기자 출신의 유만찬, 김진경 두 사람이 인터넷 신문을 시작한다.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는데, 주요 상품이 세계의 전통인형이었다. 두 사람의 관심과 흥미는 자연스레 전통인형으로 옮아갔다. 인터넷 쇼핑몰의 특성상 두 사람은 인형에 대해 공부하고 이름부터 의상까지 인형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소개한다. 전문 실력을 갖추게 된 두 사람은 2013년 전통인형들 속에 담긴 풍부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담은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이란 책을 펴낸다. 그리고 2015년 5월, 파주 예술인마을 헤이리에 세계인형박물관(관장 유만찬)을 개관한다. “인형은 그 나라 사람들의 복식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전통 옷에는 많은 사실이 담겨 있지요. 오랜 세월과 풍토가 만들어낸 문화와 역사, 어떤 사건이 인형에 담겨 있습니다” 부관장이기도 한 김진경 학예사의 말이다. 짧은 시간에 80개국의 1천개나 되는 인형들과 모두 만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장 애착이 가고 재미난 이야기가 담긴 인형을 소개해줄 것을 부탁하자 두 사람이 나섰다. ■ 인형을 통해 세계인을 만난다 “각국의 인형들을 통해 지구 마을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민속인형은 세계 각 나라 생활풍습과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 학예사가 노랑머리 인형의 치마를 뒤집자 갈색머리 흑인이 튀어나온다. 놀라운 반전이다. “엘사와 안나에요. 미국에서 유행했던 인형이지요. 미국에서 한때 인종차별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해요” 코너에 놓여 있는 독특한 생김새의 모자들은 관람객들이 써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관람객들이 직접 조종해 볼 수 있는 인형 ‘마리오네트’도 흥미롭다. “르네상스 시대에 마리오네트는 이탈리아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공연에 사용한 인형인데, 마리오네트라는 말도 성모 마리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교회 문을 벗어나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간 마리오네트는 17세기 체코에서 꽃을 피웁니다. 독일 나치가 체코를 점령했던 시절 체코의 인형술사들은 상징과 은유로 나치를 풍자하는 각본을 써서 공연을 펼치다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고난을 당하지요. 이처럼 마리오네트는 억압에 저항하며 자국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는 체코의 구심점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작은 인형들이 벽에 붙어 있다. “과테말라의 ‘걱정 인형’이에요. 걱정 인형은 주부들이 남은 천이 아까워 2~3㎝ 길이의 나뭇가지에 천과 실을 감아 만든 것입니다. 부모는 잠 못 드는 아이에게 걱정 인형을 안겨주며 이렇게 말한다고 해요. ‘걱정은 인형한테 말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렴. 그러면 인형이 네 걱정을 모두 가지고 사라진단다’ 그리고 아이가 잘 때 인형을 감추는데,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인형이 없어진 것을 보고 걱정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요” 필리핀의 ‘바롱 타갈로그’ 인형은 필리핀 남성의 대표적인 정장을 재현했다. 정장인데 속이 훤히 비치는 천을 사용한 까닭이 슬프다. 식민지시절 옷 속에 무기를 숨기지 못하도록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고난의 기억은 이제 필리핀의 자부심과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목에 식량 자루를 걸고, 등에 담요를 메고 손엔 양철통과 지팡이를 쥐고 있는 할아버지 인형이 있다. 해진 모자에 주렁주렁 4개나 달린 코르크가 호기심을 부른다. “호주의 ‘스웨그맨’ 인형입니다. 호주에 실제 이런 행색을 한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있었지요. 1850년대 ‘골드러시’ 여파로 호주에도 유럽 이주민들이 몰려듭니다. 스웨그맨은 당시 호주에서 양털 깎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한 이들을 일컫지요. 코르크 마개는 얼굴에 들러붙는 파리들을 쫓아내는 용도였죠. 인형의 배경을 조사하면 세계사와 인류학이 나와요” ■ 인형에 깃든 흥미로운 문화와 슬픈 역사 크고 화려한 타조 깃털로 만든 머리장식을 한 벨기에 인형 ‘질’은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뱅슈 카니발’의 주역을 형상화한 인형이다. 이 마을 축제를 보기 위해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만 30만이나 된다고 한다. 박물관 중앙을 차지한 인형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다. “사실 마트로시카는 일본의 칠복신 인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러시아 장인들의 다채로운 시도를 거치면서 마트료시카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성취하게 됩니다” 4천년의 긴 역사를 가진 인형이 지금처럼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진화한 것은 200~300년쯤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형은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토우’이다.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토우는 악기를 타는 모양, 노래하는 모양, 지게를 진 모양, 노인의 얼굴, 부부상, 남자상, 말탄 모양 등 형태가 다양하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유리로 만든 동자상도 있다. 해마다 음력 3월이 되면 대여섯 살의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풀각시인형도 있다. ‘꼭두각시놀음’과 ‘만석중놀음’에 사용되는 인형은 움직이는 인형이다. 인형이 없는 나라도 있을까. 이슬람 문화권의 몇몇 나라는 인형이 없다. 사람이나 동물 모습의 형상 만드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권에도 서양의 상징인 바비인형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다. ‘폴라’는 바비인형의 자세와 노출이 이슬람 미덕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정 차도르를 두르고 있다. 펑퍼짐한 치마를 입은 뚱보 인형도 있다. 남아메리카 수리남의 전통 의상 ‘코토미시’를 입은 인형은 슬픈 역사를 알려준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에서 커피·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여성 노예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자 수리남의 여성들은 치마 안에 원통형 쿠션으로 몸을 감싸고 속치마와 겉옷을 여러 겹 껴입어 뚱뚱하게 위장했다. 코토미시에는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새겨져있다. ■ 인형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노래하다 세계인형박물관은 현재 ‘2022년 길 위의 인문학-위드 우크라이나!’를 진행하고 있다. ‘위드 우크라이나!’을 여는 까닭을 이렇게 전한다. “…낯선 존재를 알아가기,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아파하기…, 이런 작은 씨앗들이 사람을 무기력함으로부터 치유하고 평화의 열매를 맺는 힘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위드 우크라이나!’가 그런 작은 씨앗들 중 하나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사와 다른 전쟁의 역사를 알아보고 ‘나부터 평화’를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아울러 전통문화 소품인 비녹(화관), 모탄카(헝겊인형), 피잔키(부활절 달걀)를 만들어 보며 우크라이나 문화를 배우고 평화를 기원하는 시간도 가진다. 10월30일까지 ‘2022 경기도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육성사업-토닥토닥 인형극’도 진행한다. 박물관의 체험교육은 인기가 많다. 예컨대 2021년에 진행한 ‘길 위의 인문학-인형으로 통통’은 참가자 96%가 즐거웠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집에 온 빛의 마법(2021)’은 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그림자 인형극에 대해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 전래동화 ‘해님 달님’을 그림자인형극으로 만들었다. 특별기획전 ‘인형에 담긴 세계 의상전(2019)’도 주목을 받은 전시였다. 세계인형박물관은 2017년부터 ‘바부슈카-인형 짓는 어르신’이란 이름의 동아리를 통해 지역 단체와 연계해 어린이들과 어울리며 인형을 활용한 사회 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0년에는 전면 비대면 수업 ‘함께 해요, 바부슈카!’를 진행했다. 온라인으로 인형과 가방을 만들고 인형극전까지 열었던 특별한 기획이었다. 인형을 매개로 어르신과 어린이를 연결하고 지역 이웃과 연대하여 세계의 평화를 노래하는 세계인형박물관의 당당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4.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경기의 소금강으로 알려진 소요산 기슭에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특별한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21개국 군인들의 활약과 희생을 기념하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다. 2002년 5월20일에 문을 열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연속 전국공립박물관 우수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동두천시는 왜 소요산 자락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설립했을까? 동두천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면서 군사도시로 성장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참화와 분단의 상처가 크기 때문에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박물관에 담겨 있다. 국군과 유엔군, 민간인을 치료하던 야전병원도 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으로 연결된 도로의 이름도 “평화로”이다. 자유를 지킨 세계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 소요산 등산로 옆에 “자유수호평호박물관 소장 한국전쟁피난민 태극기 경기도 등록문화재 1호 선정”이라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있다. 녹음이 무성한 가로수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대리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장중한 건물이 나타난다. 반달 모양의 본관 주변으로 6.25 때 우리를 도운 유엔 21개 참전국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계단을 오르다 만난 ‘우리의 소원’ 노래비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한국인의 시대적 사명을 일깨워준다. 박물관 출입구에 가마니를 실은 달구지가 놓여 있다. ‘6.25전쟁 당시 수송수단’이란 설명문이 없으면 어린이나 청년들은 달구지를 출입구에 전시한 까닭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빈약한 자원과 기반시설까지 모조리 파괴했다. 그런데 불과 70여 년 만에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전쟁 유물들은 ‘코리아’란 나라 이름조차 몰랐던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 목숨 덕분에 이룩한 것이란 사실을 말없이 일깨워준다. 유엔 21개국의 국기와 참전일자, 병력, 역할을 알려주는 세계지도를 바라본다. 이름이 생소한 나라도 있다! 1층 로비에서 흑백사진으로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과 마주한다. 전쟁의 발발, 피난민의 행렬,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맺어진 휴전협정까지 한국전쟁의 순간을 기록한 흑백사진은 우리민족에게 드리운 아픔과 상처를 가감 없이 전달해준다. 비록 사진이지만, 부모를 잃고 굶주린 전쟁고아의 주름살 가득한 이마와 퀭한 눈빛을 오랫동안 마주 보기란 힘들다. 터키군 장교복과 탄띠와 수통, 의료지원병을 파병한 노르웨이 의료진의 활동상을 담은 누렇게 변색된 사진첩도 전쟁의 참상과 유엔군의 활약을 증언해준다. 21개국 군인들 ‘풍전등화’ 대한민국을 찾다 이광욱 학예사는 동두천시에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세운 까닭을 다시 들려준다. “아시다시피 전후 세대들은 6.25전쟁의 참상과 아픔에 무관심합니다. 역사적 교훈이 될 한국전쟁과 관련한 자료들이 많지도 않는데 이 소중한 자료들이 점점 소실되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동두천시민들이 6.25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지요.” 박물관은 4만㎡의 부지에 3천747㎡의 야외전시장과 지상 4층 3천331㎡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로비에 기획전시실과 도서자료실이 있다. 성인 관람객들도 전투기를 조정하는 비행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해방부터 6.25전쟁 후까지 시대적 사실을 12개의 도자기로 표현한 작품 앞에 선다. 전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국군장병의 힘찬 몸짓과 세계 평화를 표현한 부조도 눈길을 끈다. 철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도운 21개의 나라를 소개한 1층 전시실은 박물관이 가장 정성을 기울인 공간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이 지난 6월 27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미국의 해군과 공군에게 한국군을 지원하도록 명령한다. 28일에는 일본 도쿄에 있던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가 내한하여 전선을 시찰하고 미 국방성에 지상군 파견을 요청하고, 7월 7일에 유엔군 총사령관에 맥아더가 임명되고 한국에 파견된 16개 나라의 유엔군을 지휘하게 된다.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도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한다는 각서를 썼다. 21개 나라를 소개한 공간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형, 주요한 장비, 참전개요와 참전 규모, 주요 전투까지 참전국의 역할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과 자료를 만날 수 있다. 1945년 10월24일에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출범한 UN은 한국전쟁 때 빛을 발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콜럼비아,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까지 16개국이다. 참전한 군인, 혹은 유가족들이 기증한 유품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5개 나라는 의료를 지원했다. 6.25 당시에 유엔군이 사용한 다양한 무기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특별하다. 나팔처럼 보이는 다양한 화염방사기도 처음 보는 유물들이다. 의술로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다 노르웨이적십자가 편성한 83명으로 구성된 이동외과병원을 통해 동두천에서 7월 19일부터 천막으로 된 임시건물에서 진료 임무를 시작한다. 민간인을 위한 외래환자진료소도 운영하였다. 덴마크는 최신 의료시설과 의약품 그리고 탁원한 의료진을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하였다. 스웨덴, 1947년 8월에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인도도 의료부대를 파견하여 야전병원을 운영하며 부상자를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이탈리아는 참전국 중 유일한 유엔 비회원국이며, 가장 마지막에 파견한 국가이다. ‘이호왕기념관’은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의 외연을 넓혀주는 공간이다. 이호왕 박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의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이다. 1973년부터 고려의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과 WHO 유행성출혈열연구협력센터 소장,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동두천 송내동에 연구실을 두고 1976년 한국형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고, 1980년 서울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9년 제6회 서재필의학상을 수상했다. 야외 전시장은 6.25전쟁부터 최근까지 군에서 사용하던 비행기및 탱크등 총15점의 대형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5인치 2연장 함포, 3인치 단연장 함포, 40밀리 2연장 함포, 105밀리 곡사포, T-33A 제트기, M48A2C 전차, 8인치 곡사포, M577 지휘용 장갑차, T33A항공기, 해병대가 사용한 LVT 수륙용 장갑차도 만날 수 있다. 특수무기보다도 더욱 특별한 것은 노르웨이군의 참전비다. 분단을 넘어 평화통일로… 진정한 자유 동족끼리 벌인 한국전쟁으로 입은 남북한의 인명 손실은 무려 520만에 이른다. 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민간인의 사망과 부상, 1천만에 달하는 이산가족의 아픔도 빼 놓을 수 없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평생을 전쟁 속에서 보낸 본관과 같은 군인에게조차 이러한 비참함은 처음이어서 무수한 시체를 보았을 때 구토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여전히 심각한 것은 민족 내부의 불신과 증오심이다. 전쟁의 상처를 한국인만큼 깊게 간직한 민족이 달리 있을까? 자유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노래할 수 있으리라.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3.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쓸쓸한 절터에 서니… 화려했던 ‘왕실사찰’이 보인다 양주 회암동 천보산 자락에 위치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 들어서면 아늑한 기운과 고고한 기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2012년 10월19일에 개관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전문박물관이다.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1964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회암사지에는 약 70여개의 건물터와 주변에는 사신으로 고려에 입국해 회암사를 중흥으로 이끌었던 인도 승려 지공(?~1363), 왕사(王師) 나옹(1320~1376)과 무학(1327~1405) 세 분 고승들의 기념물인 선각왕사비,무학대사탑,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 사리탑 같은 보물 4점을 비롯해 유형문화재가 즐비하다. 회암사지의 문화재보호구역은 무려 32만3천117평방미터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는 회암사에 여러 차례 행차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회암사에 궁실을 짓고 주지로 주석하는 무학대사를 자주 만났다. 효령대군, 정희왕후 등 왕실 인사들이 후원하여 번영을 누리던 회암사도 열렬한 후원자이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세력을 잃고 끝내 폐사되었다. 1997년부터 2019년까지 13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일반 사찰과는 달리 궁궐 건축의 요소와 13~14세기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선종사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왕실에서만 사용되었던 청기와, 용두, 토수,잡상 같은 마루장식기와, 용과 봉황무늬 막새기와, 왕실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 등 수십만 점의 유물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 2012년 박물관 개관 전시특별전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를 비롯해 해마다 회암사를 조명하는 특별전과 기획전을 꾸준하게 열었다. <마루장식기와, 건물의 위용과 품격을 담다>, <회암사지, 그 시간의 흐름>, <깨달음의 소리, 범자梵字 - 회암사지 범자문 막새기와를 이야기하다>, <춘풍문양, 봄바람 타고 온 옛 회암사의 문양 이야기>, <도자, 옛 회암사를 빛내는 美>, <큰 고을 양주>, 국립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 <대가람의 뒷간, 厠>, <산산散散 : 부서진 뒤 알게 된 것들>, 특별전시 <절집의 어떤 하루>,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등 주제를 통해 그간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개관 때부터 근무했다는 김종임 학예사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둘러본다. 한국불교사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승려 지공, 나옹, 무학 세 분 고승의 초상 앞에서 듣는 회암사의 내력이 흥미롭다. “지공선사는 인도 출신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로 유명한 나옹선사는 금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고려에 입국한 지공의 권고에 따라 1376년에 회암사를 262칸으로 중창하고, 목은 이색에게 부탁하여 ‘천보산회암사수조기’를 납깁니다. 이 기록과 절터와 발굴된 유물을 통해 옛 회암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요”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은 무엇일까? 정교하게 조각된 용머리 앞에 선다. 부릅뜬 눈과 포효하듯 크게 벌린 입에서 기백이 느껴진다. “처마 끝에 돌출된 목재(사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식기와를 토수라고 해요. 사래에 끼울 수 있도록 내부가 비어있는 사각뿔 모양이죠. 이무기나 잉어의 모양의 조선 후기와 달리 회암사의 토수는 보시는 것처럼 승천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용의 모습 입니다. 용두는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장식기와인데, 내림마루 끝부분에 설치하거나 추녀마루에 잡상과 함께 설치합니다” 투구인지 종인지 구분하기 힘든 유물도 흥미롭다. “투구처럼 보이지만 풍경입니다. 회암사지에서 청동금탁 4점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위치와 명문을 통해 건물 추녀 끝에 매달렸던 것으로 추정하지요. 금탁 표면에 새겨진 149자의 글자를 통해 태조 3년(1394) 왕사 묘엄존자, 조선국왕, 왕비, 세자를 비롯하여 관료들이 후원하여 금탁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탁에는 갓 건국한 조선의 안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전쟁이 영원히 그쳐서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고 마침내 같은 인연의 깨달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갑옷과 투구를 쓴 장수가 눈을 부릅뜬 인형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것은 잡상입니다. 건물의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위에 설치하는 잡상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속신으로 구성되지요. 그런데, 회암사지 잡상은 보시다시피 사뭇 달라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혼합된 반인반수형, 말이나 새 같은 동물 모습도 있지요” 왕실 사찰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 중에서 청기와를 빠트릴 수 없다. “청기와가 귀한 것은 청색을 내는 재료가 화약의 원료인 염초이기 때문이지요. 조달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궁궐이나 왕실 원찰의 일부 건물에만 사용했습니다” 사찰에는 왜 연꽃문양을 새긴 기와를 많이 썼을까? “연꽃은 탄생을 상징하며 환생과 재생을 의미합니다. 연꽃을 기와 문양으로 채택된 것은 물에서 피어나는 것이므로 화마(火魔)를 막는 벽사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영상을 통해 왕실사찰 회암사의 위상 조명 말을 탄 무사들을 앞세우고 황룡기를 비롯해 다양한 깃발을 든 붉은 옷을 입은 군사들이 임금이 탄 가마를 에워싸고 늠름하게 행진하고 있다. 회암사를 찾은 태조 이성계의 행차장면 모형이다. 회암사 대가람 복원모형이 첨단기술로 살아난다. 아나운서와 기자를 등장시켜 각 건물의 기능과 역할 및 생활상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데, 설명에 따라 건물의 안팎까지 보여준다. 현재 2층 기획전시실에는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잠정목록 선정 기념하는 특별전 ‘양주 회암사지 세계유산을 꿈꾸다’가 열리고 있다. 9월12일까지 진행되는 기념전은 2022년 1월, 양주 회암사지가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할 수 있는 잠정목록에 선정되었음을 홍보하는 것이다. 1부는 ‘유네스코 유산’이다. 양주 회암사지는 고고유적 단독유산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폐사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지녔다는 점을 부각했다. 2부는 ‘회암사의 세계유산적 가치’다. 회암사지는 14세기 동아시아 불교 선종의 수행 전통과 공간구성 체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고고유적이다. 완벽하게 남아 있는 건물터와 당대 고승과 관련된 부도 등 기념물이 있어 고려의 선종이 조선으로 이어진 약 200여 년간 불교 선종 문화의 전승과 발전상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3부는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다. 양주 회암사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지난 7년의 노력으로 마침내 잠정목록에 선정됐다. 본 등재까지 양주시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사항 등을 충실히 이행하며 회암사지의 보존 및 가치 활용과 세계유산을 향한 행보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그날을 기다리다 회암사지에는 입구의 당간 지주, 맷돌, 구름 문양이 새겨진 계단 등 곳곳에 석조유물이 즐비하다. 회암사지 맨 위에 자리한 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탑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려 말의 고승 선각왕사 혜근(惠勤)의 비도 빼 놓지 말고 봐야할 유물이다. 두 마리의 용이 용트림하면서 보주(寶珠)를 잡고 있는 역동적 형상의 이부를 살펴보자. 비문을 짓고 글자를 쓴 이색과 권중화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무학대사탑과 쌍사자 석등, 지공선사부도와 석등, 나옹선사부도와 석등도 아름답다. 탑에 새겨진 용, 기린 등 뛰어난 조각과 치석수법도 주목된다. 박물관을 나서며 잠시 멈춰 서서 회암사지를 둘러싼 산자락을 굽어보는데 배웅하며 건넨 관계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회암사지에 한 번도 안 와 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해요.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란 뜻이죠.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올 가을에 회암사지로 놀러오세요”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2. 화성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1919년 4월15일 ‘대학살’… 100년 넘도록 사죄않는 일본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항일의 정신이 깃든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입구에서 카메라를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앞을 응시하는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1889~1970)의 동상과 마주한다. 영국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의학자와 선교사로 일하던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화성 제암리 학살 소식을 듣고 열차로 수원역까지, 수원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경의 눈을 피해 이곳에 와서 비극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일제의 만행과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 100년 동안 흐르는 두렁바위의 눈물 병풍처럼 세워진 검은 대리석에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이 그림과 글로 새겨져 있다. 박사가 써서 세상에 알린 ‘대학살의 전말’을 읽어본다. “4월 15일 화요일 이른 오후, 일본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성인 남성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에게 전달할 말이 있으니 모두 교회에 모이라고 명령했다. 교회에 모인 23명 가량의 남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면서 명령에 따라 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 군인들은 교회를 둘러싸고 종이 창문 너머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명령의 진의를 알게 됐다. ...교회로 불려간 남편을 찾아 두 명의 부인이 군인들의 포위를 뚫고 교회로 가려했지만 모두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19세의 젊은 부인은 총검에 찔려 죽었고, 40대 여성은 총에 맞았다. ...그 후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이것이 제암리에서 벌어진 피의 대학살 사건의 간략한 기록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정부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의 방문한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학 교수로 활동하다 영구 귀국하여 보육원 후원을 비롯한 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1970년 4월12일에 영면한다. 한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한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는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일본 군인에게 학살된 선열의 유해는 가마니에 담겨 4km 떨어진 향남면 도이리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봉분도 없이 묻혔다. 40년이 지난 1982년 9월 21일부터 여드레 동안 사건의 목격자이자 유가족인 전동례 할머니와 최응식 할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해를 발굴한다. 9월 29일 제암교회가 기념관 뒤편에 제공한 묘역에 23인의 합장묘소를 마련하고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학살현장은 1984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99호’로 지정됐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3·1운동순국기념탑’은 1959년 4월 제암교회 터에 세워졌던 것을 정부의 3·1운동 유적지 정화사업에 의해 현재 자리로 옮겼다. 공원의 3·1운동순국기념탑은 향남면 3·1운동 순국기념관 건립위원회에서 3·1운동 유적지 정화사업을 수행하면서 원래 기념비가 있던 자리에 다시 규모를 크게 하여 1983년 4월 15일에 세운 것이다. ■ 화성의 불꽃, 한반도를 밝히다 “3·1운동은 비폭력 원칙을 세웠으나 화성지역에서는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됩니다. 만세운동을 벌이던 주민들이 일제의 행정 말단기관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고 총칼로 주민을 위협하던 순사를 처단합니다. 진행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에 미리 준비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한말 화성지역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충격을 받은 일제의 잔혹한 보복이 뒤따릅니다. 4월 15일,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군인 11명을 이끌고 제암리로 들어와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로 모아 문을 닫고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다시 옆 마을 고주리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김흥렬 일가 6명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지요.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의 본질은 일제가 3·1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기념관 운영을 총괄하는 김태동 팀장의 설명을 들으니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특수한 사정이 이해됐다. 그러면 현재는 어떠할까? 기념관에서 답답한 현실을 마주한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섣불리 화해를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읻따, 그들이 있고 우리가 잇다 기념관 로비에서 만난 신인순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전시관을 둘러본다. 상설전시가 이루어지는 제1전시실 입구에서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란 글귀를 만난다. “4·15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죠? 1919년 화성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모습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치열했습니다.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불 지르고 만세 운동을 저지하려던 순사 2명을 처단했지요. 이 사진을 보세요. 스코필드 박사가 찍은 것입니다” 4월 15일 일본 군경의 제암리·고주리 학살한 현장의 처참한 광경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가족을 잃고 넋이 빠진 표정의 두 여인의 모습에서 나라를 되찾으려다 희생된 열사의 유가족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남편과 부모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은 생이 다할 때까지 이어졌다. 1953년에 작성한 ‘3.1운동 당시 일본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자’란 문서에 적힌 명단을 살펴보니 62세부터 17세까지의 희생자 중 안(安) 씨 성을 가진 이가 유난히 많다. 제암리는 집성촌이었던 모양이다. 체포되어 촬영된 화성지역의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1982년 유해발굴의 현장 사진 앞에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궁금하다.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야할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된 지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103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벽에 ‘읻따’라는 이상한 단어가 있다. 눈치를 챈 신 해설사가 관람객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존재한다의 ‘있다’와 연결하다의 ‘잇다’의 발음 기호가 ‘읻따’라고 해요.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유족과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려본 것입니다. 제암리·고주리의 아픈 역사가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는가. 여러 자료와 영상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이었지요” 기념관에는 마주한 전시물들도 사연이 깊다. 많은 것이 문서들이지만 그중에는 눈여겨 볼 것들이 여럿이다. 만장,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헌, 왕광연 선생, 홍면옥 선생의 출옥 기념사진, 희생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작성한 진정서, 3·1운동피살자명부, 아리타 판결문, 학살지에서 발굴된 유리병을 비롯한 출토유물 등 특별한 사연이 담긴 유물들이다. 주민 29명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 지른 일본군 장교 아리타의 무죄를 선언한 ‘아리타 판결문’은 후안무치한 일제의 민낯을 보여준다. ■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 2001년 화성시가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을 개관하면서 기념과 추모 사업에 탄력을 얻는다. 2016년에는 기념관 학예팀 신설하고, 이듬해에 제1종 전문 박물관 등록했다. 그동안 열었던 특별전과 기획전은 ‘학살, 끝나지 않은 역사’,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 ‘화성독립운동가’, 2021년 4월 개관 20주년 특별전 ‘읻따’,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소설에 담다’, ‘일제의 선전수단, 그림엽서’ 같은 주제들이다. 순국선열 스물아홉 분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학살사건의 전모와 한국인의 평화의 의지를 국내외에 알려온 기념관은 2019년 7월부터 화성시문화재단에서 위탁 운영을 하면서 더욱 탄력을 얻게 된다. 교육을 담당할 전문 강사를 육성하여 지역의 학교로 찾아가는 사업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21년 11월에 교육기부 우수기관 인증을 획득한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자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한국인의 성지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1. 광주 ‘닻미술관’

자연 속 둥지 튼 ‘성찰과 치유’의 공간 광주 백마산 자락 진새골에 자리 잡은 닻미술관은 예술을 통한 창조성과 영성 회복을 꿈꾸며 2010년 10월에 개관했다. 닻미술관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면 성찰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전시를 모토로 매년 두세 차례의 사진, 회화 기획전을 벌여왔다. ㄷ자 구조로 되어있는 닻미술관(관장 주상연)은 지붕이 스페인풍인데 건물 가운데 작은 정원이 있다. 중정에 있는 팔각형의 연못이 앙증맞다. 닻미술관 옆에 있는 카페의 이름은 ‘돛’이다. 산속에서 닻과 돛이란 이름을 가진 공간과 마주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름날인데도 미술관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미술관이 아늑한 산속에 터를 잡은 덕분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오히려 관람객이 더 모여들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왜 산속에 만들었을까? “우리 집의 가훈이 ‘홍익인간’이에요.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복지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이곳은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8살 때부터 나무를 심었어요. 맏딸로서 집안의 리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5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주 관장의 작품은 성곡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샌프란시스코 카발로 포인트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 <중력과 은총>과 <물 위를 걷다>을 펴낸 중견 작가이다. 2009년에 귀국한 주 관장은 2010년에 이곳에 닻미술관을 열고 2011년에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여 올해 개관 12주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배운 주 관장은 미술관을 열면서 수제 책 제작 공방 닻프레스도 열었다. 책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 없이 예술을 전달하기 좋은 매체라 생각한 것이다. 전시장 옆에 있는 카페 돛에 가면 닻프레스에서 출판한 아름다운 책들을 볼 수 있다. 주 관장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면 책을 만들고 작품 전시를 기획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벗어나서 생동감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푸른 산속에 닻을 내려 자연을 건져 올리는 미술관 지난 12년 동안 닻미술관에서 열었던 기획전시를 살펴본다. ‘빛으로 간 사진’ ‘숲, 숨’ ‘순간의 지속’ ‘종이 위의 예술’ ‘사진풍경전 : 바람과 볕이 드는 창’ ‘Our World’ ‘일상의 생각 별과 사람’ ‘무아 경’ ‘침묵의 시’ ‘섬’ ‘어둠’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 ‘물오르다, 물만나다, 물들다’ ‘공명의 소리’ ‘예술가의 정원’ ‘지금, 여기’ ‘변화의 여정’ ‘시·象’ ‘온도의 결’ ‘다른 감각들의 공간’ ‘철학자의 돌’ ‘린다 코너 사진전 REFLECTION’ ‘물질과 상상’ ‘집- 주명덕 사진전’ ‘경계선 위에서’ ‘틀 없는 틀’ ‘대지의 기억으로부터’ 등 주제만으로도 닻미술관이 추구하는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미술관에서 기획한 주요 전시를 연간 간행물 <깃>에 충실하게 기록해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자랑이다. “깊게 뿌리박힌 중심이 되고자 출판사 이름을 ‘닻’으로 삼았고, 영감을 널리 퍼트리는 매체가 필요할 것 같아 아티스트 인터뷰 매거진 <깃>을 발행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지금까지 약 80여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지난 몇 년간 아트 북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어요. 스탠퍼드 스페셜 컬렉션이 스페셜 에디션을 소장했고, 뉴욕공립도서관에서는 닻프레스가 출간한 전권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LA에서 열리는 북 페어에도 해마다 참가하고 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발행한 책은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예컨대 김수영의 시 ‘풀’을 수록한 책은 표지를 넘기면 낱낱이 풀이된 종이가 ‘바람보다 먼저’ 눕거나 일어선다. ■ 도시와 도시, 작가와 작가를 이어주는 마당 닻미술관은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가 만나는 공간이다. 단순히 전시장을 넘어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살면서 서부와 동부의 작가들과 인연을 맺은 주 관장은 닻미술관을 통해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닻미술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신진 작가들이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에 집중하거나, 특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이다. “사진예술과 출판의 꾸준한 국제교류를 통해 시작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적, 종교, 성별, 학력에 관계없이 국내외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있습니다” 현재 닻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은 ‘for Life, 생을 위하여’이다. 그동안 닻미술관과 함께해온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 가운데 40여점을 선별하여 구성한 전시인데,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1세대 작가인 주명덕을 비롯해 서영석, 이모젠 커닝햄, 론다 래슬리 로페즈 등 닻미술관이 사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주 관장의 스승 린다 코너의 작품과 주 관장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가 안긴 산과 계곡,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 역동적인 물결과 고요한 구름. ...이 모든 것이 각각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마음이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울렁거릴 때, 여기 말이 없는 사진들에 눈길이 닿는다”-주상연 바바라 보스워스의 작품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꽃과 냇물을 보고 산을 응시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가슴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앤드류 골드의 파도를 담은 작품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표정과 파도의 높이, 물결의 흐름과 방향,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린다 코너의 ‘Baby Feet’은 아기의 작은 발을 감싸 쥐고 있는 손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진다. 햇살이 반짝이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엘라이쟈 고윈의 작품도 흥미롭다. 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감동의 순간이다. 창밖으로 나무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시 공간은 작지만 닻의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한 곳이다. 전시 작품도 숲과 잘 어울린다. 물 위를 걷는 작은 소금쟁이들과 반딧불이와 같은 정겨운 생명체들이다. ■ 작가를 키우고 모으는 나눔의 공간 닻미술관은 창작과 전시 공간을 더 넓혔다. 야생 정원과 작은 3평짜리 나무집을 마련했다. 2017년에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전시를 열었는데, 그때 건축도면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나무집을 지은 것이다. 이 집은 작가들을 양성하는 스튜디오로 이용할 계획이다. 오는 8월27일에 숲의 소리와 빛을 채집하여 빛과 소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연다. 9월24일부터 크리스 맥카우(Chris McCaw) 사진전이 열린다. 닻은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뿌리 같은 상징이다. 삶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주 관장의 비전을 들어본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함께 하는 제자들이 일하기에 좋은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 첫째 과제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자생하기 힘든 내용을 펼쳐내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뜻과 목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이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0대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것은 토양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한 예술가가 탄생하고 성장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면서 동시에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나눌 것을 궁리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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