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밝은 미소가 10년간 이어온 봉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2010년 여름. 성남에서 대한적십자사 봉사 활동에 나선 THE(더)좋은봉사회 강혜진 회장(63)은 삼계탕 배식 봉사에 참여해 처음 보는 어르신에게 삼계탕을 전달했다. 당시 무더운 삼복더위에 삼계탕을 드신 어르신은 “힘이 난다”고 화답했다. 당시 강 회장은 지인의 권유로 봉사에 참여했다. 이후 시간을 쪼개 성남에서 배식 봉사 등에 참여했는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내가 이들을 직접 돌보자’며 음식을 만드는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강 회장은 2014년 THE(더)좋은봉사회를 만들었다. 토요일마다 홀몸어르신이거나 차상위 계층에서 제외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반찬을 전달한다. 현재 강 회장과 비슷한 나이대의 회원 40여명은 성남시 중원구의 한 식당에서 동네 어르신에게 전달할 반찬을 만들고 있다. 봉사 대상자는 30~50명이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이 많다 보니 푸짐하게 먹으라고 세 가지 반찬을 매번 바꿔가며 도시락으로 전달한다. 강 회장과 회원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8~9시부터 반찬을 만들기 시작해 어르신들에게 전달하고 나면 오후 5시가 된다. 봉사에 하루를 모두 쏟아붓는 셈이다. 이렇듯 강 회장과 회원들이 만드는 음식에는 따뜻한 정성이 그득 담겼다. 인스턴트음식과 방부제 첨가를 배제하며 건강에 좋은 채소와 맛있는 육류를 조리해 최대한 많이 먹이려고 노력한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슨 음식을 먹고 싶은지 묻기도 한다. 그는 “10년간 빠짐없이 매주 반찬을 만들고, 다른 메뉴의 반찬을 조리한다. 미리 식재료를 준비해 직접 양념을 하고 준비한다”며 “가끔 제철에 맞는 식료품으로 반찬을 만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강 회장은 “힘들어 그만두려다 또 생각이 나고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절대 그만둘 수 없다. 계속해서 조금 더 힘을 내 따뜻함을 나누고 싶다”며 웃었다.
동두천시는 생연1동 새마을협의회·부녀회가 최근 깔끔한 마을경관 조성을 위해 생연1동 인근 인도변 제초 작업을 실시했다고 5일 밝혔다. 참가자들은 생연동 일원의 보도블록 사이에 자란 잡초를 뽑는 등 마을 미화 작업을 진행했다. 김노수 새마을협의회장은 “이른 아침부터 제초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회원분들께 감사드리며 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주민들을 위해 한발 앞서 봉사하는 새마을남녀지도자협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호성 생연1동장은 “바쁜 일정에도 항상 지역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새마을남녀지도자협의회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단결된 모습으로 살기 좋은 동두천시 만들기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새롭게 도전해 무언가 성취하고 싶었어요. 갈고 닦은 경험을 잘 살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편안한 커피숍을 여는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양주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양주시 꿈드림)에서 소중한 꿈을 키워가는 하가인(19), 이현 바리스타(18)의 희망이다. 이들은 양주 청소년문화의집 2층 자립작업장 ‘맛나만나’에서 학교 밖 청소년이 직접 운영하는 커피드림 1호점에서 바리스타 꿈을 키워가고 있다. 커피드림 1호점은 2022년 양주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카페 창업과 바리스타·서비스직 업무에 관심 있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모여 운영하는 카페다. 평소 커피를 좋아했다는 이현 바리스타는 학교를 자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센터에서 바리스타 자격증과정을 지원해 준다고 해 선택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정도로 밝은 성격으로 변했다.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일 정도로 평소 음악을 좋아해 실력을 더 쌓아 재즈 바를 여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하가인 바리스타는 “나만의 커피숍을 여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다른 여러 경험을 해보고 싶고 돈을 많이 모아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커피숍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하가인 바리스타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바리스타 외에도 색다른 경험도 풍부하게 쌓고 싶어 한다. 이들은 처음 커피를 다루다 보니 커피를 뽑거나 맛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쑥스러워 고객을 응대하는 것도 서툴렀다. 하지만 이젠 많은 주문을 소화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웬만한 주문이 들어와도 걱정이 없다. 두 바리스타가 내놓은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니 풍미는 물론이고 맛도 뛰어나 전문 바리스타 실력 못지않았다. 하루 5시간, 주 4회, 4개월간 진행된 바리스타 교육은 두 사람에겐 추억이 됐다. 이젠 직접 카페 운영과 메뉴 개발, 고객 응대와 재고 관리 등 바리스타 실무를 익히며 업무에 대한 기초 역량을 키우고 있다. 하가인·이현 바리스타는 “언제나 꿈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20년 후의 우리 모습은 꿈을 이루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일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제 봉사를 통해 수혜자들이 기쁘다면 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화성 지역사회를 위해 오랜 시간 솔선수범한 이희순 화성시봉사대상수상자회 부회장(65)의 봉사에 대한 신념이다. 1985년 결혼과 함께 화성으로 이사 온 이 부회장에게 봉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봉사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 부회장은 1999년 ‘I Korea’ 봉사단 가입을 추천받았고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봉사가 힘들기도 했지만 이 부회장은 일주일 평균 2~3회씩 홀몸노인들을 방문하며 ▲반찬봉사 ▲목욕봉사 ▲김장봉사 ▲정화활동 등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봉사를 할수록 전문적 봉사에 대한 갈증이 커진 그는 화성농협이 실시하는 이·미용 봉사교육을 이수하고 마사지교육, 케어복지사 자격 등을 취득하며 봉사영역을 넓혀 갔다. 이후 2001년 개관한 화성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연계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화성시 곳곳에서 사랑의 손길을 나누고 있다. 그러던 2007년,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쏟아온 이 부회장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예상치 못한 신장암이 생겼고 이후 5년마다 재발을 거듭했다. 하지만 힘든 이 부회장을 지탱해 준 것은 그의 봉사를 받은 수혜자들이었다. 수혜자들의 응원 속에서 병마를 이겨낸 이 부회장은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더욱 봉사에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성시장, 경기도지사, 화성시봉사대상 등 여러 표창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봉사는 그에 따른 보상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며 “매번 ‘이번까지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봉사활동 소식을 듣고 참여하는 것을 보면 봉사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진행 중인 봉사와 더불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 등도 병행하고 싶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봉사를 이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서울구치소 교정협의회(회장 장향희)는 1일 수용자를 위해 생수(500㎖) 7만 병을 기증했다. 구치소에 따르면 교정협의회는 매년 혹서기 더위에 지친 수용자들의 심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생수를 기증하고 있다. 구치소는 이날 기증받은 생수를 얼음 생수로 만들어 지급 일정에 맞춰 수용자들에게 지급할 예정이다. 교정협의회의 생수 기증으로 혹서기 수용자들의 온열질환을 예방하고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향희 교정협의회장은 “온열질환 예방 등 여름철 건강한 수용 생활을 위해 봉사자들이 뜻을 모아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김문태 서울구치소장은 “매년 생수를 기부해 준 교정협의회에 감사드린다”며 “교정기관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심정지 환자도 포기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달 20일 시민의 생명을 구한 공로로 다섯 번째 ‘하트 세이버(Saver)’ 인증서를 받은 김포소방서 박희경 소방교(29)의 각오다. 하트 세이버 인증서는 심정지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응급처치로 소생률을 높인 대원에게 경기도지사가 수여하는 인증이다.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최선의 응급처치로 생명을 살려낸 공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박 소방교는 다섯 번째 인증서를 받게 한 사고를 잊을 수 없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50대 남성이 심정지로 쓰러졌고 박 소방교가 도착했을 때는 전기충격을 줘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의사 지도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환자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긴급히 전기충격과 약물 처치를 하자 다행히 심장이 다시 뛰었고 환자를 가까운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 상황을 접하면 두려움이나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는 반복된 훈련과 상황 속에서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운동에 집중하다 보면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생긴다. 요즘은 운동 영역을 넓히며 제게 집중하는 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아쉬움이 적지 않다. 박 소방교는 “응급 상황임에도 여러 이유로 이송할 병원이 결정되지 못해 현장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런 부분이 꼭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특히 현장에서 민원인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민원은 안타까웠다. 그는 “구급대원들은 현장에서 민원인의 안전 확보와 응급처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대원들이 민원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복한 분들이 보내주신 감사 편지와 사진을 볼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박 소방교는 2019년 소방공무원에 입직한 이후 하트세이버 다섯 차례,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자의 회복에 기여한 브레인세이버를 두 차례 수상했다.
“기부가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었습니다.” 70대 노부부가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기 사랑의열매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부부회원으로 가입했다. 경기 사랑의열매(회장 권인욱)는 30일 전찬진·고희옥 부부가 경기 29번째 아너소사이어티 부부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밝혔다. 전찬진·고희옥 부부는 인생의 황혼에서 평생 모은 재산을 각각 1억원씩 기부하며 경기 344·355호 아너 회원, 경기 부부 아너 29호 회원이 됐다. 부부의 기부금은 도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이날 경기 사랑의열매 사무처에서 진행된 가입식에는 남편 전찬진씨와 아내 고희옥씨, 가족들, 김효진 경기 사랑의열매 사무처장과 직원들이 참석했다. 부부는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를 꼭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기부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살면서 꼭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액기부에 있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게 부부의 설명이다. 부부는 “기부가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었고, 오늘 그 꿈을 이뤘다”며 “열심히 살며 모은 금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효진 경기 사랑의열매 사무처장은“누구보다 열심히 모은 재산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뜻 기부해주신 전찬진·고희옥 아너 회원님께 감사드린다”며 “전해주신 성금은 꼭 필요한 곳에 소중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파이썬 등.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IT 용어들이다.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강릉영동대학교 AI메타버스과에 입학하면 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과의 학과장을 맡고 있는 김주백 교수는 약 32년간 IT 업계에서 근무한 뒤 학교로 돌아와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강릉시가 초광역 메타버스 도시로 선정되고 관련 인재 양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강릉영동대도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인 당시 이상철 총장의 의지에 따라 '디지털 중심 대학'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AI미디어콘텐츠학과가 신설됐고, 이후 AI메타버스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매년 20명 안팎의 신입생을 모집 중이며,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AI메타버스라는 학과 이름 때문에 수학이나 영어를 잘해야 한다거나 컴퓨터를 잘 해야 올 수 있는 과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처음 들어오면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혁명, IOT, 빅데이터 등 필요한 내용들의 개론적인 내용들을 공부하게 된다"며 "중요한 건 도전적이냐 창의적이냐이다. 공부에 대한 의지 역시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학제를 2년제로 설정한 건 학생들을 배려한 조치다. 2년간 공부 후 취업 또는 편입 중 원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실력이 있는 학생들은 졸업 후 빠르게 업계로 진출할 수 있고, 만약 취업이 되지 않더라고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또 다른 진로를 모색해 볼 수도 있다. 김 교수는 그래서 "전문대는 전문대만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현재 졸업에 앞서 정보처리기사나 언리얼, 유니티 등의 게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또 영상 편집과 3D 모델링 수업을 바탕으로 항공 촬영을 위한 드론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한다. 비록 전공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영상 쪽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학습 트랙을 마련해놨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디지털 트윈'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 중 하나로 꼽았다. 현실 공간과 꼭 닮아 있는 디지털 공간을 창조하는 '디지털 트윈'은 위험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을 가상 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 해 위험이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선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데, AI메타버스과에서 이같은 내용들을 모두 배울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공부를 잘했던, 못했던 우리 과에 들어오면 모두 리셋이 되는 것이다. 새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왜냐하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지향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지금 각광받는 전문직이 아니라 AI 또는 메타버스 분야의 직업이 유망한 직종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전했다.
“북한이탈주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손수건이 되고 싶습니다.” 7월14일은 첫 번째 북한이탈주민의 날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착 지원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위기 상황에 처한 북한이탈주민을 경기도 긴급복지 콜센터에 제보한 경기도민이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하나원의 홍성란 포교사(65)가 그 주인공. 홍 포교사에게 봉사는 삶의 일부였다. 어렸을 때부터 군부대, 절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녔다. 홍 포교사는 2007년부터 안성에 있는 하나원에서 포교사 활동을 시작했다. 하나원에는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북한이탈주민이 있었고 그는 지금까지 그들을 돕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위기에 빠진 북한이탈주민 김정선(가명)씨를 도왔다. 김씨는 지난해 6월 임신 8개월 차에 남편과 여섯 살 아이를 데리고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남편이 공안에게 잡혀갔고 아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출산일이 다가와도 도와줄 사람이 없자 김씨는 하나원에서 만난 홍 포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홍 포교사는 즉시 경기도 긴급복지 콜센터에 연락해 김씨가 도움을 받게 했다. 쌍둥이를 임신한 채 북한에서 한국에 온 정경란(가명)씨도 홍 포교사의 관심과 따뜻한 배려로 도움을 받았다. 지난 6월 정씨는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이르게 양수가 터져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 마찬가지로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정씨는 홍 포교사를 떠올렸고 홍 포교사는 출산할 때까지 정씨의 곁을 지켰다. 그는 그동안 북한이탈주민들과 보내며 “단 한 번도 봉사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다”고 했다. 홍 포교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가슴 아픈 사연이 많다. 그들을 남이 아닌 가족으로 생각하고 품어준다면 한국에 조기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내게 소중한 가족들이고 엄마같이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마음의 거울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에서 주민들에게 수묵화를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상진 화백(78)의 그림 철학이다. 이 화백은 “수묵화는 검은색만 담는 것 같지만 먹 하나로 빛, 깊이 등 내면의 세계를 10가지 색으로 표현한다”며 “강의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색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의 그림자 색은 산하(山河)를 받아들이는 색이며 거짓이 없다”며 “수묵화는 엄마의 눈을 크게 그리는 초등학생의 그림처럼 표현이 순수하다”고 전했다. 이 화백은 ‘북한강 상류’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북한강 상류’는 물의 어둠과 밝음을 수묵으로 표현했는데 한 손으로만 물의 흐름과 방향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나뭇가지를 꺾어 땅에 그림을 그렸고 유명 화가를 따라다니며 미술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1993년 47세가 된 그는 양평의 빼어난 자연과 수려하고 아름다운 강물에 매료돼 양평에 정착했다. 그는 생계로 건축업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붓을 놓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쌓이면서 일본과 중국 등 외국을 오가며 전시회를 열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에서 잇달아 수상했고 개인전도 여러 번 열며 화단에 이름을 올렸다. 1983년에는 대한민국문예진흥원을 통해 동남아 세계 각국 대사관 주재원을 대상으로 그림 체험 강습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1987년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일본 신주쿠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화백은 1980년대부터 그림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다.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는 재능봉사로 현지인들에게 연꽃 그림을 가르쳤다. 지난해 3월부터는 송학리 주민 20여명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생은 은퇴자나 펜션 운영자, 주부, 회사원 등 다양하다. 그는 그림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붓이나 연필로 자유롭게, 본능적으로 그려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