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봉하마을 ‘화합의 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일째. 봉화마을은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 전 대통령 유서처럼 초기의 극한적 대립에서 벗어나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이제 모두 힘을 합쳐 참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등 화합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관련기사 2·4·8면 노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봉하마을 입구부터 빈소까지 1㎞구간은 추모객들이 가드레일에 꽂아놓은 국화꽃에서 풍기는 국화향을 비롯해 검은색 계통으로 옷을 차려입은 추모행렬,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짓는 사람들 등 삼일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빈소로 들어서자 수만명의 추모객들과 마을주민, 그리고 노사모 회원들의 표정이 초기와 달리 크게 바뀌어 있었다. 초기의 원망과 불만, 불신이 가득했던 눈빛 보다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듯 차분하고 평온했다. 5살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들까지 서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조문객들도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이념인 지역주의 타파와 참 민주주의를 되새기며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화합 분위기는 봉하마을 주민들로부터 시작됐다. 술에 의존하며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에 대한 노여움에 불탔던 주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사분란하게 추모객을 맞았다. 마을주민들은 진영농협 고향주부모임, 대한적십자사 경남지회, 진영새마을회 등과 의기투합, 추모객들에게 컵라면을 대접하기 시작하는 등 원망과 한탄보다는 묵묵히 추모객 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음식을 준비하던 주민 김순례씨(42)는 “누가 노 전 대통령을 죽였고 또 누가 노 전 대통령 편이다 등은 이제 다 필요없다”면서 “이제는 모두 힘을 합쳐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야 한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다 손님인데 잘 먹여 보내야 도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같은 마을주민들의 마음이 통한 듯 노사모 회원들도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다소 진정돼 모든 언론을 통제하겠다던 전날 공표와 달리 수백여명에 이르는 취재진에게 일제히 비표를 나눠주며 취재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전날 “조문 오는 사람을 막는 법은 없다”며 눈물로 호소한 것이 공감을 얻었던 것. 하지만 가족들과 측근은 물론 노사모가 공식적으로 조문을 막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금까지 일부 지지자들의 돌발 행동 가능성은 남아있다. 노사모 한 회원은 “한나라당 의원, 보수 언론 등에 대한 적개심은 노 전 대통령을 너무 많이 사랑한데 따른 후유증 정도로 생각해 줬으면 한다”며 “이들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유서처럼 화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봉하마을=박수철·장충식·박민수기자 scp@kgib.co.kr

도내 축제성 행사 취소·연기 잇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경기도내 곳곳에서 예정된 각종 행사들이 취소 또는 연기, 축소되고 있다. 2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오는 29일 화성시 전곡항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김문수 경기지사, 각 부처 장관 등이 참여하는 제14회 바다의 날 행사를 취소키로 했다. 도는 다음달 열리는 제2회 경기국제보트쇼 및 세계요트대회를 앞두고 기념식을 통한 홍보효과를 기대했지만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같은 날 별도로 개최할 예정이던 보트쇼 자원봉사 발대식 식전행사를 취소하는 등 검소한 분위기를 유지키로 했다. 또 도의회는 26일 오후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을 위한 자선공연을 열기로 했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차원에서 무기한 연기하고, 27일 농촌 일손돕기 봉사활동은 취소했다. 일선 시·군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해 파주시는 이날 LG디스플레이 공장 준공식을 연기했고, 수원시도 24일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 체험과 화성행궁 상설한마당을 취소한 데 이어 25일 포항시 대표단의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 안양시는 오는 28일 열 예정이던 제28회 안양단오제, 30일 관악장애인복지관 큰사랑축제 및 삼덕공원 개장 기념식을 연기했으며, 포천시도 29일 예정된 청소년 e-Sports 문화축제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용인시는 27~29일 용인행정타운 및 죽전음악야외마당 등에서 각각 열릴 예정인 도시락음악회, 목요나무음악회, 금요예술마당을 전격 취소했다. 도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국민과 함께 애도하는 차원에서 도뿐 아니라 일선 지자체들도 잇따라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추세”라며 “당분간 도내에서 열리는 축제성 행사들은 대부분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식기자 dosikim@kgib.co.kr

道, 여야 보좌진 초청행사 ‘연기’

경기도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26, 27일 잇따라 여야 보좌진 초청행사를 계획했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무기한 연기했다. 25일 도와 도내 여야 의원측에 따르면 도는 26일 ‘국토해양위원회 도내 여야 의원(6명) 보좌진’을 초청, 의정부 일대 북부지역 도로현황 시찰에 나설 계획이었으며, 27일에는 ‘행정안전위 여야 의원(24명) 보좌진’을 평택으로 초청해 평택항에 이어 주한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지역개발 현장 등을 돌아보게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와 국민장으로 오는 29일까지 애도기간이 이어져 초청행사가 걸맞지 않고,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각 지역에 분향소를 설치해 보좌진들이 분향소를 지켜야 하는 경우가 많아 참여인력이 크게 줄어 행사자체를 일단 취소하고 6월 임시국회 이후에 다시 추진키로 했다. 26일 국토해양위 도내 의원 보좌진 초청 행사는 도 2청 주관으로 도 북부지역의 열악한 SOC 현황을 소개해 관련 법안 통과와 예산확보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됐었다. 의정부 장암~자금~회천 국도대체 우회도로와 남양주 국도47호선(퇴계원~진접), 연천 국도37호선(적성~전곡~영중) 등 북부지역 일대를 두루 돌며 조기 개통의 필요성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또한 27일 행안위 보좌진 평택 초청은,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지원 등 특별법 개정안’이 국방위 심의사항이지만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개정안’은 행안위 심의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한미군이 이전해 오는 평택과 떠나는 도북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도는 오는 6월3일부터 7일까지 화성 전곡항과 안산 탄도항 일원에서 열리는 경기국제보트쇼 및 세계요트대회에 ‘민주당 도내 의원(17명) 보좌진’을 초청할 계획이나 6월 임시국회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앞서 도는 지난 7일 ‘한나라당 도내 의원 보좌진’을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이천과 팔당으로 초청해 도의 현황을 소개한 바 있다. 도의 이같은 보좌진과의 스킨십은 타 지역 의원 보좌진 뿐만 아니라 도내 의원실로 새로 들어온 보좌진들에게 도내 실상을 제대로 알려 향후 의원들의 입법과 예산활동을 지원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도 관계자는 “보좌진 초청행사가 지난해에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26, 27일 행사를 무기한 연기했지만 6월 임시국회 이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재민기자 jmkim@kgib.co.kr

촛불 속 장대비에 “대통령 우신다” 주민들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모습은 마을회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진혼곡처럼 침통하고 스산했다.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질 때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던 김해 봉하마을 주민들은 오후 6시30분께 양주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돌아오자 실감이 나는지 하나 둘 오열하기 시작했고, 이내 봉하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을주민들은 농번기철 농사일에 모두 손을 놓은 채 하염없이 울기만을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바닥에 주저앉거나 실신하는 사람들이 부축을 받으며 잇따라 실려 나갔다. 언론과 일반인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로 취재진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까지 쉽게 접근하지 못했고, 일부 주민들은 “보수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며 취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장례지원을 자청,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을회관 내로 옮겨진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염을 하고, 입관 작업을 하는 2시간 동안 사람들은 숨죽인 채 기다렸다. 이들에게 노사모 측에서 사온 양초가 손에 손을 거쳐 나눠졌고, 빈소 앞은 금세 촛불집회장처럼 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숨죽여 기다리던 사람들은 오후 7시께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도착하자 격분, 일부 주민과 노사모 회원들이 화환을 짓밟았고, 이를 제지하려는 또 다른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화환을 전달하려던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가슴 속에 숨겼지만 수많은 주민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살인자 이명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소리쳤다.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의 분노는 오후 7시35분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봉하마을 앞에 도착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거세졌다. 일부 노사모 회원들이 이 총재가 탄 차량을 둘러싸고 진입을 막았으며 계란을 던졌다. 한편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렇게 봉하마을 입구는 보수정치인들을 막으려는 세력과 문상만이라도 하게 해줘야 한다는 사람들 간 갈등이 빚어져 혼란스러웠다. 마을주민들은 밤새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애타는 마음을 소주로 달랬고 손에는 촛불을 하나씩 밝혀든 채 노 전 대통령의 생가까지 다녀오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마음 아파했다. 24일 일요일을 맞아 조문객들이 더욱 늘면서 대형 빈소가 다시 마련됐고 이내 마음을 추스린 마을주민들이 음식준비 등에 분주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장대비가 내리자 주민들은 “억울하게 운명을 달리한 노 전 대통령이 하늘에서 우는 것”이라며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마을주민 박기문 할머니(72)는 “봉하마을에 이렇게 많은 비가 온 적이 없다. 분명 노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농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 마지막까지 가뭄기 주민들에게 선물을 주고가는 노 전 대통령이 그립다”며 오열했다. /봉하마을=박수철기자 scp@kgib.co.kr

李 대통령 봉하마을 빈소 직접 조문키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는 봉하마을을 직접 찾아가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이 조문을 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조문을) 간다면 당연히 봉하마을에 차려진 분향소에 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봉하마을을 직접 조문할 것을 결정하기까지 고심한 것이 없다”며 “다만 형식을 장례기간 중 조문할지 영결식에 참석할지 최종적으로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화를 다시 보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어제 조화가 훼손된 데 대해 노 전 대통령 봉하마을 장례위원회에서 빈소가 제대로 차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문객과 지지자들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불상사였다며 유감의 뜻을 표명해 왔다”면서 “장례위에서 다시 분향소가 마련되니 보내주면 다시 화환을 빈소에 모시겠다고 해 다시 보냈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23일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지만 흥분한 일부 조문객들이 조화를 훼손해 빈소에 세워지지 못했다. /강해인기자 hikang@kgib.co.kr

<盧전대통령 서거> 극단적 선택 이유(종합)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남긴 유서에는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지를 택한 노 전 대통령의 심리상태가 투영돼 있다. 여러 요인이 거론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검찰의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 투신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4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미지 실추와 낙담, 억울함이 복합적으로 겹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퇴임 이후 노 전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 등 주변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현 정권 하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도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고,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고 밝혔다. 측근들이 사법적 고초를 당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이자 퇴임 이후 줄곧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강한 항의의 뜻을 담은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척 지쳤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검찰과 언론이 봉하마을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몰아간 것 아니냐. 검찰이 정치적으로 매장시킨 타살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대통령의 권좌에까지 올랐지만 수뢰 혐의자로 내몰리면서 도덕성이 부정되고 비난과 조롱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더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지지자)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낙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존심 강한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지 않았다며 적어도 법적으로는 거리낄게 없다고 누차 해명했음에도 오히려 의혹이 증폭되자 결백의 표시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가 자신 몰래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아썼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의 수수 주체라는 혐의를 거두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달 30일에는 검찰청사에 출두해 소환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았다.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인, 아들 건호, 딸 정연씨까지 진행되면서 일가족 모두가 `부패가족' 이미지로 비친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시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본인이 모든 것을 안고 삶을 마감하는 것만이 사태를 풀 해법이라고 인식했다고도 볼 수 있다.노 전 대통령은 이를 감안한 듯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썼다. 대상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부인과 자녀 등 가족, 주변인사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로 여겨진다. 노 전 대통령은 며칠 전부터 주로 사저 집무실에 머물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못하는 등 정신적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 측근은 "며칠 전부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盧전대통령 서거> 귀향에서 서거까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돌아온 뒤 친환경농법 운동에 나서고 사저를 찾은 방문객들과 소탈한 대화에 나서는 등 권위를 떨쳐버려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형 건평 씨의 구속 등 가족들이 잇따라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면서 장기칩거에 들어가는 영욕을 겪었고 특히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과문 발표 이후 검찰 소환 수모 속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환호 속 고향 안착 =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25일 서울에서 열린 퇴임식 직후 KTX를 타고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와 1만명이 넘는 환영인파의 큰 박수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귀향 당시 47분간의 연설을 통해 "지난 5년간 대통령직을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떻냐"며 "그냥 열심히 했으니 예쁘게 봐 달라"고 말했다. 연설 끝 부분에서 "야~ 기분좋다"는 말로 사상 처음으로 귀향한 퇴임 대통령의심경을 표현했다. 퇴임 후 생활의 첫발은 그만큼이나 경쾌했다. ◇친환경운동 실천..분주한 행보 = 노 전 대통령은 귀향 후 지난해 3월부터 봉하마을 주변 하천에서 직접 쓰레기를 줍고 습지인 화포천 환경정화활동을 벌이면서 봉하마을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 봉하마을 주민들이 작목반을 구성해 재배한 '노무현표 봉하오리쌀'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불티나게 팔리며 봉하마을이 친환경재배를 통한 주민소득 증대의 모델이 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이 가져온 큰 성과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 덕분에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의 대표적 '관광자원'이 됐고 실제로 봉하마을은 하루 최고 1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김해의 최고 관광지로 떠올랐다. ◇'기록물 유출 논란'으로 타격 =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잇따른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귀향 4개월여 만에 불거진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이 대표적이었다. 이 일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하기도 했고, 전.현직 대통령 주변 인사들간의 설전 끝에 경기도 성남의 국가기록원 산하 대통령 기록관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반환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나라당이 '사이버 상왕 정치'라고 비판한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 사이트 개설이나 노 전 대통령의 사저 공시가격 논란 등 각종 정치적 이슈가 불거지면서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갔다. ◇ 형 구속으로 칩거..활동 위축 = 고향 주민의 지지 속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귀향 첫해의 마지막을 사실상 '칩거'라고 할 만큼 대외활동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상황을 맞았다. 친형인 건평씨와 자신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돼 각각 지난해 12월4일과 같은달 12일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형 건평씨의 구속 직후인 지난해 12월5일을 마지막으로 방문객들과 인사하는 일정을 없애고 외부 행사 참석을 자제하고 사실상의 '칩거'에 들어갔다. ◇'박 게이트'에 가족 연루..침통한 일상 = 형과 자신의 오랜 후원자를 구속한'박연차 게이트'에 권 여사와 자녀까지 연루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가족형 비리'라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지난달 7일 '권 여사가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설 자리를 잃었고 같은달 30일에는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되는 비운의 전직 대통령이 됐다. 특히 어느 정권보다도 도덕성을 강조했던 자신과 가족들이 부정한 돈에 연루된 상황에 침통해 했고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도 사실상 폐쇄하는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권 여사를 비롯해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등 가족 모두를 소환한 데 이어 권 여사를 다시 소환하고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는등 계속적으로 압박해 들어오자 결국 영욕으로 가득 찬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비극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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