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온갖 열정을 바쳐 온 금복현씨(52)의 광명시 노온사동 작업장은 구석구석이완성된 부채와 부채관련 재료들로 가득차 있다. 한옥집인 금씨의 대청마루 천장에는 궁중에서 사용했다는 쌍학민화원선이나 화조민화선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여름에 사용한다는 작업실은 보기에도 시원한 대나무살과 형형색색의 한지들이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공예부문(부채) 경기도 으뜸이로 선정된 금복현씨는 옛것의 멋스러움에 반해 30여년간 전통부채를 전승·발전시켰으며, 지금까지 전승공예대전 특별상(문화재위원장상)을 비롯해 경기도 공예품 경진대회 연2회 2위를 차지했다. 또 교보문고, 전통공예 미술관(경복궁 내) 등 각종 전시회에 출품, 그동안 소외받았던 부채 공예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금씨는 그동안 전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통목각 공예(한림출판사)’, ‘전통부채(대원사)’, ‘옛 안경과 안경집(대원사)’등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눈썰미가 뛰어나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목도장을 파는 등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금씨는 “옛 선조들이 일궈놓은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30여년간 맥이 끈긴 부채를 재현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예술품으로 한층 끌어올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20세쯤에 서울에 올라와 종로에 있었던 현대공예사에서 여러 공예기술을 습득했으며, 73년부터 표구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옛날 물건에 관심이 많았던 금씨는 오래된 물건을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 선추(부채끝에 매다는 장식품)와 부채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조그만 골동품상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선추와 부채를 수집하면서 전통부채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직접 부채제작에 뛰어 들면서 선조들의 멋이 담긴 전통부채 재연에 일생을 바치기로 했다. 제대로된 부채를 만들기 위해 금씨는 부채제작에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만나러 전국을 돌아다녔다. 1978년쯤 나주의 김홍식옹을 만나 살 다듬는 기술과 구부리는 기술, 다시 펴지지 않는 기술 등을 배웠고, 부채자루 제작기법은 예로부터 임금에게 진상했던 부채로 유명한 통영지역에 거주하는 송두찬옹에게 제작기법을 익혔다. 금씨는 부채야말로 종합공예작품이라고 말한다. “부채는 한가지만 알아서는 제대로된 작품을 만들 수 없죠. 부채자루를 만들기 위해서 목공예를 알아야 하고, 부채의 멋을 한층 높이기 위해 매다는 선추(扇錘)에는 자수와 매듭만드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여기다 화선지에 그림이나 글씨를 적절히 넣어 조화를 부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밖에도 나무재료에 옻칠을 하고 부채자루의 이음새 부분에 간단한 금속치장 등 여러 공예기술이 필요하다. 부채의 기본재료는 한지, 대나무, 기타 나무 등이다. 우리나라의 닥나무 한지는 질기고 수명이 길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재료로 손꼽힌다. 부채자루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나무로는 느티나무, 먹감나무, 돌배나무 등이 있으나 정교한 조각을 하기 위해서는 대추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부채는 모양이나 재료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눠진다. 이중 금복현씨가 주로 만드는 부채는 단선(團扇)이다. 혼자 만들기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접선(접고 펼치는 부채·摺扇)보다는 살의 묘미를 잘 살릴 수 있는 단선이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선은 원선이라고도 하며 우리말로 방구부채라고도 불린다. 단선중에도 20여가지 부채가 있는데 부채살의 끝을 연잎의 맥과 같이 휘거나 바퀴모양으로 배열하여 만드는 연엽선(蓮葉扇)과 연엽윤선(蓮葉輪扇), 가는 대살을 촘촘하게 배열한 세미선(細尾扇), 부채살의 끝부분을 꺾어 절묘한 곡선미를 살린 곱창선과 곡두선(曲頭扇), 그리고 부채면에 십장생도나 화조도 등 각종 민화를 그려 넣거나 색지를 일일이 오려붙인 단청부채, 파초선, 화조선, 태극선 등 10여가지에 이르는 부채들을 재현하거나 재창조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부채 제작뿐만 아니라 부채 강의에도 유명인사다. 여름철이면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일선 학교 등 전국에 걸쳐 부채 강의를 하고 있다. 부채가 마르는 동안에 부채의 역사와 종류, 우리나라 부채의 멋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부채를 대하는 마음이 평소와 달라진다고 한다. 금복현씨는 부채 전시관을 갖는 것이 소원이다. 지금까지 모은 옛날 부채만도 300여점이고 민속자료, 선추 등 5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수입이 생기면 틈틈히 구입한 것으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 월인천강지곡 등 보물급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민속품에는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겨 있어 더욱 정이 가는 물건들이죠. 은장도나 조각보 하나를 보더라도 꾸밈없는 솜씨가 멋스러워 하나 둘 수집하게 됐습니다. 이것 저것 수집하다보니 부채 전시관을 마련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 조그만 박물관이라도 관광객들이 붐비는데 우리나라 박물관은 외지에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금씨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인 가족이 있다. 묵묵히 부채에 전념토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 부인은 물론 첫째딸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둘째딸은 디자인을 전공한다. 부채 전시관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는 두 딸들은 장인정신을 갖고 살아온 금씨의 든든한 후원자임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금씨는 “전시관은 수익성 있는 사업이 아닌만큼 정말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후원자가 돼서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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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