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전국 유일 5년 연속 ‘통합문화이용권 우수 지역주관처’ 선정

경기문화재단이 ‘2023년 통합문화이용권 사업 우수 지역주관처’로 선정돼 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을 수상했다. 2018년도부터 5년 연속 수상한 것으로, 전국 지역주관처 중 유일한 성과다. 재단은 지난 달 27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2023년도 통합문화이용권 사업 유공자 포상 전수식’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을 받고, 우수사례를 발표했다.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17개 시·도 지역주관처를 대상으로 한 ‘2023년도 통합문화이용권 지역주관처 운영실적 평가’에서 문화누리카드 이용 활성화에 기여한 점 등을 인정받았다. 재단은 경기지역 통합문화이용권 지역주관처로서 가맹점 발굴 및 할인 가맹점 유치, 이용자 접점 홍보, 이용지원 서비스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과 노인 등 이용불편계층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인 ‘슈퍼맨 프로젝트’와 ‘누구나 누리는 문화놀이터, 누리터’의 기획 운영으로 문화 사각지대를 완화하고 문화예술체험분야의 장벽을 낮추는 등 카드 발급·이용률 향상과 이용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한편, 올해 문화누리카드는 1인당 연간 13만원이 지원되며, 문화예술·국내여행·체육 분야의 전국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카드발급은 11월30일까지로 가까운 주민센터 또는 누리집, 앱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다. 카드사용은 12월31일까지며, 기한까지 사용하지 않은 잔액은 국고로 반납된다.

‘파묘’에서 전시까지... 다시 빛 본 조선 사대부 옷 [경기도박물관 이야기]

지난주 개봉한 영화 ‘파묘(破墓)’는 이장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을 다룬다. 무속인과 풍수사, 장의사가 등장해 한국적 오컬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와중에 근대사의 굴곡까지 함께 엮어내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한국의 매장문화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유교의 의례를 따르면서도 불교, 도교의 생사관이 함께 녹아 있고 민간신앙 또한 함께한다. 파묘는 무덤을 여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경기도박물관만큼 파묘에 많이 관여한 기관도 드물다. 도내 문중 및 기증자의 무덤을 이장할 때 자문을 지원하는 ‘찾아가는 유물 지킴이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전문가의 의견 없이 이장을 진행하면 중장비에 눌려 땅속에 묻힌 도자기가 부서지거나 관 속 유물이 그대로 버려지는 일 등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박물관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행 중인 특별전 ‘오늘 뭐 입지?’에서 선보이는 40여점의 복식 유물도 ‘지킴이 사업’의 결과물이다. 지난 2017년 10월, 청송 심씨 사평공파 문중의 이장 계획을 전해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주말을 반납한 학예사들이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이장 작업에 직접 참여했고 그 결과 지석(誌石·죽은 사람의 인적 등을 적어 묻는 돌이나 자기)과 명기(明器·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그릇 따위)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을 손상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사평공파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식이었다. 무덤 3기에서 200여점의 복식 유물이 출토됐는데 모두 17세기 사대부 집안의 옷차림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였다. 무덤 안에서 옷이 썩지 않고 남을 수 있었던 비밀은 조선시대 매장 방식의 특성에 있다. 목관을 보호하기 위해 석회와 모래, 황토를 섞은 ‘삼물(三物)’로 관 주변을 두툼하게 감쌌던 것이다. 제대로 회격(灰隔)이 만들어지면 관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복식의 부패 속도가 크게 느려진다. 유물을 수습하는 것은 일의 시작일 뿐이었다. 복식은 무덤 안에서 수백 년간 시신과 함께 있었기에 특유의 냄새가 심하고 섬유는 매우 약해져 있다. 그만큼 유물의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 먼저 옷에 바람을 쐬고 소독을 해 미생물의 활동을 막은 후 적절한 방식을 찾아 세척과 강화 처리를 했다. 기록에 근거해 옷의 형태를 보정하고 약한 부분은 보수했다.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보고서를 만든 것은 물론이다. 박물관에 들어온 유물이 특별전을 통해 관람객을 만나기까지 5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곱게 꼰 명주실을 가로세로 짜맞춰 만든 무늬를 전시장 너머로 보고 있으면 조선의 멋을 소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봄이 되면 이 옷들은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한동안 미국 나들이에 나선다. 소중한 유물을 직접 마주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전시는 3월1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겹겹이 쌓인 옷에 담긴 마음 [경기도박물관 이야기]

“그래서 차례상에는 뭘 올려야 하니?” 설이 되면 매번 빠지지 않고 듣게 되는 질문이다.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니, 남들보다는 잘 알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올해는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집안 어른을 위한 수의로 무엇을 골라야 하냐는 것이다. 삼베와 인견 중에 무엇이 더 법도에 맞느냐는 구체적인 물음까지 들으면 고민이 시작된다. 조선시대 예법은 지금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 경기도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양반가의 상례(喪禮: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에 어떤 옷이 사용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진행 중인 특별전 ‘오늘 뭐 입지?’는 청송 심씨 가문의 무덤에서 출토된 17세기 우리 옷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문신 심연(沈演, 1587-1646)과 그의 부인, 그리고 할머니의 무덤에서 200여 점의 복식이 좋은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전시에서는 이 중 47점을 골라 선보인다. 무덤에서 나온 옷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삼베 수의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히려 비단을 사용한 화려한 옷이 많다. 망자가 생전에 입던 옷 중 좋은 것을 골라서 입힌 후 매장했기 때문이다. 때로 새 옷이나 다른 이의 옷가지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오늘날 수의의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조선시대에는 상례가 엄격했고 그 절차도 매우 복잡했다. 송나라 학자 주희가 쓴 ‘가례(家禮)’는 사대부 집안의 ‘관혼상제(冠婚喪祭)’ 예법의 큰 기준이었다. 그중 상례 부분만을 추리고 조선의 풍속을 더해 만든 것이 ‘상례비요(喪禮備要)’와 같은 책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책은 그림과 함께 상장례의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뼈대 있는 양반 집안이라면 모두 한 권쯤 갖추고 필요할 때마다 봤을 법하다. 예법에 따르면 사람이 죽음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팔다리가 굳어버리기 전에 주물러 가지런히 두는 것이다. 한편 다른 이는 지붕에 올라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외치며 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절차를 ‘초혼(招魂)’이라고 부른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로 시작하는 소월의 시 제목이 여기서 온 것이다. 하늘로 날아가는 이름이 망자의 혼에 가 닿지 못하고 부서지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혼이 돌아오지 않아 죽음이 돌이킬 수 없어지면 먼저 망자의 몸을 깨끗하게 씻긴다. 이후 절차에 맞추어 좋은 옷을 골라 시신에 입히고 서늘한 곳에 모신다. 돌아가신 다음 날과 셋째 날에는 시신을 이불로 감싸는 ‘염(殮)’을 각각 한 차례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도 옷이 쓰이는데, 주로 다리 사이나 머리 아래 등의 빈 곳을 채우는 용도다. 심연의 경우 두 벌의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7겹의 포(袍)를 겹쳐 입고 있었다. 40여 점의 옷가지가 ‘염’에 사용됐으며, 10여 점의 다른 옷이 시신과 관 사이의 공간을 단단히 메우는 역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옷을 찢거나 말아서 밀어 넣기에 옷이 나뉘어 발견되는 일도 빈번하다. 결국 관 안을 망자의 옷이 가득 채우는 꼴이니, 지금의 수의나 장의 형식과는 차이가 크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마음이다. 먼저 떠난 가족을 그리며 가장 좋은 것을 드리려는 마음은 과거의 비단옷에도, 지금의 삼베 수의에도 담겨 있다. 여전히 우리는 중요한 순간에 전통을 돌아보며 거기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박물관의 이번 전시가 과거의 상례 형식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마음마저 관람객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영상] 117년만의 만남…‘우리가 찾은 의병’…무명의병포럼 현장 답사

“117년만의 만남…임과 같은 무명의병의 헌신,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26일 오후 1시께 옥천면 옥천리 산 23-1 일대. 낙엽이 무성히 덮인 한 묘 앞에 10여명이 길게 줄지어 헌화했다. 묘비의 앞면엔 ‘의병장 한산이공백원 지묘’가, 뒷면엔 ‘항일의병 양근지구 의병을 결성 왜병과 교전 중 서기1907년 정미 8월17일 차처 남산에서 전사’가 한자로 적혀있었다. 이 묘는 지난 1907년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이백원 의병장의 묘다. 후손이 아닌 일반 시민과 역사학자 등이 공식적으로 방문해 공식적으로 헌화와 묵념의 예를 갖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7년만의 만남. 강진갑 무명의병포럼 공동대표는 “이백원 의병장께서 1907년 순국하시고 117년이 지난 2024년, 이제와 임을 찾아와 참배하고자 한다”며 “님과 같은 무명의병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순국선열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겠다. 너무 늦어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헌사했다. 무명의병포럼 관계자들이 26일 오후 1시 양평군 일대에서 ‘우리가 찾은 의병과의 만남’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 2022년부터 본보와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이 추진한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통해 찾은 의병의 흔적을 현장 답사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무명의병을 발굴하고 기리기 위해 이어가는 올해의 첫 번째 발걸음이다. 시민과 역사학자, 포럼 관계자 및 양평의병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10여명의 답사단은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찾은 의병’인 이백원 의병장의 묘를 찾아 헌화와 묵념을 하며 무명의병 발굴과 이들을 기리기 위한 의지를 다졌다. 이백원 의병장은 이름을 남기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명 의병을 찾은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 이 묘는 지역민에 의해 지난 2020년 발견됐지만 묘비에 의병장이란 기록이 있음에도 의병 명단에서 찾을 순 없었다. 이에 이복재씨와 최봉주씨 등 양평의병사업기념회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수소문한 끝에 이백원 의병장의 후손을 찾아냈고,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로 확인 작업 등을 구체화 했다. 특히 묘비에 적힌 이백원 의병장의 사망일자와 조선폭도토벌지에 등장하는 의병 탄압 날짜 등이 일치해 F.A.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등장하는 무명의병과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역사적 가치로 현재 묘 발굴 작업 등이 논의되고 있다. 답사단과 함께 한 이백원 의병장의 후손 하보균씨는 묘비를 매만지며 “외가 고조부 되시는 분께서 남산에 묻혀 계신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 어머니를 통해 들었는데 진짠 줄 몰랐었다.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답사단은 이날 1차 행선지로 F.A. 매켄지가 의병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양평군 오빈리 398-14일원을 방문했다. 지난 2022년 무명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팀은 전문가와 현장 답사와 고증 작업을 진행했고, 전문가들은 “종합적으로 볼 때 양평군 오빈리가 당시 매켄지의 사진이 찍힌 장소로 보는 게 맞다”며 장소를 확정한 바 있다. 무명의병포럼은 이날 이백원 의병장 묘와 F.A. 매켄지가 의병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양평군 오빈리 398-14일원을 방문한 데 이어 양평 을미의병 묘역 등을 연이어 방문하며 무명의병을 발굴하고 기억하는 활동을 더욱 폭넓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강진갑 공동대표는 “이름없이 돌아가신 1만7천명의 의병과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발걸음을 올해도 이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수원문화재단, 앞으로도 사랑방 되길" 김현광 재단 대표이사 [인터뷰]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지만,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2022년 영광스러우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며 취임인사를 했는데 어느덧 2024년을 맞이했네요. 고마움을 깊이 간직하고, 지난 40여 년간의 만남과 추억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자신을 맡은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그 열정을 끝까지 이끌어 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현광 수원문화재단 대표는 본업을 가장 충실히 수행한 사람 중 하나다. 그가 대표로 취임한 지 1년6개월 동안 문화예술 현장에서 그의 목격담은 끊이지 않았다. 지역에서 벗어나 인근 도시와 협업하고 현장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111씨티 아트마켓’, 지역 청년작가들의 교류전인 ‘융 融’, 아트마켓 ‘평화수산’ 등 경기남부지역의 문화콘텐츠 유통과 교류의 자리, 선순환 구조의 사업 구축은 김 대표의 문화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현장 방문을 바탕으로 나왔다. 김현광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가 27일 오전 11시 재단에서 40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 하는 퇴임식을 갖는다. 퇴임식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만난 그는 “되돌아 본 지난 40여 년은 아쉬움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며 특유의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화성시 향남에서 태어나 오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수원에 있는 도서관을 다니던 중 우연히 공무원 시험 벽보를 봤다. 결과는 합격. 우연히 시작한 수원시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진심을 다했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딸, 아들을 낳아 맞벌이 환경이 녹지 않았던 당시 이웃집,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정신없이 키웠다. 배움의 열정도 놓지 않았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해 배움을 이어나가다 경기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그는 “처음으로 직업의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알게됐다”고. 동경하던 동화작가들을 사제지간으로 만나고 뒤늦게 문학에 빠져 문학의 길을 걸었다. 동화책 ‘올챙이들의 하수구 탈출 작전’을 발간한 동화작가이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학을 전공한 그가 수원시 최초로 공공기관 인사청문회를 거쳐 수원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변화와 혁신을 약속하며 재단 대표로 취임한 그는 지역 예술인과는 정기적인 간담회나 사업 참여 기회를 넓혀 재단의 문턱을 낮추는 데 노력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경기지회장으로도 활동하며 28개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대표자와 실무진 간담회 및 워크숍, 도의회 등과 네트워크 확대와 협력체계도 강화해 재단의 외연을 넓히는 데도 앞장섰다.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만큼 재단 대표로 공직생활을 마감하며 아쉬운 점도 있다. 어려워진 지자체의 살림살이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지역의 문화예술이다. 그는 “수원이 경기도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고 인구도 많은 중심도시 인 데다 규모도 크지만, 이러한 규모완 달리 내부에선 재정 여건과 예산이 녹록지 않아 재단이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시의 문화예술 및 관광에 대한 비전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인 만큼 재단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활용해 수원의 문화예술과 관광이 더 앞으로 나아가고, 또 재단이 지역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동화를 전공한 그는 퇴임 후 마음껏 동화책을 펴낼 꿈을 꾸고 있다. 지역과 관련된 문화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구상도 전했다. “판타지 동화와 미술, 박물관과 관련된 동화 또 수원과 관련된 지역 동화책을 내고 싶어요. 또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 시나리오도 만들면 좋겠네요. 하하.”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는 지난 40년을 “행복하고 보람차게 했다”고 정리했다. 그는 “무사히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해준 가족과 선·후배 등 동료들 덕분이었다”면서 “이제는 평범한 시민으로 어디서든 수원시를 응원하겠다. 봉사활동이든 그 무엇이든, 내 역할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라고 약속했다.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 아동 꿈 위한 2024 초록우산 아이리더 발대식 진행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는 경기지역 아동이 꿈을 펼치고 인재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2024 초록우산 아이리더’ 사업의 포문을 열었다.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는 아이리더 및 보호자, 후원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4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발대식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초록우산 및 아이리더 사업소개 및 후원자 위촉식, 아이리더 임명식 등으로 진행됐다. 이어 백희성 강사(KEAB 대표)의 꿈을 향한 동기부여의 특강이 이어졌다. ‘초록우산 아이리더’란 초록우산이 지난 2009년부터 각 분야의 재능 있는 아동이 경제적 여건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숨겨진 재능과 잠재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재양성지원사업이다. 이날 발대식을 통해 임명된 학업분야 6명, 체육분야 24명, 예술분야 23명 등 총 53명의 아동은 올해 말까지 최대 1천만원의 재능계발비를 지원받는다. 후원금으로 전달된 계발비는 대회참가비 등으로 활용되며,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할 경우 올해 말 이후에도 후원은 이어진다.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는 2024년에도 경기남부권역의 재능 있는 인재 지원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할 계획이다. 여인미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장은 “2024 아이리더 발대식에 참석한 아이리더들이 아이리더로서 자부심을 가지길 바란다”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멋진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도-경기문화재단, 학교 안 문화체험 공간 ‘공감터’ 조성

경기문화재단은 시흥 신천고등학교 야외에 누구나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교육할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 ‘공감터 Space UBO_Art & Culture’를 조성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문화예술시설 지원사업으로 추진된 이 공간은 경기도교육청의 ‘학교갤러리 운영 심화 모델 개발’ 사업과 연계해 학교 선정부터 조성, 운영까지 전문기관 간 협력사업으로 이뤄졌다. 학교 안 문화예술시설 지원사업은 학교 안에서 누구나 차별 없이 문화예술교육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22년에 조성된 부천 고강초등학교 문화예술 복합공간은 음악, 미술, 공연, 학교 쉼터 기능이 결합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하다. 이번 신천고등학교 야외문화예술공간은 온실 갤러리 형태의 문화공간으로,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고려한 공간으로 신축됐다. 특히 문화예술의 다양한 교육과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가변형 벽면을 설치하고, 온실 공간의 단점을 보완한 천장형 전동환기시설로 쾌적한 환경을 만들었다. 경기문화재단은 이 같은 문화예술공간을 활용한 시범적인 학교 전시 ‘뻔하지 않아서 뻔FUN’을 다음 달 6일까지 진행한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2022~2023년에 조성된 학교 안 문화예술공간은 경기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을 공유할 수 있도록 경기도 문화정책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사라진 무예서를 찾아라”…현대와 조선 넘나드는 액션활극 뮤지컬 '눈길'

정조는 조선의 무예를 집대성하기 위해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정조가 직접 방향을 잡아 규장각의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의 장교 백동수는 결국 1790년 훈련용 병서인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해냈다. 오늘날 수원시립공연단의 무예24기 시범단이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상설 공연으로 국내외 관광객에게 선보이는 무예는 이 무예서를 고증한 것이다. 전투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한 실전 훈련서인 무예도보통지 속 무예가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를 더해 유쾌한 공연 콘텐츠로 관객과 만난다. 수원시립공연단은 다음 달 9일부터 4월28일까지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창작 무예 뮤지컬 ‘THE BOOK(더 북)’을 선보인다. ‘THE BOOK’은 ‘수원’하면 떠오르는 화성과 정조, 장용영 등을 소재로 한 수원만의 공연관광 콘텐츠로 지난해 초연했다. 수원시립공연단과 수원문화재단이 공동 주관 및 협업하고 시립공연단이 주도한 중장기 프로젝트 사업으로 공연단 내 무예단과 극단이 무예서를 복원하기 위한 흥미진진한 고군분투를 펼치며 무예서의 모습을 2024년 수원 화성에서 선보인다. ‘THE BOOK’은 정조가 조선의 무예를 집대성 하기 위해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하던 어느 날, 규장각에 자객이 침입해 무예도보통지를 도난 당하면서 시작된다. 도난 당한 무예도보통지는 21세기 수원화성에서 발견되고, 사라진 무예서를 쫓아 과거에서 건너온 정조의 호위무사 앞에 젊은 유튜버 연심 일행이 나타난다. 연심의 손에 들린 무예도보통지를 이들이 빼앗으려던 그때 호위무사와 연심은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해 정조와 백동수를 만나게 된다. 공연은 역사적 사실에 기발한 상상력을 가미했다. 현대와 조선을 넘나드는 역사 판타지 액션 활극을 선보이며 실감나는 조선의 무예를 긴장감 있는 극적인 이야기와 함께 펼쳐낸다. 특히 올해 작품은 공연장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무대 배경으로 펼쳐진 영상을 더 세밀하게 손보고, 의상과 무대세트도 관객 맞춤형으로 보완했다. 지난해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열띤 호응을 얻은 만큼 올해는 회차를 더 늘려 두달 간 16회 공연한다. 권호성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은 “그동안 정조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가 대부분 진지한 분위기였다면 ‘THE BOOK’은 한층 가볍고 유쾌한 톤으로 남녀노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며 “지난해 성원을 발판으로 앞으로 수원을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이자 명품관광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3치 현안은 1개일까 2개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동3치 현안이 원형 1개에서 2개로 복원됐다. 복원 오류이지만 한 장인의 소신과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기본 방어시설인 치가 화성에 여덟 곳이 있다. 북동치, 서1치, 서2치, 서3치, 남치, 동1치, 동2치, 동3치다. 이 중 동3치는 남수문에서 동쪽으로 높은 언덕에 있는 동남각루 바로 다음에 있다. 성 밖에서 보면 동3치에 현안이 2개 설치돼 있다. 모든 치에 현안이 1개씩 설치돼 있는데 왜 동3치만 2개일까?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1개가 맞는 것일까? 2개가 맞는 것일까? 답은 1개다. 그 근거를 보자. 첫째, 화성성역의궤 중 ‘치성도’와 한글판 뎡니의궤에서 ‘치성 외도’”를 보면 모두 현안이 1개다. 그리고 양쪽 의궤의 ‘화성전도’를 확대해 봐도 1개다. 둘째, 의궤에 치에 대해 “바깥쪽으로 현안 구멍이 1개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개가 원칙이다. 셋째, 의궤 도설에 보면 8개 치에 대해 공통으로 설명하고 끝낸다. 각각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항만 설명한다. 북동치는 북동적대와 붙어 있는 점, 서1치는 타구 위를 덮은 점, 서3치와 남치는 여장이 원성 안으로 들어온 점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동3치 현안이 성역 당시 2개였다면 당연히 기록됐을 것이다. 매우 특별한 점이기 때문이다. 언급이 없다는 것은 다른 치와 마찬가지로 1개라는 말이다. 정리하면 성역 당시 동3치 현안은 1개였다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3치 전면 폭이 넓기 때문에 2개를 설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확인해보자. 먼저 치 여덟 곳의 전면 폭을 살펴보자. 북동치 7.6m, 서1치 5.9m, 서2치 5.4m, 서3치 4.9m, 남치 3.8m, 동3치 7.6m, 동2치 6.1m, 동1치 6.6m다. 8개 치 중에서 동3치는 북동치와 폭이 같다. 이처럼 같은 폭인데도 북동치는 현안이 1개다. 포루(군졸)와도 비교해 보자. 이유는 의궤에 치와 포루에는 현안을 1개씩 설치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포루 중 동3치보다 전면 폭이 더 넓은 것은 동북포루 7.9m, 북포루 8.3m, 서포루 9.4m다. 그러나 이 세 곳 모두 현안이 1개씩이다. 이상 두 데이터는 폭이 넓다고 현안을 더 많이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재확인해도 성역 당시의 동3치 현안 개수는 1개다. 그런데 현재는 2개다. 지금부터 ‘동3치와 현안 2개의 미스터리’를 풀어보자. 왜 2개가 됐을까? 그리고 언제 2개로 됐을까? 몇 개월 전, 필자와 가까운 고건축가 한 분이 사진 파일 두 개를 주셨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병풍도 그림이다. 화성전도가 포함된 6폭과 12폭 병풍도 2개다. 최근에 자세히 살펴보던 중 미스터리를 풀 단서를 보게 됐다. 12폭 병풍도에는 현안이 1개이고 6폭에는 2개로 그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 글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병풍도 자체로는 왜 2개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있다. 조건은 제작 연도다. 제작 연도는 언제일까? 제작 연도는 다른 학자의 자료에서 가져왔다. ‘화성연구회 학술회의’ 자료다.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의 ‘정조 이후의 화성을 그리다’ 주제발표 내용이다. 발표에서 제작 연대를 12폭 병풍도는 1814년에서 1824년 사이, 6폭 병풍도는 1831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동3치 현안 수는 성역 완료 1796년에 1개, 1824년에 1개, 1831년에 2개가 된다. 따라서 현안이 1개에서 2개로 변동된 시기는 1825년부터 183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이로써 2개로 바뀐 시점이 밝혀졌다. 그러면 왜 2개가 됐을까? 필자는 1825년과 1830년 사이 어느 날 ‘붕괴해’ 복원공사 중 2개로 ‘바꿨을’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본다. 타당한 근거도 있다. 먼저 붕괴에 대한 근거다. 치에서 현안을 1개에서 2개로 변경하려면 두 경우뿐이다. 의도를 갖고 모두 부수고 2개로 바꾸는 경우와 자연재해로 붕괴해 복원할 때 2개로 바꾸는 경우다. 현안을 2개로 늘리려고 일부러 동3치를 해체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성역 이후 홍수로 붕괴해도 예산 부족으로 복구에 장기간이 소요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자연재해로 붕괴해 복원하면서 2개로 바꿨다는 것이 타당하다. 치의 현안은 부분 개조공사가 불가능한 구조다. 기둥이나 보가 있는 라멘구조가 아니라 돌로 쌓은 적층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안을 1개에서 2개로 바꾸려면 전면을 모두 뜯어내야 한다. 전면을 뜯으려면 치 전체의 60에서 70%는 해체해야 가능하다. 부분 개조 공사가 불가능한 이유다. 현안은 1개일 경우 정중앙에 위치하고 2개일 경우 3분의 1 지점과 3분의 2 지점에 있으므로 전면을 모두 해체해야 가능하다. 다음 ‘바꾸다’에 대한 추정이다. 복원을 담당한 장인은 대규모 공사가 아닐 경우 설계, 시공, 감동을 겸해 재량권이 있는 편이었다. 현안의 기능을 잘 알고 동3치의 전면 폭이 유난히 넓은 것을 알고 있는 장인이기에 복원 중 2개로 늘린 것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 된다. 복원을 원형대로 하지 않은 잘못은 있으나 장인의 분석력과 소신은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그 장인은 현안 수량을 정하는 규범까지는 몰랐다. 이것이 장인의 한계다. 동남각루 쪽으로 가까이 보내고, 폭도 넓혀, 방어력을 증강한 동3치에서 한 장인의 소신과 애틋한 마음을 느꼈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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