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작품 엿보기 ⑤/중국 연변연극단 ‘해구신’

돈 때문에 가짜 이혼이 진짜 이혼이 돼 사랑하는 남편이 “가지 말라”고 울부짖는 딸아이 리미를 버리고 할아버지뻘 되는 재미동포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류화는 날아온 오죽도를 친정집 촌마을로 데려온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류화의 아버지 최현풍과 어머니 김금자는 사위를 맞기 위해 개를 잡는 등 분주하다. 잡은 개의 개근을 버리려고 길가에 나온 최풍현은 병문진을 다녀오는 착한 전 사위 리강을 만나지만 냉대하며 ‘개근도 약’이라는 리강의 말을 무시하며 “갖고 싶으면 너나 가지라”며 회피한다. 이 때 류화와 같이 집으로 막 들어서던 오죽도는 개근을 보고 보약이라며 최풍현을 유혹한다. 복녀는 물건 값이야 받는다며 펄쩍 뛰고는 데리고 온 손녀 리미를 보고 가자고 한다. 엄마를 본 리미는 안간다고 야단이고 류화는 리미를 달래며 데려간다. 그 사이 끓인 개근 국을 마신 오죽도는 성기가 오른다며 류화를 찾아가 성욕을 풀려다 이모 최란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고 최란은 끝까지 반항한다. 돈의 욕망에서 해방된 류화는 후회와 속죄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남편 리강과 딸에게 돌아간다. 두 가족도 서로 속죄하며 함께 잘 살아보자고 약속한다. 18일 오후 4시~5시30분, 오후 7시30분~9시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홀.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인터뷰/김의철 청개구리 높빛메아리 대표

“짙은 민족애와 사람에 대한 사랑, 순수한 사람의 슬픔을 담은 한돌의 공연은 풍자적이지만 동요적이라 아름다웠습니다.” 지난달 29일 고양덕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지난해 14년만에 무대에 오른 한돌선생의 공연을 이어 올해에도 무대에 오른 한돌선생의 공연 ‘한돌 타래 이야기-낯선 슬픔’의 예술감독을 맡은 청개구리 높빛메아리 김의철 대표는 작품에 대해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전체적인 내용이나 공연 준비 기간의 부족으로 연습량 등이 부족했다”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70년대 포크송의 계보를 이어가는 무대를 큰 무리없이 마무리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에 대해 “공연 멤버들의 거주지가 서울 천오동이나 양평 등지여서 모이는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연습시간의 압박이 있었지만, 모두 뜻깊은 공연에 대해 의미를 두고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청개구리 높빛메아리는 70년대 청년모임 청개구리를 계승해 부활한 음악모임으로 현존하는 포크송 가수들을 초대해 공연을 하기 시작해 명동 YMCA 등지를 포함 이번 한돌 공연까지 모두 34회에 걸쳐 포크음악 공연을 계속 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올해 재정난으로 공연이 좀 뜸하기는 했지만, 한돌이 지난해 14년만에 무대에 오른 뒤 서민음악을 대표하는 한돌의 공연이 계속 될 수 있도록 올해 다시 무대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포크음악이 미사리 등 카페촌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치부되는 요즘, 의식이 없이 기타만 들고 노래하는 것과 포크송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공연리뷰> 아 세이 보치 '심연의 우수'

낭트 클로드 브뤼마숑 무용단과 아 세이 보치의 만남은 다분히 미켈란젤로의 그림 가운데서도 '인간의 창조'를 떠올리게 했다. 서로 닮은 신과 그가 창조한 아담이 서로 손가락을 마주 대며 신성과 인성이 '접촉'을 시도하는 그 그림은 인간 본성 그 자체를 가치있게 여긴 르네상스 시대 불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접촉' 그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클로드 무용단의 '심연의 우수'는 그 이후의 사건을 '혼돈'으로 보여주었다. 제9회 서울세계무용 축제(SIDance)에 소개된 '심연의 우수'(10월1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무용계 뿐 아니라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바로크 이전 시대의 합창을 복원하며 원전 연주계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아 카펠라 합창단 아세이 보치가 가담한 작품으로, 조스캥을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종교 음악이 실제로 연주되며 작품의 주제가 미켈란젤로라는 점은 여러 모로 고음악 애호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한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모든 기대는 어긋났다. 단정하고 평화로우며 성스러운 음악을 매개로 한 클로드 브뤼마숑 단원들의 움직임은 폭력적일 만큼 격정적이었으며 충격적이었다. 천상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채 잘 단련된 무용수들의 벌거벗은 신체는 리듬과 상관없이 서로 뒤엉키고, 두들기고, 부대끼고, 이리저리 내던져지며 헝클어지고 뒤틀린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러한 음악과 육체의 분열은 특히 전반부에서 대단히 뚜렷하게 드러났다. 시작 장면에서 둥글게 모여 코스탄초 페스타의 'Super flumina babylonis'를 노래한 여섯 명의 아 세이 보치 단원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무대 오른쪽 의자에 앉아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관조할 뿐이었다.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육체와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기 같은 종교 합창곡은 그대로 이질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작업실'을 표방하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이리저리 뒤엉켰다. 그러나 작품이 전개될수록 성스러운 음악과 세속적인 몸짓은 각각의 성격을 그대로 고수하는 가운데 융화를 시도했다. 다윗과 골리앗, 노아의 대홍수,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에서 비롯된 모든 성서의 내용들이 뒤틀린 형상으로 육체화해 가는 가운데 아 세이 보치 단원들은 때로는 무대 중앙에서, 때로는 무대 한 켠에서, 그리고 마침내는 무용수와 한 명씩 짝을 이루었다. 그들의 육성을 통해 흐르던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청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의 'Regina Ceali' 'Christus mrtuus est' 'O Maria'와 모랄레스의 'Sabbato Sancto'는 더 이상 천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 인간의 내면이 추구하고 갈망하는 인간적인 신성이 되어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하여 무용수들이 내는 부수적인 소리, 물이 젖은 천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 소리, 박수 소리, 육체가 바닥에 스치는 소리, 도약하는 무용수들의 발 구르는 소리, 살과 살이 마주치는 소리 등 콘서트 홀에서라면 '잡음'이라고 분류될 다양한 인간 본연의 소리와 함께 어울렸다. (실제 이 공연에서 음향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성한 음악이 인간적인 몸짓과 소리에 의해 본성 자체가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의 광기와 에로티시즘은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마지막 아 세이 보치 단원 중 한 명을 무동에 태우는 등 무용수와 성악가가 한 명씩 짝을 이룬 가운데 노래 소리는 조명과 함께 잦아들고 그대로 멈춘 듯 정지해 버렸다. 무용(속)과 음악(성)이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마침내는 '구분'이라는 의미 자체를 뛰어넘어 하나로 융합하는 모습은 비단 모티브가 된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주제만은 아니었다. 아 세이 보치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울려퍼진 조스캥 데 프레 또한 그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 끝없이 갈구한 이념이 '아르스 콤비나토리아', 즉 '결합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공연리뷰>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독주회

13일 LG아트센터 홈페이지에는 다음날 콘서트를 갖는 오귀스탱 뒤메이가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이 공지사항으로 올라왔다. 공연을 앞둔 아티스트가 일정대로 내한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게시물로 그의 공연 티켓을 예매했던 많은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94년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 취소를 시작으로 그의 내한 공연 펑크는 무려 3차례. 사람들의 관심은 "그의 연주가 어떠할까"가 아니라 "그가 정말 이번에는 올까"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런 그의 행보를 두고 "뒤메이는 아시아와 유색인종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지만 이는 근거없는 소문으로 드러났다. 뒤메이-피레스 부부와 함께 실내악을 녹음했던 중국출신의 첼리스트 지안 왕은 그들 사이에 입양한 아시아 혈통의 자식이 두 명이나 있음을 증언했다. 또한 이번 내한 공연에 그는 쇼팽 콩쿠르 입상 경력을 가진 일본인 피아니스트 미치에 코야마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부인 피레스와의 듀오 음반에서 보여준 뒤메이의 연주의 장점은 실은 '바이올린의 개성을 죽이지 않는 가운데 피아노를 배려하는 데' 있었다. 모차르트 소나타 K481, 그리그 소나타 1번, 그리고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로 이루어진 이번 내한 프로그램은 피아노의 비중 또한 월등한 작품들로, 그의 성격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구색이었다. 다만, 피아니스트가 그의 아내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러나 음반에서는 쉽게 잡히지 않았던 또다른 미덕이 공연장에서 드러났으니,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채로운 음색이었다. 단순한 템포나 강약의 조절을 넘어서 그는 각각의 작품, 각각의 악장, 각각의 프레이즈마다 전혀 다른, 그러나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음색들을 활로 그어냈다. 이러한 음색의 변화는 특히 다소 느린 템포로 진행된 모차르트 소나타의 2악장에서 매우 아름답게 승화되었다. 모차르트의 소나타에서 격식과 품위를 고수하며 고고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궁정악장의 모습을 선보였던 뒤메이는 그리그 소나타 1번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날개를 펼쳤다. 탄력있는 리듬감으로 노르웨이 민속 춤곡의 형태가 고스란히 살아나는 가운데 그리그 소나타는 매번 색깔을 바꾸어가며 생기를 더했다. 2부에 연주된 크로이처 소나타는 뒤메이가 가진 테크닉, 그리고 그의 음악의 철학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활을 길게 쓰는 가운데에서도 음의 강약은 자유롭게 조절되었으며 손가락의 퉁기는 현 하나하나 마다도 소리가 전혀 다를 정도로 그는 음표 하나하나를 세분화시켜 그려냈지만 이는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스승인 나탄 밀스타인이 추구하던 자연스러운 자유분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1악장은 약간 위축되었지만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2악장에서부터 그의 바이올린은 카멜레온의 본성을 드러냈으며, 3악장에서는 그 색채의 향연이 현란하게 느껴질 만큼 절정에 이르렀다. 보면대(譜面臺)를 가져다 놓고 안경을 쓰고 악보를 일일이 읽어가며 연주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소리를 즐기는 듯 시종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역시나 뒤메이는 피아노 파트에도 많은 기회를 부여하며 '공생'이라는 실내악적 원칙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피레스의 아우라가 강렬해서였을까. 미치에 코야마의 피아노 연주는 다소 둔탁했으며 자신감을 잃은 듯 전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날의 연주는, 이제는 음반으로밖에 들을 수 없는 과거 그뤼미오와 셰링과 같은 비르투오소들의 낭만과 전통이 공존하는, 모처럼 과거의 향수를 기분 좋게 만끽할 수 있는 무대였다. /연합뉴스

<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의 '천생연분'

국내보다 유럽 무대에 먼저 소개된 한국 창작 오페라라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을까? 13일 국립오페라단(단장 정은숙)의 '천생연분' 한국 초연(16일까지)이 이뤄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객석은 예상 외로 가득 찼다. 창작 오페라 공연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놀라운 일은 또 있다. 음악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이 다들 공연을 상당히 즐겼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친근했고 네 겹 무대는 눈을 사로잡았으며 극은 재미있고 속도감도 있었다. 창작 오페라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성공적 결실이었다. '천생연분'은 한국 전래동화만큼이나 그 내용이 잘 알려진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토대로 한 오페라다. 그러나 오영진의 작품에서 '콩쥐팥쥐'처럼 등장하는 '착하고 현명한 여종'과 '욕심 많은 주인집 딸'은 오페라 '천생연분'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김판서의 손녀 서향'(소프라노 김은주)과 '현실감각 있는 여종 이쁜이'(소프라노 박지현)로 바뀐다. 자매처럼 친밀한 이 두 여주인공은 마치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에 나오는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인 피오르딜리지'와 '명랑하고 재치있는 도라벨라' 같은 인상을 준다. 이들을 사랑하게 되는 맹진사의 아들 몽완(테너 이영화)과 그의 친구이자 종 서동(바리톤 김동원) 역시 '코지'의 굴리엘모와 페란도에 대입할 수 있는 성격을 지녔다. 이처럼 악역이 사라져 버린 까닭에 '천생연분'에는 '맹진사댁 경사'에서 볼 수 있는 권선징악의 분위기가 없다. 그래서 극은 훨씬 세련된 반면, 희극 특유의 시정(是正) 효과는 약해졌다. 못된 주인공이 벌을 받는 과정이 빠졌기 때문이다. '코지 판 투테' 외에도 '천생연분'을 보며 떠올리게 되는 오페라 작품은 상당히 많다. 작곡가 임준희의 음악과 작가 이상우의 대본이 워낙 다채로운 빛깔을 내고 있어서다. 올해 3월에 국립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프랑크푸르트에서 공연했을 때도 현지 공연 평마다 '푸치니 음악과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음악을 듣다 보면 부분적으로는 '나비부인'과 '투란도트'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적인 리듬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판소리와 우리 고유 악기의 장단이 귀에 꽂히지만, 역시 작품 전체를 주도하는 흐름은 장음계와 단음계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서양음악의 작곡 방식이다. 또 레하르 풍의 달착지근한 선율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이 작품이 오페라보다는 오페레타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쇤베르크 이후 현대 음악어법을 거의 구사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 점이 오히려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도움을 줬다고 할 것이다. 임준희의 음악은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토대로 한 또 다른 오페라인 잔 카를로 메노티의 '시집가는 날'(1988)보다도 밝고 수월하게 들린다. 그래서 현대음악을 두려워하는 청중을 일단 안심케 한다. 결혼할 상대방의 생김새를 모르기 때문에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설정 역시 로시니의 희극 '브루스키노라는 남자'나 '결혼청구서'같은 희극 오페라에 흔히 등장하는 구도. 그리고 대본에 담긴 '신분 철폐의 이상'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떠올리게도 한다. 특히 맹진사(베이스 함석헌)가 보잘 것 없는 자기 집 족보를 펼쳐놓고 한탄하다가('초시 초시 줄초시') 전이방(테너 송원석)과 함께 족보를 고치는 대목은 대본과 음악과 연기 모두 최고의 희극성을 구현한 부분이다.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무대미술(임일진)과 의상(이용주)은 전통적인 요소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상징화했다. 합창단은 다양한 빛깔의 한복 대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주인공들이 입은 단색조의 원색 의상도 단순화된 무대 위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했다. 전통을 현대화한 중국이나 일본의 공연예술과 비교할 때 한국의 작품들은 대체로 절충주의적으로 보여 선명한 인상이 부족한 것이 아쉬움인데, '천생연분'의 무대는 이런 문제점을 비교적 훌륭하게 극복했다. 극중 중요한 노래들을 콘서트에서 독창하듯 거의 연기 없이 부르게 한 것은 약간 지루한 느낌을 주지만, 무대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을 고려한 연출 콘셉트로 보인다(연출 양정웅). 두 커플이 엇갈려 사랑에 빠지는 2막의 4중창에서 서향과 서동, 이쁜이와 몽완이 서로에게 끌리는 장면의 대사와 연기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등 다양한 국악기(중앙국악관현악단)가 가세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정치용)의 연주는 특히 합창 부분에서 빛을 발했다. 집단의 해설로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가며 장면마다 적절하게 희극적 양념을 쳐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작품의 해학을 살려냈다.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이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전통적 소재를 택한 일본의 현대 오페라나 중국의 곤극 공연만큼의 강렬한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저 우리 소재에 너무 익숙해서일 뿐일까? 음악도 극도 우리 고유의 색채를 좀 더 명징하게 드러낼 때 한국 창작 오페라가 국제 무대에서도 더욱 인정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 고유의 색채를 정형화하려는 모색의 과정으로서 이번 공연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연합뉴스

채제공 영정·향합 등 수원 품에

조선 정조시대 수원 화성 건설의 일등공신 번암 채제공(1720~1799년))의 주요 유물들이 수원시에 기증돼 향후 화성축성은 물론 조선후기 정치·문화사에 주요 연구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번암은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1793년 초대 화성유수를 지내면서 화성성역화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그의 실학사상은 이가환과 정약용 등에게 이어졌다. 번암의 6대 종손 채호석씨(78·서울 서초구 서초3동)는 집안대대로 소장했던 유물 7종 135점을 수원시에 기증(지난 12일), 내년 하반기에 완공될 화성박물관에 특별 전시된다. 주요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 예고된 ‘채제공 영정’. 정조의 어진을 그린 왕실화가 이명기가 그렸으며 임금께 하사받은 부채와 향주머니 등이 있다. 특히 향주머니는 이번 기증유물에도 포함됐으며 연필로 그려진 영정의 밑그림 ‘초본’은 18세기 조선에 연필이 수입된 증거로 한국미술사에 중요한 자료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영정은 18세기 왕실 표구양식을 충실히 따랐으며, 번암은 영정을 하사받은 감회를 영정 왼편에 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정조와 번암과의 긴밀한 관계를 알려주는 장문의 편지도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정조 어필 중 긴 글씨를 찾아보기 드물다”며 “이 편지는 번암의 사직을 허락하면서 섭섭함과 함께 투정스런 글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번암의 대표저서인 ‘번암집’ 30권 필사본은 규장각 목판본보다 앞선 시대의 유물로 정조가 직접 서문과 목차를 정해줬다. 이밖에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 무과시험 자료와 정조의 사인이 들어간 전령, 영조 친필 등을 기증했다. 김 교수는 “현재 확인된 정조 친필만 최소 9건”이라며 “(수원시는)학술적 가치가 높은 이번 기증 유물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 실학박물관 등이 접촉했으나 최종적으로 번암과 인연이 깊은 수원시에 기증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봉태규 “백윤식 선배 쓰러뜨릴 결심”

“중국집인 걸로 기억하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주눅이 들어 먹은 음식이 체할 정도였습니다.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 와 솔직하게 하는 말이지만 2회차부터는 이 분을 맞상대해 쓰러뜨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봉태규가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대선배인 백윤식을 상대로 해서다. 두사람은 다음달 개봉 예정인 코미디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감독 김성훈 제작 투모로우엔터테인먼트·아이러브시네마)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출연한다. 전은강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봉태규는 최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백윤식과 공연한 소감을 묻자 “그전 한 작품을 같이 할뻔 했는데 이뤄지지 못해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는데 기회가 빨리 왔다”며 “(내가)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선생님께도 피해가 되고 (나도) 잘하지 못해 영화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백윤식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칭했다. 이에 대해 백윤식은 “봉태규는 참 맑은 연기자”라며 “발돋움하고 피어나는 연기자다.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추켜세웠다. ‘애정결핍…’은 5년차 홀아비 동철동(백윤식 분)과 혈기 왕성한 18살 아들 동현(봉태규 〃)이 자식 둘을 두고 있는 이혼녀 미미(이혜영 〃)를 향해 동시에 구애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내용. 설정 자체에서 코믹함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 내용에 대해 김성훈 감독은 “110분을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돌아서 다시 생각해보면 뭔가 느껴지는 해학을 담으려 했다”고 소개했다. ‘범죄의 재구성’과 ‘싸움의 기술’, ‘타짜’ 등에서 누군가의 선생 혹은 스승 역으로 출연해온 백윤식은 본격적인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독특한 발성법과 흉내 낼 수 없는 표정 연기로 순간순간 위트와 코믹함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그의 코미디 연기가 기대되는 작품. 그는 “캐릭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며 현실적이어서 리얼하게 접근하려 했다. 봉태규, 이혜영과의 호흡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봉태규는 “재미있는 영상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역시 감독님 공이컸다”며 “사실 민망한 연기도 해봤기 때문에 다른 건 어렵지 않았는데 시나리오에 써 있는 딱 한줄 ‘배에 왕(王)자가 새겨있다’는 지문때문에 힘들었다”고. 감독이 꼭 표현해주길 바래 2개월동안 헬스클럽을 갔는데 심지어 감독은 “그냥 ‘왕(王)’자도 아니고 발육이 덜 돼 말라 근육이 생긴 듯한 ‘왕’자”를 요구, 매일 팔굽혀펴기를 300번 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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