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 결산/김남일(2)

②김남일 ‘진공청소기’ 김남일(25·전남 드래곤즈)은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압박축구가 세계 최정상급인 한국축구에 없어서는 안될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김남일은 이 포지션에서 세계최고라는 네덜란드의 에드가 다비즈보다 뛰어나다는 찬사까지 얻고 있고 해외무대 진출도 가시권에 뒀다. 김남일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과 강한 압박능력은 물론 적재적소에 볼을 배급하는 능력을 갖춘데다 한번 상대를 마크하면 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지는 근성과 투지도 남다르다. 한국이 월드컵 첫승에 이어 4강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도 김남일이 공격의 물꼬를 트는 상대 플레이메어커에 최전방 공격수까지 꽁꽁 묶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인천 부평고 1학년 때 축구가 힘들다는 이유로 가출했다가 부친의 설득끝에 마음을 다잡고 운동화끈을 질끈 동여맨 사실이 알려져 국민을 감동시킨 김남일은 히딩크 감독이 흙속에서 찾아낸 진주. 히딩크 감독은 반칙만 잘하고 정교한 패스 등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저평가를 받던 김남일을 지난해 8월 유럽전지훈련을 앞두고 깜짝 발탁했다. 히딩크 감독의 조련속에 환골탈태한 김남일은 스페인전지훈련 기간 열린 핀란드전에서 완벽한 플레이로 2대0 승리를 도와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사더니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슈퍼스타 지네딘 지단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김남일은 자신보다 키가 10㎝ 이상 큰 라도스와프 카우지니를 제공권 싸움에서 압도하고 특급 골잡이 에마누엘 올리사데베를 완벽하게 차단, 한국이 역사적인 첫승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 미국 및 포르투갈전에서도 상대 공격수들에 좀체 공격루트를 열어주지 않던 김남일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도 예의 몸을 사리지않는 저돌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땀과 눈물의 대가로 별볼일 없는 선수에서 ‘버팀목’으로 성장한 김남일은 세계중심에 진입한 한국축구를 짊어지고 갈 우리 모두의 슈퍼스타임에 틀림없다./월드컵 특별취재반

숙원 넘어 4강신화.. 기적같은 여정

○…한국축구 대표팀이 2002 한·일월드컵대회에서 4강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아시아 최강을 넘어 세계축구의 중심에 진입했다. 당초 목표가 월드컵 첫승과 16강 진출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전은 분명 한국축구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쾌거로 평가된다. 한·일월드컵에서의 한국축구대표팀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해본다.<편집자 주> ①목표 초과 달성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 2002한일월드컵 개막 캘린더가 D-30을 가리키던 5월1일 낮 대한축구협회 회의실. 월드컵 최종엔트리를 발표하던 거스 히딩크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 서두에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비록 “실력과 운이 따라준다면”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당면 목표인 16강을 넘어 그 이상을 암시하는 듯한 감독의 패기에 찬 출사표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국내 팬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대표팀이 올초 해외 전지훈련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데다 엔트리 발표 직전 중국과 가진 홈 평가전에서 졸전 끝에 0대0으로 비겨 악화된 여론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잇단 풍파 속에 비틀거리던 히딩크호는 태극전사 23명의 최종 승선과 함께 거짓말처럼 쾌속 순항을 거듭하면서 ‘무적함대’로 변모해갔다. 5월16일 스코틀랜드를 4대1로 꺾은 기세는 잉글랜드전(1대1)과 프랑스전(2대3패)을통해 날개까지 달았고, 마침내 6월4일 항도 부산의 밤하늘에 붉은 구름이 솟게하는 월드컵 첫 승으로 이어졌다. 4일 폴란드를 2대0으로 이긴 것은 첫 본선무대였던 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6차례의 도전 끝에 거둔 한국축구 사상 첫 승이자 세계축구사에 길이 남을 이변의 서곡이었다. 54년 2패, 86년 1무2패, 90년 3패, 94년 2무1패, 98년 1무2패. 2라운드 진출은 커녕 4무10패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던 한국축구는 수모로 점철된 근대사에 마침표를 찍는 것과 동시에 전혀 꿈꾸지도 못했던 환희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히딩크호가 한국축구사를 다시 쓰는 데에는 첫 승리를 따낸 지 정확히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0일 숙적 미국과 아쉽게 비겨 다잡은 티켓을 놓쳤던 한국은 14일 월드컵 우승후보 중의 하나인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이 겨루는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미국과 비길 때만 하더라도 내심 반신반의하던 국내 축구인들도 세계를 놀라게하겠다던 히딩크 감독의 장담이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자 비로소 “히딩크가 옳았다”며 자세를 바꿨다. 히딩크는 그러나 16강 목표 달성에 만족하지 않았다. 팬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할 때 대표팀의 눈은 이미 4강을 넘어 요코하마까지 넘보고 있었다. 히딩크는 결승토너먼트 이후 다음 대전이 유력한 팀 경기에는 노트와 마이크를 들고 반드시 나타나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로써 승리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서우리만큼 철저한 사전 분석에 기초한 히딩크의 발언은 결국 한국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잇달아 누르고 4강에 진입하는 월드컵 최대의 이변을 연출함으로써 허풍이 아닌 진실이었음을 입증했다. 48년전 참패를 설욕하지 못하고 3·4위전에서 터키에 무릎을 꿇었지만 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한 한국축구의 4강 진입은 분명 한국이 세계축구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알린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그 누구와 맞붙어도 두렵지 않은 자신감을 불어넣고, 동시에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 설킨 국내 풍토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올 개혁의 수단으로써의 역할도 할 전망이다. 세계를 경악케한 히딩크의 공은 이제 우리 지도자들에게 넘어왔다./월드컵 특별취재반

석패 아쉬움 헹가래에 씻은듯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승부를 앞두고 애써 굳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는 모습이었으나 얼굴에는 전에 없던 여유를 숨기지 못했다. 4강 진출로 목표를 이미 초과달성한데다 성격상 ‘친선경기’나 다름없게 치러지는 3·4위전의 분위기 때문에 승부사로서의 면모는 아무래도 엷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여유는 경기 시작 1분도 안돼 수비진의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자 씻은 듯 사라졌다.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경기를 즐기려던 히딩크 감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토끼처럼 벌떡 일어났다. 이후 히딩크 감독의 눈빛은 방심한 선수들에 대한 질책을 쏘아 보내듯 이글거렸다. 이을용의 중거리 슈팅이 빗나가자 귀를 만지면서 “오늘 쟤들 왜 저러는거야”라는 혼잣말을 내뱉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을용의 프리킥이 멋지게 터키 골문을 가르자 히딩크 감독은 박수를 치며 “바로 저거야!”하듯 손짓을 보냈다. 그러나 어퍼컷 동작은 없었다. 비로소 ‘내 제자들이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인지 히딩크 감독은 잠시 물을 마시러 터치라인 근처로 나온 설기현과 안정환에게 빠른 입놀림으로 공격 작전지시를 내리는 등 활기를 띠었다. 한국이 거세게 터키를 밀어 붙이자 고개를 끄덕여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잇단 역습에 내리 2골을 추가로 내주자 히딩크 감독은 다시 잠잠해졌다. 때때로 고개를 돌려 선수들의 답답한 플레이에 대한 못다땅한 심정을 표현했지만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진 자세로 터치라인 근처를 배회할 뿐이었다. 종종 핌 베에벡 코치와 경기 운영에 대해 의논도 나눴으나 표정은 ‘이대로 지고마는가’하는 찹착한 심경이 묻어났다. 후반 인저리 타임 송종국의 벼락같은 슈팅이 터키 골키퍼 레치베르의 손끝을 스치듯 골대안으로 빨려 들어가도 히딩크 감독은 요란한 골 세리머니는 없었다. 다만 ‘히딩크의 황태자’라 불릴만큼 총애를 아끼지 않았던 송종국의 월드컵 첫골을 흐뭇하게 여기는 인상은 얼굴에 가득했다. 경기가 끝나도 히딩크 감독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2개 대회 연속 3·4위전 패배이 씁씁했던지 히딩크 감독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입맛만 다셨다. 시상식이 시작돼 선수들에게 메달이 주어질 때도 굳어 있던 히딩크 감독의 얼굴은 4위 메달을 받을 때 잠깐 펴졌을 뿐. 그러나 시상식을 마치고 선수들이 헹가래를 치러 다가오자 비로소 히딩크 감독은 환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맞았다. ‘물건 떨어지면 어떻게 해’라며 양복 웃저고리 주머니를 비우는 시늉으로 사람들을 웃긴 히딩크는 헹가래를 받은 뒤 양손을 모으고 관중석에 공손한 인사를 건네며 진한 패배의 아쉬움을 달랬다./월드컵 특별취재반

한국 4위 아쉬운 피날레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붉은 악마’는 태극기가 아닌 붉은 터키 국기를 흔들었고 터키 선수들은 태극기를 두르고 그라운드를 달렸다. 48년만에 다시 격돌했지만 남은 것은 ‘승패’가 아니라 진한 ‘우정’이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지난 한달여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폭주기관차’ 한국대표팀은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마지막 경기를 패배로 끝내고 말았다. 한국은 29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대회 3·4위전에서 주전이 빠져 흐트러진 수비 라인의 공백을 메우고 못해 터키에 2대3으로 졌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때 터키에 당한 0대7의 수모도 씻지 못했고 독일과의 준결승전에 이어 2경기 연속 1점차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아쉬움은 곱씹을수록 서운했지만 이날 터키와 나눈 ‘우정’과 ‘감동’은 승리보다결코 처지는 것이 아니었다. 또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월드컵 첫 승과 16강, 그리고 8강을 넘어서 4강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표를 받아 쥐는 대성공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전반 킥오프를 한 한국은 대회 올스타 멤버에 빛나는 홍명보의 어이없는 실수로 눈 깜짝할 사이인 11초만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유상철의 패스를 받은 홍명보가 아크 정면에서 컨트롤 미숙으로 만시즈에게 공을 빼앗겼고 만시즈가 살짝 건드린 공을 슈퀴르가 가볍게 골로 연결시켰다. 한국은 어이없는 실점 뒤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 9분 동점골을 넣었다. 아크 왼쪽 약 25m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이을용이 절묘한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터키 골문 오른쪽 상단 구석에 꽂았다. 하지만 4강전까지 완벽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했던 한국 수비는 최진철, 김태영 등 스리백 수비의 두 날개가 빠지면서 곳곳에 허점을 노출했고 전반 13분과 32분 역시 슈퀴르-만시즈 콤비에 연속 골을 내줬다. 1대3으로 전반을 마친 한국은 후반 초반 만회골을 넣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20분을 그대로 넘기면서 조급한 마음에 실수 연발이었다. 한국은 후반 중반 발빠른 차두리, 최태욱이 투입되면서 공격에 다소 활기를 찾았고 안정환, 송종국 등이 2∼3차례 결정적인 슈팅을 날리기도 했지만 터키 골키퍼 뤼슈틔 레치베르에게 번번이 막혔다. 그리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인 후반 48분 송종국이 결국 한 골을 더했으나 더 이상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월드컵 특별취재반

2002월드컵 결산/효율적 공격축구(2)

②효율적 공격축구 한일월드컵을 2년도 채 남겨 놓지 않았던 2000년 12월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이끌 사령탑으로 결정됐을 때 많은 축구팬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것은 히딩크 감독이 토털사커의 원조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화끈한 공격축구를 한국에 심어 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은 2001년 한해 동안 한국대표팀의 경기에서 화려한 골세리머니를 그리 자주 볼 수는 없었다. 지난해 한해동안 한국의 전적은 8승5무5패. 이중 3골 이상의 소나기골이 터졌던 경기는 2월 두바이4개국대회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4대1 승리 뿐이었고 2골을 넘는 스코어는 한 번도 없었다. 여기다 대륙간컵 프랑스전과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잇따라 0대5의 참패를 당하며 수비 불안마저 노출, 대표팀은 과연 히딩크 부임 이후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거센 비난에 부딪쳐야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2002년 3월. 유럽전지훈련을 마치고 난 대표팀에서 마침내 히딩크 축구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히딩크는 문전에서 의미없는 슈팅만 날리는 실속없는 축구보다는 미드필더를 장악하며 완벽한 득점찬스를 만드는 효율적인 축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를 위해 히딩크는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가 각각 맡은 바의 임무만을 수행하던 기존 한국축구 스타일을 완전히 뜯어고치고 누구나가 공격수이자 수비수라는 개념을 선수들에게 확실히 심어 주었다. 올 3월 이후 평가전에서는 골문 앞에 버티고만 있던 공격수는 사라졌다. 공격수도 상대가 볼을 잡으면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혀야 했고 미드필드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완전한 찬스를 만드는 모습이 점점 늘어났다. 최용수, 이동국 등이 선발로 나서지 못하거나 탈락한 반면 올림픽대표팀 수비수였던 박지성은 강철같은 체력과 수비능력으로 오른쪽 날개를 꿰차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한국의 16강진출을 이끈 주역이 됐다. 히딩크의 경제적인 축구는 이번 월드컵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6경기에서 6골을 기록, 함께 4강에 올랐던 브라질(15골), 독일(14골), 터키(7골)에 비해 골수에서 가장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슈팅수에서 69회로, 가장 적은 슈팅을 날리면서도 34회의 유효슈팅을 기록하는 정교함을 보였다. 화려함은 없지만 실속있는 공격축구가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룬 비결이다./월드컵 특별취재반

연습생 ’2006년엔 우리차례’

‘2006년에는 우리가 주역.’한국대표팀의 훈련파트너로 이번 월드컵에 동참하고 있는 연습생 4인방은 선배들을 따라 다니며 쌓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은 우리차례’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성국과 여효진(이상 고려대), 정조국(대신고), 염동균(전남) 등이 그 주인공들. 이들은 지난 5월초 대표팀 엔트리가 확정되면서 시작된 강화훈련에 파트너로 동참, 형들과 동일한 수준의 파워프로그램과 전술훈련 등을 소화해내면서 히딩크 감독이 추구하는 ‘국제수준의 축구’가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체험한 행운아들이다. 특히 최성국과 정조국은 일찌감치 지난 4월 대표팀 일원으로 합류해 치열했던 막판 엔트리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체험하기까지 했다. 정예선수들을 조련하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이들을 키우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다. 이들을 ‘쿠키’(최성국), ‘루키’(여효진) 등의 애칭으로 부르는 히딩크 감독은 정식훈련 때도 똑같은 강도로 이들을 훈련시킨 것은 물론 오전 또는 오후에 정규 엔트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이들을 따로 불러내 개인전술을 가르친 적도 많았다. 히딩크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과 함께 하면서 배운 실질적인 경험들은 자신들의 경력에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라며 뿌듯해 하기도 했다. 우선 최성국은 화려한 드리블 능력의 이면에 볼을 지나치게 끌고 개인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훈련과정에서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또한 장신에 기술이 좋은 수비수 여효진과 골감각이 탁월한 스트라이커 정조국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파워와 체력, 스피드 등을 어느 수준까지 올려야 할지를 깨닫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 그 뿐 아니라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선배들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세계 최정상의 강팀들과 벌인 사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얻은 ‘학습효과’ 또한 시야를 넓히고 목표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 틀림없다. 월드컵은 이제 곧 막을 내리지만 새롭게 출발선상에 선 이들 ‘젊은 피’들은 한국축구의 도약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월드컵 특별취재반

브라질-독일 결승전 ’대타홈런 날려주마’

큰 무대일수록 주연보다 조연이 더 빛나는 법. 무21세기 첫 월드컵 결승도 전혀 예기치 못한 한방에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 브라질과 독일은 서로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사이이다. 브라질은 미로슬라프 클로세의 머리에, 독일은 호나우두-히바우두-호나우디뉴 ‘3R’의 발끝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다. 피차 실점 요인을 최소화하고 득점포를 가동하려면 중원에서의 불꽃 튀는 격돌이 불가피하다. 주전 거포들이 강력한 압박에 발이 묶인다면 결국 월드컵 정상을 향한 물꼬는 대타에 의해 터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브라질은 루이장, 독일은 옌스 예레미스란 비장의 카드를 준비중이다. 루이장은 호나우두가 끝내 월드컵에 나서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스콜라리 감독이 공들여 키워놓은 스트라이커로, 골게터 호마리우를 대표팀에서 밀어내고 스콜라리호에 최종 승선했다. 베네수엘라와의 남미예선 최종전에서 2골을 뽑은 뒤 지난 3월 유고와의 A매치에서도 득점해 그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을 반전시켰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는 터키와의 조별리그 1차전과 4강전에 잇따라 출전해 타고난 순발력과 정확한 위치선정 능력을 과시했다. 루이장은 ‘조커’로 나서 감각이 둔해진 탓에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호나우두가 후반 지칠 경우 그를 투입한다는 벤치의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플레이메이커 미하엘 발라크가 경고누적으로 빠지는 독일은 예레미스란 믿음직한 대체 엔진을 가동한다. 예레미스는 경기의 흐름을 꿰뚫는 눈에다 완급 조절이 탁월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4년전 프랑스월드컵에서 3경기에 출전해 큰 경기에도 강하다. 위협적인 태클과 노련한 가로채기로 길목을 차단하는 개인기는 물론 전방에 정확하게 찔러주는 킬패스와 상대 허를 찌르는 중거리슛 감각도 지녔다. 루이장이냐 예레미스냐. 둘 중 누구의 발에서 ‘대타홈런’이 터질지는 알 수 없지만, 꿈의 월드컵 결승에서는 조연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비중이 크다는 점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월드컵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