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벡 신임 감독 “한국축구 미래 밝다”

핌 베어벡(50)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베어벡 감독은 2일 네덜란드 방송 ‘NOS 스포츠 스튜디오’에 출연해 “한국에는 재능있는 젊은 선수가 많고 기존 대표 선수들도 투지와 기량이 좋아 항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축구의 발전의 관건은 다른 아시아 국가 뿐만 아니라 유럽 및 남미 국가들과 많이 겨뤄 많은 국제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어벡 감독은 K-리그 수준을 묻는 질문에 “K-리그 수준은 유럽 빅리그와 차이가 있다. K-리그 팀의 수준은 현재 네덜란드 프로축구 2부 리그와 비슷하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반면 대표팀에 대해서는 “유럽 클럽팀과 대등하다고 생각되며 이번 독일월드컵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베어벡 감독은 또 “나는 31세 때 네덜란드 프로축구 리그 사상 최연소 감독이 됐고 지난 20년 동안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최연소 감독 부임 당시 팀의 몇몇 선수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기도 했다”며 자신의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 정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공언해 온 그는 특히 프로그램 사회자 및 패널들에 ‘오른쪽’, ‘왼쪽’, ‘전진’, ‘압박 축구’ 등의 한국말을 발음하며 그 뜻을 소개해 지한파(知韓派)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편 베어벡 감독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 이어 한국 대표팀 새 사령탑에 부임한 뒤 지난달 29일 휴가차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았다.

한국축구 월드컵결산/④ 기록으로 본 태극전사 활약

2006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 아쉽게도 일찌감치 대회를 마친 태극전사들은 이번 대회에서 최종 엔트리 23명 중 17명이 본선 그라운드를 밟았다. 골키퍼 김용대(성남)와 김영광(전남), 수비수 조원희(수원), 미드필더 김두현(성남), 백지훈(서울), 공격수 정경호(광주) 등 6명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 모두 풀타임을 뛴 선수는 골키퍼 이운재(수원)와 수비수 최진철(전북), 미드필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3명 뿐이다. 이운재는 비록 4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8차례의 선방을 펼쳤고, 특히 프랑스전에서 눈부신 수비로 무승부의 발판을 놓았다. 수비라인의 ‘맏형’ 최진철은 최종 스위스전에서 4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고도 ‘붕대 투혼’을 발휘했다. ‘산소탱크’ 박지성은 특유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공수에 걸쳐 소금같은 구실을 했고, 특히 프랑스전에서는 후반 36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려 값진 승점 1을 안겼다. 선배 안정환(뒤스부르크)을 젖히고 당당히 3경기 모두 최전방 원톱으로 선발을 꿰찬 조재진(시미즈)은 262분을 뛰면서 프랑스전 박지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제 몫을 다 해냈다. 이천수(울산)도 3경기 연속 선발 출전(251분)해 근성있는 플레이로 공·수를 넘나들며 활력을 불어넣었고, 특히 토고와 1차전에서는 프리킥 동점골로 팀의 첫 골과 함께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후반 조커로 투입됐던 안정환과 설기현(울버햄프턴)도 비록 각각 92분, 70분으로 출장 시간은 적었지만 후반 대공세의 주역으로 활약, 안정환은 토고전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켰고 설기현은 프랑스전에서 동점골의 출발이 된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렸다. 프리미어리거 이영표(토튼햄)는 3경기에서 242분을 소화하면서 좌·우 윙백으로 활약하며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술 운용 폭을 넓혀줬다. 김동진(서울)은 토고전을 제외한 나머지 2경기에서 풀타임을 채웠고, 반면 송종국(수원)은 토고전에 나서 90분을 뛰었을뿐 이후 2경기엔 출전치 못했다. 중앙 수비수 김영철(성남)은 1, 2차전 모두 풀타임을 뛰었으며,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성남)은 토고, 프랑스전 2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총 30분을 소화했다. ‘젊은 피’ 중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울산)의 활약이 두드러져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112분), 김남일(수원·203분) 등 선배들과 경쟁에서 3경기 모두 선발 출전(248분)하며 향후 중원을 책임질 기대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반면 ‘축구 천재’ 박주영은 스위스와전에 선발 출전해 65분 간 뛰었고, 중앙 수비수 김진규(이와타)는 2경기에서 135분을 소화했다.

한국축구 월드컵결산/③ 한국축구, 사령탑 전략으론 한계

“물론 전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술적인 성장이 뒷받침 돼야만 합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아쉽게 16강 진출이 좌절된 대표팀의 홍명보 코치가 24일 스위스 직후 한 말이다. 홍 코치는 중·장기적으로 한국축구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대일 대응 능력과 선수 개개인의 전술 운영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역대 원정 대회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무려 52년 만에 원정 첫 승을 올린데 이어 98년 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강인한 체력과 조직력으로 몰아붙이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마지막 스위스전에서도 비록 패하긴 했지만 조별리그 경기 가운데 가장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번 월드컵을 되돌아 본다면 더 이상 한국축구가 감독의 전략·전술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대표팀 새 감독이 된 핌 베어벡은 “우리 팀은 매우 공격적인 시도를 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2002년과 비교하면 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월드컵에 대비할 수 없었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체력과 맞물려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략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3일 토고전에서 전반 불의의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수비수 김진규 대신 안정환을 투입, 4-2-4로 전환하는 ‘매직 용병술’을 구사해 역전 드라마를 썼다. 19일 프랑스전에서도 전반 내내 수세에 몰렸지만 후반 설기현을 측면에 투입하면서 활로를 뚫고 박지성의 위치를 두 번 바꿔가며 끝내 동점골을 만들어냈으며, 스위스전에서는 이천수를 처음으로 섀도 공격수에 배치했고 후반에는 안정환을 투입 공격 숫자를 5명까지 늘리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결과적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피말리는 승부처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의 용병술이 돌파구를 열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멀리 2010년 이후를 내다본다면 한국축구가 이제는 선수 개인의 기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전략 아래에서 꾸준한 경기력을 담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정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축구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 또한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베어벡 감독님”

한국축구의 새 사령탑에 핌 베어벡(50·네덜란드) 대표팀 수석코치가 임명됐다. 대한축구협회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26일 축구회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계약이 만료돼 물러나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 후임으로 베어벡 수석코치를 새로운 대표팀 사령탑으로 임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대표팀의 역대 7번째 외국인 감독이 된 베어벡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4강 기적’을 일궜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 한국축구의 원정 월드컵 첫 승과 원정 최다승점(4점)을 따내 ‘지한파(知韓派)’로 인정 받아 지휘봉을 잡게 됐다. 이 위원장은 “베어벡 감독의 계약기간은 오는 8월부터 2008년 8월말까지 2년이며 연봉은 관례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위원장은 베어벡 감독 선임 배경에 대해 “베어벡 신임 감독의 한국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물론 축구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믿음이 컸다”며 “대표팀 선수들 역시 베어벡 감독에 대한 신망이 높고 새로운 감독을 영입하는 데서 올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임 베어벡 감독은 이날 오전 축구협회에서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며, 이번 주말 네덜란드로 돌아가 휴가를 보낸 뒤 복귀해 본격적인 대표팀 운영방안에 대해 고민할 예정이다. 새로운 코칭스태프의 구성은 베어벡 감독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결정될 전망이며 압신 고트비 코치와 홍명보 코치 등 기존의 코치진이 대부분 기용될 전망이다. 한편 히딩크, 아드보카트처럼 네덜란드 출신인 베어벡 감독은 1974년 네덜란드 프로축구 스파르타 로테르담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해 1980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1981년 같은 팀 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입문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감독 대행(1989~1991년), 네덜란드 FC 그로닝겐 감독(1992~1993년), 일본 프로축구 2부리그 NTT 오미야 감독(1998~2000년)을 거쳤다. 2001년에는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한국으로 옮겨와 수석코치로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고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2군 감독(2002.7~2003.6), J리그 교토 퍼플상가 감독(2003.7~11) 등을 지냈다. 이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대표팀 지휘봉(2003.12~2004.6)을 잡으면서 국가대표팀을 처음 지휘했다. 2004년 11월 독일 보루시아MG 수석코치를 맡으면서 아드보카트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2005년 7월에는 아드보카트와 함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옮겼다. /황선학기자 hwangpo@kgib.co.kr

한국축구 월드컵결산/② 아드보號, 한국축구에 남긴 발자취

비록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2회 연속 16강 진출문턱에서 좌절을 맛봤지만 지난 8개월여의 짧은 월드컵 준비 기간 속에서 사상 첫 원정 승리 등 적지 않은 성과를 일궈냈다. 지난해 10월 7일 파주 NFC에서 처음 소집돼 항해를 시작한 아드보카트호는 이번 2006 독일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총 17경기를 치러 9승4무4패의 성적을 거둔 뒤 독일 땅을 밟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전술변화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용해왔던 전통적인 스리백에 메스를 가해 4백을 도입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한국 축구는 ‘포스트 히딩크’의 공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면서 2명의 외국인 감독이 잇달아 경질되는 ‘혼돈의 시간’을 거친 끝에 지난해 9월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 감독을 맞이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취임 일성은 ‘공격축구를 앞세운 포백 구축’.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이 포백을 선언하고 나섰을 때 국내 축구전문가들은 ‘섣부른 실험’이라며 위험성을 강조했다. 아드보카트 감독 역시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를 보려고 초반 4차례 평가전을 스리백으로 치른 뒤 끈기 있게 포백라인의 완성을 목표로 선수들을 조련했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상대에 따라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선수들에게 심어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지난 13일 G조 1차전에서는 토고의 투톱 공격수를 막기 위해 스리백을 먼저 사용한 뒤 후반전부터 ‘4-2-3-1 전술’로 바꿔 2대1 역전 승리를 거뒀다. 2차전 상대인 프랑스전에서는 포백을 기본으로 1대1 무승부를 거두면서 전술적인 탄력성을 대표팀에 심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드보카트호가 남긴 또 다른 긍정적인 면은 ‘원정 월드컵’이라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국 월드컵 역사상 첫 원정경기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럽징크스’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무대에서 유독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왔던 한국 축구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뒤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세계 정상급 팀들과 어깨를 겨뤄 ‘쉽게 이기기 힘든 팀’이라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줬다. 비록 유럽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월드컵 2회 연속 16강 진출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시아 축구강국을 넘어 세계 정상급 대열에 낄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무엇보다 소중한 성과다.

얇은 선수층 기반 다시 닦자

1. 2010년 대회를 위해 ‘독일 아픔’ 잊고 세대교체·신예육성… K-리그도 혁신을 한국 축구가 2006 독일월드컵 본선에서 진한 아쉬움을 안고 중도 하차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한국 축구는 4년 뒤인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내다보며 차근차근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아드보카트호는 비록 전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월드컵 원정 도전사에서 무려 52년만에 이뤄낸 감격적인 첫 승리를 비롯, 우승후보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등 세계 축구팬들을 충분히 놀라게 할 만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역시 유럽의 높은 벽 앞에서 한계를 절감한 것도 엄연한 현실로 한국 축구는 현실적인 기반에 든든하게 발을 딛고 재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느끼게 됐다. 축구대표팀은 오는 9월 킥오프되는 2007 아시안컵 예선을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데 당장 눈앞에 닥친 일정보다는 2010년 차기 월드컵을 겨냥해 중·장기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구협회와 축구계가 전면에 나서 ‘2006년 독일에서의 뼈아픈 경험’을 보약삼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 먼저 전반적으로 선수층의 기반을 새롭게 닦아야 할 것이다. 한국 대표팀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지나치게 안주한 나머지 활발한 세대교체와 풍족한 대표 자원을 만드는 작업을 등한해 왔다. 2004 아테네올림픽과 2003,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 멤버 가운데 일부가 성인대표팀에 뽑혀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많은 유망주들이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를 잡아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연중 상비군 체제를 운영하 듯이 국내파와 해외파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팀 선발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며, K-리그 활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혁신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2 월드컵 이후 K-리그는 4강 신화의 열기를 타고 ‘반짝 호황’을 누렸지만 이후 팬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갔고, 이 같은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축구계 전체가 독일의 교훈을 받아들여 새로운 틀을 짜야 할 때다. /황선학기자 hwangpo@kgib.co.kr

한국-스위스 감독 출사표

한국 축구대표팀이 24일(한국시간) 새벽 4시 독일 하노버 니더작센 스타디움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2006 독일월드컵 G조 조별리그 3차전을 치른다. 나란히 1승1무를 기록하면서 골득실 차로 G조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위스(승점 4·골득실 +2)와 한국(승점 4·골득실 +1)은 이번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에 후회없는 한판 승부를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다. ◇딕 아드보카트 한국 감독 두 팀 모두에 중요한 경기다. 우리 팀에도 분명히 16강 진출의 기회가 있고 그점에서 매우 기대되는 경기다. 스위스 주전 11명 중 10명이 유럽 선진 리그에서 뛰고 있다. 반면 우리는 국내파가 선수들이 많아 큰 경기 경험 면에서는 스위스가 앞선다. 선수들의 수준 면에서는 한국과 스위스의 차이가 별반 없다고 본다. 스위스는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수비를 우선시하다가 역습을 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양 팀의 경기 운영 방식을 비교해놓고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경기가 될 것이다.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전에서는 공격수들이 다소 미드필드 지역으로 내려왔지만 스위스전에서는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팀은 아니지만 어떤 팀이든 우리를 쉽게 이기기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포기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코프 쾨비 쿤 스위스 감독 우리는 항상 승리를 위해 최대한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왔다. 하지만 무승부라도 매우 만족할 것이다. 이번 한국전이 개인적으로 A매치 50번째 경기지만 축하 케이크는 필요없다. 승점 3점과 16강 진출이면 충분하다. 한국은 기술적으로도 훌륭한 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토고전에서는 상대 선수가 퇴장당하는 운도 있었지만 좋은 경기를 펼쳤고 프랑스전에서도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만큼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 한국은 지난 두 경기 모두 후반전에 좋은 플레이를 펼쳤는 데 이는 강한 체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지난 1, 2차전에서 풀타임을 뛴 선수들은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고 16강 이후의 일정도 생각해야하지만 일단 한국전에 모든 전력을 쏟을 작정이다. 조 2위는 16강전에서 강호 스페인과 만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조 1위로 16강에 오르겠다는 각오다.

끝나지 않은…바이킹의 저주

후반 40분 쾰른 월드컵경기장은 ‘종가의 한(恨)’을 푸는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4만3천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의 70%를 점한 잉글랜드 팬들은 1968년 영국 웸블리스타디움을 기억하는 듯 했다. 잉글랜드는 당시 마틴 피터스, 보비 찰튼, 로저 헌트의 골로 ‘바이킹 군단’ 스웨덴을 3대1로 격파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무려 38년 간 잉글랜드는 ‘바이킹 징크스’에 시달려왔다. 11차례 맞대결에서 4무7패.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솔 캠벨과 니클라스 알렉산데르손이 한 골씩 주고받아 1대1로 비겼고 가장 최근의 대결인 2004년 3월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결승골을 내줘 무릎을 꿇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에서 두 번 모두 비겼고 1999년에 펼쳐진 유로2000예선에서는 1무1패로 당했다. 잉글랜드 입장에서 스웨덴은 ‘기묘한 벽’과도 같았다. 객관적 전력이나 선수들의 이름값에서 분명히 우위에 있지만 스웨덴만 만나면 왠지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21일 독일월드컵축구 B조 조별리그 3차전. 웨인 루니 대신 투입된 잉글랜드의 교체 멤버 스티븐 제라드가 후반 40분 조 콜의 크로스를 강력한 헤딩슛으로 꽂아넣었다. 2대1로 리드를 잡은 잉글랜드는 곧 저주를 풀어낼 것 같았다. 남은 시간은 5분. 인저리타임을 감안하더라도 8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시계가 90분으로 흘러가던 순간. 헨리크 라르손이 끝내 종가의 발목을 낚아챘다. 길게 스로인이 넘어오자 라르손은 문전으로 쇄도하며 오른발을 찍어눌렀고 스치듯 발에 닿은 볼은 잉글랜드 골키퍼 폴 로빈슨의 왼쪽 틈새로 빨려들었다. 잉글랜드 팬들의 함성은 일순 탄식으로 변했다. ‘38년 간 맺혀온 한’을 이번만은 풀어줄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는 라르손의 극적인 동점골 앞에 물거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