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들

‘엄마 내가 왜 여기있어’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던 정모양(16·J고 1년)이 내뱉은 말에 가족들은 어리둥절했다. 지난달 30일 인천시 중구 동인천동 화재사고로 인천시립병원에서 부평안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정양이 화재로 인해 기억상실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송 첫날부터 산소탱크에 들어가 산소공급을 받아야만 했을 정도로 유독가스에 심하게 중독된 정양은 다행히 의료진의 정성으로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외상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가톨릭 의대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심한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함께 등쪽 전체에 2도 화상을 입은 이모군(17·J고 2년)은 저산소증과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로 의식을 차리지 못한채 병원에 실려와 산소공급 등의 응급 치료를 받았으나 당시 들여마신 유독가스로 인해 폐렴 등 합병증을 앓고 있다. 심한 고열과 두통 등을 동반한 폐렴으로 이군은 기침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이 때마다 입안에서 시커먼 물질이 계속 솟아나고 있어 가족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온몸에 중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소모군(16·S고 1년) 역시 당시 입은 화상의 고통을 참지 못해 치료중 괴성을 질러 대는 등 각 병원 마다 생사를 오가는 부상자들의 투병생활이 지속되고 있다. 부평안병원 전문의 김병호 과장은 “환자 모두가 이송당시 Hb.Co가 9%를 넘는등 위험 수준에 다달았으나 지속된 산소공급과 항생제 투여 등으로 고비를 넘겨가고 있다”며 “물리적 치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정신적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반

소모성 행사가 이번 사고의 간접원인

민선자치시대 이후 기초단체장들이 자신들의 인기관리를 목적으로 시도때도 없이 치르는 각종 소모성 행사도 이번 사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3일 인천시내 일선 구청 직원들에 따르면 지난 92년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일선 기초단체장들이 자신의 인기 관리를 위해 예전에 없던 소모성 행사를 해마다 늘리고 있어 직원들이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행사 준비 등에 동원되고 있다. 동인천 화재참사사건이 발생한 중구청의 경우 올들어 지난 3월2일 척사대회를 시작으로 화재가 일어나 행사가 취소된 중구청장배 각 동대항 축구대회까지 포함하면 소모성 행사가 15∼20건에 달하는 등 해마다 20여건의 각종 행사를 치르고 있다. 특히 화재참사사건이 발생한 지난달에는 3일 전국 7대도시 중심구 축구대회를 시작으로 화재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전에 가진 한·일 친선 축구대회까지 한달동안 무려 8건의 소모성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구청 공무원들이 행사때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자신들이 처리해야 할 본연의 업무는 제처둔채 행사에 매달리는가 하면, 주로 주말과 일요일에 이뤄지는 행사에 동원되느라 무허가 등 불법 행위 업소에 대한 단속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한달이 멀다하고 치러지는 각종 소모성 행사의 예산도 턱없이 부족해 관내 업체들과 각종 번영회 및 자생단체들에 협조를 부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관내 업체의 각종 불법 행위나 불법 업소에 대한 단속은 사실상 형식에 치우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구도 지난 4월 10과 11일·17일 등 3일동안 자유공원에서 열린 벚꽃축제 기간동안 불꽃놀이에 사용한 축포비용 등을 관내 건설업체와 상가 번영회 등으로부터 수백만원을 협찬받아 치뤄 물의를 빚기도 했었다. 이와관련, 일선구청 관계자는 “민선자치 이후 기초단체장의 인기를 위한 각종 소모성 행사로 직원들이 제대로 업무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직원들이 행사 준비 등에 동원되지 않았으면 이번과 같은 참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특별취재반

안전사각지대 상가건물<4>퇴로가 없다

유치원, 피아노, 속샘학원과 장애아 학원 등 어린이·장애자들의 시설은 유사시에 대비, 바닥층에 자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치못하다. 3·4층에 위치한 경우가 많고 비상대피로가 없으며 대피 장구조차 비치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3일 본보 취재팀이 경기·인천지역에 있는 유치원, 장애인 학원등을 점검한 결과 일부 지체장애자 학원 등은 3, 4층에 위치해 있어 장애아들이 평소에도 이용이 불편한 상태고 일부 유치원시설은 유아 2명이 겨우 지나갈정도로 비좁고 철문이 설치돼 유사시 대피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상당수 시설의 내부는 칸막이로 설치돼 통로가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고, 유사시 사용하는 비상밧줄, 비상등, 안전대 등이 대피장구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채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20여명의 취학전 장애아들이 교육받는 수원시 권선구 A학원은 3층에 위치해 평소에도 장애아들이 계단으로 힘겹게 이동하고 있는 상태다. 50여명의 유아들이 교육받는 성남시 수정구 B유치원은 5층건물에 맨윗층에 위치해 있어 어린이들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고 있지만 평소 옥상문이 잠겨 있고, 내부는 3개반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통로는 어린이 한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다. 출입구는 방음을 하기위해 철문에 각종 스치로폼을 부착하고 있어 화재시 유독가스 발생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 또 50여명의 초등학생이 피아노 교습을 받는 인천시 서구 C피아노 학원(3층위치)은 2평남짓한 교실 10여개로 구분하기 위해 칸막이를 벌집처럼 꾸며놓는 바람에 통로가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고 대피장구도 전혀 비치돼 있지 않았다. 이 학원관계자들은 대부분 방음 등을 이유로 내부를 밀폐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에대해 경기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어린이, 장애아들이 이용하는 학원은 위치에서부터 내부 구조는 물론 대피로 마련에 이르기까지 화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특별취재반

라이브Ⅱ 호프 참사 이후 학교모습 변화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참사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사랑의 교육현장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지난달 30일 발생한 인천시 중구 동인천동 ‘라이브Ⅱ 호프’참사로 제자 2명을 잃은 모고교 K교장은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망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되뇌인다. 137명의 사상자를 낸 ‘라이브Ⅱ 호프’ 참사 이후 학교모습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소중한 제자와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속에서 채 헤어나지 못한 일선 교사와 학생들은 ‘피어나는 꽃을 누가 앗아갔느냐’는 사회에 대한 반문 보다는 자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I고 L교사는 “입시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일등을 최고로 치는 이 사회에서 정상에 서지 못한 학생들이 겪어야 할 아픔을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학생들 개개인에 맞춰 자기개발을 할 수 있도록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자성이 동료 교사들 사이에 공감대로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동인천고 교정에서 영결식을 가진 고 노형호군(18)의 친구 이모군(17) 등도 “먼저간 친구의 몫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 부모님께 보답하겠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자성의 시간을 갖자”고 울먹였다. 이번 참사의 책임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이 학교 P교사는 “청소년 문제를 사회적 조류로 치부했던 어른들이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며 “외형에 치우치는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듯한 착잡함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행정당국 정씨 재산파악 압류에 늑장

인천 동인천동 라이브∥호프의 실제 업주 정성갑씨(34)의 20억 재산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경찰과 구청이 피해보상 책임이 있는 정씨의 재산파악 및 압류 절차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사건발생 5일째인 3일 현재까지도 정씨 예금구좌에 대한 조사만 벌이고 있을뿐 정확한 재산내역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구청 역시 업무용 전산망에 쉽게 나타나는 정씨 명의의 중구 전동 32의5 지상 지하 각각 1층짜리 주택(공시지가 기준 1억8천900만원)과 외제 승용차 1대만을 파악한채 정씨 재산에 대한 가압류 절차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구청의 확인대로라면 정씨의 집에 이미 가압류 돼있는 1억3천300만원의 담보채권액을 제외하면 정씨의 재산은 모두 5천여만원에 불과한 상태이다. 구는 또 정씨의 은폐재산 확인을 위한 국세청 등 타 기관과의 공동조사를 참사발생 5일이 지난 3일에야 착수한 것으로 밝혀져 사건처리에 대한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특히 행정관청의 이같은 늑장행보가 이뤄지는 동안 정씨 가족들은 동사무소를 찾아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을 떼어가는 등 재산처분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유가족들의 분통을 사고있다./특별취재반

동인천고 첫 영결식 가져

“대열아…형호야…. 화마없는 저 하늘에 가서 편히 잠들거라.” 3일 오전 11시 인천시 동인천동 라이브Ⅱ호프집 화재참사로 숨진 고 전대열군(17·동인천고 2년)과 노형호군(18·〃 )의 영결식이 열린 인천시 남동구 만수2동 동인천고등학교 교정. 아직도 자식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듯 이들 부모들은 통곡을 하다 그 자리에서 실신해 보는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경건한 복장을 갖춘 교사와 학생들은 이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영결식이 열리기 전부터 고개를 숙인채 하나둘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느새 땅바닥에는 동료학생들의 눈물이 한두방울씩 떨어져 눈물로 얼룩졌다. 전군과 절친한 친구였던 김모군(17)은 “대열이는 친형과 같은 듬직한 친구였으며 의협심도 강하고 친구들의 대변자 역할도 도맡아 하는 친구였다” 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또 이날 화장장까지 찾아온 노군의 친구 이모군(17·인천정보산업고)도 “형호는 의리를 아는 소중한 친구였다” 며 “먼저간 친구 몫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 부모님들께 보답하겠다” 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영결식장에는 교사 학생 주민 등 800여명이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하며 고인들의 넋을 애도했다. 이날 화장을 마친 유가족과 학우들은 고인들의 유골을 들고 인천 연안부두를 찾아 인천 앞바다에 유골을 뿌리며 목청이 터지도록 고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나라로 인도했다. 대열이와 형호는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정들었던 교정과 엄마 아빠 친구들을 뒤로 한채 그렇게 떠나갔다. /특별취재반

인천중부서 뇌물제보 축소수사 의혹

인천 중부경찰서가 라이브Ⅱ 호프 실제 사장인 정성갑씨가 매월 관련 공무원들에게 1천만∼2천만원씩의 뇌물을 전달한다는 등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이부분에 대한 수사를 소홀히 하고있어 축소수사 의혹을 사고 있다. 3일 정씨 소유의 히트노래방에서 2년동안 관리를 맡아온 Y씨는 정씨가 매월 업소 단속 무마용으로 경찰 구청 공무원들에게 1천만∼2천만원씩을 상납해 왔다고 폭로했다. 또 라이브Ⅱ 호프 인근 업주 K씨(41)등 이 일대업주들도 이날 정씨가 한국노래연습장협회 인천시지부 부지부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업소 주변 호프집, 소주방 등의 유흥업소 주인들을 상대로 경찰과 구청공무원들에게 전달해야 된다며 매월 수십만원씩을 갹출해 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업주들은 “중부서와 파출소의 단속이 항상 형식적이었으며 보통 10만원씩 건네면 묵인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말했다. 또 지난 98년 10월부터 올 7월까지 정씨의 라이브Ⅱ호프집 등 9개업소의 총괄경리를 담당했던 김모씨(20·S전문대 1년)는 “정복 경찰관 여러명이 가끔씩 찾아와 정씨의 사무실에서 따로 만난뒤 돌아가곤 했다” 고 증언했다. 이밖에 다른 아르바이트생이나 이곳 업주들도 ‘매월 파출소에 상납했다. 경찰간부가 정씨일행과 자주 어울렸다. 휴대폰으로 단속정보를 제공받았다’ 라는 등의 유착의혹을 잇따라 폭로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현재까지 구청 소방서 파출소 직원들을 상대로 직무유기 등 기초적인 수사만을 벌인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소홀히 하고 있다. 이와관련, 시민단체 및 유가족들은 “경찰은 지금부터라도 현재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들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를 벌여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성수 인천지검 차장검사는 경찰사건 송치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업주를 비호해 온 공무원들을 색출해 내겠다고 말해 결과가 주목된다. /특별취재반

정성갑씨 뇌물상납 경리장부 발견

인천시 중구 동인천동 ‘라이브∥호프’실제 사장 정성갑씨(34)가 인천 중부경찰서와 파출소, 행정기관 등에 매달 수천만원씩의 뇌물을 상납했다는 주장과 함께 일부 상납내역이 기록된 경리장부가 발견돼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돼온 부패사슬고리가 파헤쳐질 전망이다. 3일 이 호프집 등 정씨가 운영하는 8개업소를 총괄하는 라이프유통의 경리를 담당했던 Y씨(20·여)는 정씨로부터 매달 1천만∼2천만원을 경찰 등 관련 공무원들에게 전달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폭로하고 16절지 66장 분량의 경리장부 복사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장부 복사본에는 1일 지출 내역 등이 꼼꼼히 적혀 있으며 ‘모든 관공서 상납 시(제목을) 회장님으로 적을 것’ 이라는 정씨의 지시사항도 적혀있다. 장부 복사본에 따르면 98년 12월31일 파출소 봉투용 30만원,‘지출 회장님’으로 적혀 있으며 지난 1월 6일자에는 ‘(이)강천 사장 중부경찰서 새벽에 간다’라는 문구와 함께 사과 2만원 김밥 2만원 이라는 기록도 기재돼 있다. 또 1월16일자에는‘회장님 30만원 경찰서’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밖에 수시로 중부서, 파출소 등에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전달된 것으로 파악되는 문구들이 기록돼 있다. Y씨는 정회장이 “봉투에 돈을 담으면서 미성년자 출입 등의 불법 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관공서에 돈 봉투를 돌려야 한다, 내 돈 안먹은 사람 없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해왔다고 전했다. Y씨는 또 “단속이 있을 경우 사전에 관련 공무원들로 부터 전화를 받아 무전기를 이용해 ‘망지기’에게 이를 알려 줬으며 인근 경쟁업체에 대해서는 관련 공무원 등에게 불법사실을 통보, 단속을 나서게 하는 방법으로 경쟁업체를 견제해 왔다”고 말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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