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몬 교수의 ‘꿈’

태국 방콕에 위치한 국립 출라롱콘대학은 1997년 한국어를 선택과목으로 개설한 데 이어 2008년부터 부전공 과목으로 지정했다. 학생들 간에 인기가 높아 수강생이 200명에 달한다. 30명은 부전공, 나머지는 선택과목으로 수강한다. 한국어 교수는 3명으로 붓사반 카몬 전임교수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어 봉사단원인 유연아씨, 계약직 이한우씨다. 그런데 자칫 한국어 강좌가 없어질 처지에 놓였다. 유씨가 7월 임기가 만료되고, 이씨도 9월에 계약이 종료되지만 후임 교수 요원을 충원할 방법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다른 개도국이라면 현지 요청에 따라 KOICA 단원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새로 파견할 수 있지만 태국은 이미 한국 정부로부터 원조졸업국으로 지정된 터여서 더 이상 지원이 불가능해졌다. 현재 태국에 남아 있는 KOICA 봉사단원 19명은 2년 임기가 만료되는 7월까지 전원 철수해야 한다. 이씨도 태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채용돼 다른 후원 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더 이상 재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카몬 교수는 KOICA 단원이 계속 와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며 교수 3명 중 2명이 떠나버리면 한국어 강좌를 유지할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태국에서 한국어 붐이 일고 있는 것은 한류 열풍과 함께 태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의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140여 명이 수강신청을 했지만 80명으로 제한했다. 붓사반 카몬 교수는 송클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다 전쟁을 치른 한국의 놀라운 발전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공부했고,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실라바콘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했다. 국제교류재단 장학생으로 연세대 어학당에서 1년간 연수도 했다. 태국어로 쓰인 한국어 교재를 출간하기 위해 지난 4월 초 한국을 방문했던 카몬 교수는 교수가 4명만 되면 전공과목으로 승격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정부가 지원을 해주면 최선을 다해 한국학을 더 널리 알리고 열심히 가르치도록 노력하겠다는 카몬 교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선처해야 된다. 그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직에 차등은 없다

존 퀸스 애덤스는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아들로 1824년 제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파와 지역분쟁으로 점철된 정치적 현실로 대통령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생을 마감할 때까지 18년이나 하원에서 공복으로서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전직 대통령이 하원의원에 출마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파격적인 사례다. 당대 미국인들은 의아했지만 존 퀸스 애덤스는 담담했다. 대통령이든 하원이든 지위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본질에는 차등이 없다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유럽의 전제정 틀을 깨고 공화정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권위와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관료제 그늘을 쉽게 벗어나기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직자(public ser vicemen)라는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도 않았던 시대였다. 진정한 평등사회와 민주주의는 공직의 평등개념이 전제돼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공직 개념을 새로 정립한 리더였다. 그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정직이었다. 정직의 배양분이 원칙과 소신이라면, 그 열매는 때론 소외와 따돌림이다. 하원의원 시절 애덤스는 대다수 의원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그가 노예해방을 주창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의회에서는 골치 아픈 노예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함구령(gag ruie)을 제정해서 의사당 내에서 노예에 관한 언급을 일절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덤스 의원은 자유, 평등,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같은 건국이념을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노예문제를 거론했다. 이런 애덤스는 다른 의원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그러나 애덤스에겐 동료 의원들과 친분이나 정치력보다 건국 이념을 지키는 원칙과 소신이 더 중요했다. 1846년 하원의원 초년생으로 의사당에 입성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외로이 노예해방을 외치는 애덤스 모습에서 공직자의 롤모델을 찾았다. 링컨이 있기 전에 퀸스 애덤스가 있었고, 링컨이 노예해방을 하기 전에 애덤스의 노예해방 투쟁이 있었다. 개인 체통보다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실한 공직자로서 사명을 더 귀중하게 여겼던 존 퀸스 애덤스의 유산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후임 대통령의 특사 노릇을 기꺼이 수행하는 등 미국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재현된다. 우리나라에 존 퀸스 애덤스 같은 정치인이 있을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이버 테러

현대전은 첩보전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작전계획이 사전에 드러나면 오히려 상대에게 당한다. 스파이 활동이 이런 첩보전의 이면전쟁이다.스파이 말고도 이면전쟁은 또 있다. 사이버전이다. 최첨단의 첩보전이 사이버전쟁이다. 사이버전은 스파이 활동 같은 위험 부담이 없으면서 효과는 높다. 가령 상대의 작전계획을 미리 탐지한다든지, 상대의 작전 정보망을 헝클어 놓으면 절로 지리멸렬한다. 또 전력 공급망의 전산망을 마비시키면 사회기능 역시 일시에 마비된다. 세계의 첩보전은 사이버전쟁 양상이 심화해 간다. 이런 가운데 북측은 사이버 부대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민무력부 등에 사이버 전문의 특별 부대를 둔 것은 벌써 약 20년 전이다. 해마다 이의 우수 인력을 길러온 해킹 실력은 상상을 불허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농협 전산망 마비에 대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북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북의 해킹 관련 능력을 폄하해선 안된다고 말한 것이 지난달 14일이다. 그런데 이를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어제 악성코드의 유포 경로와 방식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북측 정찰총국의 사이버 테러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사이버 테러는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서버 운영을 중단해야 할 만큼 강력한 테러였다고 말했다.은행 같은 금융권 전산망이 만약 원래의 자료가 삭제될 정도로 마비된다면 경제활동 또한 일대 혼란에 빠진다. 군기관이나 기간산업의 전산망 관리도 중요하지만 금융권 역시 이에 못지않다. 은행들 전산망이 해킹당해 경제 활동이 중단되면 국가사회가 위기로 치닫는다.금융권도 국가 기간전산망이다. 북의 사이버 테러에 계속 표적이 될 수 있다면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게 금융회사 보안 전문가들 말이다. 인류의 편익을 가져왔으면서 재앙도 될 수 있는 것이 컴퓨터 기술의 발달이다. 임양은 본사 주필

MB의 인사

427 재보선에 패배한 정부 여당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분당을 국회의원 보선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당선을 내준 것은 결정적이다. 그런데 이 427 재보선 재앙을 가져온 장본인이 대통령이다. 알다시피 3선의 임태희 의원은 분당을의 터줏대감이다. 이토록 멀쩡한 한나라당 선거구를 망친 게 MB의 인사다. 현역 국회의원을 대통령 실장으로 앉혀 의원직을 사퇴게 함으로써 발생된 것이 분당을의 보궐선거이기 때문이다. 아마 임태희 의원이 사퇴해도 보선 역시 한나라당이 차지할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한데 빗나가도 보통이 아니다. MB 인사는 결국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생각지도 않은 원내 진입의 국회의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조짐은 공천을 놓고 이말 저말이 나올 때부터 안 좋았다. 심지어는 임태희 실장을 다시 내보내는 문제도 고려됐었다. 그러나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한 보선에 사퇴한 자신이 입후보한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아 없던 말로 끝났다. 강재섭 후보의 패배는 공천에 진이 빠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처음부터 정권 창출의 전직 대표 예우로 군말없이 공천했더라면 전렬이 일사분란하여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몸살을 앓고 있는 한나라당은 지도부 총사퇴, 의원연찬회 등으로 당내 양상이 제자백가가 난무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또 정부는 소폭으로 예정했던 개각을 중폭 이상으로 이번주에 할 것이라 하고, 대통령실도 개편을 서두는 모양이다. 글쎄,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 새로 앉을 진 모르겠지만, 민심을 추스리는 것이 사람만 바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더욱이 임태희 의원을 대통령 실장에 앉혀 생으로 만든 보선에 자신이 치이는 것처럼, 인사재앙을 가져와서는 인사만사라는 인사가 인사망사가 된다. 427 재보선 실패는 대통령 레임덕의 가속화가 불가피 하다. 새로 뭘 시작할 여유가 없다. 해온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 여당의 변화는 MB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가능하다. 임양은 본사 주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민주주의 발상지가 영국이다. 이런 나라에 아직도 작위 같은 귀족제가 있다. 지난달 29일 치른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으로 왕세손빈이 된 평민 출신의 캐서린에게 공작 호칭이 주어졌다.지난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진 장례식에서 고개를 떨구어 울먹이던 소년 윌리엄이 어느덧 29살의 헌헌장부가 되어 대학동창 동갑내기와 이른바 세기의 결혼식을 가졌다. 결혼식장에서 신부는 다이애나의 사파이아 반지를 물려 받았다. 아버지 찰스 왕세자에 이어 왕위계승권 2위의 신분이다. 이러한 왕세손인데도 공군 헬기 조종사로 군복무중인 것은 역시 민주주의 발상지 나라다운 면모다. 복무지인 어느 섬에서 신접살림을 꾸린다고 한다.윌리엄 세손은 아버지 찰스보다 영국 국민은 물론이고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16개 연방국가에서도 인기가 더 높다. 찰스 왕세자의 혼외관계로 다이애나 세자빈과 이혼, 결국 그녀의 비극적 죽음을 가져온 연민의 정이 아들인 윌리엄에게 쏠려 기대를 갖는 것이다. 이에 비해 찰스는 이혼녀인 카밀라와 2005년 4월 결혼 했으나 영국 의회는 찰스가 즉위 하더라도 카밀라에게 퀸(queen) 칭호는 안된다고 했을 만큼 이들 부부에게 부정적이다. 카밀라는 이같은 국민정서를 의식해 평소 조용히 지낸 가운데, 윌리엄의 결혼식 준비에 충실한 계모 노릇을 했다는 후문이다.영국 국민은 각료 소식 등 정치 문젠 별 관심이 없어도 왕실 소식엔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 언론에서도 왕실 소식은 언제나 빅 뉴스다. 하물며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온 영국 국민의 축제가 됐다. 영국 왕실의 상징인 전통품격애국의 정신은 국민통합의 구심체다. 유서깊은 웨스터민스터 사원의 결혼식 장면 등은 전세계에 방영됐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버킹엄궁으로 이어진 퍼레이드에 연도의 런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왕세손 부부는 일일이 손을 흔들어 답례했는 데, 이들을 태운 백마 마차는 108년전에 만든 것이다. 영국은 이번 결혼식을 통해 옛 것을 존중하는 전통 의식으로 잠재된 자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과시해 보였다. 임양은 주필

곡물자급률 50%

이명박 대통령이 곡물자급률을 50%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고 한 말은 당연한 양정시책이다. 제82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농산물은 단기 전략도 필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장기 전략도 중요하다며 곡물자급률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곡물자급률 수치를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곡물자급률은 식량자급률과는 다르다. 즉 한 나라가 소비하는 곡물 소비량 중에서 국내에서 생산한 비율을 말한다. 전체 곡물 생산량을 총 수요량으로 나눠 백분비로 계산한다. 곡물 중 총 수요는 식량용+가공용+종자용+감모기타로 구성된다. 곡물자급률을 법에 명문화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07년 만든 농업농촌발전 기본계획에 의거한다. 곡물자급률 25%, 주식용 곡물자급률 54%, 칼로리 자급률 47% 등으로 명시했다. 물론 기본계획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을 근거로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선언적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한데 대통령의 발언은 법률 이상의 실질적 효력을 지닐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이라는 무게를 감안할 때 기대를 갖게 한다는 얘기다.2009년 기준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6.7%, 사료용을 뺀 주식용 곡물자급률은 51.5%다. 따라서 대통령이 밝힌 곡물자급률 50%는 사료용을 포함한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곡물 소비량 2천만t의 4분의 3인 1천500만t의 곡물을 수입한다. 곡물자급률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현재 국내 총 생산량인 500만t의 두 배를 생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곡물지급률 50%는 곡물의 자주적 공급률(자주율)을 포함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대통령에게 2015년까지 연간 400만t의 해외 곡물을 확보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지 않다. 자주율은 해외생산과 유통망 구축을 통해 곡물자원을 확보하는 것으로, 자급률과는 다르다. 곡물의 안정적 공급 면에서 자주율은 자급률과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이 해외곡물자원 개발에 대해 정부가 종합적이고 전략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당부도 했다. 정부의 구체적 실천 내용을 주시하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무기 도입 왜 서두르나

방위사업청이 차세대 전투기(F-X)와 대형공격헬기(AH-X)의 기종 결정과 계약 체결을 내년 10월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F-X 사업은 스텔스급 전투기 60대를, AH-X 사업은 아파치급 공격헬기 36대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이들 무기들은 차기 한국군의 전투력을 결정할 핵심 요소들로 도입과 운영에 수십조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하지만 이들 무기들은 아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A-X 사업의 경우 록히드 마틴의 F-35, 보잉의 F-15SE,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유로파이터 타이픈 등이 경쟁 중인데, 군 안팎에선 F-35로 낙점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F-X 사업 대상은 5세대 전투기라고 밝힌 바 있는데 2015~2016년까지 도입할 5세대 전투기는 F-35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을 에방한 자리에서 F-35 구매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F-35는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 공군조차 인수를 거부한 기종이다. AH-X 사업은 미 보잉사의 신형 아파치헬기(AH-64D) 36기를 도입하는 방안이 유력한데, AH-X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와 방위사업추진위 회의 결과를 비공개해 밀실 진행이란 비판을 받았다. 군 당국이 AH-X 예상 사업비로 1조8천억원을 내놨지만 군 전문가들은 아파치 헬기 통신체계와 후속 지원 문제 등을 고려하면 2조5천억~3조원가량 들 것으로 추산한다. 방위사업청이 지난 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헬기 가격을 대폭 낮춰 허위보고했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나오는 배경이다.아파치 헬기를 구입하더라도 미군 측에서 C41체계를 차단할 경우 작전의 효율성은 크게 떨어진다. C41체계는 감시타격 체계를 컴퓨터와 연결함으로써 통합전투력을 극대화하는 체계다. 하지만 미측이 C41체계까지 제공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수십조원 드는 무기 도입을 왜 정권 말에 밀어붙여 결정하겠다는 것이냐고 정부 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 점이다. 뒷말이 많은 일은 꼭 탈이 나게 마련이다. 시기를 늦춰서라도 무기 도입 과정은 성능 검증 등 100% 완벽을 기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철학정신

독일 철학자 헤겔이 1821년에 낸 저서 법철학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저녁 때가 되어야 날아간다고 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 미네르바다. 올빼미는 이 여신의 메신저다. 여기서 저녁 때란 사물의 진행이 한창 지난 사후를 뜻한다. 즉 어떤 사물이든 현실이 성숙된 다음에 인식이 체계화된다는 것이다. 법을 예로 들면 현실의 뒤치다꺼리다. 가령 건축관계법을 비유하면 날로 발전해가는 건축기술 양식의 뒤를 따라가며 법제화하는 것이 건축법이다. 이러므로 법제화 이후에도 미법제 분야의 새로운 건축 문제가 또 있기 마련인 것이다. 헤겔은 변증법적 발전과 반성을 철학의 과제로 강조했다. 모순의 지양이 새로운 모순을 낳으면서, 거듭 발전한다는 것이 변증법이다. 이 과정에서 인식의 주관이나 상대성을 중시한 것이 회의론 또는 회의주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회의-반성-비판-자각하는 정신이 즉 철학하는 정신이고, 이의 학문이 곧 철학인 것이다. 그러나 자각이 철학의 끝은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또 자각은 새로운 모순을 발견하고 이 같은 발견은 회의와 반성으로 이어지면서 무한히 반복된다.정신문화의 발달만이 아니다. 예컨대 보수와 진보는 금세기에 양자가 모두 한계를 드러내어 어떤 제3의 사상을 배출할 것이지만, 물질문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생활 주변의 비근한 사례로 눈부신 IT의 물질문명 발달 역시 거듭되는 회의-반성-비판-자각의 산물이다.이런 얘길 새삼스럽게 하는 덴 이유가 있다. 회의할 줄 몰라 반성을 거부하고, 비판을 외면해 자각이 정체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쁜 서민층은 혹시 또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지도층이 이래선 미래가 어둡다. 상관궤변법류의 억지나 트집이 능사란 것은 아니다. 보편적 인식의 회의-반성-비판-자각의 결핍증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 때문에 감동을 모르는 메마른 국가사회가 됐다. 시대 발전의 저해 요인이다. 케케묵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신사고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철학정신을 갖는 현대인이 돼야 한다.임양은 주필

행안부와 지방공공료

행정안전부의 지방공공요금 인상률 상한제 도입은 자치권 침해다. 지하철버스택시상하수도쓰레기봉투 등 요금이 지방공공요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상궤다. 일률적으로 똑같을 이유 또한 없다. 자치단체마다 실정에 맞춰 요금을 책정한다. 이것이 지방자치다. 행안부는 지방공공요금 인상률 상한제 도입 이유로 물가상승률 억제를 든다. 이를 위해 지방공공요금 관리에 가이드라인을 정해 지방에 통보한다는 것이다. 물가문제가 나오면 만만하게 들먹여지는 것이 지방공공요금이다. 도대체 지방공공요금이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지엽적이다. 이보다 환율조정 수급조절 등 같은 것이 급선무다. 지방공공요금을 억제한다고 해서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를만큼 다 오른다. 행안부의 상한제 도입 역시 실효성이 없긴 마찬가지다. 상수도 사용료를 예로 든다. 사용료가 생산비에 미치지 못해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게 대부분의 자치단체 상수도 특별회계다. 상수도 사용료 억제는 수돗물 부실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지방채로 메우거나 일반회계로 보전하기도 한다. 억제한다고 하여 시민부담이 안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모양만 다를 뿐 어차피 시민이 부담한다. 상수도 특별회계의 악성화만 부채질한다. 그렇다고 지방공공료 손실을 행안부가 물어주는 것도 아니다. 물가 문젠 심각하다. 서민경제 안정은 곧 물가 안정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성장률을 목표보다 낮게 조정할 필요 또한 없지 않다. 정부가 물가 문젤 국정의 주요 지표로 삼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지방공공요금 인상률 상한제 도입은 전시효과는 될 지 몰라도 근원적 처방은 아니다. 행안부 발상은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의 빈곤이다. 중앙집권의 전형적 사고의 유형이다. 지방분권이 안되고 있는 이유가 이런데도 있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대한 지도 및 지원에 대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하여 조언 또는 권고하거나 지도할 수 있다고 했지, 지시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임양은 주필

성추행 판사

허용된 섹스에는 규칙이 없다. 귀천 또한 없다. 왕의 섹스와 거렁뱅이의 섹스에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군자도 요조숙녀도 다 마찬가지다. 그러나 침실에서의 일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절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이에 있다. 같은 인간사회에서도 절제 능력이 개인의 인품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업무상 특히 요구되는 직업이 있다. 판사는 그러한 직업의 하나다.40대 판사가 전동차 안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하다가 이를 목격한 여성 경찰관에게 현행범으로 검거됐다. 지난 21일 오전 8시49분께 잠실역에서 역삼역으로 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다. 반바지 차림의 여성 뒤로 다가가 자신의 몸을 비벼댔다는 것이다.현행범으로 검거한 경찰관에 의하면 잠실역에서 전동차 한 대를 걸러보내고 뒷차를 타는 게 이상해 미행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성추행을 하더라는 것이다.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적 범행인 것이다. 지하철 경찰 경력 21년차인 그는 성추행범은 눈빛만 봐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성추행범으로 불구속 입건된 판사는 서울고법 판사다. 좀 있으면 지법부장판사로 나갈 서열이다. 판사도 사람이지만 특히 절제할 줄 알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토록 직위에 어울리지 않은 미숙한 품성의 판결로, 얼마나 생사람 잡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는 이튿날 사표를 냈고 대법원은 그날로 수리했다. 기민한 조치같지만 실은 감싸는 조치다. 판사의 사표는 징계위에서 처리해야 되는데, 대법원은 직무상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 없이 처리함으로써 변호사 개업의 길을 터주었다. 판사가 징계로 면직되면 변호사 등록을 못할 불이익을 막아준 것이다.그러나 성추행이 직무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판사의 보편적 품격을 떨어뜨린 점에서 직무와 밀접한 징계감인 것이다. 대부분의 판사는 성실하다. 이런 판사들을 위해서도 성추행 판사를 관대하게 처리한 대법원의 조치는 옳지 않다. 임양은 주필

검정교과서 비리

한국검정교과서 직원들이 2006년부터 올해 초까지 인쇄업체 등에서 15억원의 뇌물을 받고, 용지를 빼돌려 8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과서 납품단가를 정상보다 20~40% 높여 책정해주고 차액을 리베이트로 돌려받는 수법을 썼다. 검정교과서 인쇄비용은 조달청이 정한 가격에 따르게 돼 있지만 조달청은 인쇄단가를 정할 때 검정교과서가 책정한 시장가격을 참고한다. 애당초 비리 요소가 다분하다. 창고에 보관된 용지를 빼돌려 시중가의 절반 정도에 팔아 6억여원을 챙겼다니 복마전이 따로 없다. 적발된 검정교과서 직원들의 비리는 공소시효 때문에 최근 5년만 대상으로 수사한 결과다. 1982년 설립된 뒤 정부 감사는커녕 사정당국의 수사도 처음 받았다니 그동안 뇌물수수 등의 비리는 관행처럼 자행됐을 것으로 능히 짐작된다.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들의 과당경쟁과 가격상승을 막겠다며 29년 전 설립한 비영리 법인 검정교과서가 되레 범죄의 온상이 된 셈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30년간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교과부 출신이 대부분 검정교과서 이사장으로 내려가면서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도 없다 할 수 없다. 검찰이 밝힌 이들의 행태는 가관이다. 지난 5년간 리베이트조로 65개 업체에서 15억원가량을 받아 유흥비로 쓰거나 주식에 투자했다. 단골 룸살롱에서 3년간 유흥비로 쓴 돈만 4억원에 달한다. 차명계좌를 개설해 돈을 받은 것은 물론 업체들이 술집이나 여행사 등에 비용을 대납하도록 했다.교과서 업체들이 건넨 뇌물이 교과서 제작비에 고스란히 반영돼 정부예산이나 학부모의 부담으로 전가됐음은 물론이다. 국가예산을 축내고 학부모 부담을 가중시킨 이들을 엄단하는 것은 물론 구조적 문제도 수사해야 된다. 검정교과서가 교과부의 감사 대상에서 빠져 있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낙하산 이사장을 보내 놓고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점도 문제 삼아야 한다. 이 같은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외부 감독 및 감사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함은 물론 차제에 교과서 제작 전 과정을 정밀하게 검증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어린이 숲속 백일장

자연 사랑 경기도 어린이 숲속 백일장이 23일 오후 수원 팔달산 중턱 숲속에서 열린다. 한국경기시인협회가 주최하고 수원시, 경기도환경보전협회, 경기일보사가 후원하는 어린이 숲속 백일장은 올해 세번째다. 지난해까진 수원의 명산 광교산 숲속에서 열렸다. 백일장 특히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백일장은 여러가지 좋은 점이 많다. 소풍을 나온 것 처럼 야외에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원고지에 옮겨 적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린이들에게 글짓기는 정서를 심어주고 키워주는 점에서 학습효과는 물론 인성교육 차원에서 매우 좋다. 특히 어린이들이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은 어른들과는 달리 아주 맑고 밝다. 초등학생들이 쓴 글이 어떤 때는 중고등학생들의 글보다 풋풋한 까닭이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아름답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낄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은 자연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대부분이 사교육 등에 정서를 뺏긴다. 하지만 풀과 나무, 산, 강, 바다, 하늘을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마음을 짧은 글로 나타낼 때 어린이의 경우 동시가 된다. 굳이 시와 동시를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는 어린이가 쓴 시와 어른이 어린이 마음으로 쓴 시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호랑나비가 /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한다. // 꼭 / 아이가 / 예쁜 그림책을 넘기는 것 같다.는 작품이다. 오순택 시인이 쓴 호랑나비란 동시다. 어른이 아이의 마음으로 쓴 글이다. 어린이들이 쓴 동시는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다.경기도 어린이 숲속 백일장을 준비하면서 주최측이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해 각 시군 교육지원청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관내 초등학교에 백일장 참가를 안내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상당수 교육지원청이 관내 초등학교로 이첩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교육지원청은 토요일 열리는 백일장에 참가하라는 공문을 보내면 일선 학교 담당 교사들이 싫어한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믿겨지지 않는 얘기다.대부분 교육지원청들도 실정은 비슷하다. 학교는 그러한데 인터넷 알림을 읽었는지 학부모들의 어린이 숲속 백일장 참가 문의 전화가 많다고 한다. 일부교육청, 학교의 문예교육 태도가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상고심 제한

국회 사법개혁특위 개혁안이 법원 검찰 등 재조법조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상고심 제한은 그 같은 비판 과정에서 나온 이용훈 대법원장의 말이다. 비판은 또 개혁안이 대법관을 증원하기로 한데 대해 반대하면서 있었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상고심은 연간 3만여건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적절한 상고심은 약 10%인 3천여건이며, 이 중에도 법률심에서 상고가 인정돼 원심이 파기 환송되거나 대법원이 심리하는 상고 건수는 대략 절반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고심 연간 3만여건 가운데 약 2만8천500여건이 기각되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러면서 현재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0명으로 6명이나 늘리는 국회 개혁안을 반대한 것은 좋았다. 사법부의 대법관은 행정부의 장관급으로 처우도 같다. 문제는 상고심을 제한해야 한다는데 있다.그토록 많은 상고심 처리를 원만히 하기 위해 대법관 수를 늘리기 보단, 기각률 높은 무익한 상고 남발을 자제 시켜야 한다는 게 상고심 제한의 취지이긴 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심지어 3심(상고심) 위에 4심(헌법소원)이 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도 있다. 예컨대 경기도지사가 대법원에 제소한 도의회의 인사권 독립 및 보좌관 관련 조례가 도의회서 지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런데 문제다. 상고심 남발은 자제돼야겠지만, 인위적 제한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헌법에 보장된 재판(3심)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상고심 억제는 전에도 없었던 얘기는 아니다. 고법에 심사부를 두어 상고 남용을 차단한단 말이 있었다. 고법 심사부에서 미리 심의해 타당성이 없는 상고는 막는다는 것이다.그러나 항소심을 판결한 고법이 자체 판결에 불복한 상고의 타당성 심의를 이유로 차단하는 것은 위헌 요소가 많아 없었던 걸로 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번 상고심 제한 발언의 후속 조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자신의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을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전환증이다. 남장 여성도 있으나 여장 남성이 보편적이다. 성전환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안한 성전환증이 많다. 여성호르몬 주사만 주기적으로 맞는다. 에오니즘(eonisme)은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자를 가르킨다. 트랜스젠더다. 에오니즘은 애옹 드 보우몽(1728~1810)이란 프랑스 사람 이름을 딴 것이다. 루이 15세의 측근 고관으로 남다른 총애를 받았다. 루이 15세는 1775년 프랑스러시아 동맹조약을 맺을 때, 그를 밀사로 파견했는 데 여장을 하고 갔다. 조약을 순조롭게 마친 덴 뛰어난 여장의 미모로 러시아 고위층을 뇌살시킨 배경이 깔려있다. 그는 그 후에도 곧잘 여장행세를 했다. 틈틈히 조세비교론 등 저서도 썼다. 이젠 남장만을 하겠다라고 남성 선언을 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 후 국민의회에서 연설을 했을 때다. 이처럼 예전에도 트랜스젠더는 있었다. 예전과 다른 것은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지금은 많다는 사실이다. 남성 접대부 역시 트랜스젠더다. 최근 남성 접대부를 인정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됐다가 보류되었다. 현행 시행령은 접대부를 부녀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래서 남성 접대부의 탈선을 처벌키 위한 시행령 개정이 잘못되면, 남성 접대부를 법으로 인정하는 역기능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 더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 트랜스젠더 문제가 교도소에서 나온 것은 엉뚱하지만 이유가 없잖은 것 같다. 성별을 남자와 여자로만 양분한 구금시설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트랜스젠더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인권상 가혹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구금시설 수용엔 수용자의 배치, 의복,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성전환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있다. 하지만 비전환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보느냐는 법정 판결은 아직 없다. 참, 기묘한 것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세태가 됐다. 임양은 주필

조용필씨

깊은 교분은 없었다. 몇차례 접촉할 기회만 있었다. 그때가 1980년대 중반이다. 조용필씨 오빠부대가 한창이던 무렵이다. 한 번은 콘서트를 마치고도 공연장을 둘러싼 오빠부대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경비를 맡고 있던 전경의 복장을 빌려 입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서울신문에서 낸 TV전문잡지 TV가이드에서 한동안 일하며 독자를 위한 초청 콘서트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그 시절 인상 깊은 것으로는 창덕궁 낙선재를 찾아 조선조 마지막 왕세자비인 이방자 여사를 뵌걸 들 수 있다. 조용필씨와 대담을 갖기 위해 함께 찾았었다. 이방자 여사는 특히 한오백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 데 시종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세월이 흘렀다. 조용필씨도 어느덧 환갑을 넘겼다. 그런데 조선일보 16일자 12면, 한겨례신문 8면 등에 그의 감동적인 기사가 실렸다. 가왕이 손잡고 껴안자, 울며 웃으며 소록도가 춤을 췄다는 조선일보 1면 제목이다. 와! 약속대로 조용필이 왔다 소록도 들썩 한겨례신문 제목이다. 한센인들을 위한 위문 공연이다. 그냥 노래만 한 것이 아니다. 객석을 두바퀴나 돌며 일일이 손잡고 포옹하는 등 스킨십을 나눴다고 한다. 가왕은 이렇게 해가며 친구여 단발머리 허공 등을 불렀다. 감격에 겨워 눈물만 짓던 객석은 이윽고 모두 일어나 두둥실 춤을 췄다는 것이다. 이날 공연은 지난해 5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갔다가 두곡만 부른 것을 현지인들이 아쉬워해 나만의 무대로, 다시 찾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한다. 안지켜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약속을 지키면서 언론엔 숨겼는 데 어떻게 일부에서 알고 쫓아갔던 모양이다.그가 단독출연하는 무대 제작비는 매우 비싸다. 또 이유가 있으면 무료공연도 사양치 않는다. 젊었을 때도 이랬다. 그 무렵에 물은적이 있다. 공짜로 해주면 돈은 언제 버나요? 대답은 이랬다. 인기가 갈려고 할 때 벌어도 돼요 여전히 위문공연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이는 먹었어도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조용필씨가 경기도 출신, 화성시 송산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임양은 주필

한복 문전박대

시대가 변천돼 오늘날 일상복으로 입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복(韓服)은 한민족 고유의 옷이다. 삼국시대 한복은 대체로 유(저고리), 고(바지), 상(치마), 포(두루마기)를 중심으로 관모(모자), 대(허리띠), 화(신발)가 더해졌다.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올 만큼 길고, 바지의 통도 넓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입는 남녀 공용이었다. 남북국 시대에는 한국 고유의 포는 서민들이 주로 입었으며 귀족들은 평상복으로만 입었다. 여성들의 새로운 옷으로 반비(半臂)가 있었는데, 주로 귀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고려시대엔 복식 구조가 크게 변했다. 특히 귀족층이나 지배층에서는 중국 옷을 그대로 받아들여 입고, 서민층에서는 우리 고유의 복식을 계승해 입어 복식의 이중 구조가 나타났다. 조선시대엔 우리 고유의 복식이 서민복으로 뿌리 깊게 이어졌다. 중기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한층 단순해지고 띠 대신 고름을 매기 시작했으며 두루마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말기엔 양반과 서민의 옷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 특히 여자 저고리는 후기로 가면서 길이가 짧아져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양이 됐다. 마고자를 입기 시작했고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조끼를 입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땐 여자들의 저고리가 짧아져 오늘에 이르게 됐다. 오늘날엔 일반적으로 한복을 명절이나 특수한 날에만 입고 있으며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생활 한복이 보급됐다. 국악고등학교, 민족사관학교에선 교복으로 입는다. 택견 무술에는 하얀 한복을 입는 것이 통례다. 첫돌, 환갑, 칠순, 팔순 등의 일부 생일에는 생일을 맞은 사람이 입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차례 지낼 때 대부분이 한복을 입는다. 한복의 종류는 혼례복, 구군복, 곤룡포, 관복, 서민복 등 여러 가지다. 오늘날은 한복이 예복을 대신해 경축식 등 주요 행사 때 주요인사 부인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참석한다. 지난 12일 저녁 우리나라 굴지의 신라호텔이 한복을 입은 여자 손님의 입장을 제지한 일은 백 번을 생각해도 참으로 큰 무례다. 한복은 위험한 옷이다. (뷔페 레스토랑에선) 부피감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호텔 측의 입장 불가 이유가 실로 황당하다. 더구나 그 손님은 저명한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여사다. 한국 호텔에서 한복이 문전박대를 당한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임병호 논설위원

꽃 사는 날

올초 국민권익위원회가 3만원 이내에서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한 공직자 행동강령을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공표한 뒤 축하난꽃 주문이 대부분 끊겨 화훼 농가꽃집배달업체들이 울쌍이다. 꽃값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대지진 때문에 국내 화훼 농가의 수출길이 거의 막혔다. 대일 화훼 수출이 70~80%나 감소했다. 이래 저래 화훼 농가들이 기로에 선 셈이다.공직자 행동강령은 2003년 공직사회의 청렴성을 높이고 공정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제정됐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자로부터 과도한 선물을 받는 것을 금지한 규정이다. 통상 직무 관련자는 공직자의 소관 업무와 관련해 직접 이익 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말한다. 여기서 선물은 난(蘭)꽃만이 아니다. 케이크책화장품 등 일반적인 선물도 해당된다.3만원은 2003년 행동강령 제정 당시 민간단체 관계 전문가 등이 참석한 공청회와 법률검토 등을 거쳐 국제사회 기준, 사회통념 등을 반영해 책정했다. 선진국들도 우리나라 선물 규정과 비슷하거나 더 강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선물상한액이 20달러(2만4천원) 선이다. 아시아 청렴국가들인 싱가포르홍콩 등은 어떤 금전이나 물품도 선물로 받지 못하며 영국은 소액의 다이어리펜 등 선물만 수령할 수 있다고 한다.공직자를 청렴하게 만들겠다는 데 마다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공직자에게 선물을 준다고 모두 직무 관련자는 아니다. 권익위가 공무원이 친구친지 등 관련성이 없는 상대방과는 언제든지 난화분 등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해명한 배경이다. 사실 8년 전의 3만원은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이지 못하다. 3만원 상당의 난화분을 2만9천원에 팔고 산다면 어떻게 할 셈이냐고 따지는 사람도 많다. 난화분을 뇌물로 인식하는 건 삭막하다. 공직자들도 난화분 선물을 색안경 쓰고 바라보는 관행이 마뜩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궁여지책으로 농협한국화훼생산자협의회 등이 매주 화(火)요일을 꽃 사는 날(花요일)로 정하고 꽃 팔기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화요일 만이라도 꽃을 든 남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개점휴업’ 위원회

자치단체의 무슨 00위원이란 명함을 더러 본다. 위원으로 위촉된 이들에겐 명함용 직함, 그리고 자치단체로서는 전시용 위원회다. 이런 위원회가 도내 시군에 2천498개나 된다고 한다.그런데 모두가 개점휴업으로 유명무실하다.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안 열린 위원회가 12.8%이고 나머지 87.2%도 고작 1~4회에 그친 게 전부라면 있으나 마나 한 위원회다.명칭은 그럴싸하다. 유통분쟁조정위지역고용심의위농업발전기금심의위장애인복지위건설분쟁조정위 등 명칭은 얼마나 좋은가, 경기도의 소관 위원회다. 그런데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공동주택분쟁조정위과세적부심사위민원조정위규제개혁심의위보육정책위 등은 시군 소관 위원회다. 이 역시 명칭으로 보아선 그럴 듯하지만 이름뿐인 유령 위원회이긴 마찬가지다.각종 위원회 정비는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유사 위원회는 통폐합하고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없앤다고 한 지가 오래 전이다. 그런데도 정비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간다. 대부분이 법규상 설치가 의무화된 위원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헷갈리는 점이 있다. 무용지물인데도 법규상 위원회로 규정한 것인지, 아니면 위원회 운영이 부실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가령 특정 분야 관련의 시행령이나 규칙으로 위원회 구성을 의무화했으면 필요하다고 보고 규정했을 것이지만, 정작 실제론 필요없는 것인지 지자체가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이런 위원회는 자치단체 공무원들로 구성된 것도 있으나 민간인 위촉이 대부분이다. 자문 역할에 그친다. 규제력이 없다 보니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없지 않다.하지만 그 많은 위원회가 하나같이 개점휴업 상태로 유명무실한 것은 뭔가 잘못됐다. 정비해야 할 것은 법규 개정을 정부에 요청하고, 활성화할 것은 자치단체 자체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김일성 생일

오는 15일 김일성 생일은 북녁 최대의 사회주의 명절이다. 북의 명절은 설이나 추석은 민속명절이고, 2월16일 김정일 생일, 12월23일 김정숙(김정일 생모) 생일은 김일성 생일과 함께 사회주의 명절로 친다.김일성은 1994년 7월8일 사망했지만 아직도 평양정권의 주석이다. 공식 문서에는 여전히 김일성 주석으로 살아있다. 그의 시신은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돼 있다. 평양정권은 인민들에게 여전히 수령으로 떠받든다.오는 4월15일 그의 생일을 저들은 태양절이라 부른다. 민족의 태양이라는 것이다. 태양절을 앞둔 금수산기념궁전 치장이 분주하다. 황해북도에서 가져간 6천여그루의 향나무와 금잔디로 꾸미는 조경 등이 한창이다. 여러 지역의 근로자, 청소년, 군인들이 동원되어 김일성화 장식에 열 올리고 있다.김일성화는 난과에 속하는 난초다. 1965년 인도네시아 식물학자가 처음 발견한 뒤 이름이 없는채 있었다. 그러던차 그해에 김일성이 인도네시아 보고르 식물원을 방문 중, 이 난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동행한 수카르노가 귀한 꽃에 김일성 동지의 존함을 올리겠다고 말한 것이 김일성화 작명의 유래다.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등 북녁 매체들은 연일 김일성 찬양 보도 일색이다. 김일성 조선 백두의 혈통 등 조작을 내세워 사회주의 혁명의 혈통이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으로 잇는 3대 세습의 순혈주의가 정당한 걸로 강변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8년 9월9일 수립됐다. 62년전이다. 그런데도 조선인민군 창군을 78주년으로 친다. 김일성이 처음 항일 유격대를 만들었다는 1932년을 인민군 창설의 해로 잡은 것이다. 인민군은 곧 김일성 군대라는 것이다.김일성은 1912년생이다. 올 생일은 그러니까 99번째 맞는 생일이다. 내년 100번째 생일은 강성대국 진입이 공언된 2012년과 맞물린다. 보기드문 대대적 태양절 행사가 열릴 것이다. 올핸 내년을 준비하는 단계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우상화다. 임양은 주필

인천시장 관용차

멀쩡한 관용 승용차를 바꾸거나 추가로 사는 것은 지방자치 관아의 폐습이다. 몇해 안된 것을 놔두고 새로 산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으레 이렇다. 개혁성향을 내건 송영길 인천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인천시장은 최근 새차로 바꿨다. 시장만이 아니라, 행정정무부시장 승용차도 새차를 샀다. 시장차는 2006년2009년에 산 대형 승용차(3500cc) 두대가 있다. 그런데 이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승합차(3470cc)를 추가로 사들였다. 송영길 인천시장 승용차는 종전 승용차 두대를 합쳐 세대다. 이에 덩달아 새차를 산 두 부시장 승용차는 모두 대형 승용차(2997cc)다. 종전의 승용차는 중형차(1993cc)였다. 다른 광역시 부시장들이 대형 승용차를 타고 다녀서 할 수 없이 바꿨다는 것은 인천시 관계자들 말이다. 웃기는 것은 자체의 관용차량 관리규정을 멋대로 변경해가면서 승용차를 사들인 사실이다. 종전의 관리규정은 내구연한 7년이나 총주행 거리가 12만㎞ 이상 돼야 바꾸도록 돼있었다. 그런데 이래선 내구연한 5년, 주행거리 7~8㎞로는 시장부시장님들 새차를 살 수 없어 관리규정을 고쳤다는 것이다. 명색이 규정을 그렇게 엿장사 맘대로 고칠수 있는 것이라면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아예 없애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걸핏하면 예산이 없어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한다. 지방재정이 나쁜것은 인천시만도 아니다. 그런데도 유별나게 호들갑을 떨곤 했다. 참으로 알수 없는 것은 새차를 사들인 수억원의 돈은 어디서 났느냐는 것이다. 물론 예산에서 뽑은 것이지만, 없는 예산에서 시장부시장님들 새차 뽑는 기술은 정말 놀랍다. 아마 자기네들 개인 돈 같으면 그토록 마구 쓰진 않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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