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안녕히 다녀오세요

최근 아내가 여섯 살 된 딸에게 엄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있다. 아빠가 출퇴근할 때 문 앞에 와서 “안녕히 다녀오세요”,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하는 인사다. 딸바보인 아빠에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해주니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매일 주고받는 이 가벼운 인사가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5월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올해는 근로자의 날이 시행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근로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연대의식을 높이고자 제정된 근로자의 날. 이러한 근로자의 날이 제정된 지 반 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2023년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은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전국에서 매일 5명의 근로자들이 사망한다. 그리고 5명 중 1명은 경기도 근로자들이다. 경기도 사망 근로자 수는 2020년 418명에서 2021년 482명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500명의 사망 근로자가 발생해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사망 근로자 500명을 기록했다. 근로자 수가 많으니 사망 근로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일까. 경기도와 근로자 수가 비슷한 서울(지난해 사망 근로자 273명)과 비교해 보면 경기도 사망 근로자 수가 2배가량 많다. 애초에 사람이 많이 있으니 많이 사망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 많은 근로자가 일을 해도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맞는 것 아닌가. 31개 시·군으로 구성된 경기도는 지역마다 산업의 특성이 다르고 근로자의 근무 형태도 다양하다. 그 결과 산업재해의 유형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가운데 지역에 맞는 맞춤형 산업안전 대책은 수립돼 있을까. 근로자의 날이 50주년을 맞는다. 세상의 모든 근로자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해 본다.

[지지대] 소의민족

배냇저고리. 갓난아기에게 입혔다. 이승을 하직할 땐 수의가 포개졌다. 한여름에는 삼베로 만든 옷들이 출렁거렸다. 엄동설한에는 덕지덕지 무명으로 누볐다. 무채색 풍광의 파노라마였다. 적어도 그랬다. 어렸을 적 기억을 복기하면 그때의 옷들은 흰색에 가까웠다. 색채학적 시각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른들은 ‘백의(白衣)’라고 우겼다. 코흘리개들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선생님들도 “우리는 흰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고 가르쳤다. 중국의 역사서에도 수천년 전부터 우리를 그렇게 불러왔다. 그래서 그게 맞는 표현인 것으로 알고 지내 왔다. 백의민족(白衣民族). 흰색 옷을 즐겨 입었다는 뜻에서 일컬어지던 표현이었다. 당시는 뭐 크게 따질 겨를이 없었다.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게 최대 과제였고, 먹는 것 외에는 모두 사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흰색이라는 지칭에 대해 고찰해보자. 과연 맞을까. 엄밀하게 따지면 백의는 흰색이 아니다. 우리가 예부터 즐겨 입었던 옷감인 모시, 삼베, 무명, 명주 등의 염색하기 전의 색깔은 자연 그대로의 색, 즉 소색(素色)이었다. 당시 이들 옷감으로 만들어졌던 저고리, 두루마기, 갓 등이 그랬다. 소색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칡, 대마, 견, 면 등 다양한 직물과 그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 목화솜, 삼 껍질 등이 입증해준다. 꾸미지 않은 색깔, 그 자체는 소색이다. 천연에서 얻는 섬유 가운데 가장 긴 섬유인 견직물, 내구성이 좋고 세탁이 편리한 면직물 등을 볼 수 있다. 조선백자의 소박하고 기품 있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이제 명쾌해진다. 우리 민족은 엄밀한 의미에서 ‘백의민족’이 아니라 ‘소의민족’이다. 그렇게 불러야 한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는 표현은 수정돼야 마땅하다. 잘못된 건 고쳐야 한다. 그게 정의다.

[지지대] 민물가마우지의 역습?

민물가마우지라는 새가 있다. 수심 2~5m에 머무르는 21~51초 사이에 물고기를 낚아챈다. 몸 색깔은 검은색이고 날개는 흑갈색이다. 부리는 노랗고 뺨은 하얗다. 몸길이는 77~100㎝, 몸무게는 2.6~3.7㎏이다. 원래는 연해주와 사할린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과 일본 등지로 내려오던 겨울철새였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서 겨울을 보낸 개체수가 1999년 269마리에서 올해 2만1천861마리로 20여년 새 무려 100여배 급증했다. 겨울 평균기온이 높아지면서다. 그래서 이젠 기후변화와 천적 감소로 사계절 내내 볼 수 있게 됐다. 철새가 아니라 텃새가 된 셈이다. 김포 등지를 중심으로 집단으로 번식하는 모습도 관찰됐다. 2003년부터다. 산란기는 5~7월인데 한 배에 알을 3~5개 낳고 28~31일 품는다. 그런 데다 잘 먹는다. 먹이는 주로 물고기들이다. 다 큰 새는 하루에 700~750g, 어린 새는 500~700g을 섭취한다. 먹성이 좋다 보니 내수면 어민 입장에선 골칫거리가 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이 녀석들로 인해 어획량이 줄고 배설물 때문에 나무에 백화현상도 나타난다며 피해를 호소한 지자체가 숱하다. 경기 양평을 비롯해 충남 아산, 전북 김제, 충북 단양 등 10여곳이다. 환경당국은 이달 말까지 전국적으로 개체수를 조사 중이다. 이 녀석들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추정되는 지자체들을 선정해 추가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민물가마우지는) 월동 개체군이 아니라 번식 개체군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명쾌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더라도 어획량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포획이 최종 목적이 돼선 안 되는 까닭이다. 지구촌 어디에도 생태계 회복이라는 명제를 우선할 논리는 없다. 환경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지대] 전세사기 피해자의 죽음

인천 미추홀구 한 연립주택에 사는 26세의 청년. 그는 수도요금 6만원을 내지 못해 단수 예고장을 받았다. 며칠 전엔 엄마에게 전화해 “2만원만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 14일 오후 8시께 이 청년은 숨진 채 발견됐다. 연립주택에 함께 사는 친구가 외출 뒤 돌아와 보니 극단적 선택을 한 상태였다. 청년은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다. 건축업자는 161채, 125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숨진 청년은 오피스텔 보증금 9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다. 사기를 당한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남동공단 등지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2019년 6천80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2021년 8월 재계약 때는 임대인 요구로 전세금을 9천만원으로 올려줬다. 오피스텔은 2019년 1억8천여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된 상태였고, 지난해 임의경매에 넘어갔다. 낙찰자가 나와도 그가 받을 수 있는 돈은 3천400만원뿐이었다. 그는 올해 초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생업 때문에 활동을 중단했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그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결국 자살을 택했다. 17일에도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30대 여성이 숨졌는데, 경찰은 전세사기로 인한 극단 선택으로 추정했다. 지난 2월에도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보증금 7천만원을 받지 못한 30대 피해자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전세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적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전세사기를 당한 뒤 스스로를 책망하고 국가를 원망하며 삶을 포기하다니,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다. 욕심에 눈 먼 건축왕이 세입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와 관련 기관 또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악덕업자들의 전세보증 사고가 증가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집값 급등과 급락을 야기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도 원인이다. 이들의 죽음은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이 빚은 사회적 타살이다. 

[지지대] 33번째 한강다리 이름은?

한강은 대한민국의 젖줄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를 정도로 상징성이 크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서울의 한강다리는 32개다. 곧 하나 더 완공된다.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다리는 1900년 7월5일 준공된 한강철교다. 노량진과 용산을 연결한 철교는 길이가 1천113m에 이른다. 한강철교 개통 후, 1917년에 인도 및 차량 교량인 한강대교가 준공됐다. 제1한강교다.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는 1965년 최초의 국내기술로 건설된 한강다리다. 강북의 마포구 합정동과 강남의 영등포구 당산동을 연결한다. 이후 서울의 인구 증가와 한강 이남 및 주변도시 개발 등으로 교통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강다리도 크게 늘었다. 한강다리는 33번째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길이 약 1.7㎞ 대교다. 세종~포천 고속도로의 구리~안성 구간을 건설하면서 놓는 다리로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됐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졌다. 33번째 한강다리 이름을 놓고 이웃한 자치단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구리시는 “교량의 87% 이상이 구리시에 있기 때문에 ‘구리대교’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동구에선 ‘고덕대교’로 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나들목도 ‘고덕’을 붙여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주민 서명운동, 시의회 건의문 채택, 국토부 진정 등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구리시와 강동구는 한치의 양보 의사가 없어 보인다. 두 지자체는 2014년 개통한 ‘구리암사대교’ 이름을 정할 때도 충돌했다. 구리암사대교는 강동구 암사동과 구리시 아천동을 잇는 다리로 당시 강동구는 ‘암사대교’를, 구리시는 ‘구리대교’를 제안했으나 절충해 ‘구리암사대교’로 정해졌다. 이번 명칭 싸움은 두 지자체의 2라운드다. 일부 시민단체에선 절충안으로 ‘고구려대교’나 ‘세종대교’를 제안했다. 지명을 배제하고 지역 역사를 고려해 이름 짓자는 주장이다. 33번째 한강다리 이름은 6월 국가지명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어떤 이름이 나올지 주목된다.

[지지대] 과꽃을 심으면서...

매년 이맘때였다. 화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미로 땅을 파 심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바람이 불어왔다. 이마에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히면 몇 개월 후 맞을 행복을 생각했다. 적당한 높이로 피어 있을 자태가 기다려졌다. 줄기는 곧추선다. 위쪽에서 가지가 조금씩 갈라진다. 높이는 30~100㎝다. 줄기 겉에 흰 털이 난다. 자줏빛도 돈다. 잎은 어긋난다. 가장자리에는 얇은 톱니가 있다. 과꽃의 애틋한 신상명세서다. 어렸을 적 기억이 맞다면 중부지방에 유난히 많았다. 산기슭이나 골짜기, 길가 등지에서 자라곤 했다. 한해살이 꽃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4월 초순이면 심었다. 잎자루는 위로 갈수록 짧다. 꽃은 7~9월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 모양의 꽃이 1개씩 달린다. 머리 모양 꽃은 가장자리가 자주색이다. 가운데 있는 관 모양은 노란색이다. 혀 모양은 암술만 있는 암꽃이다. 모인 꽃 싸개는 반구형, 조각이 세 줄로 붙는다. 초여름에 꽃이 피면 흥얼거리던 동요가 있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아이들은 명랑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박자는 기억보다 훨씬 빨랐다. 뭔가 슬픔이 녹여졌지만 음률은 늠름했다. 시집간 지 삼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누이에 대한 근심 따위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아이들의 노래가 쓸데없는 애조를 띨 일은 없었다. 노래는 그저 노래다. 그 회한의 세월을 되돌아보는 건 어른들의 몫일 뿐이다.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로 ‘과꽃’을 들으면서 그런 처연한 동요를 만들어야만 했던 시대를 소환해본다. 아직도 그 절제된 슬픔은 유효한가.

[지지대] 청년 평균 빚이 1억1천511만원?

‘빚투’는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신조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다는 ‘영끌’이 등장한 지도 오래됐다. 최근 10년 새 평균 부채는 2021년 8천455만원으로 지난 2012년 3천405만원의 2.48배다. 부채가 없는 경우를 포함해 계산됐다. 부채가 있는 경우만 대상으로 계산하면 평균 부채는 1억1천511만원(2012년 5천8만원)이다. 적용 대상이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년 가구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방안 보고서’의 골자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이처럼 위험하게 투자한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청년 가구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300% 이상이고 10년 새 8.37%에서 21.75%로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부채 위험 수준을 살펴 보기 위해 소득 대비 부채비율(DTI)을 따진 결과다. 증가 속도도 가팔랐다. 소득 저분위(저소득자)일수록,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컸다. DTI 외에 소득 대비 부채 상환비율(DSR)이 30% 이상일 때, 자산 대비 부채비율(DTA)이 300% 이상인 경우를 위험한 상태로 간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년 가구 중 DSR이 30% 이상인 비율은 2012년 15.74%에서 2021년 25.78%로 10%포인트 올랐다. DTA가 300% 이상인 비율 역시 2012년 11.77%에서 2021년 16.72%로 뛰었다. 세 가지 비율이 모두 기준을 넘는 경우는 2012년 2.79%에서 2021년 4.77%로 갑절 이상 늘었다. 보고서는 근본 대책으로 주택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했다. 이 같은 통계를 보면서 1967년 발표된 이동하 작가의 ‘우울한 귀향’ 마지막 구절이 오버랩된다. “얻을 것도, 간직할 것도 없는 젊음이 빨리 떠나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듯 뇌까렸다.” 소설 속 56년 전의 픽션과 지금의 현실이 데칼코마니다.

[지지대] 중국의 차기 핵추진 항공모함

일촉즉발이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에 맞서 중국이 나흘 동안 대만을 포위하면서 벌인 무력시위가 그랬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차기 핵추진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두 척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 예측이 사실이라면 중국의 항공모함은 모두 5척이 된다. 중국은 통상적으로 항공모함에 건조됐던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의 명칭을 붙였다. ‘랴오닝함’, ‘산둥함’, ‘푸젠함’ 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항공모함은 모두 8만t이었다. 하지만 새로 건조될 항공모함은 10만t으로 전망된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중국 장난조선소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신형 항공모함 개념도를 공개했다. 장난조선소는 핵추진 장치에 대해 공개 입찰하고 2025년 이전 건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차기 항공모함 동력은 핵추진에 기반한다고 예측했다. 관제탑과 군용기 이착륙 공간도 이전보다 넓어졌다고 강조했다. 대만 언론들도 핵추진 항공모함은 5세대 전투기 젠(J)-35 외에 J-15 전투기, KJ-600, 10t급 중형 헬기 즈(Z)-20 등을 기반으로 개발한 Z-20F 대잠헬기 탑재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략예산평가센터(CSBA)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1~2031년 중국 해군의 항공모함이 2척에서 5척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장옌팅 전 대만 공군 부사령관(예비역 중장)도 이 같은 분석에 가세했다. 중국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항공모함 함재기 이륙 방식이 기존 스키점프대식이 아니라 전자기 캐터펄트 방식이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자랑하는 니미츠 항공모함과 비숫하다. 중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건조가 동아시아 안보에 미칠 영향은 심대하다. 국가 간 전력의 균형이 깨지면 어김없이 전쟁이 발발했음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어서다.

[지지대] 세금 흥정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카지노’(영어제목 Big Bet)가 큰 인기다. 드라마는 차무식(최민식)이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가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왕이 되지만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모든 걸 잃은 후 벼랑 끝 베팅을 하는 이야기다. 차무식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전력투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는 탁월한 임기응변과 근성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불법 도박장을 여러 개 운영하다 80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아 국세청 강민정(류현경) 팀장과 추징금을 두고 흥정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내가 세금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조금 깎아 달라는 겁니다.” 결국 90%의 세금을 깎고 8억원만 내는 뛰어난 거래 능력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 때문에 요즘 일선 세무서에서 곤욕을 겪고 있다. 차무식이 그랬던 것처럼 세금을 깎아 달라는 민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강민정은 “어차피 자료도 없고 소송에서 이기기 힘들어 깎아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카지노’ 이야기를 하며 세금 흥정을 하는 것이다. 온라인에도 ‘카지노 차무식처럼 세금 조정할 수 있나?’ ‘세금을 90%나 깎아 주던데 가능한가?’ 등의 질문이 여러 건이다. 댓글에는 ‘90%까지는 아니어도 흥정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꽤 있다. 현실에서 세금 탕감은 안 된다. 세금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 세금은 일단 결정하고 고지하면 5년 소멸시효가 지날 때까지 유예는 받아도 탕감 받을 수는 없다. ‘명백한 과세자료가 있는 한’ 차무식과 같은 납세자의 진술은 먹히지 않는다. 고지한 세액을 탕감하는 행위는 더욱 불가능하다. 과세 단계에서 결정적인 과세자료가 없다면 차무식처럼 사실 확인에 의해 과세할 수밖에 없는 한계는 있다. 국세청의 조세불복청구 중 과세전적부심사청구 처리 현황을 보면 2020년 2천546건, 2021년 2천545건, 2022년 2천289건 등 매년 2천건 넘는 불복청구가 제기되고 있다. 세금은 정확하게 부과하고, 제대로 거둬들여야 한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사람이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한다.

[지지대] 경기도청 측백나무

수원광교박물관 정원에 측백나무 한 그루가 자리해 있다. 100살이 넘은 의미있는 나무다. ‘경기도청이 서울 광화문에서 개청할 때부터 수원으로 이전할 때까지(1910~1967년) 역사를 함께한 수목입니다. 수령은 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13m, 수관폭 약 15m, 뿌리 지름은 3m에 달하는 경기도청의 역사적 흔적을 품은 고목입니다.’ 안내판에 써있는 글이다. 측백나무가 수원광교박물관 앞에 심어진 것은 2018년 4월이다. 서울의 옛 경기도청사 부지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1910년 경기도청 건립 당시 심었을 것으로 보이는 측백나무는 도청이 수원으로 이전된 뒤 홀로 남아있다가 반세기 만에 경기도 땅에 뿌리를 내렸다. 경기도청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한 것은 1967년이다. 경기도청 유치를 위해 인천과 수원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이병희 국회의원(수원유치위원장)이 삭발까지 하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무릎을 꿇고 수원 이전을 요청했다. 수원은 조선시대에 경기감영이 있었고, 6·25전쟁 때 임시도청이 설치된 바 있어 ‘수원 존치’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사활을 건 유치전에서 수원이 승리했다. 1964년 10월15일 팔달산 아래 수원공설운동장 터에서 경기도청사 신축 기공식이 열렸다. 1967년 6월23일엔 도청 이전식과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다. 경기도청 수원 이전 때, 측백나무는 광화문 도청사 터에 남겨졌다. 그후 50여년이 지났고, 측백나무가 서 있는 부지가 서울시역사박물관의 ‘의정부터 발굴조사계획’에 포함돼 베거나 이식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논의해 경기도로 옮기기로 했다. 측백나무를 일단 수원광교박물관에 가이식(假移植)하고, 새 도청사가 광교에 들어서면 준공 시기에 맞춰 다시 옮겨 심는다는 계획이었다. 경기도청은 팔달산 시대를 마감하고 광교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측백나무는 아직 수원광교박물관에 있다. 많은 이들이 광교청사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올봄에는 ‘경기도청 측백나무’를 광교 도청에 심었으면 좋겠다. 경기도청의 역사성이 담긴 경기도청 나무니까.

[지지대] 제67회 신문의 날

꽤 당혹스러웠다. ‘문신닙독’이라고 적힌 제호를 처음 봤을 때 그랬다. 학창시절 얘기다. 도대체 뭔 말일까. 알고 보니 국내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의 19세기 후반 버전 표기였다. 20세기 중반까지 한글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적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기억의 한 토막은 또 있다. 당시 신문에 실리는 기사의 문체는 대부분 구어체였다. 그리고 먼저 호칭 또는 주어와 함께 결론을 짧게 앞세웠다. 이를테면 “묻노니 동포들이여”라고 시작한 뒤 “힘을 기르소서” 등으로 끝나는 식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도 그랬다. 그래서일까. 당시의 신문 기사들은 대부분 연설문처럼 읽혔다. 독립신문은 독립협회의 전신인 독립문건립추진위원회가 주도해 창간했다. 1896년 4월7일이었다. 순한글 3개면과 영문 1개면 등 총 4개면으로 구성됐다. 처음에는 주 3회 300부씩 발행했다. 이듬해 1월5일부터 영문판은 4개면짜리 ‘The Independent’로 분리됐다. 1898년 7월1일부터는 일간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일간지로 발행됐다. 유길준, 윤치호, 이상재, 주시경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독립협회가 해체된 이후에는 윤치호, 헨리 아펜젤러 등이 잠시 맡았으나 정부가 인수한 뒤 1899년 12월4일 폐간됐다. 3년 남짓 발행됐던 셈이다. 독립신문에 실리는 기사는 당시의 한글 쓰임새를 살펴보는 데도 소중한 자료다. 1933년 폐지된 아래아(·)도 사용됐다. 한글에 띄어쓰기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한글을 쓸 때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정부가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정했다. 1957년이었다. 올해가 67년째다. 그런데 매년 이날을 맞을 때마다 궁금한 게 있다. 독자들은 아직도 신문을 ‘사회의 공기(公器)’로 바라보고 있을까. 독자들에게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 까닭이다.

[지지대]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가 최우선

우리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예민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다. 일부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은 과거 학교폭력이 뒤늦게 드러나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학교폭력은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학교폭력은 이미 진부한 이슈다. 2000년대 중반에 불거지면서 2009년에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법이 제정된 지 무려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이 뜨거운 이슈다. 학교폭력이 지능화하고 잔인해진 데다 피해자는 평생 고통을 받는 반면 가해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잘 지내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 관련 사회적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최근 드라마 ‘더 글로리’로 인해 다시 한번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드러났고 이제 학교폭력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이슈기도 하다. 최근 인천에서는 송도국제도시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사실 직업적으로는 너무 잦은 학교폭력 사건을 봐온 터라 무감각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피해 학생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만 날 뿐이다. 더욱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보다 사실관계 파악 등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면 안타깝기 지없다. 어른들이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고, 직업적으로 접근해 ‘너무 일만 하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관련 법은 제1조에서 피해 학생의 보호를 가장 먼저 규정하고 있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 학생은 처벌·선도해 앞으로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지지대] ‘정의와 희망을 심는’ 식목일

전쟁에서 졌다. 국민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때였다. 군인 출신의 젊은이가 나무를 심자고 제창했다. 그런 끝에 땅을 옥토로 바꿨다. 덴마크의 엔리코 달가스(1828~1894) 얘기다. 그렇게 국민 영웅이 됐다. 그의 조국이 당시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전한 시기는 1864년이었다. 그는 “밖에서 잃은 것들을 안에서 되찾자”며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열성에 감동한 국민들은 마침내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었다. 국토는 푸른빛으로 바뀌었고 덴마크는 부흥의 기틀을 다졌다. 유럽 버전의 식목일이었다. 그로부터 1세기 남짓 지난 1953년 8월 한반도의 상황도 비슷했다. 포화는 산림도 비켜가지 않았다. 숲은 극도로 황폐화됐다. 대대적인 녹화사업이 펼쳐졌다. 나무 심는 날도 지정됐다. 온 국민이 봄이면 산에 나무를 심었다. 연례행사였다. 필자도 초등학교 때 매년 이맘때면 그랬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푸르름을 심는 거란다” 사실 나무 심기는 전통적으로 동양의 개념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공자와 맹자, 노자 등 기원전 400여년 전 중국 대륙을 섭렵했던 철학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식목의 목적은 미래를 심는 것이고 그래야 정의와 희망이 살아난다”고 주창했다. 식목일은 나무를 심고 잘 가꾸도록 권장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다.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루던 날이 음력으로 4월5일이었다. 조선시대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을 이끌고 선농단에서 제를 지낸 뒤 주변의 산이나 들에 나무를 심었다. 우리나라 식목일의 기원이다. 농사적으로도 뜻있는 날이고 나무 심기에도 좋다. 올해 식목일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정의와 희망을 심자. 요즘처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암울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지지대] 갈 길 먼 ‘경비원 갑질방지법’

아파트 경비원들의 삶은 고달프다.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주변인들의 모욕과 멸시, 천대, 폭언 등이 더 괴롭다. “공부를 못하면 저렇게 돼”라든가,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채용했냐, 당장 바꿔라”, “(경비초소에 불 켜놓은 것에 대해) 너희 집이면 불 켜놓을 거냐” 등의 폭언에 시달렸다는 이가 상당수다. 입주민에게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얘기해 그만두게 하겠다고 협박당한 경우도 있다. 직장갑질119가 최근 공개한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에 나온 내용들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경비원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는 목숨을 끊기 전 관리소장의 ‘갑질’을 주장하는 유서를 남겼다. 부하 경비원이 연초 업무상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A씨를 경비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시켰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아파트에서 10여년간 근무한 A씨는 ‘부당한 인사 조치’를 비관하며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2020년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이후 ‘경비원 갑질방지법’(공동주택관리법)이 만들어졌다.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와 관리주체가 경비원을 상대로 업무 외의 부당한 지시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경비원이 3개월 등 초단기로 간접 고용되는 등 불안한 노동환경 탓에 문제 제기가 어렵다. 근로기준법상 같은 회사 소속이어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데 관리소장과 경비원의 소속이 다른 경우가 많은 것도 맹점이다. 300가구 이하 아파트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때문에 갑질방지법이 생겼어도 고용 불안에 떨며 갑질을 노출시키지 못한다. 전국 경비원 26만9천명 중 79.6%가 60세 이상이다. 70세 이상 고령자도 30%에 가깝다. 경비원으로 시작한 ‘제2의 인생’이 낮은 임금과 경비 외 업무, 휴가 거부 등 부당한 처우와 갑질로 고통받아선 안 된다. 실효성 없는 법을 수정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지지대] ‘검정고무신’의 비극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 중학생 기철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만화다.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이영일 작가가 글을 썼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 챔프에 연재해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웠고, 45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애니메이션도 제작됐으며, 캐릭터 사업으로도 이어졌다. ‘검정고무신’이 국민적 인기를 끌며 호황을 누렸으나 만화가는 행복하지 않았다. 15년 전 사업화를 제안하는 회사만 믿고 맺은 불공정 계약으로, 원작자인데도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해 고통받다가 이우영 작가(51)가 세상을 등졌다. 원작자임에도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자신의 다른 작품에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부모님 농장에서 ‘검정고무신’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이 작가는 지난 11일 강화군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몇 년째 저작권 소송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피폐해졌다.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회사가 77개 부가사업을 벌이는 동안 작가가 수익 배분받은 돈은 1천200만원 정도”였다. 회사는 1960, 70년대 원작 배경을 현재로 바꿔 새 버전을 내고 싶다는 작가의 창작 의지도 꺾어 버렸다. 이 작가는 죽기 며칠 전 아내에게 “사람이 죽어야 이슈가 될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불공정 계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 사업체, 작가,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를 보면 웹툰작가의 약 60%가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한다. 이우영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 직후 문화체육관광부는 불공정 계약을 막겠다며 법률지원센터 구축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공정위는 9년 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 그림책 ‘구름빵’ 작가 백희나씨가 1천850만원밖에 보상받지 못한 게 논란이 되자 출판계의 불공정 약관을 시정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작가의 예술혼과 창작열을 짓밟는 시스템은 시정되지 않았다. 예술노동자들의 안정적 생활과 창작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및 노동권 확립, 저작권 불공정 관행 등 해결 과제가 많다. 입법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구체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지대] 일본에서 돌아온 ‘대동여지도’

지도는 문명의 결정체다. 그런데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만들었을까. 지금으로 치면 첨단기술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게 궁금했다.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1804~1866)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볼 때마다 늘 들었던 생각이다. 해당 지도는 10리마다 표시해 실용적인 목적을 꾀했다.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조선시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정보지다. 10리는 직선거리 10리가 아니라 실제거리 10리이고 산이 험할수록 촘촘하게 찍혀 있다. 숭실대와 고려대 박물관 등에 목판 일부가 남아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대동여지도 목판 11장이 보관·전시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목판은 초창기 해당 목판에 잘못된 기록을 수정한 흔적이 있다. 고산자가 직접 만든 초판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더 많이 있었지만 6·25전쟁을 거치면서 이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대동여지도에 각종 지리정보를 추가한 새로운 지도가 국내로 돌아왔다. 기존에 알려진 대동여지도와는 구성이나 내용 등이 달라 주목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등은 목록 1첩(帖·묶어 놓은 책), 지도 22첩 등 총 23첩으로 구성된 대동여지도를 일본에서 환수했다고 밝혔다. 가로 20㎝, 세로 30㎝ 크기로 책자가 여러 개 있는 형태다. 새로 존재가 확인된 지도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내용이다. 손으로 그리거나 써서 만든 필사본(筆寫本) 지도로 조선시대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 지리정보와 1만8천여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다. 문화재청은 1864년 발간된 ‘갑자본’ 대동여지도가 희소한 만큼 문화·학술적 가치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궁금하다. 누가 언제 일본으로 유출했느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문화유산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으뜸 자산이다. 이를 지키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지지대] 철기둥의 충격 발언과 구설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수장인 위르겐 클린스만이 부임 후 두 번의 평가전을 치렀다. 전술을 정비할 시간도 없이 본인이 지닌 세계적인 공격수의 DNA를 이식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을 가진 채 콜롬비아와 우루과이 등 전통의 남미 강호들을 상대로 경기력을 선보였다. 일단 공격력에선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문제는 수비였다. 이탈리아 세리에A를 종횡무진 누비며 월드클래스 수비수의 반열에 오른 ‘철기둥’ 김민재 선수만이 후방을 책임지며 고군분투하고, 때론 부족한 경기력에 답답해하는 모습이 자주 중계 화면에 잡혔다. 그리고 이어진 충격 발언. 김민재 선수는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의 A매치 친선전 후 인터뷰에서 “당분간이 아니라 일단 소속 팀에서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축구적으로 힘들고 몸도 힘들다”며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이어 “멘털적으로 무너진 상태”라며 “대표팀보다는 소속 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충격 발언으로 국내 축구팬들을 혼란에 휩싸이게 했다. ‘27세. 대한민국 괴물 수비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축구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특히 개인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공격수와 달리 수비수들은 유기적인 전술을 통해 실점을 하지 않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그런데 소속 팀, 유럽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던 김민재 선수는 대표팀에서 한계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되는 수많은 이적설도 젊은 선수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줬을지도. 어느 사회나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크랙(Crack)’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크랙을 빠른 시간에 봉합해 더욱 단단해지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만약 그 크랙을 방치하면 나중에 손을 쓸 수 없게 돼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다. 김민재 선수가 지닌 지금의 크랙을 축구협회와 대표팀 코치진이 어떻게 슬기롭게 봉합하는지에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가 달렸다. 아울러 우리가 가진 크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지대] ‘유전자 변형’ 주키니호박 소동

보통 이맘때부터 씨를 뿌린다. 그리고 여름부터 수확한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가 친정이다. 줄기는 대부분 노란색이지만 가끔 분홍색도 있다. 수수께끼 같지만 조금만 더 설명해보자. 줄기의 위와 아래 끝이 제법 싱싱하다. 겉모양은 오이와 비슷하다. 껍질째 가열해 요리하는데 쓴맛이 은근하다. 씹는 질감은 가지 맛이다. 당질과 비타민A 등이 많다. 우리말로는 돼지호박, 외국어로는 주키니(Zucchini)호박이라고 불리는 작물의 이력서다. 애호박보다 크고 통통하다. 개화한 뒤 5~7일 지난 미숙한 열매를 먹는다. 무게가 150~200g 됐을 때 수확한다. 오이보다 조금 큰 정도다. 현재 전국 농가 3천500여곳에서 재배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국내에서 승인을 받지 않은 유전자 변형 주키니호박이 유통된 것으로 밝혀져 작은 소동이 일었다. 국립종자원은 국내에서 생산된 해당 호박 종자 일부가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변형생물체(LMO)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종자 판매를 금지하고 수거·폐기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소비자와 유통업체가 보유 중인 물량에 대해서도 판매를 중단하고 다음 달 2일까지 전량 수거·매입하기로 했다. 국립종자원은 앞서 올해부터 국내에서 신품종 등록을 위해 출원하는 해당 호박 종자에 대해 LMO 검사를 실시해 왔다. 검사를 통해 국내 한 기업이 새로 개발해 출원한 종자가 LMO로 판명됐다. 해당 종자는 다른 기업이 판매한 종자를 사용해 육종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은 해당 LMO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일반 호박과 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작은 소동이었지만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유전자 변형에 따른 재앙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다. 자연 그대로를 임의로 바꾸려는 발상은 인류의 존립을 위협한다. 지구의 서사가 주는 준엄한 경고다.

[지지대] 황당한 저출산 대책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9명의 절반 정도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16년간 투입한 저출산 예산이 무려 280조원이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예산을 퍼붓는데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실효성이 없는 데다, 예산이 직접 연관성이 없는 엉뚱한 곳에 지원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청년 창업지원을 한다며 게임·만화기업 등에 지원한다든가, 가족여가 진흥을 위해 템플스테이에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영유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 비중은 감소했다. 최근 내놓는 저출산 대책은 더 황당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1월 아이 셋을 낳으면 4천만원의 대출을 탕감해주는 안을 내놨다가 철퇴를 맞았다. 이어 국민의힘이 20대에 자녀를 셋 낳은 아빠의 병역을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철회했다. 20대에 결혼도 힘든데 자녀 셋이라니, 논란과 비판이 거셌다. 국민의힘은 ‘자녀 수에 따른 증여재산 공제 차등 확대’ 방안도 검토했다. 1자녀 부모는 1억원, 2자녀 부모는 2억원, 3자녀 부모는 4억원까지 조부모에게 증여받아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이 역시 비판이 일자, ‘그냥 아이디어’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내놓은 출산장려 대책도 웃긴다. 결혼하지 않거나 늦게 결혼하는 풍조가 출산율을 낮춘다고 지적하면서 기업과 공공기관 협조하에 휴학을 하거나 해외연수를 다녀오느라 늦게 졸업한 대학생에게 채용 때 불이익을 주자는 제안이다. 정부·여당과 국책연구기관 등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대책만 쏟아내니 출산율이 오를 리 없다. 젊은 남녀가 아이 낳기를 꺼리는 건 아이를 기를 만한 여유가 안 되고,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45.2%)가 육아휴직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한다. 저출산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우선 출산휴가·육아휴직만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지대] 가족 간 스토킹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엄마 정미희(박지아)에게 방치·학대 등을 당한 가정폭력 피해자다. 그녀는 18년 동안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 어느 날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동은에게 말한다. “핏줄이 그렇게 쉽게 안 끊어져. 동사무소 가서 서류 한 장 떼면 너 어디 있는지 다 나와. 어디 또 숨어봐. 내가 찾나, 못 찾나.” 동은처럼 가족·친족으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는 사례가 종종 있다. 2021년 20대 여성 A씨는 생모의 반복되는 폭언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연락처를 바꿨다. 그러나 이사한 지 한달여 만에 A씨를 찾아냈다. 생모는 A씨의 오피스텔을 두 차례 찾아가 각각 1시간7분, 38분 동안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스토킹 범죄 피해에서 ‘가족 관계’는 도망치기 어려운 덫이다. 가해자는 친족이라는 관계를 이용해 실종 신고를 해 피해자를 찾아낸다. 피해자 명의의 도장으로 피해자 주거지에 무단 전입신고를 하기도 한다. 주변인을 괴롭혀 정보를 얻어내는 일도 있다. 2018년 서울에서 벌어진 전 남편에 의한 스토킹 살해 사건처럼, 가족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토킹은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여성의전화의 ‘2022 전국 상담 통계’를 보면 스토킹 가해자는 과거 또는 현재 연인, 데이트 상대자(35.1%)에 이어 전·현 배우자(14.4%), 친족(11.7%) 등의 순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가족관계 등에서의 스토킹 범죄’ 보고서에도 배우자와의 별거나 이혼 과정에서 스토킹 피해를 경험했다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전체의 34.2%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를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가정폭력 피해자의 스토킹 범죄는 사각지대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족이나 친족에게 스토킹 피해를 입어도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범죄에 포함되지 않아 보호 조치에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도 가족 간 스토킹 범죄 수사에 소극적이다. 가정폭력처벌법에 스토킹 범죄 포함, 스토킹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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