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1년여 남긴 가운데 여권이 쇄신론에 휩싸였습니다. 한나라당 의원 25명이 대통령이 사과하고 핵심공약을 폐기하라는 강도높은 연판장을 돌렸습니다. 이에대해 이 대통령은 쇄신 요구에 대해 침묵이 대답이라고 밝혔습니다. 쇄신에는 좋은 쇄신과 나쁜 쇄신, 이상한 쇄신이 있습니다. 2011년 11월 한나라당의 쇄신은 이상한 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쇄신 요구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련칼럼 = 좋은 쇄신, 나쁜 쇄신, 이상한 쇄신]
공기업 이전 피해자는 수원 '10년 갈 정치, 100년 갈 야구' 탤런트 홍수아의 별명은 홍드로다. 프로야구 경기에 시구한 뒤로 얻은 애칭이다. 완벽한 투구자세가 미국의 페드로 선수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의 시구도 모두를 놀라게 했다. 거의 일자상태로 들어 올린 와인드업 모션 때문이다. 방송인 이수정은 시구를 통해 유명인이 됐다. 레이싱 모델이던 그의 무명시절은 이 시구 한 번에 끝났다. 이 한 개의 공을 위해 한 달간 연습을 했다는 뒷얘기가 더 감동적이다. 원래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파란 그라운드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양복차림의 경호원이 등장하고 이어 대통령이 나온다. 얼굴 한가득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엉성한 폼으로 공을 던진다. 꽃가루가 날리고 관중은 원치 않는 환호를 보낸다. 20여 년을 그래 왔다. 이게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이 섰던 그 마운드에 대신 홍수아, 손연재, 이수정이 섰다. 정치가 빠져나간 야구장에는 600만 관중이 몰려 들었다.이렇게 한물간 것처럼 여겨졌던 야구정치가 다시 등장하려고 한다. LH 가 경상도 진주로 갔으니 대신 전북에 10구단을 줘야 한다., 지역 안배 차원에서 수도권에 10구단을 주면 안 된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수원보다는 전북 쪽에서 나오는 말이고, 그러니 10구단은 전북에 줘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구구단 선정의 기준으로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틀린 논리다. LH 이전이 무산되면서 전북도민의 실망감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전주와 진주, 전라도와 경상도가 계산할 문제다. 공기업 이전에 관한 한 최대 피해지역은 경기도다. 경기도에서 빠져나간 공기업만 10개다. 가스공사가 나갔고, 토지공사가 나갔고, 주택공사가 나갔고, 도로공사가 나갔고, 석유공사가 나갔고, 농업기반공사가 나갔고, 한전기공이 나갔고, 한국전산원이 나갔고, 에너지 관리공단이 나갔다. LH 하나 안 왔다고 야구구단 하나를 줘야 한다면, 공기업 10개가 떠난 경기도에는 야구구단 10개를 줘야 한다. 수긍할 수 있겠나. 수원은 할 말이 더 많다. 조선 정조이래 수원의 기반 산업은 농업이었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농업발전도 수원이 이끌어 왔다. 그런데 이 기관들이 모두 떠난다. 농진청 본청과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도 짐 보따리를 싸놓은 상태다. 하필 이번에 경쟁하는 전북으로 간다. 2014년이면 전북혁신지구는 농업관련 정규직 1천700명과 3천명의 연구보조원들로 북적댈 것이다. 수원을 텅 비게 하고 얻어가는 대가다. 농업기관을 다 줬으니 10구단이라도 달라고 소리 지를 쪽은 되레 수원이다. 동의할 수 있겠나. 굳이 정치적으로 따져보더라도 이렇다. 보상을 요구할 곳은 전북이 아니라 경기도였고, 피해를 호소할 곳은 전주가 아니라 수원이었다.그러나. 이런 정치논리에 기대 유불리를 따지려 들면 안 된다. 설혹 결론이 수원에 유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10구단 유치 경쟁의 기준은 철저한 야구 논리다. 관객 동원력 따지고, 시민의 열기 가늠하고, 구단의 경영진단 계산해 결론 낼 일이다. 공기업 이전의 야속함은 국가균형발전 이론에서 논하면 되고, 수도권 견제의 필요성은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풀면 된다. 이런 문제와 야구를 묘하게 뒤섞어놓고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려 하면 안 된다. 정치권력은 10년도 못 가지만 야구역사는 100년을 간다. 정치는 국민을 짜증 나게 하지만 야구는 팬들을 신명나게 한다. 정권이 지키던 쌍방울(레이더스)은 망했지만, 팬들이 지켜주는 롯데(자이언츠)는 흥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시구한 시즌에는 150만 명이 왔지만, 홍수아가 시구한 시즌에는 600 만 명이 왔다. KBO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김종구 논설위원
-미셀은 집을 나온 노숙인이다. 원래 부유한 화가였다. 시력을 잃는 병을 얻자 가출했다. 그녀가 거지 알렉스를 만났다. 인생을 포기한 여성 노숙인과 전형적인 거지의 만남.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됐다. 공사 중인 퐁네프의 다리가 보금자리였고, 구걸해온 날 생선이 사랑의 만찬이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 우리와 똑같은 질투와 행복이 있었고 이별과 재회가 있었다.-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원제: The Lovers On The Bridge)이 그리는 노숙인의 생활은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고 그 위로 보통의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 가감 없이 겹쳐졌다. 세상이 버린 자들이 만들어가는 세상과 똑같은 사랑 얘기다. 줄리에뜨 비노쉬(미셀)의 명연기가 아니더라도 소재 자체로 충격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 노숙인들의 사랑 얘기에 신이 내린 걸작이라는 평을 선사했다. 검열로 난도질 된 이 영화가 상영되던 1991년, 우리에게 노숙인이라는 말은 없었다. 거지와 걸인, 부랑아가 다였다. 좌절과 절망에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10년쯤 뒤다. IMF의 후폭풍이 낳은 모습이었다. 거지는 더 이상 타고 나는 팔자가 아니었다. 누구나 아차 하면 추락하게 되는 발밑의 현실이었다. 노숙인이 적선이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 된 게 그때부터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나아진 게 없다. 노숙인 대책은 여전히 잉여(剩餘)정책이다. 여유 있으면 챙겨주는 정책, 남는 돈 있으면 나눠주는 정책이다. 남성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여성 노숙인은 아예 고민과 적선의 대상도 아니다. 남성 노숙인부터 챙긴 뒤 남는 여유가 있으면 비로소 차례가 온다. 국가가 남성 노숙인을 버렸다면, 여성 노숙인은 그 남성 노숙인에게조차 밀려나고 있다. 통계랄 것도 없다. 전체 노숙인에 10~15% 정도라는 추측만 수년째다. 엉터리다. 공무원들이 출장 나가는 역(驛) 주변은 힘있는 남성 노숙인들의 공간이다. 폭력과 성폭행을 감수하면서 그곳에서 버티는 여성은 없다. 모두 예배당, 병원 대기실, 건물 계단으로 몸을 숨겼다. 9개의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경기도가 단 한 칸의 공간도 여성 노숙인에게 내주지 않는 게 이런 엉터리 통계때문이다. 그들은 가출한 게 아니라 출가 된 거다. 어느 복지 단체가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20~40대 여성은 배우자의 폭력을, 60~70대 여성은 자식들의 버림을 얘기했다. 폭력을 피해 나왔고 버림받아 쫓겨났다고 답했다. 그런 사람들이 또다시 사회에서 폭행당하고 쫓겨 다니고 있는 거다. 언제 들어도 참혹한 게 노숙인 얘기다. 안타깝지만 듣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런 얘기를 구태여 한가위의 풍요로움 끝자락에 붙들고 있는 이유가 있다. 너도나도 복지를 얘기하는 정치권의 추석 화두때문이다. 복지의 기본도 못하는 나라에서 복지의 천국을 얘기하는 게 하도 우스워서다.복지의 기본이 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 보장이다. 아름답게 살고 풍요롭게 살아갈 복지는 이런 기본을 끝내고 나서의 일이다.배급(?)으로 한 끼니를 때운 결식아동들은 나머지 두 끼니를 공복으로 버틴다. 추석명절이 괴로운 결손아동들은 놀이터가 싫어 연휴 내내 방안에서 지냈다. 하루 2천500원짜리 도시락을 기다리는 재가(독거)노인들은 혹시나 끊길까봐 명절이 두렵다. 남성에게 잠자리를 내준 여성 노숙인들은 멀쩡한 보호시설 옆 공원에서 종이상자로 밤을 지새고 있다.복지의 기본이 이 지경이다. 이걸 못 본체 건너뛰어 복지 천국으로 가자는 건가. 결식아동과 재가 노인의 두 끼니는 계속 굶는 것이고, 결손 아동들의 명절은 계속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것인가. 남성 노숙인의 잠자리를 빼앗긴 여성 노숙인에게는 서울(아가페의 집)로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 끝이라는 건가.퐁네프의 걸인들에게도 사랑은 있었는데. 표와 복지 경쟁에 눈먼 정치인들이 점점 잔인해지고 있다.김종구 논설위원